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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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dleroad
작품등록일 :
2018.09.0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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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0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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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변화

DUMMY

1992년 1월 1일, 오전 11시 4분, 모스크바.



계속 시가지에만 있다 보니 답답한 기분이 들어 조금 탁 트인 곳으로 나왔다. 그러나 뭔가 상쾌한 기분도 들었고, 공기도 새로운 것 같아 나쁘지 않앗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뒷골목은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어디에나 흔히 있는 전개지만, 그런 음산해 보이는 곳에서는 항상 깡패 혹은 불량배들, 아니면 폭력배들이 나타나서 둔기 혹은 총기로 협박을 해서 두들겨 패거나 아님 돈을 빼았는다. 이제는 너무 흔해빠져서 진부한 소재가 되었지만, 그래도 계속 그러는 것은 아마도 그런 부류들은 방식은 바꿀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조직 두목이라면 조금 더 은밀하면서도 대상에게는 크게 손을 대지 않고 간접적으로 협박을 할 것이다.



세상이 발전하면 그에 따르는 부가적인 요소들도 개선되기 마련이다. 안 좋은 것들은 그런 추세에 밀려서 사라진다면야 아주 이상적이지만, 불운하게도 그런 악행들은 가장 먼저 시대를 따라서 발전한다. 그게 내가 세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다. 지극히 공정하긴 하다. 특정인 시각에서만 본다면 공정하기 그지없다. '공정'이라는 의미는 자신과 주변인만 잘 먹고 잘 살면 그 세상은 그들에게 '공정'한 것이다. 이미 그 단어 본연의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니까 말이지. 요즘 왜 이리 염세적인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80년대와 달라진 건 직장을 잃은 것 외에는 별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왜?



"생각이나 더 해보자. 아직 나에게 시간은 많으니까."



그렇게 단정지으며 난 공원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이즈마일롭스키 시장에 온 건 오랜만이었다. 몇 년 전에 왔었을 때는 조그만 도매, 소매 시장이 옹기종이 모여 있었던 소규모 상업구역이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큰 규모로까지 성장해 있었다. 여러모로 세월의 변화가 느껴지기도 하는 곳이었다. 아마 이곳에 처음 온 사람들은 건물의 겉모습만 보고 테마파크 혹은 놀이공원 같은 곳인 줄 알았겠지만, 그건 착각이다. 버려진 땅에 한두명씩 입주하기 시작한 것이, 이곳이 대규모 상업지구로 발돋움하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으니, 세상 돌아가는 일이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오래만에 오긴 했으니 많이 사지는 못하더라도 배나 제대로 채우고 가기로 했다. 술만 너무 땡겼더니 도리어 배꼽시계가 미친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곳의 입구는 양쪽으로 총 2개가 있는데,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기념품 등을 포함한 잡동사니들을 판매하고, 왼쪽의 다리를 통해서 들어가면 광장이 나오고, 소규모 박물관, 공연장, 음식점 등이 있다. 즉, 내가 가야 할 곳은 왼쪽었으므로 나는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겼다. 뛸 때마다 어깨에 찬 바디백이 좀 걸리적거리긴 했지만, 그 안에는 내 소중한 물건들이 들어 있으니 버리고 갈래야 갈 수가 없었다.



입구에서 나를 반겨준 것은 흰색과 초속색 조합의 성 같이 생긴 건물이었다. 그 옆에도 빨간색, 파란색 등의 건물들이 마치 성벽처럼 계속해서 이어져 있어서 그곳 자체가 하나의 성처럼 보이는 면 또한 존재한다, 외관을 대강 훝어보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입구로 향했고, 처음으로 반겨준 것은 입구 양 쪽에 놓여 있는 제정 러시아 때에 쓰던 대포와, 그 시절 병사를 본딴 모형이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눈처럼 새하얗게 칠한 석재(벽돌일지도 모르겠다)건물 뿐만이 아니라, 목재 건물들도 종종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위에 십자가 같은 게 걸린 정교회 성당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마치 바벨탑처럼 하늘 끝을 찌를 기세를 가진 곳이었다.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는 좁은 통로를 지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무지붕으로 덮힌 통로가 나타났길래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있으라는 음식점은 없고 전혀 딴판인 곳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오른쪽으로 틀어서 길디긴 통로를 또 걷고 나와 보니, 어느새 다른 주차장으로 통하는 출구 앞에 와 있었다. 제기랄, 이거 완전히 허탕을 친 모양이다. 아코디언을 들고 있는 수염난 영감탱이 인형은 나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여 부숴버릴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얼마나 돈을 물어줘야 할지 상상이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렇게 다시 20분쯤을 추가로 더 헤맨 후에야 음식점이 모여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디 죽치고 앉아서 먹는 건 딱히 내가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다. 한 곳에 있기는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혼자서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당당하게 먹을 깡은 없다. 고로 구워놓고 파는 중인 돼지고기, 소고기 그리고 양고기를 쓰는 카프카즈식 꼬치구이 샤슬릭(Шашлы)을 2개 샀다. 양고기 중간중간에 끼인 피망과 버섯 또한 나름 별피였다. 1개당 1입씩 신속하게 처리해 버리고 나니 또 먹을 게 없어졌다. 그래서 '바레니에'를 사기로 결정했다. 러시아인들은 단것을 매우 좋아한다.


