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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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야
작품등록일 :
2018.08.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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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5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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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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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함정에 빠진 속임수 (1)

DUMMY

최대식이 본부장에게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최대식은 초조해졌다.

‘시간 없어.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최대식이 다짐처럼 혼잣말을 하던 그 순간이었다. 아무리 걸어도 받지 않는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일본어) 제발 남편을 찾지 마세요. 사방에서 쫓기고 있습니다.]

전화를 받은 건 본부장의 부인이었다.


“(일본어) 잠깐만 통화하게 해주세요. 중요한 용건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왜 전화를 받았냐는 거친 소리가 들리더니 본부장이 전화를 받았다.


[최대식 씨, 용건이 뭐죠?]

“그날 사무실에서 한 약속, 지켜주셔야겠습니다.”


[무슨 약속?]

“딸의 신변은 확실하게 보장해줄 테니 마에다 가문에 말을 잘 전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요?]

“박재열이 제 아내를 납치했습니다. 제 딸도 위험에 빠졌고요.”


[납치?]

“약속 지켜주세요.”


[내가 거절한다면?]

“그날 공원에 저도 있었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거기서 본 사람이 누군지 유족에게 말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부인에게 많이 배웠네요, 최대식 씨. 뭘 도와드리면 되죠?]

본부장은 체념한 목소리로 건조하게 물었다.

“감사합니다. 아내가 지금 오다와라 근처의 지하실에 갇혀 있다고 합니다. 제 가족을 안전하게 구해주세요.”


[아, 거기 어딘지 압니다. 근데 나는 지금 멀리 있어서, 직접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럼, 위치만이라도 알려주세요.”


[좋아요, 거기까지. 이게 마지막입니다. 그다음은 최대식 씨가 알아서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불러드릴 테니까 잘 들으세요. 가나가와현 나카이정 M마을 들어가는 길에 자동차정비소가 하나 있습니다. 거기 삼거리 남쪽에 작은 오르막길 있어요. 그 길 따라 500m쯤 올라가면 파란 지붕 창고 하나 있습니다. 지하실이라면 거기에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걸로 우리 인연은 끝내도록 하죠.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본부장은 매몰차게 전화를 끊었지만, 최대식은 연신 감사하다며 전화기에 고개를 굽혔다.


* * *


오다와라 역에 도착한 시노는 문득 유엔의 말이 생각났다.

‘죽을 만큼 힘든 일이 생기면 일단 더운 밥부터 먹으라’는 유엔의 말을 떠올리며 시노는 식당에 들어가 혼자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시노는 계속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천천히 밥을 먹은 뒤 시노는 결심에 찬 표정으로 일어서서 출입문으로 나가더니 다시 시계를 봤다. ‘흠~’ 소리를 내며 긴 한숨을 뱉으며 시노는 ‘5시 35분’ 뭐라고 중얼중얼 입을 움직였다.


시노는 카운터로 돌아가더니 덮밥 1인분을 추가로 주문했다.


두 번째 식사는 속도가 더 느렸다. 태블릿을 열어 규진이 보낸 이메일을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나서야, 시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재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다와라 역이에요.”

[혼자?]

“네, 혼자 있어요.”

[난 여기 인포메이션 앞인데, 하코네 관광안내소.]


“어딘지 알아요. 그쪽으로 갈게요.”

[오케이.]


* * *


시노가 모습을 드러내자 경호원 강 씨가 그림자처럼 움직이더니 시노 옆에 와서 붙었다.

“다시 만나니까 엄청 반갑네요.”

박재열이 이죽거리며 천천히 다가왔다.


“엄마는요?”

“효심이 지극하구먼. 애들은? 아직 히로시마에 있나?”

“엄마 얼굴부터 보고요.”

“좋아, 일단 가지.”


운전은 박재열이 직접 했다. 뒷좌석에 앉은 경호원 강 씨는 시노의 팔뚝을 멍이 들 정도로 꽉 잡았다. 맨발로 끈적한 걸 밟은 표정을 지으며 시노는 인상을 썼지만, 소리 내서 짜증을 부리지는 않았다.


30분 거리였다. 자동차전용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나카이 방면으로 방향을 틀더니 언덕 아래 푸른 지붕 창고 앞에 차가 멈췄다. 인적 드문 길이었다.


“엄마 보러 가야지.”

박재열이 뒷좌석 문을 열더니 창고를 가리켰다.


시노는 배가 불러서 없던 용기가 생겼는지 느린 동작으로 천천히 움직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노는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박재열을 몇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텅 빈 창고였다. 구석에 놓인 작은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 그게 전부였다.


테이블 옆으로 난 문을 열더니, 박재열은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을 앞장서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폭이 좁고 경사가 급했다. 지하는 1층만큼 넓은 공간이 아니었다. 사무실이나 물품 보관실로 쓰일 법한 격실이 몇 개 있는 정도였다.


가장 안쪽에 있는 밀실 앞에 서 있던 안 실장이 박재열에게 다가와서는 작은 소리로 상황을 보고했다.


