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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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작품등록일 :
2018.08.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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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2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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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염곡동 살인사건 (1)

DUMMY

<2018.09.13. 목요일 / 서울>


비 내리는 가을밤, 살인사건.

피해자는 동광무역 대표 박재열 52세.

용의자는 신장 165cm가량의 보통 체형 여성.

사건 장소는 피해자의 자택 단독주택 앞 골목길.

범행 도구는 날 길이 8cm 접이식 칼.


차에서 내려 대문으로 걸어가는 피해자 우측 후방에서 접근한 용의자는 피해자의 목 부위를 노리고 흉기를 휘둘러 자상을 입히고, 피습 부위를 감싸며 쓰러지는 피해자의 손등을 공격 후 빈틈을 노려 경동맥에 치명상을 입혔다.


사건 3분 후 가족들이 발견 후 신고했지만, 119 구급대 도착 전 피해자는 과다출혈로 사망.

범행 도구인 흉기는 피해자의 몸에서 회수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채 용의자 도주.


서초경찰서 112종합상황실에 사건이 접수되고 강력1팀이 현장에 투입될 때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형사는 범인 검거에 낙관하고 있었다. 자택 앞 방범 CCTV에 범행 장면은 고스란히 녹화되어 있었다. 용의자 정보는 수사본부에 신속하게 전달되었다.


신장 약 165cm 보통 체형의 여성,

검은색 상·하의 트레이닝복, 짙은 색 운동화, 검은색 장갑과 청색 스포츠 마스크 착용 중.


출동 가능한 강력계 형사는 즉시 현장에 투입되었다. 마스크를 착용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용의자가 사건 직후 구룡산으로 통하는 임도로 도주하는 장면이 방범용 CCTV에 포착되었다. 용의자의 동선을 따라 추격조가 따라붙었고, 추가 인력은 도주 가능한 진입로를 막고 역방향으로 포위망을 좁혀갔다.


광역수사대 프로파일러 곽성호 경사는 살해장면이 녹화된 CCTV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돌려보았다. 옆에서 화면을 함께 보던 조 순경은 용의자의 동작을 따라 하며 상황을 재현했다.

“첫 번째 공격당한 자상을 보면 턱뼈 바로 아래에 길이 6cm, 깊이는 1cm. 아래에서 위를 향해 칼을 휘두른 거죠.”

“그 정도면 이미 첫 번째 공격이 치명상이군.”


“칼을 휘두르고 5초 정도 피해자가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요.”

“너무 침착해. 피해자가 완전히 쓰러진 후에도 다른 곳이 아니라 손등을 공격하고 있잖아.”


“왜 그렇죠?”

“보통 살인할 때 흥분해서 여기저기 공격하기 마련인데, 그러다 보면 피해자가 반항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자기 손도 다치고 그러거든.”


“급소만 공격하겠다는 생각이네요, 목을 감싸고 쓰러진 피해자의 손등을 공격해서 다시 빈틈을 노리겠다는.”

“그리고는 망설임도 없이 경동맥을 향해 칼을 내리꽂아 치명상을 입히고 바로 자리를 떠났어.”


“왜 범행 도구는 회수하지 않은 거죠?”

“장갑도 끼고 있었고, 자기 혈흔이나 지문이 없다고 확신한 거 같아. 피 묻은 칼을 가져가는 게 오히려 불리하다고 봤겠지. 1초라도 빨리 도주하겠다는 계산일지도 모르고.”


곽 경사와 조 순경이 CCTV를 돌려보는 동안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왔다. 조 순경이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러 가서는 곽 경사를 향해 소리쳤다.


“구룡사 앞 삼거리 CCTV에 용의자 찍혔습니다. 육교로 양재대로 횡단했다고 합니다.”


신원동, 내곡동, 염곡동, 개포동, 양재동 등 인근 지역 등산 진입로마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그 전에 이미 용의자가 임도를 빠져나갔다는 것이었다. 초기 검거에 실패하면서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곽 경사는 CCTV 통합관제센터로부터 영상을 전송받아 자리에서 돌려보았다. 스마트폰 지도 앱을 번갈아 보며 용의자의 동선을 파악했다. 조 순경이 뒤에서 유심히 지켜보며 도주로를 예측했다.


