발뭉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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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마르께스
작품등록일 :
2018.08.1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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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1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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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바의 반지 (2)

DUMMY

결론적으로 발란드는 서기나 마법사의 조수, 관리보조는 되지 못했다. 일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았고 인맥이 없는 경우 들어갈 수 없는 자리였다.


평범한 마을 청년인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안이하게 생각한 것이다. 발란드는 기사종자 시험만 준비해 보았기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을 준비했다고 오만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각자의 길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한다.


시험공부를 하며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 다른 이들이 먼저 나아간 길을 따라잡는 것에는 시간이 걸렸다. 발란드는 결국 대장간에서 허드렛일을 배웠다.


도제보다도 낮은 급의 잡다한 청소, 짐 나르기 따위였지만 제련되는 장신구와 농기구, 때로는 성에서 주문을 넣은 기사들의 무구를 나르며 나중에 자신의 무구를 알아보고 갖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스스로에게 합리화했다.


"발뭉의 호수를 헤엄쳐 중앙섬까지 다녀온 사람이 자네인가?"


검은색 로브를 눌러쓴 여자가 무더운 대장간의 열기를 피해 밖에 앉아 숨을 고르는 발란드에게 말을 걸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수상해 보였다. 한여름에 무더워 보이는 옷을 입고 낯선 이에게 하야하고 있다. 소매 밑으로 드러난 가느다란 손은 생기가 없다고 여겨질 만큼 시체의 손 같았다.


발란드의 눈을 들여다보더니 수상한 여인은 답이 필요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호수 밑에 금색 손잡이를 가지고 푸른 보석이 박혀있는 검을 찾아야 하네. 그 검에는 피 흘리는 독사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독사는 꼬리를 치켜들고 있지."


그리고 의문의 마법사는 뜸을 들이며 발란드의 답을 기다렸다.


"마법사의 탑에서 나오신 분이십니까?"


"아니, 하지만 나도 분명 마법사일세. 자네가 호수에 들어가 준다고 약속하면 원하는 보상과 또 마법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무슨 부탁이라도 들어주겠네."


마법사는 값비싸 보이는 루비와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를 손을 들어 보여주었다. 발란드는 그 중 장식 없이 수수하지만 작은 다이아몬드가 별빛처럼 박힌 아름다운 반지에 마음을 빼앗겼다.


시아르에게 어울릴 것 같았다. 수중에 이렇다 할 돈이 없기에 약혼한 그녀에게 변변한 선물도 해주지 못했다.


"이 반지를 원하나? 호수에서 내가 알고 있는 곳으로 가서 피 흘리는 독사의 문양이 들어간 검을 꺼내 준다면 자네에게 주겠네."


"아닙니다. 단지..."


마법사가 발란드의 시선을 알아채고 먼저 핏기하나 없는 하얀 손에서 반지를 빼내 발란드에게 넘겨줬다.


영롱한 반지의 은빛에 마음이 매혹당한 발란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앞으로 마법사의 은빛 반지를 들여다보았다. 반지에 새겨진 작은 글씨가 보였다. '스바바'였다.


"그 반지의 이름은 스바바일세. 스바바는 용맹한 발키리 여전사이지. 전장에서 반지를 낀 사람을 보호해주고 명예를 약속해준다네. 가운데 보석이 다이아몬드이니 그저 장신구로 선물해도 괜찮다네. 내가 찾는 니벨룽 족의 검이나 여타 니벨룽겐의 보물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흔히 볼 수 없는 반지이지."


발뭉의 호수에 대해 두려움이 없는 발란드는 선뜻 제안을 받아들이려 했다. 마법사의 탑에서 나온 경고를 기억해냈다. 탑의 마법사들은 흑마법사들을 적대시한다.


사람에게 저주를 걸고, 악령을 부리며 시신을 훔치는 흑마법사나 마녀들도 발뭉의 호수 아래 있다는 니벨룽겐의 보물을 노리고 있다.


도적질은 성공할 리 없지만 만일 그들이 모습을 보인다면 지체하지 말고 자신들이나 뵐룬두르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검이 잠겨있는 위치를 알고 있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영 그 호수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더군. 심지어 호수 중앙으로 떠갈 배도 구할 수 없었어."


반지를 놓지 않으려는 발란드의 손에서 반지를 빼앗은 마법사는 도로 시체 같은 손가락에 끼웠다.


"선물해주고 싶은 여인이 있나 보군. 좋아, 자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네?"


발란드가 홀린 듯 멍하니 마법사, 아니 마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각배를 대어 놓을 테니 오늘 자정까지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발뭉의 호수로 오게."


그날 밤, 발란드는 악몽을 꾸었다. 침실에서 뒤척이는 발란드의 꿈속에 차가운 얼굴의 시아르가 나왔다.


'분명 기사가 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여기서 뭐하는 거야?'