시노를 돌아보더니 박재열은 구석에 있는 밀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빗장이 걸려 잠겨 있었지만, 자물쇠를 채우지는 않은 문이었다. 시노는 직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노가 밀실의 문을 열자, 나나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나미는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깜짝 놀라며 시노를 쳐다봤다.

“여긴 왜 온 거야?”

“엄마? 밥은 먹었어?”

시노는 가방에서 생수를 꺼내 엄마에게 건넸다.


뒤에서 지켜보던 박재열이 슬그머니 다가오며 너스레를 떨었다.

“걱정하지 마. 정직한 사람에게 우린 또 한없이 너그럽거든.”


나나미는 경멸의 표정으로 박재열을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질문에 답할 시간. 거짓말할 때마다 50점씩 감점이니까 정신 바짝 차리시고. 참고로 엄마는 100점 맞았으니까 분발하는 게 좋을 거야.”

시노는 박재열의 방향으로 몸을 틀며 네, 라고 짧게 대답했다.


“첫 번째 질문. 지금 애들 어딨어?”

“히로시마에서 헤어졌어요.”


“두 번째 질문. 애들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어?”

시노는 몸을 움찔하며 시계를 봤다. 6시 30분.


“대답하기 전에 질문 하나만 해도 돼요?”

“짧게 하세요.”


“진실을 말하는 대가는 뭐죠?”

“살려준다.”

박재열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언제 우리 풀어줄 건가요?”

“남은 애들 두 명 다 잡고 나면.”

박재열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시노가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박재열은 다그치는 소리로 다시 물었다.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대답해. 애들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지?”

“후쿠오카 가기로 했어요.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어요.”


“여권도 없이? 그런 소식 못 들었는데?”

“여권 만들었어요. 히로시마에서.”


박재열은 이를 악물며 인상을 구겼다. 말소리는 내지는 않았지만, 주위 사람들을 압도할 만큼 신경질적으로 이를 갈았다.


“비행기야? 아니면 배야?”

“배 탈 거라고 했어요. 부산 가는 배.”


“그 말 어떻게 믿지?”

시노는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내더니 이메일 받은편지함을 열었다.


첨부 사진이 두 장 담긴 이메일을 박재열에게 보여줬다.

하나는 후쿠오카 하카타 국제터미널 간판 아래에서 여유 있게 찍은 독사진.

그리고, 두 번째는 선착장 너머에 정박한 하얀 여객선 사진.


“부산? 일단 잠깐 대기.”

박재열은 문을 잠그고 나가더니 손짓으로 경호원을 부르더니 ‘잘 감시해’라고 명령하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박재열은 올라가면서 안 실장에게 배 시간 알아봐, 라고 소리치며 핸드폰을 꺼내 이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 없어. 급해. 애들 후쿠오카에서 배 타고 부산으로 가고 있어.”

[누가 부산 간다고?]


“박규진, 김여원 벌써 배 탔다고.”

[시논가? 그 일본 애는 어디 있어?]

“여기 창고에.”

[알았어. 부산은 내가 맡을게. 배 도착 시각은 언제야?]


안 실장이 박재열 어깨너머에서 전화기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 시간이면 부산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 중일 겁니다.”


[그걸 지금 얘기하면 어떡해? 무슨 일을 그따위로 처리하는 거야. 일단 전화 끊어.]

수화기 너머로 이지영이 발작하듯 소리치는 고음이 들려왔다.


* * *


갑자기 김대업을 찾아온 최대식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부탁 하나만 할게요.”

최대식은 자기 핸드폰을 김대업에게 내밀었다.


“누가 전화 와서 나 찾으면, 술 먹고 뻗어서 잔다고 해줘요. 낮이든 밤이든 그냥 그렇게만 말해줘요.”

“그게 무슨 소리야?”

“특히 박재열 사장 전화 오면 무조건 딱 잡아떼세요. 귀찮아 죽겠으니까 데리고 가라고 하시든지. 맨날 술만 먹는다고 성질내도 좋고.”

“그러다가 진짜 찾아오는 거 아니야?”

“저 같은 인간을 누가 찾으러 오겠어요. 며칠 내에 다시 올 테니까 부탁한 대로 좀 해주세요.”

최대식은 짧은 말만 남기고 서둘러 타고 온 택시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김대업은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한국 영해로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지만, 규진과 유엔을 태운 여객선이 부두로 들어왔을 때는 어둠이 내린 후였다.


유엔은 재빠르게 움직여 빠른 줄에 서서 입국 심사를 기다리며 시계를 봤다. 6시 55분,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유엔은 발을 동동 굴렀다.


“왜 그래?”

“예감이 좋지 않아.”

유엔은 왼손으로 눈을 가리며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환각은 이제 잊어. 그거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면서 생긴 흉터 같은 거야.”



규진과 유엔 차례가 되어 입국 심사를 마치고 터미널 2층 입국장으로 나오자마자 유엔은 주위를 둘러봤다.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 쪽을 향하며 유엔은 빠른 걸음으로 앞장섰다. 터미널을 서둘러 빠져나간 둘은 바로 택시에 올라탔다.


