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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군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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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聲炫
작품등록일 :
2018.09.0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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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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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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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태양을 보고 싶지 않나?

DUMMY

그는 횃불을 들어 안쪽을 밝히곤 갇힌 이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못 먹고 빛을 한동안 못 봐서 그런지, 몸이 삐쩍 마르고 얼굴들이 모두 창백했다. 그래도 상태는 양호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본 제라스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율리어스의 상징인 황금빛 머리카락, 사내들 중에는 그런 색을 지닌 자가 보이지 않았다.


“너희들의 대장은 어디에 있나?”

“누..누구...?!”


콰아앙-!

제라스는 감옥 문을 주저 없이 부숴버리고는 테일러를 앞에 세우며 말했다.


“치료해주러 왔다.”


하지만 시야가 돌아온 기사들에게 테일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목소리의 사내를 바라보며 두 눈을 부릅떴다.

횃불에 일렁이는 흑발(黑髮)에 흑안(黑眼).

등 뒤에 보이는 커다란 대검.

카렌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사내.


“지..지옥 사신!”


그들은 한눈에 제라스를 알아봤다.


**


“잠시 상태를 살펴야겠네.”

“부탁드립니다.”

“자네가 부탁을 다 하다니, 이거 긴장되는데?”


테일러는 짓궂게 농을 던진 후 눈앞의 사내를 살피기 시작했다.

홀로 독방에 갇혀 있던 사내는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상태가 무척 심각했다. 핏자국으로 번진 겉옷은 넝마처럼 찢겼고, 황금빛 머리카락은 흘린 피로 물들어 갈색으로 보였다.

제라스는 자신의 신발 바닥에 묻은 핏자국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바닥에 토혈한 흔적이 아직 굳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최근까지 피를 토한 것이 분명했다.


‘프레도를 너무 믿었나?’


이리 생각 없이 손을 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루라도 치료가 늦었다면 죽을 수도 있었을 상처의 흔적들.

아마 홧김에 선을 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고통을 준다고 프레도가 원하는 반응을 보일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희생양으로 살려둬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위험합니까?”

“평범한 치료사가 왔더라면 위험했겠지. 이놈 치료하려면 출혈이 상당하겠는데..”


테일러는 짧게 혀를 차고는 품에서 커다란 천을 꺼냈다. 돌돌 말린 천이었는데, 바닥에 쭉 펴자, 그 사이로 각양각색의 약병이 진열되듯 모습을 드러냈다.

약병을 고르는 테일러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 진지했다.


“회복 기간은 얼마로 잡아야 하나?”

“최대한 빨랐으면 좋겠습니다.”

“제법 돈이 깨질 거야.”

“다니엘이 줄 겁니다.”

“에잉-! 그놈 우는 소리를 또 들어야 한다니.”


요즘 울보 보급관으로 통하는 다니엘이었다.

테일러는 약물치료 전에 응급치료부터 했다. 눈에 보이는 외상은 일반 포션으로 빠르게 치료하고, 뼈가 부러진 곳은 약초를 덧댄 후 단단히 고정시켰다.

가장 중요한 내상 치료.

그는 여러 종류의 약병을 섞어가며, 빈 병에 제조된 약물을 담았다. 제조는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확실히 평범한 치료사는 아니야.’


제라스는 테일러의 능숙한 제조 모습을 지켜보며 확신했다.

과거에는 지식이 없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테일러의 치료제 제작 과정은 마법적 지식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근데 마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지.’


마법을 익힌 것 같지는 않았다.

최후의 전투, 카렌시아 산맥에서 용군주에게 심장이 부서지는 그 날까지, 테일러가 마법을 썼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까.

무슨 이유인지, 그는 카렌시아 산맥에 강한 집착을 보였고, 산맥에 평생 머무르며 치료제 연구에 평생을 쏟아부었다.

그는 대체 어떤 치료제를 찾기 위해 자신의 삶을 카렌시아에 바친 것일까.

무척 궁금했다.


꼬르르륵-


상념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기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배에서 소리를 낸 기사를 노려보더니, 자신들의 배를 쓰다듬었다.

며칠을 굶었으니, 배가 고픈 게 당연했다.


“먹어라.”


제라스는 빵 주머니를 꺼내,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던졌다. 율리어스를 위해 가져온 음식이었지만, 상태를 보아하니,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괘..괜찮습니다.”


기사들은 땅에 떨어진 주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절대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그들은 문을 사이에 두고 그 안으로 절대 들어오지 않았다.

대장을 치료한다고 했다.

방해할 수 없었다.


꿀꺽-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기사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빵 주머니로 향했다. 열댓 명의 사내가 고개만 빼꼼 내민 채 주머니만 바라보는 모습.

그 모습에 제라스는 나직이 웃음을 터트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또 한 번 꼬르륵 소리가 들려오자,


“이 굶주린 오크새끼들아! 빵 가지고 싹다 꺼져! 치료에 방해된단 말이다!”

“네..넷!”

“부스러기도 남기지 말고 다 처먹고 와. 알았어!?”

“아..알겠습니다!”


율리어스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테일러가 신경질적으로 외치자, 기사들은 황급히 빵 주머니를 낚아채고는 후다닥 문에서 사라졌다.

양은 저들 것까지 생각해서 다니엘이 챙겼을 테니, 충분할 것이다.


“휴.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제조를 끝낸 테일러는 길게 숨을 내쉬더니, 율리어스의 입에 치료제를 천천히 흘려보냈다. 얼굴 위로 불그스름한 홍조가 올라오자, 테일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 의식을 회복할 거야.”

