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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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몰입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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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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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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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1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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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 (5)

DUMMY

“그런데 나한테 왜 전화한거야?”


“푸풉. 오빠. 이제 나도 오빠 캐릭터 조금 알거 같은데, 정말 깬다.

좀 너무 한 거 아냐?”


내가 뭘 잘못했지?

생각나는 게 없다.


“왜 전화했는지는 만나자 마자 물어봐야지, 이렇게 아침에 해장국 먹으면서 물어보는 게 어딨어?”


『그러게요.

원래 주인님의 성격과 하재윤의 성격이 환장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루면서 부정적 면만 부각되는 거 같아서 요즘 무서워요.』


“넌, 꺼져.”


“응? 오빠? 뭐라고 했어?”


“아, 너한테 한 말 아니니까 신경 쓰지마.”


서합, 청월관의 기생.

아침에 맨얼굴을 보니까 얘도 대단한 미녀다.

굳이 기생을 안해도 충분히... 할 게 없구나.


가난한 집안의 예쁜 딸이 살기가 참 힘든 세상이다.


“그래. 오빠가 그렇게 막나가는 성격은 아니겠지.

종종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것 같은 표정을 짓긴 하지만, 그날도 나한테 진상짓 안하고 친절했어.”


얘가 내 소속을 정확히 알고 있네?

혹시 얘도 차원계 소속인가?


“이제 앞으로 나 보기 힘들거야.

마지막으로 오빠 한번 보고 싶었는데, 기다려도 연락이 안와서 내가 먼저 했어.”


“못볼 게 뭐가 있어.

조만간 갈게.”


며칠 있으면 또 최장관과 박변호사가 만나기로 했다.

내가 따라갈 생각이라 그때 보면 되는데.


“나 그만 뒀어.

이제 기생 안해.

청월관도 안 나간지 좀 됐어.”


“아? 그래?

오히려 잘된 거 아냐?

이제는 정당한 직업을 갖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말을 거침없이 하는 성격이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서합이 하는 일은 정당하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남자들이 기생집에서 노는 건 정당하고, 기생의 일은 정당하지 않은 건가.


“호호. 오빠. 그런 미안한 표정 하지 말아요.

오빠가 나를 무시해서 그런 말 한 거 아니라는 거 아니까.

이제 나가자.

여기 밥값은 내가 낼게.

오빠가 호텔비를 냈으니 나도 이 정도는 내야지.

이제 딱히 필요없기도 하고.”


해장국집 앞에서 그녀와 마주 섰다.


“이제 나는 저쪽으로 걸어갈게.”


“지하철역까지 태워줄게.”


“아냐. 이렇게 끝내야 멋있는거야.

담배나 한 대씩 피우자.

참, 오빠는 담배를 안피나?”


딱히, 건강에 안좋아서 안피는 건 아니다.

나야 어차피 영원한 삶을 사니까.

그냥 냄새가 나서 안피는 건데 그녀는 더 물어보지 않고 가방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 당시 사람들은 ‘88’이나 ‘솔’ 담배를 많이 피웠다.

1986년 9월 1일부터 양담배, 즉 외국산 담배 판매가 허용되었지만 아직은 국산 담배를 많이 피웠다.

나는 나중에 ‘디스’가 나오면 세상을 디스하며 그거나 피리라 생각하며 서합을 지켜봤다.


서합이 손가락 사이에 끼운 것은 ‘장미’.

바둑 기사 조훈현이 피운다 해서 화제가 되었던 담배다.


다른 담배와 달리 가늘고 길었는데, 서합의 가늘고 하얀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으니 잘 어울렸다.

매니큐어 끝이 조금 벗겨진 게 신경에 거슬렸다.


“오빠, 진짜 담배 안피우네?”


“뭐, 그런 셈이지...”


“그래, 건강하게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 살아.”


저렇게 예쁜 입에서 그런 단어가 나오니까 희한하게 잘 어울렸다.


“그런데 내 이름 아직 모르지?”


“알잖아. 서. 합.

오빠가 그 이름에 대해 알아보려고 논문까지 찾았는데, 주역의 ‘화뢰서합’ 괘에서 나왔더라.”


“아, 맞다. 민선생님이 화뢰서합이라 했어.

생각났다.”


“민선생님?”


“네. 기명을 지어주신 분이야. 특이한 분이지.

전문용어로 표현하면 점쟁이.”


젠장, 나도 내가 하는 일이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점쟁이라도 찾아가고 싶다.


“갈게. 오빠.

난 좀 걷고 싶어.

그리고 부모님이 원래 지어주신 내 이름은 고민영이야.

이제 불러줄 사람도 없으니 오빠라도 오래 기억해줘.

한 삼일? 호호.”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섰다.

그리고 어깨 위로 손을 흔들면서 고갯길을 내려갔다.

스타일 좋은 애가 성큼성큼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솔직히 좀 멋있다.


