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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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웅천
작품등록일 :
2018.09.04 13:15
최근연재일 :
2018.11.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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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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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9. 알타미아노스-1

DUMMY

레만에게 극한의 수련을 받을 때는 지긋지긋하기 짝이 없던 감옥 같은 곳도 같이 있는 사람이 달라지면 천국이 된다. 카르밀라는 저녁준비를 하고 있고, 셀리와 테루는 현익이 가르쳐준 고스톱을 친다고 정신이 없다.

아이들에게 웬 화투냐고? 내용도 모르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사흘 밤을 꼬박 새며 화투장을 만든 사람 섭하지!

셀리와 테루가 연신 “고!”, “스톱!”을 외치며 내던지고 있는 것은 단순한 48페이지 화투가 아니다. 플라스틱이 없는 관계로 나무를 얇게 잘라 만든 화투장은 하나하나에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무서운 마법아이템이다.

아이들이 마법사들에게 죽을 뻔했던 것을 생각하고 위험에 처했을 때 호신용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민 바탕으로 두는 것보다 뭘 그려 넣을까, 하다가 생각나는 게 딱 그거라 솔, 매화에서 오동, 비까지 그려 넣기는 했지만.

그려 넣는 김에 단순한 그림이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1월부터 12월까지의 서로 다른 그림들은 각기 다른 위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당연히 ‘피’보다는 ‘띠’가, ‘띠’보다는 ‘열’이 위력이 세고, ‘광’은 특별히 강한 위력을 가진 것이다. 아이들에게 고스톱을 가르쳐준 것은 아이템 종류 별 성능을 숙지시키고 익숙하게 다루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머리 위로 들었다가 던져야 한다. 마나를 넣어서 빠르게!”

아이들은 가르친 대로 화투장을 들어 뿌린다. 화투장은 쌔액, 소리를 내며 날아가 둘이 앉은 사이에 놓인 바둑판만한 나무판에 가서 팍팍 꽂힌다. 셀리는 화투장이 거의 파묻힐 정돈데, 테루는 아직 절반 정도만이다.

화투장이 박힌 목표에서는 즉각 효과가 나타난다.

일월 솔은 검은 연무를 피워 시야를 가리면서 기관지를 괴롭게 만들고, 팔월 공산은 보름달 같은 광원을 만들어 눈을 뜨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십이월 비는 주변의 수분을 순식간에 끌어당겨 물을 만든다. 물 폭탄에 얻어맞는 것이다.

물론 집안에서 고스톱놀이를 할 때는 락(Rock)이 되어있어 마법이 발현되지는 않지만.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군.’

아이들에게 매직 버니어(Magic Veneer) 사용법을 가르치면서 황궁으로 들어갈 궁리를 했고, 그럭저럭 밑그림을 완성했다. 이제 여기에 색을 입히고 섬세한 터치를 하면 되겠지. 드래건 슬레이어 그리고 황자. 밑그림의 기본구도다.

“카르밀라, 어디 질 나쁜, 저 자식 누가 좀 안 잡아가나, 싶은 나쁜 드래건 없어?”

레만의 던전으로 들어와 같이 기거하면서 카르밀라와의 거리가 한층 줄어들었다. 느낌상으로는 미친 척하고 들이대면 못 이기는 척하고 받아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놈의 정령검사!’

그 자식이 떠오르면 문턱까지 간 발길을 돌아서게 만든다. 그 자식은 아이들의 아버지다. 고로 카르밀라는 유부녀다. 대한민국에서는 간통법이 폐지되었지만, 현익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고루한 도덕의 성벽은 아직 견고했다. 어쩌면 카르밀라는 빗장을 풀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현익은 주저한다.

“남의 여자를 탐하지 말라!”

거룩하고 성스럽기 짝이 없는 하느님의 계명에조차 포함될 정도로, 남의 아내는 금단의 존재다. 그래서 현익은 어쨌든 빨리 그녀를 과부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정령검사 그 자식이 죽었거나,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카르밀라는 더 이상 유부녀가 아니니까.

“나쁜 드래건요?”

어디에나 쳐 죽일 놈은 있는 법이지. 드래건 사회라고 그런 말종 없겠어? 악룡(惡龍)이라는 보통명사가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드래건에게 나쁜 드래건 자식을 묻는 것이 넌센스일까? 카르밀라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한다. 하지만 어렵게(?) 만든 계획이고, 카르밀라도 당연히 알아야하는 것이다. 그대로 밀고나가는 수밖에.