“구룡산으로 올라가 동쪽으로 가다가 방향을 바꿔 북쪽 포장도로를 통해 야산을 내려왔네요.”

“범행 19분 만에 산길을 통과해서 다시 큰길로 나왔어.”


“도주하는 방향은 개포동과 양재동 경계 부근이네요. 북서쪽으로 달리고 있네요.”

“침착하면서 민첩해.”


곽 경사는 손목시계를 봤다.

“용의자와 시간차 17분.”


수사 지휘에 혼선이 생기기 시작했다. 경찰 인력이 개포동과 양재동 일대에 투입되었지만, 좀처럼 용의자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택가 골목길 CCTV에는 용의자의 모습이 잡히지 않았고, 경찰의 포위망에도 용의자는 걸리지 않았다.


수사본부는 술렁거렸다. 용의자가 이미 일대를 빠져나갔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차량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도주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나왔다.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역 인근에서 범인과 인상착의가 유사한 여성이 발견되어 확인 중이라는 보고가 올라왔고, 연이어 구룡사거리 버스정류장에서 우산을 쓰지 않은 30대 여성이 버스에 승차했다는 정보가 입수되면서 수사본부의 형사들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단서가 다시 발견된 건 11시 17분, 사건 발생 45분 후였다.

개포동 주택가에 주차한 차량의 블랙박스에 용의자의 모습이 발견되었다. 현장을 수색하던 경찰이 누군가 엉덩이를 기댄 흔적이 있는 승용차를 발견한 후 차량용 블랙박스 감식을 해서 찾아낸 증거였다. 경찰은 블랙박스 녹화 영상에서 용의자가 운동화를 갈아 신고 북쪽 방면으로 도주하는 장면을 확인했다.


곧이어 근처에서 용의자가 버린 검정 비닐봉지가 발견되었다. 주유소 뒷길 담벼락에 버려진 검정 비닐봉지 속에는 흙 묻은 검정 운동화가 들어있었다. 확인 결과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족적과 일치했다. 버려진 운동화에선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혈흔도 발견되었다. 용의자는 준비해 온 신발을 백팩에서 꺼내 갈아 신은 후 비닐봉지에 신었던 신발을 넣고 입구를 묶어 담벼락 아래에 버리고 간 것이다.


용의자가 신발을 갈아신은 것은 사건 21분 후였다.

경찰과 용의자의 시간차는 24분으로 벌어졌다.


경찰은 용의자가 도주한 주택가 골목길을 따라 북쪽 양재천 방면으로 추격을 시작했다. 얼굴에 햇빛차단용 스포츠 마스크를 착용 중이었기 때문에 몽타주 작성은 불가했으나, 마스크 착용 중인 여성으로 특정하여 새로운 포위망과 추격경로를 설정하였다.


경찰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곽 경사는 지도를 펼쳐보며 형광펜으로 양재천, 개포동 달터공원, 양재대로, 양재근린공원을 잇는 사각형을 그리면서 혼잣말을 하듯 작은 소리를 내며 조 순경에게 손짓을 했다.

“이 정도 치밀한 용의자라면 도주 계획을 미리 세웠을 거야. CCTV가 없는 도주로, 가능하면 블랙박스도 없는 도주로가 어디지?”

“양재천이죠.”


“양재천 방향에 있는 주택가 CCTV, 블랙박스 다 확인했는데 없다면서.”

“신발 갈아신고 다음 골목에서 우회전해서 달터공원으로 간 거 아닐까요?”


“달터공원 통과해서 양재천으로 갔을 수도 있지. 그쪽엔 CCTV 별로 없을 거야.”

“그러면 개포파출소 바로 옆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게 가능해요?”


“아니야. 거기 생태통로야. 파출소 머리 위로 지나가는 길 있어.”


둘의 대화를 듣던 권 경위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 양재천이야.”