“벌써 말입니까?”

“자연치유력을 극대화했거든. 몸이 반응하면서 자연스레 의식을 되찾겠지.”


상당한 신경을 썼던 것인지, 테일러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는 약병이 든 천을 꽁꽁 싸맸다.

천천히 자리는 털고 일어난 그가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더는 손댈 것이 없으니, 난 저 바보들이나 치료하러 가겠어.”

“수고하셨습니다.”

“다니엘에게 단단히 일러둬! 이건 공짜 술로 땡 치기 힘들어.”

“술도 원한 만큼 드리라고 하겠습니다.”

“..큼! 그럼 고맙고. 가네.”


제라스와 율리어스 두 사람만 남겨진 자리.


“...”


제라스는 우두커니 서서 율리어스를 유심히 내려다 봤다.

부드러운 눈매와 달리, 전체적인 인상은 무척 날카로웠다. 눈동자도 머리카락 색과 같은 황금빛으로 알고 있다.

한때 그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다.

그 황금빛 눈동자에 어떤 신념을 담아 세상을 바라봤는지, 대륙을 질타했는지 말이다.


‘오랜만에 만남인가?’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노예로 팔려가 헤어진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와 대화를 나눠본 기억은 거의 없었다.

과거에도 십여 년이 지난 후 단 한 번 본 것이 전부였다.

태양의 기사란 위명으로,

팔다리가 잘린 처참한 몰골로, 수십만 군중의 눈앞에서 공개적 처형을 당했던 그때 말이다.


‘대륙의 패자(霸者)들은 물론, 모든 군주의 주적.’


귀족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이자, 혼란의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낮은 자들의 희망으로 불린 사람.


“태양의 기사, 아니.. 군주라고 불러야 하나?”


군주들은 율리어스를 군주로 인정하지 않고, 기사로 낮잡아 불렀다.

제국 복원을 꿈꾸며, 황제를 옹립했던 자신과 전혀 다른 길을 걸었기에, 태양의 기사 토벌전에 자신도 황제의 이름으로 토벌대를 보냈었다.

자신은 위를 모시는 선택에 인생을 걸었고,

그는 밑을 돌보는 선택에 인생을 걸었다.

그래서 그를 제라스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쉽지 않은 길을 걸었던 영웅이었으니까.


‘태양의 군주.’


그가 민초에게 태양의 군주라 불린 데에는 목을 벤 패자(霸者)의 머리를 움켜쥐며 그가 한 선언 때문이다.


[태양은 공평하게 빛을 나눠줍니다.]


그는 권력자들이 어떻게든 잡아 죽이려고 했던 반역의 영웅이었다. 그래서 그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그를 품에 안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담을 수 있는 그릇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으.”


짧은 신음과 함께 율리어스의 두 눈썹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의식이 서서히 돌아오는 모양.


“..이것이 운명이라면.”


제라스는 이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연의 실타래는 처음엔 미약한 한 가닥의 실과 같지만, 나중에는 무엇으로도 벨 수 없는 바다와 같다.

정신을 차린 율리어스가 머리를 짧게 흔들자, 머리칼 사이로 흐릿한 금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율리어스는 제라스를 천천히 올려다 봤다.


“2기사단장 율리어스.”


제라스는 그를 내려다보며 흐릿하게 웃었다.

지금의 그는 태양의 군주가 아니다. 한 자작가의 기사단장일 뿐이었다.

제라스는 율리어스의 눈앞으로 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태양을 보고 싶지 않나?”


고독하고 음습했던 감옥 안에서 둘은 그렇게 해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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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결착. +15 18.10.03 21,145 604 12쪽
25 목을 베러 왔다(2) +16 18.10.02 21,034 616 12쪽
24 목을 베러 왔다. +13 18.10.01 21,572 58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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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미끼(3) +12 18.09.29 22,295 58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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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미끼. +13 18.09.27 23,769 644 11쪽
19 가지치기. +10 18.09.26 24,077 661 15쪽
18 재미있는 선물이라 전해라(2) +17 18.09.25 24,550 636 9쪽
17 재미있는 선물이라 전해라. +12 18.09.24 24,523 647 9쪽
16 우린 머리만 친다. +19 18.09.23 24,885 661 10쪽
15 때가 왔다. +12 18.09.22 24,663 638 9쪽
14 스스로 한계를 결정짓지 마라(2) +21 18.09.21 24,734 686 12쪽
13 스스로 한계를 결정짓지 마라. +12 18.09.20 25,037 654 11쪽
12 많이 먹어라. +13 18.09.19 25,405 7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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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암상인 베릭(2) +9 18.09.17 25,628 703 10쪽
9 암상인 베릭. +20 18.09.16 26,302 712 15쪽
8 전투를 하려면 배불리 먹어야 하는 법이지(2) +13 18.09.15 27,042 679 12쪽
7 전투를 하려면 배불리 먹어야 하는 법이지. +13 18.09.14 27,683 700 12쪽
6 나를 믿을 수 있나?(4) +16 18.09.13 27,489 695 12쪽
5 나를 믿을 수 있나?(3) +18 18.09.12 27,542 661 15쪽
4 나를 믿을 수 있나?(2) +7 18.09.11 28,479 636 10쪽
3 나를 믿을 수 있나? +12 18.09.10 30,811 669 9쪽
2 바람이 분다. +14 18.09.09 35,125 71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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