『아쉽지 않으세요?』


“뭐가?”


『딱 주인님 스타일인데.

이름도 곰인형이라 껴안고 자기에도 좋고...』


“나한테 도움이 안 되잖아.”


『사람을 유용한지 무용한지로 판단하지 마세요.

그런 태도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인님이 도와줄 수 있다는 자체가 주인님에게 도움이 되는 거에요.』


“꼭 싯다르타 형님처럼 말하는군.”


『서건육 득황금 정려 무구(噬乾肉 得黃金 貞勵 無咎)』


“갑자기 무슨 소리야?”


『주역 ‘화뢰서합’괘의 제5효에요.』


“무슨 뜻인데?”


『질긴 고기를 씹어 황금을 얻는다. 항상 조심하면 위태로움이 없다.

뭐, 그런 뜻이죠.』


“고기를 씹어 황금을 얻을 수 있으면 세상 사람들은 주택 복권 대신 날마다 고기 뷔페를 가겠네.”


『감정도 메말랐고, 영적인 능력도 약화되면서 쾌락에 취한 주인님이 하실만한 얘기네요.』


차를 몰고 고갯길로 내려가면서 서합을 한번 더 스쳐갔다.

클락션을 울렸지만 그녀는 쳐다보지 않았다.


-따르릉.


이 시대는 카폰이나 휴대폰이나 벨 소리가 비슷했다.

개성이 없어요.


“네.”


“정선호입니다.

지난 번에 보고드린 치킨 회사도 인수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인수가를 조율중입니다.”


“잘 됐네요.

두 개면 일단 괜찮을 거 같지만, 좋은 조건이 있으면 더 알아봐주세요.”


“알겠습니다.”


30여 개의 회사로 컨소시엄을 형성하고 지배 주주는 30% 정도의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한다.

이게 최장관한테 전달한 내 아이디어였고, 흡족한 반응을 얻었다.

지배 주주가 30% 정도라면 나도 거기에 가까울 정도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두 세 개 정도의 회사를 통해 지분을 확보해도 10%가 쉽지 않다.


‘성우 특수 음향’이 2, 3번째 주주가 될 수 있도록 장관이 힘을 써줘야 한다.

그리고 최장관도 모르는 회사를 통해 지분을 계속 확보해야 한다.

최명현이 언제까지나 장관을 하지는 않을 거다.


“최소한 15% 이상은 확보해야 합니다.”


“네. 박변호사님과도 논의하겠습니다.”


자동차의 라디오를 틀었다.

마침 민영 방송사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고현 대학의 차동묵 교수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현재 한국 상황에서 4개나 되는 공중파 채널은 불필요합니다.

공영 방송국 중심의 체제에서 유일한 민영 방송사가 등장하면 필연적으로 선정적인 프로그램이 채널을 다 채우게 될 겁니다.

일본을 보세요. 황금 시간대에 여성의 가슴이 예사로 노출됩니다.


기존 방송국과 신문사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할 새로운 언론사의 등장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고 있었다.

내년, 내후년까지도 저런 여론전은 계속 될 거다.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기득권층은 단순히 돈과 권력이 커서 대단한 게 아니다.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줄 마이크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가, 필요할 경우 줄줄이 등장시킨다.


그동안은 너무 박변호사와 최장관에게 의지했던 것 같다.

언론이나 학계에도 영향력을 미칠 기반을 확보해야겠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하나?

젖비린내 나는 동기 녀석들이 사회 곳곳에서 한 자리 하려면 수십 년은 걸릴 텐데.


생각해보니 엔터테인먼트를 키우려면 연예인들도 확보해야 한다.

민영방송국에 영향력을 확보해도 출연시킬 사람이 없었다.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때 속을 터놓고 함께 의지할 동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주인님.』


“왜?”


『곰인형씨, 좀 이상하지 않나요?

아까부터 좀 걸리는데...』


“고민영?

뭐가 이상한데?

밥 잘먹고 갔구만. 밤에 컨디션은 최고였고.”


『주인님의 사생활은 제가 뭐라 할 게 아니지만.

어젯밤...도... 평생 마지막인 것처럼 굴지 않았나요?

아까 헤어지기 전에도 15분동안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16회 사용하던데요.』


스타테이라와 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설마 아니겠지.

지랑 나랑 얼마나 봤다고.

이건 매너가 아니잖아.”


『저기... 지금 매너를 따질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해야 되지?”


『호텔에서 걸어가는 방향이 한강 쪽인데, 천호대교로 가보는 게 좋겠습니다.

광진교가 더 가깝기는 한데, 거기는 한강에서 세 번째로 지어진 다리라 낙후되어서 곧 철거될 예정이에요.

같은 여자 입장에서 그런 곳은 싫을 거 같아요.』


“네가 왜 여자야? 넌 나의 객관화된 인격이라며.”


『주인님. 그건 제 특성 중 하나일 뿐이고요.

