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크리스마스 캐롤
나흘의 휴가 동안 로이스랑 놀러 다녔다. 로이스가 알고 지내는 사람이랑도 만나고, 휴게실의 여러 방도 둘러보고,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유리는 휴가 동안 방에 박혀있었던 모양이다. 잠도 안 잤는지 피곤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다. 그리고 피곤한 사람이 으레 그러듯 짜증을 내고 있다. 내 인생은 왜 이리 고달플까.
청하는 상태가 좋아졌다. 세실라 박사의 말에 따르면 간단한 PTSD이기 때문에 상담과 사서의 능력을 이용한 거라고 했다. 또 같은 일로 올 일은 없다는 말도 덧붙여서.
그래서 우리 셋은 지금 전투실 사무실에서 악마를 탐색 중이다.
"그런데요. 악마는 왜 이야기 속에 들어가는 건가요?"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 그러게. 왜 들어가지? 청하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나의 시선은 유리를 향한다. 유리는 나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다. 모르는 모양이군.
"어···. 어···. 어···. 글쎄?`
역시나. 유리는 한참이나 고민하더니 글쎄를 말했다. 그리고는 시선을 피하려는지 고개를 책장으로 돌린다.
"저기 악마!"
유리는 청하의 시선을 피해 날아오른다. 청하는 한참이나 유리를 바라보다 한숨을 쉰다.
땅으로 내려오는 유리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있다. `Charles John Huffam Dickens`의 「A Christmas Carol」. 내 기억이 맞는다면 스크루지 영감이 나오는 소설.
"이거 스크루지 나오는 거 맞죠?"
청하의 질문에 유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니 진행은 빠르겠네.
유리가 책을 펼친다. 나와 청하가 책의 귀퉁이를 잡는다. 유리는 황금의 펜을 꺼내 들고 휘두른다. 이야기를 덮어쓴다. 펜이 위아래로 요동친다.
"이야기여, 사서를 받아들여라."
그리고 바닥에는 책 한 권만이 남는다.
사서들이 도착한 곳은 어딘가의 골목. 하늘에서는 눈이 내린다. 먹구름에 가려져 어두컴컴한 하늘. 바닥에는 약간의 눈이 쌓여있다. 뒷골목이 으레 그렇듯 쓰레기가 너저분하게 흐트러져 있다.
"으, 추워."
이야기에 도착하자마자 밀어닥치는 바람에 한유리가 몸을 떤다. 김유빈은 바로 황금의 펜을 휘두른다. 세 명의 사서가 입고 있는 옷이 변화한다. 산업혁명 시기에 어울리는 옷으로.
"일단 스크루지를 찾자."
김유빈이 마법서를 펼치고 마법을 사용한다. 사서들의 몸이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진다. 김유빈은 또 하나의 마법을 사용한다.
`들리지?`
머릿속에 들려오는 김유빈의 목소리에 이청하가 놀란 듯이 김유빈을 바라본다.
`오오. 신기해요.`
`세 명 다 연결된 거야?`
한유리의 질문에 김유빈은 고개를 끄덕인다.
`서로의 위치도 짐작할 수 있으니까 찾았으면 말해.`
김유빈은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골목을 빠져나간다. 한유리도 추위에 몸을 움추리며 골목 밖으로 걸어간다. 남은 이청하는 혼자 남겨진 상황을 잠시 정리하다 한숨을 쉬고 움직인다.
크리스마스이브의 거리는 생각보다 한산하다. 가게들도 특별히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김유빈은 여태까지 겪어온 크리스마스와 비교하며 거리를 걷는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행복이 보이지 않는다. 다들 추운 바람에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걸음을 옮길 뿐. 꼭 옷깃을 여민 만큼 마음의 문도 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한유리는 김유빈과 반대쪽으로 걸어간다. 우중충한 회색 하늘과 회색 거리를 걷는다. 내리는 눈 만이 거리에 색채를 더한다. 회색 옷의 사람들은 새하얗게 깔린 눈을 무참히 짓밟고 지나간다.
이청하는 골목에서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특별한 것이 전혀 없는 거리. 같은 모습의 건물들이 복제된 듯 줄줄이 늘어서 있다. 이청하는 머리를 한 번 긁적이고 발걸음을 옮긴다.
`뭔가 발견 한 거 있어?`
걸어가던 두 사람은 들려오는 김유빈의 목소리에 발을 잠시 멈춘다.
`아직.`
`저도 발견 한 건 없어요.`
`유리 너는 하늘에서 찾아. 지상은 나랑 청하한테 맡기고.`
`알았어.`
김유빈의 조언에 따라 한유리는 황금의 펜을 휘둘러 기타를 꺼내 든다. 거리 한복판에서 기타를 치는 것이 어색하지만, 어차피 사람들의 눈에는 한유리가 보이지 않는다. 기타 줄이 퉁겨지고 음표가 나타난다. 한유리는 음표에 올라타서 기타를 연주한다.
이청하는 음표를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한유리를 바라본다. 높이 올라가는 그 모습에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고 시선을 지상으로 돌린다. 거리를 걸으며 건물들에 적힌 글자들을 읽는다.
한유리가 하늘을 나는 동안 김유빈은 지상에서 스크루지의 가게를 찾는다. 무표정으로 땅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사람들을 지나친다. 김유빈은 그런 사람들을 보며 막연한 불안함을 느낀다.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한유리는 이상함을 느낀다.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모이고 있다. 도시 중앙에 있는 분수대로 모이는 사람들. 그녀의 기억에는 이런 장면은 없었다.
`사람들이 전부 한곳으로 모이고 있어.`
그 말에 김유빈과 이청하가 주위를 둘러본다. 건물의 상표만 보고 움직였기에 이런 기형상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 주위의 모든 사람은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무표정한 얼굴로. 터벅터벅.
`먼저 가서 확인해 봐. 바로 따라갈게.`
김유빈과 이청하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달려나간다. 한유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분수대로 음표를 이동시킨다. 천사 상이 물을 뿜고 있는 분수대 주변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분수대 옆에는 쪼개진 나무들이 잔뜩 쌓여있다. 쌓아 올려진 나무 가운데에는 기다란 장대가 세워져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곳을 향하고 있다. 사람들이 계속 모인다. 분수대가 있는 광장을 절반 정도 채웠을 때 건물 한곳에서 두 사람이 나온다.
한 사람은 군인인지 제복을 입고 있다. 등에는 총을 메고 한 손에는 밧줄을 들고 있다. 그 밧줄은 또 한 사람의 몸을 묶어두고 있다. 매부리코와 굽은 허리. 반질반질한 피부.
"미친."
한유리는 묶여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스크루지. 악독한 구두쇠. 지금 그가 쌓아 올려진 장작들 사이의 장대에 묶인다.
`비상! 스크루지를 화형 시키려고 해!`
`이런 미친!`
김유빈은 한유리와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바로 마법서를 펼치고 주문을 외운다. 곧 땅이 갈라지고 해골 말이 솟아오른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해골 말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김유빈은 그 모습에 강한 불안을 느끼고 곧바로 말에 올라탄다.
`전 거의 다 도착했어요!`
이청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광장에 도착한다. 수많은 사람이 기둥에 묶여있는 스크루지를 바라본다. 사람들의 눈에는 감정이라곤 없다.
- 작가의말
..... 네. 늦어 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변명의 여지도 없네요. 다음엔 제때 제때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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