시아르는 쌀쌀맞게 발란드를 쏘아붙였다. 발란드는 그 눈이 마치 살점을 도려내는 듯이 아파서 돌아보자, 자신의 손에 대장간의 더러운 쇠를 식힌 물이 들려있고 대장장이와 도제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다 오물에 덮인 채인 것을 깨달았다.


곧 돼지우리 가운데 내버려진 자신을 두고 호수 위로 부서지는 햇살처럼 금빛인 머릿결을 가진 시아르가 깔깔 비웃는 소리를 들었다. 당황한 발란드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시아르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검은 로브를 쓴 마녀의 웃음소리로 변했다.


돼지우리 바깥에 서서 오물과 돼지죽, 돼지들에게 둘러싸인 발란드를 비웃는 것은 이제 시아르가 아니라 검은 로브를 쓴 마법사였다.


발란드가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밤이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자 몸에 힘이 돌아왔다.


가족들이 걱정스럽게 발란드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발란드는 괜찮다고 안심시킨 뒤 산책을 다녀온다며 여벌의 옷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자정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발란드의 머릿속에는 어느새 반짝이던 은빛 다이아몬드 반지만 남았다.


*


"스바바의 반지가 그리도 탐나던가? 아니면 유달리 용감해서 그런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검을 찾아 드리면 바로 마을을 떠나십시오. 나중에 잡히더라도 저의 이야기는 하지 않아 주시는 겁니다, 마법사님."


"그리고 자네도?"


"저야 입단속 해야지요. 부모님과 동생까지 온 가족이 신전에 끌려가 고문당하지 않으려면..."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었군."


배 위에 앉아 마법사가 물었다. 발란드는 마을 이웃들과 마법사의 탑, 그리고 뵐룬두르 선생님을 배신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평생 구경도 하지 못할 귀한 마법의 반지를 대가로 약속 받았다. 저 마법사도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고 발란드도 마찬가지였다.


발란드가 힘껏 노를 저었다.


배가 흔들리며 호수의 중앙으로 나아가자 마법사가 정지하라는 신호를 주었다. 그 부분이 확실한지 알아보려 마법사는 여름 낮에도 땀 한 방울 맺히지 않던 핏기가신 손으로 물 위를 쓸었다.


희미한 빛이 손에서 빠져나와 물속으로 가라앉더니 빠르게 한 쪽으로 쏘아져 나갔다. 수중에서 화살처럼 쏘아지는 움직임보다 그 빛 무리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청년의 얼굴이 보인 것에 더 놀라 발란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발란드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일에 말려들었는가를 깨닫고 몸을 떨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배를 저리로 움직이게."


발란드가 유령이 쏘아져 나간 방향으로 배를 몰자 흑마법사는 다시 배를 정지시키고 예의 불길한 빛 무리를 물속으로 쏘았다.


이번에는 비명을 지르는 어린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발란드는 비로소 자신이 헛것을 본 게 아니란 것을 알았다.

아뿔싸, 돌아가기에는 늦었다.


"이 밑일세, 들어가게. 말했듯이 칼은 금색 손잡이에 푸른 보석이 박혀있고 검신에는 피 흘리는 독사의 문양이 새겨져 있네. 독사는 꼬리를 치켜들고 있지."


흑마법사의 보이지 않는 얼굴이 사악하게 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란드는 침을 삼키며 웃통을 벗었다. 발뭉의 호수는 밤이 되자 새카맣게 번했다. 얼마나 깊은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흑마법사가 작은 삽을 건네주었다. 그 삽을 쥐고 크게 심호흡한 발란드가 이윽고 밤의 호수 속으로 뛰었다. 수면에 잠시 부글거리며 거품이 일었다. 발란드가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흑마법사는 악령으로 만든 빛을 쏘았다.


발란드는 이번에는 노인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까지 귀에 들려오는 것을 깨달았다.


낮과 달리 밤에 들어온 발뭉의 호수는 맑은 물 밑으로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새카만 광경에 어디선가 저주받은 니벨룽겐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 호수에 살고 있다는 식인 괴물이 나타나 금세라도 몸을 물어뜯을 것 같았다.


발란드는 그러나 스바바의 반지를 떠올리고 더욱 힘차게 발을 차고 물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높아진 수압으로 몸이 무겁고 현기증이 났다. 하지만 발란드의 눈은 탐욕으로 반짝였다.


낮에 마법사가 보여준 은색 반지에 영혼을 빼앗긴 듯 고개를 끄덕이던 때부터 발란드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흑마법사에게 사로잡힌 악령이 구해달라는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지만 이를 무시하고 내려가자 발란드의 눈에 마침내 악령들을 빨아들이는 번쩍이는 금빛 칼자루로 보였다.


발뭉일까?


시그르드와 호그니의 피를 마신 전설 속의 검이 저것일까?


하지만 마법사는 저 검을 가져오라고만 했을 뿐 그것이 어떤 방패도 뚫는다는 발뭉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호수 밑에는 니벨룽겐의 보물에 속한 다양한 보검이 있을 수 있으며 더불어 보물을 찾다 실종된 기사와 탐험가들의 칼들도 수장되어 있다.


