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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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몰입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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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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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0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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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 (2)

DUMMY

자기 보러 요정에 놀러오라고 해야 이 집 매상이 오를 텐데.

쉬는 날 맛있는 거 사달라는 소리만 하고 영업을 하지 않았다.

서합에게 내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고 일어났다.


거나하게 취해서 자리에서 일어난 최장관은 주차장까지 인사하러 따라 온 나에게 묘한 말을 했다.


“자네 종교 있나?”


“아뇨. 없습니다.”


종교도 없고 신을 모시는 종교인도 잘 모른다.

신들은 좀 아는데...


“천당 보다 좋은 데가 있다더군.

그게 어딘지 아나?”


“네?”


“천당 보다 더 좋은 데면 극락?”


“푸하하. 재벌가 자제답지 않게 순수하구만.

다음에 또 연락하게. 그때 이야기해주지.”


이 양반아. 당신보다 내가 훨씬 먼저 알았다고.


**


“인수할 만한 중소기업을 좀 알아봐주세요.”


원래 은밀하게 처리할 일이 있으면 시키려고 그를 채용했다.

그런데 이런 일까지 정선호에게 시킬 줄은 몰랐다.

아니, 내가 그를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왜 박변호사가 그렇게 높이 평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못하는 일이 뭔지 궁금했다.


“명동의 사채 브로커를 통하면 상황이 어려운 기업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은행도 움직여보겠습니다.

어느 업종, 어느 정도 규모의 회사를 원하십니까?”


“관리가 특별히 어렵지 않으면 어느 업종이건 상관없습니다.

다만 운영 비용이 크지 않은 회사로 찾아주세요.

밑빠진 독에 물붓기만 아니면 적자를 좀 내도 상관없어요.”


“한국에서 중소기업은 항상 위기 상황이죠. 알겠습니다.”


한국에는 원래 세 개의 TV 방송국이 있었다.

한 개의 공영 방송국과 두 개의 민영 방송국 체제였다.

그러나 현 정부가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방송국의 소유 구조를 바꾸어 버렸다.

민영 방송국 하나가 공영 방송국에 채널을 넘기고 문을 닫았다.


현재는 완전한 공영 방송국 하나와, 공영도 민영도 아닌 어정쩡한 방송국 하나.

이렇게 2 방송국 체제였다.

공영 방송국은 두 개의 채널을 운영하고, 한 채널에서는 전혀 광고를 하지 않았다.

결국 광고를 소화할 수 있는 채널은 단 두 개.


경제 성장으로 TV 광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새로운 민영방송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새로 허가될 민영방송국에 대해 관심 갖는 기업은 많았지만, 결국 최장관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


"쉽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관심이 없단 건가?"


최장관과의 다음 만남은 금방 이루어졌다.

이번에도 예의 그 요정이었다.


"네. 부동산 문제는 경제 성장 이후 한국 경제의 골칫거리였습니다.

땅을 선점하고 있으면 가격이 올라가는 건 당연하지만, 보다 생산적인 데 투입해야 할 자원이 비생산적 부문으로 몰려갑니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개뻥이다.

한국에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의 국민적 스포츠가 부동산 투기이다.

먼저 태어나고 먼저 돈이 있다는 이점을 이용해 먼저 땅을 사서, 늦게 태어나고 늦게 돈을 버는 사람들과 후손들에게 판다.

불패의 투자 수단이다.

하지만 나는 좋은 개발 정보를 알려주겠다는 최장관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이미, 다 사놨지롱!

이 순간에도 부자님 사모님처럼 갖춰 입은 신미경이 나를 대신해서 열심히 땅을 사들이고 있다.

최장관이 개발 정보를 주는 것으로 금괴를 준 빚을 갚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거든.


“거, 참. 재벌들 사고 방식은 이해하기 힘들군.”


당연히 이해가 안가겠지.

부동산 투기에 앞장서는 게 재벌들인데.


“하하. 선배님. 하군은 땅 보다는 다른 일에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장관님께서 도와주시면 하군이 날개를 달겁니다.

그러면 저나 하재윤군은 절대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그래. 그럼 야심만만한 우리 젊은이의 큰 꿈을 한번 들어볼까?”


이제 슬슬 떡밥을 던질 때가 왔다.


“제가 회장님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출생도 떳떳하지 못하고 형님들도 계시니까 눈치가 보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당장 제 성부터 아버지와 다르지 않습니까?”


“그야, 춘부장께서 워낙 유명인이시니 보는 눈이 있어 그런거지.

외할머니의 성을 따랐다고 했나?”


“네. 일곱 살 때까지 저를 길러주셨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저는 제 길을 가고 싶습니다.

아버지와 다른 독립적인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제 아버님의 뜻이기도 하고요.”


아버지 뜻은 개뿔.

물어보지도 않았다.


“오호. 남자라면 사업이지.