권 경위는 즉시 수사본부에 곽 경사의 의견을 전달했다. 권 경위는 곽 경사를 신임했다. 곽 경사는 프로파일러 전문교육을 받기 전부터 이미 가장 유능한 수사관이었다.


“용의자 이동속도를 고려하면, 15분 전에 양재천 도착했을 겁니다.”

“15분이면 긴 시간인데, 서쪽이라면 우면동, 동쪽은 대치동까지도 충분히 갈 수 있겠는데.”

“최대한 간다고 가정해서 서쪽 방면은 4호선 선바위역, 동쪽은 탄천까지 포위망 잡죠.”


권 경위는 현장에 출동한 수사관들과 동원 가능한 순찰 대원에 양재천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 순찰을 지시했다. 곧이어 양재천에서 가까운 도곡역, 대치역, 학여울역, 구룡역, 개포동역, 대모산입구역에도 인력 배치를 요청했다.


수사 자료를 살펴보던 권 경위는 용의자의 가방과 버려진 운동화가 신경 쓰였다.

“도망가기도 바쁜데 신발 갈아 신을 여유가 있다고?”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왔잖아요. 신발에 흙이 묻어서 무거워서 갈아 신은 게 아닐까요?”


조 순경의 얘기를 듣던 권 경위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흙이 묻어서 무거우면 탁탁 털면 되지. 갈아신을 신발을 미리 가방에 준비해 오는 거 이상하지 않아?”

잠시 말을 멈추다 말고 권 경위는 다시 소리쳤다.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봐라. 너 같으면 사람 죽이러 가는데 가방에 신발부터 챙기겠나?”


“흙 묻어서 갈아 신은 건 아니겠고, 족적 추적을 피하려고 그랬다면 말은 되겠죠.”

곽 경사가 말을 거들자 권 경위가 대꾸했다.

“그것도 이상해. 요즘 말로 투머치야 투머치. 쓸데없이 치밀하잖아.”


조 순경이 무릎을 쳤다.

“그렇네요. 주택이나 승용차로 숨을 생각이면 족적을 감추는 게 중요하겠네요.”

곽 경사와 권 경위가 조 순경의 말에 반응이 없자 조 순경이 다시 소리쳤다.

“주택으로 들어가면 블랙박스에 결국 걸릴 거니까, 차에 올라탄 거 같은데요. 골목에 주차된 차들 모두 수색해야 합니다. 트렁크에 숨어있을 수도 있으니 트렁크도 다 열어봐야 합니다.”


“그걸 언제 다 하고 있을래? 개포4동에 주차된 차가 몇 대쯤 될 것 같냐? 니가 할래? 니가 한 번 해볼래?”

권 경위가 나무라며 조 순경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권 경위도 용의자가 차를 타고 도주한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벌써 차 타고 도망간 거 아닌지 모르겠네. 아니면, 버스나 지하철 탄 거 아니야?”



통합관제센터에서 감시 가능한 CCTV에는 용의자가 발견되지 않았다. 차량용 블랙박스 분석은 협조 과정과 감식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용의자와 경찰과의 거리는 자꾸 멀어져 갔다. 인근 주택 혹은 상가에 숨어들었거나, 환복 후 옷과 가방을 버리고 도주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수사 인력은 자꾸 분산되었다. 지시하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발로 뛸 사람은 차차 줄어들었다.


CCTV와 블랙박스 덕에 강력범죄 99%의 검거율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경찰이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용의자의 치밀성은 아직 빈틈이 없다. 용의자와 경찰 사이의 거리는 자꾸 멀어지고 있다.


수사에 진척을 보이지 않자, 수사본부에서는 용의자가 미리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CCTV 감식 범위를 넓혔다.


모직 코트를 걸치고 핑크색 우산을 쓴 채 여유롭게 버스에 올라타는 여성에서부터, 청바지를 입고 자가용 승용차에 올라타는 여성까지 그 일대 CCTV에 포착된 인물은 모두 조사했다. 경찰은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했지만, 별다른 단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밤새 골목길을 수색하던 경찰들은 떠오르는 해를 보며 망연자실했다.