자꾸 잊으시는데 주인님에게 저를 선물해준 건 아나히타 여신님이에요.』


스타테이라랑 티격거리면서도 발은 엑셀레이터를 끝까지 밟고 있었다.

다행히 본격적인 출근 시간이 시작되기 전이라 강변북로는 한가했다.


천호대교에서 안보이면 광진교로 가려 했는데, 눈에 대번 들어오는 존재가 있었다.


“오빠, 나를 금방 알아보네.

역시 내가 눈에 잘 띄는 외모이긴 해.”


고민영이 예쁜 건 사실이지만, 아침 6시반에 다리에서 아우라가 비칠 정도는 아니다.

다리 난간 위에 서 있으니 금방 눈에 띈 건데.

그래도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그래.

내가 강변북로를 타고 서빙고까지 갔는데 등 뒤에서 계속 서광이 비치는 거야.

그래서 되돌아 왔는데 여기와서 보니 너 때문이었네.”


“오빠는 정말 거짓말도 예쁘게 한다.

좋아. 일단 믿을게.”


“오케이. 그럼 이단은 차에 타고 이야기하자.

아까는 아침 먹었으니까 점심 먹으러 가자.”


아침 강바람이 거셌다.

일부러 뛰어내리지 않아도 몸이 흔들릴 정도.


“오빠.

아침 먹고 30분 뒤에 점심 먹자고 이야기하네.

나도 점심도 먹고 싶고 저녁도 먹고 싶어.”


“응. 그러니 이제 내려 와.”


“나도 살고 싶어.

그런데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만 의지하고 살던 내 동생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어.

사십구재 마치고 오빠한테 찾아간거야.

나도 정말 살고 싶어.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없어.

내가 왜 살아야 하는거지?

살아 있으면 좋은 일 있을까?”


“좋은 일 있지.

결혼도 하고 애기도 낳고.

그래야 부모님이나 동생도 하늘에서 좋아하지 않을까?

우리 어머니도 하늘나라에 계셔.”


“진짜 나 행복할 수 있을까?

한번도 행복해 본 적이 없는데?”


행복?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말했는데, 내 인생의 목적은 뭘까?

아니, 그 전에 내가 인간이기는 한 걸까?


“당연하지.

행복이 뭐 별거니.

이렇게 바람불고 추운 날씨에 따뜻한 곳에 들어가면 행복한거지.

이제 이리 와.”


“알았어.”


심장이 터질만큼 긴장하고 있었는데, 고민영은 순순히 말을 들었다.

그녀는 난간에서 내려왔다.

아니, 내려오려고 했다.

다리 난간에서 내려오기 위해 무릎을 굽히는 순간, 힘 풀린 그녀의 다리와 거센 강바람이 모였다.


-휘청


“아악, 오빠.

살려줘.”


조금 전까지 죽겠다는 녀석이 살려달라니.

우습다면 우스운 상황이었지만, 이 자리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물 위로 추락하고 있다.

그녀를 따라 아래로 뛰어내렸다.


강물이 차가왔다.


여름에는 넘치고 봄에는 마른 채 자연스럽게 바다로 흘러가던 한강은 전 수상 시절이던 1982년부터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크게 변했다.


유람선을 띄우기 위해 강바닥을 깊게 팠고, 강변은 콘크리트로 가득 채웠다.

콘크리트 위에는 체육 시설을 잔뜩 만들었다.

모두가 1988 서울올림픽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평소라면 강물이 줄어들 계절이지만, 여전히 한강은 큰 물줄기를 이루어 바다로 향한다.


-어푸푸.


떨어지는 관성으로 물속 깊숙이 처박혔지만 다시 물 위로 나올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뛰어내린 다리를 보았다.

다이빙한 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직 고민영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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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가야산이 준 인연 (4) +1 18.10.22 1,106 19 13쪽
39 가야산이 준 인연 (3) +1 18.10.18 1,164 20 12쪽
38 가야산이 준 인연 (2) +2 18.10.17 1,244 20 12쪽
37 가야산이 준 인연 (1) +1 18.10.13 1,365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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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금전운과 여자운 (2) +1 18.10.11 1,321 22 12쪽
34 금전운과 여자운 (1) +1 18.10.03 1,382 24 12쪽
33 지구의 영혼 (3) +5 18.10.02 1,255 21 12쪽
32 지구의 영혼 (2) +1 18.10.01 1,267 21 11쪽
31 지구의 영혼 (1) +1 18.09.30 1,500 28 13쪽
30 글로벌 비즈니스 (3) +1 18.09.30 1,502 22 11쪽
29 글로벌 비즈니스 (2) +6 18.09.29 1,444 29 12쪽
28 글로벌 비즈니스 (1) +5 18.09.28 1,503 26 14쪽
27 적당한 오해와 적절한 착각 (3) +5 18.09.27 1,445 21 14쪽
26 적당한 오해와 적절한 착각 (2) +1 18.09.26 1,493 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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