그 순간이었다.


검정 승용차 세 대가 택시 승강장을 비집고 들어오더니 급제동을 하며 규진과 유엔이 탄 택시 앞을 가로막았다.


순식간에 자동차 세 대에서는 건장한 사내들이 스프링처럼 튀어나왔다. 하나같이 넥타이를 매지 않은 검은 양복 차림의 사내들이었다.


사내 여섯은 흘끔 주위를 둘러보더니 곧바로 여객터미널로 뛰어 들어갔다.


승용차를 운전하는 사내들도 같은 색 옷차림이었다. 차를 몇 미터 움직여 주차장 입구에 아무렇게 차를 세우더니 그들도 먼저 달려간 사내들을 따라 서둘러 여객터미널로 들어갔다.


막힌 길이 뚫리고 나서야 택시 운전사는 신경질적으로 투덜거렸다.

“건달 새끼들이 왜 여기서 지랄이야 지랄은.”


유엔은 덤덤하게, 김해공항 가주세요, 라고 짧게 말했다.


택시 뒷좌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규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투덜거렸다.

“시노, 진짜 배신한 거 아니야?”


“설마? 아닐 거야. 시노가 성격이 급해서 그래, 입국 수속 시간 계산 못 했겠지.”

유엔은 시노를 두둔하면서도 신경질적으로 이를 갈았다.


“기사님 저기 저쪽에 부산역 앞에서 잠깐만 세워주세요. 사진 한 방만 찍고 김해공항 갈게요.”


* * *


인적이 드문 창고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박재열은 큰소리로 전화통화를 했다.


“지금 후쿠오카에서 온 배에서 승객들 나오고 있다고?”


“뭐? 애들이 안 보여? 알았어, 일단 끊어 봐.”


박재열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중이라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안 실장, 시노 데리고 올라와.”

박재열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동안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박재열은 펄쩍펄쩍 뛰며 성질을 부렸다.

“뭐, 승객들 다 내렸다고?”


“어디 짱 박혀서 숨어 있는 거 아니야?”


“아니 왜 승객 명단 같은 거 빼돌려서 보면 되잖아, 그런 것도 하나 못 빼내?”


박재열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신경질을 내더니 갑자기 몸을 웅크리며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알았어’라고 대답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작가의말

위험 속으로 제 발로 걸어가기로 한 시노의 판단은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는 엄마를 구하기 위해, 악당 무리의 심부름꾼으로 한심한 인생을 사는 아빠를 구원하기 위해, 시노는 적진 한복판에 뛰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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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바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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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2부 5화. 다락방 비밀의 문 19.05.15 52 1 14쪽
102 2부 4화. 새덕 마을의 비밀 19.05.13 53 1 15쪽
101 2부 3화. 푸른 곤룡포 19.05.09 46 1 12쪽
100 2부 2화. 광산의 실 소유주 19.05.08 51 0 15쪽
99 2부 1화. 사고로 위장한 살인 19.05.07 56 0 13쪽
98 단편 외전-4. 유엔의 각성 19.05.02 59 1 13쪽
97 단편 외전-3. 사악한 빙의 (하) ※공포 주의※ 19.04.30 51 1 13쪽
96 단편 외전-3. 사악한 빙의 (상) ※공포 주의※ 19.04.29 61 1 13쪽
95 외전-2. 크고 예쁜 도토리 19.04.28 55 1 13쪽
94 외전-1. 죽은 자의 혼령 19.04.26 65 1 12쪽
93 32장 마지막 질문 (1부 최종화) 19.04.25 70 2 16쪽
92 31장 그녀가 있던 자리 (2) 19.04.24 71 2 14쪽
91 31장 그녀가 있던 자리 (1) 19.04.23 69 2 15쪽
90 30장 풀잎에 달린 이슬 (2) 19.04.21 70 2 15쪽
89 30장 풀잎에 달린 이슬 (1) 19.04.20 68 1 14쪽
88 29장 사건의 전말 (3) 19.04.19 82 1 12쪽
87 29장 사건의 전말 (2) 19.04.17 66 0 11쪽
86 29장 사건의 전말 (1) 19.04.15 72 1 12쪽
85 28장 염곡동 살인사건 (9) 19.04.12 75 0 13쪽
84 28장 염곡동 살인사건 (8) 19.04.10 63 0 13쪽
83 27장 박쥐 사냥 (3) 19.04.08 71 1 13쪽
82 27장 박쥐 사냥 (2) 19.04.05 82 0 12쪽
81 27장 박쥐 사냥 (1) 19.04.03 76 0 11쪽
80 26장 위험한 갈림길 (2) 19.04.01 72 0 13쪽
79 26장 위험한 갈림길 (1) 19.03.29 78 1 13쪽
78 25장 볼모가 된 세자 (3) 19.03.27 73 0 11쪽
77 25장 볼모가 된 세자 (2) 19.03.25 77 1 13쪽
76 25장 볼모가 된 세자 (1) 19.03.23 85 0 12쪽
75 24장 가짜 열쇠 (3) 19.03.20 8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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