산 바레니에 2병은 바디백의 남은 공간에 쑤셔넣다시피 했다. 빵과 같이 먹을 때 발라먹을 작정이었다. 저 정도 양이라면 혼자 먹는다고 가정했을 때에는 못해도 2~3주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아직 이렇다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상, 구두쇠보다 더하게 돈을 아꺼야만 했다. 그런 류의 음식점 외에도 마트료시카, 자수를 넣은 양탄자나, 화려하게 장식한 그릇들, 심지어는 학용품도 있었다. 물론 그런 물건을 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당장 내가 먹고살 돈도 부족한 상황인데 그런 상대적으로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문화생활에 귀중한 재산을 소비할 여유 따위는 이미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뭔 이상한 물품을 판매하건 간에 나는 여유롭게 지나칠 깡이 있었지만, 한 점포에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트료시카는 마트료시카였지만, 소련의 역대 서기장 및 현 대통령, 그 외에도 각국의 지도자들을 그려놓은 마트료시카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본능적으로는 가자고 재촉하고 있었지만, 내 몸은 이미 그 마트료시카 중 하나에 손을 뻗고 있었다. 바로 안드로포프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그건 마성의 기운이라도 풍기고 있는 마냥 내가 30루블을 지불하고 그걸 사게 만들었다. 그런 유혹에 넘어간 나 자신을 농담삼아 자책하면서 시장을 나서려는데, 광장 쪽에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 곳을 향해 시선을 집중하면서 불안하다는 투로 하나같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시선은 나로부터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한 남자에게 집중되었다.



"오, 이거 가지고 다니는 물건을 보니 있는 집 딸이신가 본데? 그럼 얘기가 달라지지. 네년 애미애비한데 1만 루블만 내놓으라고 해. 아니면 네 목숨은 없다는 건 빼먹지 말고."



불길한 예상은 항상 들어맞는다고 했더니, 웬 인상 더러운 작자가 어떤 여자를 인질로 잡고 있었다. 요즘 인질범이 늘어났다고, 신문에서 흘러가듯이 본 기억이 이때 와서야 다시 떠올랐다. 그 인질범은 내가 그의 뒤쪽 근처에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로 날카로운 단도를 여자의 목에 들이대고 있었다. 거리는 대략 9미터 남짓, 눈치채기 전에 뛰고, 도약해서 제압하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이건 오히려 나에게 행운이었을지도 모르겠지. 난 거추장스러운 바디백을 내던짐과 동시에 안주머니에 있던 토카레프를 왼손에 쥐고, 오른속은 주먹을 꽉 쥐어 있는 힘을 다해서 그 놈의 왼쪽 머리를 강타했다. 그 자식은 단말마의 신음소리를 내더니 단도를 손에서 떨어뜨리고는 그대로 엎어져 버렸다. 아직 기절하지는 않았는지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나려고 하자 그대로 양 팔을 뒤로 꺾어버린 후 뒤통수에 토카레프를 들이대 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겁없이 협박을 행했을 그 멍청이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바닥에 쳐박혔다.



"전화기 가진 사람은 아무나 경찰 좀 불러주쇼!"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려대며 경찰이 그 인질범에게 수갑을 채워서 구속했다. 나는 그 직전에 녀석에게 한 마디 해주었다.



"이봐, 러시아에서 인질극을 벌이려면 최소한 총은 갖고 다녔어야지."



보아하니 상습범도 아니었고, 현상금을 받을 일은 없었다. 그래서 가던 길을 가려는데, 한 경찰이 나를 불러세웠다.



"뭡니까?"



"자네, 혹시 일자리가 궁한가?"



"그건 또 어떻게 아셨수?"



"요즘 그쪽같은 실업 군인이 한둘이어야지."



술집 주인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용건이 뭐지?



"거 용건이나 빨리 말하는 게 어떻겠슈?"



"마침 실업 군인 재사회화 정책도 시행되고 있고, 경찰특공대(SOBR)에 들어오는 건 어떤가?"



"월급은 얼마나 준답니까?"



"배는 안 곪겠지."



"좋수다."



그거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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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시한폭탄 19.02.11 139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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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SOBR 18.10.13 296 2 9쪽
» 변화 +1 18.10.06 312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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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상의 이면 18.09.05 610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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