그래 무슨 일을 하고 싶나?”


“엔터테인먼트 사업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영화나 음악 그런 쪽 말인가?”


확실히 이 양반이 이해가 빠르다.


“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모든 것을 다루고 싶습니다.”


“그래, 나도 한때 영화 보면서 울고 웃었지.

요즘 공보처를 맡다보니 예전 생각도 많이 나더군.”


“네. 저도 영화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영화 보다는 TV의 시대 아니겠습니까?

특히 컬러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된 이후에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미국은 1954년에 최초의 컬러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했다.

아시아에서는 1960년에 일본이 최초로, 1966년에는 필리핀이 두 번째로 방송을 시작했다.

한국은 1970년대부터 이미 방송 기술을 갖추고 있고, 컬러 텔레비전를 대량으로 생산해서 수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치 풍조와 계층 간의 위화감을 조장할까 걱정한 당시 수상에 의해 여전히 흑백 방송을 했다.

아, 아, 위대한 박수상님.


그러다 군부가 다시 쿠데타로 권력을 잡으면서 1980년 12월부터 컬러 방송이 시작되었다.

컬러 방송은 한국의 대중 문화에 커다란 변동을 일으켰다.

흑백으로 대충 미남 미녀로 나오던 배우들의 얼굴들이 훨씬 자세하게 비쳐진 것이다.


“그렇지. 역시 지금은 텔레비 시대지.

내가 장관이 되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도 텔레비고.”


최장관은 마치 내가 자신의 선견지명을 알아주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감각있는 우리 젊은이는 한국 텔레비전 방송의 미래에 대해 어떤 식견을 갖고 계신가? 한번 들어볼까?”


“저 같은 말학이 뭘 알겠습니까.

다만 영국이나 미국, 일본에서 생활해 본 바로는 우리 방송이 콘텐츠, 즉 내용물이 조금 부실합니다.”


“그렇지. 우리 방송 내용이 좀 진부해. 옆나라 일본 방송을 하루만 봐도 대번 차이를 알 수 있어.”


“그리고 애써 만든 콘텐츠를 방송할 채널도 세 개 뿐인데, 너무 부족합니다.

공중파 방송국도 한 두 개 더 늘리고, 위성 방송과 케이블 방송 서비스도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장관의 작은 눈이 조금 커지는 느낌이었다.


“허허. 내 나이 스물 한 살에 뭘 했는지 모르겠네.

벌써 그런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혹시 춘부장의 생각이신가?”


“아버지께서는 제가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셨습니다.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최장관과 박변호사가 잠시 침묵에 빠졌다.

최장관은 재벌 아버지가 서자를 도와준다는 의미를 생각할 거다.

박변호사는 내가 아버지랑 얘기를 나누긴 하는지 갸우뚱한 눈치다.


아버지는 내가 하고 싶은 거는 다하게 내버려 두긴 한다.

노는 거, 여자 만나는 거, 술먹고 사고치는 거.

다른 거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자네 생각에는 뭘 하고 싶은가?”


“언젠가는 한국에도 방송국이 하나 더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때 지분이든 뭐든 참여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이 양반은 요즘 자기 서울 법대 후배인 모 건설회사 사장과 열심히 만나고 있을거다.

새로 설립된 민영방송국의 소유권을 뜬금없이 건설회사에 줄 명분을 연구 중이겠지.


“거기까지 내다보고 있군.

그런데 하군.

자네의 나이답지 않은 탁월한 식견은 여러 차례 느꼈네.

하지만 동양에는 장유유서라는 문화가 있네.

스물 한 살의 대학 2학년생이 직접 방송사를 운영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겠나?”


장관의 목소리가 나지막해졌다.

나한테 받은 금괴가 벌써 수 십 개.

받은 게 있으니 뭘 해주긴 해야겠고, 자기 후배한테 약속한 게 있으니 곤란하겠지.

걱정마시오. 내가 해결해줄테니...


“당치 않으십니다.

저처럼 어리고 경험 없는 구상유취가 큰 회사의 경영을 맡는다는 건 안될 일이죠.

하지만.”


나도 목소리를 낮췄다.


“시대적 흐름이 민주주의와 평등에 예민합니다.

어떤 대기업이 방송국을 맡는다면 특혜 시비가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정부가 찾으려 할 겁니다.”


최장관이 완전히 내 말에 빠져든 표정이다.

안그래도 요즘 욕 덜먹고 후배한테 특혜 줄 방법 연구하려고 머리가 빠지겠지?


“어떤 방법이 있겠나?”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 중소기업.

이게 이 시대의 트렌트 아닙니까?”


1976년에 나온 소설 보통 사람들(Ordinary People)을 바탕으로 한 영화 ‘보통 사람들’이 크게 히트하면서 1980년 아카데미 영화상을 수상했다.

