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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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웅천
작품등록일 :
2018.09.04 13:15
최근연재일 :
2018.11.02 08:30
연재수 :
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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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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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2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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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11. 마녀토벌대-4

DUMMY

“폐하!”

기욤공작이 막 진실을 털어놓으려는 순간, 맑고 차분한 그러나 충분히 힘이 실린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앞으로 나선 사람은, 보는 사람들의 눈을 부시게 할 정도로 잘 생긴 미청년이었다. 드래건 슬레이어가 된 바람에 원탁기사회의에 옵저버로 참가할 자격을 얻은 다미안 제 1황자였다.

“오, 황태자!”

다미안을 바라보는 황제의 눈길이 거짓말 같이 부드럽게 풀렸다, 조금 전에 기욤공작을 상대로 살이 떨릴 정도의 포스를 뿜어내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런 황제를 보고 몇몇 귀족들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제 2황자를 지지하는 그룹에 속해있던 귀족들이었다. 그런 귀족들을 곁눈으로 살피며 현익은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보통 영감탱이가 아니야.’

황제 카라얀이 의도적으로 다미안 제 1황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황제가 제 1황자의 귀환과 함께 묘하게 흐르고 있는 궁내의 이상기류를 모를 리 없다. 그걸 알아챌 수단이 없다면 황제가 자격이 없다고 해야겠지.

황제는 단순무식한 기욤공작이 카트린느황후가 시킨 대로 1황자를 몬스터토벌대장으로 밀자, 그 기회를 이용해 자신이 1황자를 황태자로 인정한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그래서 원탁회의 석상에서 공공연하게 다미안을 황태자로 칭했다.

사실 만 18세가 되는 해에 황태자책봉을 하기 때문에 20살이 된 다미안은 이미 황태자다. 하지만 2년 전, 황태자책봉결정을 앞두고 드래건을 잡으러 떠났다 실종되었었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아직 정식으로 황태자책봉은 받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카트린느황후 측에서는 아직 황태자는 책봉되지 않은 것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고, 황제는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노골적으로 이미 다미안이 황태자라고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다.

황태자는 형식상으로 원탁회의에서 결정된다. 원탁회의 기사들 2/3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황제의 의중대로 거의 이루어지지만, 간혹 무능하거나 흠결이 있으면 제 1황자라고 해도 황태자가 될 수 없다.

실제적으로 자격의 제 1요건은 말할 것도 없이 기사의 자질이다. 그레이스황후가 무리하게 다미안을 드래건 슬레이어로 만들려고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몬스터토벌에, 그것도 마녀 퇴치와 같이 위험하지만 국운이 걸린 전쟁도 아닌 그런 곳에 황위계승후보를 내보내는 것은 무리한 발상임에는 틀림없었다. 당황한 카트린느황후 측에서 무리수를 둔 것이다.

원탁의 절반을 차지한 제 1황후 측 귀족들은 물론, 나머지 절반인 제 2황후 측 귀족들 일부도 부정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만있으면 자동적으로 다미안이 토벌대를 맡는 일은 없을 공산이 컸다. 하지만 현익에게는 나름 생각이 있었다. 조호이산지계(調虎離山之計). 손자병법에 있는 36계 중의 하나다. 숨어있는 적을 이끌어내는 계책. 현익이 황궁에 들어온 목적이기도 했다.

‘그들!’

흑마법사들. 숨어있는 그들을 이끌어내야 한다. 유스펠공작가는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다미안황자를 제거하려 할 것이고, 그들의 힘을 빌릴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닌 그들이라도 다미안황자가 궁에만 있는 한 방법이 없다. 궁에는 온갖 알람마법과 감시장치들이 도배를 하고 있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하려면 다미안이 궁을 떠나야 한다.

“기욤공작의 제안대로 제가 토벌대를 맡을까 합니다.”

“무슨 소리? 황자는 황태자야!”

황제는 다시 한 번 다미안이 황태자임을 공언했다. 그만해도 되는데, 영감. 현익은 속으로 실소를 지으며 한 발 더 앞으로 나섰다.

“폐하께서 제 안위를 염려해주시는 데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기욤공작의 말처럼 소드마스터도 당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마녀라면 제가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마녀가 지금까지는 숲에서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언제라도 몬스터 대군을 이끌고 제국을 공격한다면 그 피해가 말도 못할 것입니다. 지금 7개 영주들의 보고에 따르면 몬스터들의 준동이 예년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그리고 우리가 상상하지도 않고 있는 사태가 벌어질 지도 모릅니다.”

현익은 잠시 말을 끊고 숨을 고르면서 같이 한 무릎을 꿇고 있는 기욤공작을 힐끗 보았다. 기욤공작은 감탄했다는 뜻이 뚜렷하게 각인된 듯한 표정으로 멍청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며 현익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이 친구야. 내가 당신네들의 대본까지 챙겨줘야 하나?

“그래도 안 된다. 황태자는 함부로 몸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 특히 황태자는 3년 동안이나 고초를 겪은 몸이 아니냐?”

황제는 어림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강한 톤으로 말을 뱉었다.

“폐하! 절 그렇게까지 생각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제국의 1/3을 이 숲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그 숲에 사는 몬스터들의 수가 우리 백성들 수보다 많을 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마녀가 진짜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마녀가 있다 해도 전 마녀에게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드래건 슬레이어라서가 아니라, 드래건에게 잡혀있으면서 여러 가지를 익혔는데, 그런 것들이 마녀를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절 보내주십시오. 이참에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의 영토이면서도 손도 대지 못했던 숲을 정복하겠습니다.”