“드래건 슬레이어가 될 생각이야.”

“....?”

아무 말 없지만 눈이 커지는 것이 무척 경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긴 드래건보고 드래건 때려잡겠다고 말하는데 오죽하랴, 아무리 카르밀라가 인간화된 드래건이라 하더라도.

“흑마법사들이 헬리오크제국을 장악하려고 해. 무슨 일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황제도 황궁도 위험해. 그래서 내가 황궁으로 들어가려는 거야.”

“....?”

계속해보세요. 약간은 시크한 카르밀라의 눈빛. 흑마법사들을 때려잡기 위해서라니 들어는 준다, 라는 듯이.

“헬리오크제국의 다미안황자가 드래건을 잡겠다고 어둠의 숲에 들어왔다가 실종이 되었어.”

“....?”

그래서요. 아직도 눈은 의혹이 짙다.

“폴리모프로 다미안황자 모습으로 변해 황궁으로 들어가는 거지, 드래건 슬레이어가 되어서.”

“....!”

비로소 알겠다는 표정.

“당신 정말 인간은 맞아요?”

그리고 생긴 새로운 의문. 그럴 줄 알았다.

“폴리모프라고 드래건처럼 완전한 변이를 하는 건 아냐. 골격을 약간 바꾸고 외관을 조정하는 거지.”

키를 크거나 작게도 하고,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을 바꿀 수도 있지, 피부색깔도. 눈을 크게 코를 오똑하게 입을 작게 만들 수 있다. 가슴이나 엉덩이를 크게 혹은 작게 만들고 허리를 가늘게 혹은 굵게 그리고 다리는 길게 또는 짧게 만든다, 마나를 이용해서.

‘돌아가면 성형센터를 차릴 거다!’

대박날 것을 확신한다. 칼 대지 앉고 고통스럽게 하지 않고 짧은 시간에 미용시술을 할 수 있다, 마나만으로. 한 가지, 지구의 마나분포가 어느 정도인가가 문제일 뿐.

폴리모프는 사실 드래건의 전유특권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동물도 폴리모프를 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곤충들, 그리고 양서류들은 폴리모프를 한다.

땅바닥을 기어 다니던 애벌레가 하늘을 나는 나비나 잠자리로 탈태를 하는 것이, 물에서만 살 수 있는 새까만 올챙이가 다리가 생기고 콧구멍이 생겨 육상동물로 환골하는 것이, 드래건이 인간으로 변하는 것보다 덜 신비롭지 않다.

어쨌든 인간도, 적어도 현익은 최소한의 변이는 할 수 있다, 변장처럼 풀어지거나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변이를 할 때까지 그대로 있는.


알타미아노스. 키카란산에 둥지를 틀고 있는 크림슨드래건.

성격이 포악하고 잔인해서 오래 전부터 드래건사회에서 버림받은 ‘나쁜’ 드래건이다. 동료드래건까지도 살해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그래서 별칭이 블러드드래건이다.

“두 명의 어린 드래건까지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생각보다 쉽게 카르밀라는 ‘쳐 죽일’ 놈을 소개해주었다.

“아주 호색한 드래건이어요. 예쁜 인간여자들만 잡아 색노로 부리다가 잡아먹기까지 하는데, 갓 유희를 나갔던 어린 드래건 둘도 녀석의 표적이 되었던 모양이어요.”

“허? 그러니까 납치, 강간, 살인인가?”

이게 무기징역은 따 놓은 당상이네? 아니 사형도 가능하겠어.

“그렇게 나쁜 놈을 왜 아직 처단하지 않았지?”

인간은 어쩌지 못하겠지만, 드래건 사회에서는 제제가 가해지지 않나?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까요.”

“....?”

“알타미아노스는 아빠와 수위를 다투는 강한 드래건이어요. 게다가 아주 험한 곳에 있어서 찾아가는 것도 만만치 않아요. 그러다보니까....”

가볍게 한숨을 쉬는 데오. 그러니까 죄짓고 멀리 아프리카 오지 같은데 숨어버린 거군. 그런데 드래건에게도 힘든 곳이 있나?

“어딘데?”

“그의 레어는 사우든 헬, 키카란산 분화구 안에 있어요.”


키카란산은 열사의 제국이라 불리는 이치오닌제국에 있다.

벨라투스왕국연합과 함께 어둠의 숲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나라. 신마전쟁 때 열 명의 인간영웅 중 한 명인 쿠챠가 건립한 이 나라는 광대한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과 화산지대다.