<2018.09.14. 금요일 / 서울>


단서는 의외의 곳에서 포착되었다.

제보 전화가 걸려온 것은 다음 날 오전 9시 20분이었다.


“제보할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어제 염곡동 살인사건 말입니다.”

제보자는 잠시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제가 어젯밤에 개포동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내려오다가 뭘 좀 봤는데요.”

“어디 있는 공영주차장 말씀이신가요?”


“양재천 옆에 있는 주차장인데요. 거기 차를 대고 적십자 건물 앞에서 길을 건너갔거든요.”

“적십자 남부혈액원 근처에서 양재천 건너는 구름다리를 지나갔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렇죠. 근데,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어떤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더라고요. 비도 약간 내리고 있고, 자전거 탈 만한 날씨가 아니었거든요.”

“그때가 몇 시였죠?”


“11시 2분입니다. 주차하고 걸어가면서 집에 전화 걸고 난 다음이니까 정확합니다.”

제보 전화를 받던 수사관의 눈빛이 떨리더니 주위 사람들에게 팔을 크게 저으며 손짓을 했다.

“네, 자전거 타던 여자 인상착의를 좀 말해주세요.”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어요. 어두워서 색깔은 잘 안 모르겠고요.”

“헤어스타일은 기억나세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머리가 휘날리지는 않았습니다.”

“자전거 헬멧은 쓰고 있던가요?”


“아니요, 없었어요. 대신에 마스크를 끼고 있었어요.”


작가의말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모두 실제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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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2부 5화. 다락방 비밀의 문 19.05.15 52 1 14쪽
102 2부 4화. 새덕 마을의 비밀 19.05.13 53 1 15쪽
101 2부 3화. 푸른 곤룡포 19.05.09 46 1 12쪽
100 2부 2화. 광산의 실 소유주 19.05.08 51 0 15쪽
99 2부 1화. 사고로 위장한 살인 19.05.07 56 0 13쪽
98 단편 외전-4. 유엔의 각성 19.05.02 59 1 13쪽
97 단편 외전-3. 사악한 빙의 (하) ※공포 주의※ 19.04.30 51 1 13쪽
96 단편 외전-3. 사악한 빙의 (상) ※공포 주의※ 19.04.29 61 1 13쪽
95 외전-2. 크고 예쁜 도토리 19.04.28 55 1 13쪽
94 외전-1. 죽은 자의 혼령 19.04.26 65 1 12쪽
93 32장 마지막 질문 (1부 최종화) 19.04.25 70 2 16쪽
92 31장 그녀가 있던 자리 (2) 19.04.24 71 2 14쪽
91 31장 그녀가 있던 자리 (1) 19.04.23 69 2 15쪽
90 30장 풀잎에 달린 이슬 (2) 19.04.21 70 2 15쪽
89 30장 풀잎에 달린 이슬 (1) 19.04.20 68 1 14쪽
88 29장 사건의 전말 (3) 19.04.19 82 1 12쪽
87 29장 사건의 전말 (2) 19.04.17 66 0 11쪽
86 29장 사건의 전말 (1) 19.04.15 72 1 12쪽
85 28장 염곡동 살인사건 (9) 19.04.12 75 0 13쪽
84 28장 염곡동 살인사건 (8) 19.04.10 63 0 13쪽
83 27장 박쥐 사냥 (3) 19.04.08 71 1 13쪽
82 27장 박쥐 사냥 (2) 19.04.05 82 0 12쪽
81 27장 박쥐 사냥 (1) 19.04.03 76 0 11쪽
80 26장 위험한 갈림길 (2) 19.04.01 72 0 13쪽
79 26장 위험한 갈림길 (1) 19.03.29 78 1 13쪽
78 25장 볼모가 된 세자 (3) 19.03.27 73 0 11쪽
77 25장 볼모가 된 세자 (2) 19.03.25 77 1 13쪽
76 25장 볼모가 된 세자 (1) 19.03.23 85 0 12쪽
75 24장 가짜 열쇠 (3) 19.03.20 8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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