죄중을 흐르는 감탄한 기색의 공기흐름.

“유스펠후작이 돌아오지 않고 있음을 아느냐?”

침중한 황제의 목소리.

“알고 있습니다.”

현익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스펠후작은 20명의 기사와 100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다섯 명의 마법사들도 있었지요, 황제폐하의 수하는 아니지만.

“그런데도 한 명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어둠의 숲은 그런 곳이다. 아르펜삼림은 유스펠후작이 들어간 혼돈의 숲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다. 그런데도 정말 가려느냐?”

“예.”

현익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어둠의 숲에서 3년을 살았습니다.”

“좋다. 그럼 충분한 정벌대를 꾸려보자꾸나.”

“아닙니다.”

“아니라니?”

이해할 수 없다는, 혹은 용납할 수 없다는 강렬한 황제의 눈빛.

“이번 토벌의 핵심은 잔챙이들을 대량 학살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숲 중앙으로 뚫고 들어가 는 겁니다. 그래서 마녀가 있다면 마녀를 처단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니 소수정예가 좋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떼거지로 몬스터들이 몰려들면 피해가 만만찮을 것인데?”

황제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옳은 말이기도 했다.

아무리 뛰어난 기사라도 끝없이 밀려오는 무리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리고 몬스터들은 대개 밤에 활동한다. 반대로 인간들은 밤에는 활동력이 떨어진다.

걱정스런 표정의 황제에게 현익은 품에서 붉은 빛이 도는 투명한 패를 꺼내보였다.

“저는 가능하면 몬스터들을 피해갈 생각입니다. 이게 있으니까요.”

“그게 뭐냐?”

황제가 고개를 쑥 빼며 물었다.

“드래건의 비늘입니다. 이 비늘은 드래건의 마나를 품고 있어서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피합니다.”

“아 그런 게 있었구나. 하지만 문제는 마년데, 위험하지 않겠느냐?”

황제는 드래건의 비늘을 보고 다소 안도한 듯 얼굴이 펴졌지만, 마녀에 대한 우려는 아직 그대로 남은 듯했다.

하긴 마녀의 능력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치 않고. 지금까지 마녀를 만나러갔다가 살아서 돌아온 사람이 없으니까.

“마녀에 대한 여러 소문들은 과장되고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원칙적으로 인간이 드래건보다 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마녀를 만나러 갔다가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없다.”

“그들이 꼭 마녀를 만났기 때문에 죽었다는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황제의 우려에 현익은 조금의 틈도 주지 않았다.

“마녀를 만나면 무조건 죽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강한 존재라도 틈은 있기 마련이고 예외라는 것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드래건에게 잡혀갔다가 살아 돌아오는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그 오랜 세월 동안 숲의 중심부에 들어간 사람 중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건 마녀가 모조리 죽였다는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뭔가 다른 곡절이 있을 겁니다. 폐하의 영토 안에 이런 괴이한 일이 발생하는 곳을 언제까지 방치해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 국토의 삼분의 일이나 차지하는 이 광대한 땅은 폐하에게 장악되고 활용되어야 합니다.”

대전 안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귀족들은 1황자의 논리 정련한 웅변에 속으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누가 저 황자를 바보황자라 했는가? 저런 깊은 지식과 정황분석, 그리고 제국에 대한 충성심까지.

카라얀 황제는 다른 의미에서 말을 잊고 있었다.

황제의 영토. 그렇다. 아르펜삼림, 즉 어둠의 숲 남부는 엄연히 헬리오크제국의 땅이다. 제국은 드래건산맥으로 랑도취제국과 경계를 정하고 있다.

어둠의 숲 북단, 드워프의 땅이라 불리는 북부는 랑도취제국이 장악하고 있다. 제한적이지만 자유롭게 출입도 할 뿐아니라 그곳에 터전을 잡은 드워프들과 교역도 하고 있다.

하지만 드래건산맥 남단부는 신마전쟁 이래, 제국이 형성되기 전부터 금단지역으로 알려졌고 그래서 누구도 그 숲을 영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카라얀 자신까지도.

그런데 저 어린-부모가 보는 자식들은 항상 어리다-황자가 숲을 제국영토라고, 그래서 제압되어야 한다고 당당히 선언하고 있다.

‘어쩌면....’

생각만으로도 숨이 가빠지는 것 같아 황제는 침을 삼켰다.

‘다미안이 이 나라의 역사를 바꾸겠구나.’


원탁회의는 당초 카트린느 제2황후가 원했던 대로 결정되었다, 그것도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토벌대를 편성하는 것으로.

그런 만큼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결과가 더 쉽게 도출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몬스터토벌대는 40명의 기사와 10명의 마법사, 그리고 200명의 병사들로 구성되었다. 이 정도 규모는 황제의 사냥행렬보다 초라했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원탁회의의 결정이 났는데도 제2황후궁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원탁회의석상에서 황제가 분명하게 다미안 1황자를 후계자임을 암시했고, 황태자라고 불렀다. 더 나아가 다미안 1황자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귀족들이 놀랄 만큼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복잡한 황궁의 분위기를 뒤로 하고, 몬스터토벌대, 혹은 마녀퇴치대는 5일 뒤, 아르펜삼림을 향해 출발했다. 4대공작가에서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고루 차출했다. 부관은 가르딘공작의 아들인 피에르 드 가르딘백작으로 했다.

‘반드시 숲에서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 돼!’

열렬한 환송 속에 국을 떠나는 토벌대에게 손을 흔들면서 카트린느황후는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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