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록원의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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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justme
그림/삽화
Bartolomé武本
작품등록일 :
2018.09.03 12:51
최근연재일 :
2019.02.19 11:46
연재수 :
144 회
조회수 :
29,854
추천수 :
674
글자수 :
435,443

작성
18.10.17 11:48
조회
219
추천
5
글자
7쪽

36화 흥부전

DUMMY

동물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날이 지나갔다. 다시 사서로서의 업무로 복귀. 지금은 책장들을 뚫어지게 보는 중.

"찾았다."

유리가 하늘을 날아올라 책을 한 권 꺼내온다. 갈색 표지에 검은 글씨. 「Tales of Heungbu」. 흥부전. 저자는 당연히 미상. 표지는 악마에게 잠식당하며 점차 검게 변해가고 있다.

"흥부전? 귀찮은 게 걸렸네."

책을 잠시 바라보던 유리는 책을 펼친다. 펼쳐진 책의 한 귀퉁이를 잡는다.

황금의 펜이 공중을 춤춘다. 사서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이야기가 뒤바뀐다. 펜이 공중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책이 강한 빛을 발한다.

"이야기여, 사서를 받아들여라."




그리고 바닥에는 책 한 권만이 남는다.

​​

이야기 속에 들어온 두 사서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김유빈은 곧바로 한유리가 넘겨준 펜으로 마법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즉시 자신들에게 투명화 마법을 시전한다.

한유리는 다시 한 번 투명해진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헛웃음을 짓는다.

"저건 흥부의 집이겠지?"

"그렇겠지. 놀부가 저런 집에 살지는 않을 테니까."

기둥은 무언가 파먹은 흔적이 있으며, 마루도 깨져있는 부분이 보인다. 구멍 뚫린 창호지 문 너머로는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판본에 따라 다르지만, 흥부는 자식이 많다. 어마어마하게 많다. 당장 마루 밑에 놓인 신발만 해도 어림잡아 마흔 개는 되어 보인다.

김유빈과 한유리는 나무로 만든 울타리 한쪽에서 집안을 관찰한다. 수많은 소리가 겹쳐서 정확하게 분별을 할 수는 없지만, 흥부가 놀부에게로 쌀을 빌리러 가려는 듯하다.

문을 열고 누더기에 가까운 옷을 입은 남자가 방을 나온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수십 명의 아이가 모습을 보인다. 김유빈은 저 좁은 방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란다.

밖으로 나온 남자, 아마도 흥부일, 남자는 다 떨어져 가는 신을 신는다. 왼쪽 엄지발가락이 모습을 드러내고, 오른쪽은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조금 보인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게 어떤 말인지 깨달았어."

한유리의 말에 김유빈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흥부가 역할을 못 하는 신을 신고 길을 걸어간다. 한유리는 기타를 불어내어 음표를 만들어낸다. 두 사서는 자연스럽게 음표에 올라가고, 한유리의 연주에 맞춰 두 명을 실은 음표가 하늘을 날아오른다.

흥부는 땅을 내려다보며 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세 걸음에 한 번씩 한숨을 내쉬며. 형인 놀부가 자신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고 있기에 두 다리가 천근 같다.

그렇지만 이 걸음을 되돌릴 수는 없다. 흥부와 그 아내는 둘째치고 아이들이 이틀째 밥을 한 공기만 먹었다. 스물다섯 명이 한 공기를. 아이들을 더 굶주리게 할 수 없다는 가장의 책임이 흥부를 이끌고 있다.

놀부의 집은 흥부의 집과는 다르다. 흥부는 산골 구석에서 작은 밭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다. 놀부는 그 밭과 같은 밭은 수백 개는 가지고 있는 지주고. 놀부는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소작농들에게 지대를 받고 살아간다. 그 지대라는 것이 적은 양이 아니라서 문제지. 특히 흥부가 일구는 밭의 지대는 다른 밭의 지대보다 높다.

도시의 정중앙.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하나 세워져 있다. 놀부의 집. 그 거대한 집에는 놀부 부부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하인들이 있다.