특히 사우든 헬(South Hell)이라 불리는 제국남부의 화산지대는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아직도 간헐적으로 용암을 토해내는 수십 개의 화산과 수천, 수만을 헤아리는 습지와 호수들. 파란 호수도 있고 붉은 호수도 있다. 그리고 진흙으로 된 습지.

공통점은 물은 천지지만 생명이 살지 않는 곳이라는 점. 이유는 90도 이상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기 때문이다. 키카란산은 이 사우든 헬의 중심에 위치한, 가장 높은 산이며 쉼 없이 뿌연 수증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

‘어지간한 놈들은 가기도 전에 죽겠네!’

시속 200키르 정도로 두 시간 째 내달리고 있는 데도 아직 키카란산은 까마득히 멀리 보인다. 끊임없이 해독마법을 시전하는 데도, 슬쩍슬쩍 코로 들어오는 진한 유황냄새로 골이 찌근거리며 아파온다.

카르밀라는 이치오닌제국에는 딱 한 군데, 이치오닌의 수도인 헤란 인근에 텔레포트좌표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서 사우든 헬까지는 무려 1,000키르가 넘었다. 대부분이 사막인 그 거리를 밤새도록 달려 아침나절에는 사우든 헬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연달아서 2시간 째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응, 다 왔나?’

멀리 멀로 하얀 김을 뿜어내고 있는 산이 지평선에 나타났다.

저절로 다리에 속도가 붙는다. 이윽고 눈앞에 웅장한 몸체를 드러낸 시커먼 산 하나가 버티고 섰다.

‘젠장, 분화구까지 높이만 3,000미르가 넘겠네.’

뭐, 드래건에게는 별로 높은 높이는 아니지만.

평지 위에 버티고 서있는 키카란산은 엄청나게 높아보였다. 게다가 경사가 급했다. 30배 줌(Zoom)한 에펠탑을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시커먼 게 나무도 없이 온통 바위투성인 것 같아 보였다.

‘에휴!’

저길 어떻게 올라가지? 드래건처럼 날개도 없는데. 엄두가 안 나는군.

아니 저길 내가 꼭 올라가야 하나? 좋은 방법 없나? 좋은 방법....? 있다! 그런데....?


‘좀 모양이 아니군.’

하지만 저 높은, 그리고 뜨거운 곳에 정찰하러 올라가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어? 젠장이다, 젠장! 대체 이런 지랄 같은 방법은 왜 생각나는 거냐고?

사람은커녕 생물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곳이라, 그리고 3,000고지의 뜨거운 정상에 올라가기 싫어 택한 방법이긴 했지만, 막상 해놓고 보니까 스스로도 닭살이 돋아 돌아버릴 지경이다.

여장(女裝). 현익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입고 보니 무릎 위로 한 뼘이나 올라간 짧은 스커트에 앞가슴과 등이 온통 파진 원피스다.

현익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키카란산을 보면서 저걸 어떻게 올라가지 하고 생각하는데, 왜 갑자기 그놈이 색마라는 게 떠오른 거야? 그리고 아공간에 여자 옷을 넣어온 것은 왜 기억이 났던 거야?

그랬다. 어둠의 숲에서 출도를 하면서, 레만의 창고에 여자 옷이 있는 것을 보고 몇 개를 아공간에 넣었었다. 왜?

“이 옷을 걸치시오!”

강간을 당할 위기에 짜잔, 하고 등장해서 미녀를 나쁜 놈의 손에서 구하고는, 찢어진 옷을 끌어안고 몸을 웅크리고 있는 미녀에게 줄 생각이었던 거겠지. 유치하기는...

그런데 레만의 창고에 왜 여자 옷이 있었을까? 그것도 이곳 여자들이 입지도 않는 초미니스커트에 노출이 심한 것이?

어쨌든 그렇게 해서 여장을 했다. 다미안황자, 약골이라 하더니 진짜 계집애처럼 예쁘장하다, 원판에 비해 근육도 좀 집어넣고 피부도 좀 태웠지만.

‘아! 이 자식 빨리 안 나오나?’

괜히 녀석에게 역정을 부린다. 그러자,

휘이익!

갑자기 들리는 공기를 가르는 소리.

‘왔다!’

현익은 속으로 침을 삼켰다.

이제부터 황현익 생애 최초의, 최고의 연극을 해야 할 시간이다.

연출대본이 되는 소설은 써봤어도 직접 출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흔한 초딩 때의 학예발표조차도. 그런데 잘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닭살이 돋는 고딩 필의 여자애 연기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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