반드시 저것이 발뭉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발란드는 생각했다.


칼자루를 쥐자 망령들의 비명이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발란드는 검을 뽑아 수면으로 올라갔다.


마법이 걸렸다며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호수는 여전히 거울처럼 잔잔했고, 마법사는 물속에 잠겨있었음에도 거의 녹이 슬지 않은 검은 넘겨받고 흡족한 듯 천천히 달빛에 비춰보았다.


피 흘리는 독사의 모습이 섬뜩하게 은색 검신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이 검을 갖는 사람은 니벨룽겐의 황금을 소유할 것이며,

황금의 저주 역시 그에게 넘어가리라

누구도 평생 이보다 날카로운 검은 만날 수 없으리"


흑마법사는 악마에게 바치는 찬가를 내뱉고 검을 챙긴 뒤 발란드에게 그가 그토록 탐내던 스바바의 반지를 건네주었다.


악령의 속삭임에 얼이 빠진 채 떨던 발란드는 스바바의 반지를 받고 다시 그 정신을 잃도록 아름다운 은색을 보자 기운을 내고 노를 저어 호숫가로 돌아갔다.


"수고했네. 발란드, 자네는 마을사람들에게 듣던 것과 달리 물욕이 많은 위선자로군. 마음에 들어."


뱃전에 부드럽게 부딪친 발뭉의 호수가 안심하라는 듯 상냥하게 물소리를 내었다. 둘이 탄 나룻배가 흔들렸다.


보물을 노리는 자의 목숨을 예외 없이 빼앗았다던 호수는 침묵을 지켰다.


*


다음날 아침, 발란드는 서둘러 길을 걷고 있었다. 급한 일이 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급한지 알 수 없었다.


"멈추게 멈춰."


뵐룬두르 선생님이 발란드를 발견하고 기쁜 듯 소리쳤다. 그러나 발란드는 무언가 죄라도 지은 것처럼 흠칫 뵐룬두르에게서 멀어지려는 듯 몸을 움츠렸다.


다리가 불편한 뵐룬두르는 반백의 주름진 얼굴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지팡이에 의지해 발란드에게 다가왔다.


무릎은 괜찮았지만 발목을 움직일 수 없어 뵐룬두르 선생님은 뛰는 것이 불가능했다.


"뭘 그렇게 죄지은 사람처럼 달려가나?"


"달려가다니요! 그냥 걷는 겁니다!"


발란드는 변명하며 선생님을 보았다. 앞을 보며 성큼성큼 내딛던 걸음이 마치 도망가는 사람처럼 보였던지 뵐룬두르는 평소처럼 인자한 어조로 말했다.


"발란드, 이 친구야. 난 자네가 무슨 살인이라도 저지른 줄 알았지 뭔가."


뵐룬두르 선생님이 유쾌하게 농담을 던지자 발란드는 깜짝 놀라 경기를 일으킬 듯 하다 되돌아와 뵐룬두르를 향해 말했다.


"건강하셨습니까? 덕분에 졸업하고 잘 살고 있습니다. 다리는 괜찮으신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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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빵과 포도주 둘 (4) - 완결 18.09.01 53 1 12쪽
22 빵과 포도주 둘 (3) 18.08.31 160 1 12쪽
21 빵과 포도주 둘 (2) 18.08.30 60 1 12쪽
20 빵과 포도주 둘 (1) 18.08.29 31 0 12쪽
19 엘비어의 폭탄 (3) 18.08.28 51 1 11쪽
18 엘비어의 폭탄 (2) 18.08.27 36 1 12쪽
17 엘비어의 폭탄 (1) 18.08.26 35 1 12쪽
16 그란마르의 탑 (7) 18.08.25 51 1 10쪽
15 그란마르의 탑 (6) 18.08.24 31 1 11쪽
14 그란마르의 탑 (5) 18.08.23 49 1 12쪽
13 그란마르의 탑 (4) 18.08.22 41 1 12쪽
12 그란마르의 탑 (3) 18.08.21 49 1 12쪽
11 그란마르의 탑 (2) 18.08.20 45 1 12쪽
10 그란마르의 탑 (1) 18.08.19 57 1 12쪽
9 고아원의 수녀 (3) 18.08.18 43 1 10쪽
8 고아원의 수녀 (2) 18.08.17 49 1 12쪽
7 티드렉의 왕궁 (3), 고아원의 수녀 (1) 18.08.16 59 1 12쪽
6 티드렉의 왕궁 (2) 18.08.15 61 1 12쪽
5 티드렉의 왕궁 (1) 18.08.14 100 1 12쪽
4 스바바의 반지 (4) 18.08.13 109 1 13쪽
3 스바바의 반지 (3) 18.08.12 126 1 12쪽
» 스바바의 반지 (2) 18.08.11 226 1 12쪽
1 스바바의 반지 (1) 18.08.10 39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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