흥부는 자기 집보다 높은 대문을 올려다보며 턱을 멍하니 벌리고 있다. 침을 한번 삼키고 그 거대한 대문을 두드린다.

"형님! 저 흥부 왔습니다!"

쿵쿵 울리는 소리와 흥부의 목소리가 마당을 가득히 채운다. 커다란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고 하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뉘슈?"

흥부는 고개를 숙여 문을 열어준 하인에게 인사한다.

"저는 놀부 형님의 동생인 흥부입니다. 형님은 안에 계십니까?"

하인은 볼을 긁적이며 흥부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주인 어르신은 밖에 나가 있는디유."

"올 때까지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뭐. 들어오슈."

문이 열린다. 흥부는 너무나 큰 마당에 안절부절못하며 걸음을 옮긴다. 하인의 안내에 따라 흥부는 연못 위에 세워져 있는 작은 정자에 앉는다. 하인은 차를 올리겠다며 물러간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상당히 이상하네."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두 사서가 서로의 심경을 이야기한다.

"주걱으로 뺨 맞을 차례인데."

흥부를 때려야 할 놀부 부인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흥부는 자리가 어색한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형이 오기를 기다린다.

"도련님. 오래간만이네요."

멀리서 차가 담긴 주전자와 잔을 쟁반에 담아 오는 여성이 있다. 흥부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 놀부의 아내일 여성. 곱게 차려입은 저고리와 다홍치마. 입술은 붉게 빛나고 분을 칠한 듯 얼굴도 하얗다. 누군가의 아내보다는 화류계 여성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복장.

"으헉!"

놀부의 아내를 보고 음표에서 떨어질 뻔한 김유빈을 한유리가 잡아챈다. 김유빈의 눈에는 영혼이 없다.

"저게 놀부의 아내라고? 내가 알고 있는 놀부의 아내는 여자 오크인데."

"나도 저렇게 생겼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두 명의 사서는 놀부 아내의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본다. 오뚝한 콧날. 아름답게 반짝이는 눈. 어떠한 사람이 보더라도 미인이라는 결론을 내릴 얼굴.

흥부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놀부의 아내도 쟁반을 든 채로 고개를 숙인다. 놀부의 아내는 그대로 정자로 올라간다. 펴져 있는 작은 책상에 쟁반을 올려놓고 주전자와 잔을 내려놓는다. 정갈한 자세로 주전자를 들어 올려 잔에 녹색으로 일렁이는 차를 담는다.

놀부의 아내가 건네준 잔을 흥부가 받아 목구멍으로 넘긴다. 놀부의 아내는 흥부와 마주 본 상태로 그의 목젖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본다.

"형수님. 혹시 쌀이 남는 것이 있다면 좀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흥부는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이야기한다. 그 말에 놀부의 아내는 기다란 손가락을 빨간 입술에 올려놓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꺾는다.

"남편이 알면 안 되겠지만, 도련님한테 살짝 빌려드릴게요."

놀부의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자를 내려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흥부를 보고 손짓한다.

"따라와요."

흥부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놀부의 아내를 따라간다.

"이 장면 아침 드라마에서 본 거 같아."

"무슨 느낌인지 알겠다."

음표 위에 올라앉은 사서들은 밑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보고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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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특별편 연극부의 김유빈 19.02.12 93 2 3쪽
137 특별편인가? 소제목 패러디들 19.02.11 102 2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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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135화 사랑은 잔혹하게 19.02.09 88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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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133화 죽은 자를 위하여 19.02.07 107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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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129화 공주님은 못 말려 19.02.02 130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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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126화 고요한 해변 19.01.30 95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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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123화 페이스 오프 19.01.26 110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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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120화 나무 호미를 든 팥쥐 19.01.23 97 2 7쪽
119 119화 콩쥐, 팥쥐 19.01.22 100 3 7쪽
118 118화 사뭇 진지한 대화 +1 19.01.21 99 3 7쪽
117 117화 불길한 기분은 언제나 들어맞는 법 ​ +1 19.01.19 197 3 7쪽
116 116화 물의 전차 19.01.18 117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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