소설과 영화가 흥행하면서 한국에서 1982년부터 1984년까지 같은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되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그러더니 1987년 직선제 선거에서 현 수상이 자신은 보통 사람이고,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를 열겠다고 하면서 선거에서 승리했다.

육군 사관학교를 나와 평범하게 쿠데타로 집권한 보통 사람이긴 했다.


당시 선거에서 맹활약을 했고, 언론을 담당했던 최장관 입장에서는 꽤 마음에 드는 단어일 것이다.


“그렇긴 하지. 그러나 방송국은 엄청난 자본이 들어가는 산업일세.

작은 중소기업으로는 감당이 안돼.”


작은 중소기업으로는 감당이 안되어서 중견 건설회사에 넘기시려는 거겠지.


“맞습니다. 그래서 중소기업으로는 안됩니다. 중소기업들로 가야죠.

약자의 무기는 단결이잖습니까?

답은 중소기업 컨소시엄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지배 주주로 실질 운영을 담당할 기업은 당연히 장관님의 탁월한 안목으로 선정하셔야죠.”


나는 마지막 문장을 말하면서 고개를 푹 수그렸다.

하늘을 보기 부끄러워 고래를 숙인 건데, 장관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라나?

추가로 방울 두 개가 있으면 귀 옆에서 ‘딸랑딸랑’ 울리고 싶었다.


슬쩍 곁눈으로 보니 그의 표정이 환해졌다.

뭔가 영감을 얻은 표정이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알아듣지 못하면 바보지.


“그럼 자네는?”


“그 컨소시엄에 한 손 거들고 싶습니다.

적절한 지분이 주어지면 오로지 장관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 언제까지 장관 할래?

다시 전국구 의원을 할 수도 없을거고 이번에는 지역구에 출마해야 하는데 필요한 게 많을 걸?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고개를 들었는데 바로 코 앞에.


“자네가 십년만 먼저 태어났으면 같이 큰 일을 했을 텐데.

아냐. 지금도 가능하지.

서른 한 살, 마흔 한 살의 나도 지금의 자네만 못했어.

한번 잘 지내보세.”


최장관의 손이 눈앞에 보였다.

악수를 청한 것이다.

겸손한 표정으로 두 손으로 잡고 적절하게 리듬을 맞춰 흔들어줬다.


**


장관이 떠난 후, 방에는 나와 박변호사, 그리고 바깥에 대기하다 불려 온 정선호가 마주했다.


“중소기업 몇 개를 알아보라 한 게 이거 때문이구나.”


“네. 아마 몇 십개 정도로 컨소시엄을 형성할 겁니다.

그때 두 세 개 정도의 회사를 내세워 지분을 확보할 생각입니다.”


“그래봤자, 경영권은 장악하지 못해.

자본금만 보태주는 꼴이 될 수 있어.”


박변호사의 걱정은 타당했다.


“경영권을 장악할 생각은 없습니다.

적절한 영향력만 행사하면 됩니다.

아마, 지배 주주는 최장관이 정할 텐데 지분이 50%를 넘지 않을 겁니다.

우리 지분으로 견제할 정도면 됩니다.”


“경영권을 행사할 것도 아니면서 지분은 확보해서 뭐하게.”


“제 회사가 만든 프로그램과 소속 연예인들의 무대로 활용할 겁니다.”


“음...”


내가 원하는 것은 소유도 지배도 아니었다.

바로 영향력이다.

어차피 현 정권 하에서 민영방송국은 임자가 정해져 있다.


“지분은 협상을 해봐야죠.

그리고 지분 참여 기업이 정해지면 점차 그 기업들의 주식을 사 모을 생각입니다.”


“영향력 있는 지분을 계속 늘려가겠다는 건가?

정권이 바뀐 뒤에 인수하려고?”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무리해서 방송국을 인수할 생각은 없다.

진짜 목표는 다음 정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될 케이블 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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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가야산이 준 인연 (2) +2 18.10.17 1,244 20 12쪽
37 가야산이 준 인연 (1) +1 18.10.13 1,365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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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금전운과 여자운 (2) +1 18.10.11 1,321 22 12쪽
34 금전운과 여자운 (1) +1 18.10.03 1,382 24 12쪽
33 지구의 영혼 (3) +5 18.10.02 1,255 21 12쪽
32 지구의 영혼 (2) +1 18.10.01 1,267 21 11쪽
31 지구의 영혼 (1) +1 18.09.30 1,500 28 13쪽
30 글로벌 비즈니스 (3) +1 18.09.30 1,502 22 11쪽
29 글로벌 비즈니스 (2) +6 18.09.29 1,444 29 12쪽
28 글로벌 비즈니스 (1) +5 18.09.28 1,503 26 14쪽
27 적당한 오해와 적절한 착각 (3) +5 18.09.27 1,445 21 14쪽
26 적당한 오해와 적절한 착각 (2) +1 18.09.26 1,493 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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