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아저씨!”
도공의 아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장 포수의 품에 안기며 반색을 하였다. 그런 아이를 번쩍 들어올리며 장 포수도 반갑게 말하는 것이었다.
“잘 있었고? 어디 보자, 얼마나 컸나?”
“한 뼘도 더 컸어요!”
“아이구, 장하네!”
“헤헷.”
깊은 산 속에 홀로 자리잡은 도공의 집이 오래간만에 시끌벅적하였다. 소리를 듣고 작업장에서 나온 도공이 반갑게 장 포수를 맞았다.
“형님 오셨소?”
장 포수가 도공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으며 아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지고 온 자루에서 종이에 싼 것을 꺼내 건네었다.
“옛다, 호박엿이다. 강정도 들었고, 약밥도 있고.”
“우와!”
환호성과 함께 종이를 푸는 아이의 눈이 반짝거렸다. 제일 먼저 큼지막한 대추와 밤이 박혀있는 약밥을 들어 크게 한입 베어 무는 아이를 보며 장 포수가 물었다.
“맛있냐?”
입에 든 것이 한가득이라 대답 대신 연거푸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사랑스레 쳐다보며 장 포수가 다시 말했다.
“한꺼번에 다 먹지 말고 뒀다가도 먹고. 아부지 드세요, 해야지. 너 혼자 먹냐? 욕심장이 돼지도 아니고.”
어린 마음에도 겸연쩍다 싶은지 아이가 배시시 웃으며, 약밥 한 조각을 들어 제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너 먹어. 아부진 됐어.”
“맛은 봐. 애들은 그렇게 가르치는 거 아니야. 부모들은 평생 맛난 거는 안 먹는 사람으로 안다니까.”
도공이 그 말에 약밥 한귀퉁이를 조금 떼어 입에 넣는 한편, 다시 크게 한조각 떼어 건네며 말을 했다.
“형님도 좀 들어요.”
장 포수가 자루 속에서 둘둘 짚으로 싼 고기와 술 주머니를 꺼내 놓으며 답했다.
“나는 이거면 되고.”
“왠걸 올 때마다... 빈 손으로 오면 누가 뭐래요?”
“누가 뭐래서가 아니라 내가 다 꿍꿍이가 있어 이런다. 살살 꼬셔서 우리 집 데려가 내 아들로 키워보려고···. 어떠냐? 아저씨 따라갈래? 아저씨 집에 가면 맨날 맨날 이런 거 사줄 건데?”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닌 탓에 아이가 씩 웃어 보이며 다른 말을 했다.
“누난 안 와요?”
“누나? 연이 누나 보고 싶냐?”
아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그럼. 아저씨 따라가면 누나도 맨날 맨날 볼 수 있지. 가자.”
장 포수가 손을 잡고는 끌고 가려는 시늉을 하자, 아이가 냅다 손을 뿌리치고는 뛰어 도망을 갔다.
“싫은데. 난 우리 아부지 아들할 건데! 히히.”
저만치 가서는 돌아보며 아이가 말하고는 다시 뛰어가니, 멍멍 강아지가 짖으며 그 뒤를 따라갔다.
웃으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장 포수의 눈에 마당 구석진 곳에 놓여있는 쌀가마니가 들어왔다. 장 포수의 눈이 자연 휘둥그래졌다.
“뭐야? 저거 쌀가마니 아니야? 아니, 자네 언제부터 쌀을 가마니째 두고 먹었어? 뭐 제비 다리라도 고쳐 준거야? 아님 산신령님 은혜라도 받았나?”
순간 도공의 얼굴과 말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릇 값이래요···.”
“뭔 그릇인데 쌀을 한가마니나 받아? 재주 좋은 줄은 알았지만. 어이구야, 대단하네, 대단해! 근데 표정은 어찌 그래? 좋아 춤을 춰도 모자를 판에 뭐 씹은 얼굴이 뭐야?”
“이사를 하래요.”
“이사?”
“예···. 집도 주고, 가마도 지어주고 할 테니 옮기라고.”
“어디로?”
“그건 모르겠고. 싫다 했더니 다시 온다고 하고 가면서 기어코 저걸 두고 갔네요···.”
“가. 뭐가 문제야? 가겠다고 하면 되지.”
“······”
“자네가 사람 싫어하는 건 알지만 언제까지 이 산속에서 살 순 없잖아. 아들 생각도 해야지. 제 또래 하나 없이 산 속에서 종일 강아지하고나 놀고. 말 상대라고는 제 아버지밖에 없으니 오죽 답답할까···. 안 그래?”
“형님하고 연이도 그렇게 살잖아요.”
“나하고 같아? 나야 여기가 고향이고, 여기가 일터인 사람인데 어찌 비교를 해? 그리고 자네도 알다시피 연이 그것이 어디 사람들 북적북적한 데서 조용히 살 애인가? 천둥벌거숭이마냥 이 넓은 지리산 산자락을 지 앞마당인양 쏘다니는 얜데.
그러다 보니 사람 무서운 줄을 알기를 하나, 세상 무서운 줄을 알기를 하나? 언제 한번은 그러다 크게 경을 치겠다 싶어, 내가 심장이 벌렁벌렁 하는 사람이야.
경험자로서 하는 말인데 자네는 나 같은 실수 하지 마. 사람은 사람들하고 어울려 살아야 진짜 사람이 되는 법이란 말이지.”
“······”
“아무 소리 말고 가. 자네 실력 알아봐주는 사람 만난 걸 하늘의 계시로 알고 이 참에 산 내려가라고. 사람들 속에서 살다가 정 못 견디겠으면 그 때 다시 올라오면 되는 것이고. 아, 뭐가 그렇게 어렵고 복잡해?”
유일하게 속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인 장 포수의 설득에도 도공은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장 포수의 마음이 짠하였다.
사정을 전부 아는 것은 아니었으나 도공은 전에는 대궐에서 쓰는 그릇들을 만드는 곳에 있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인데, 아마도 아이 엄마가 바람이 나 도망을 친 것이 아닐까 짐작하는 장 포수였다.
바람 상대가 도공과는 꽤나 가까운 사이였던 모양이어서 도공의 충격은 더욱 컸고, 결국 그 상처로 인해 이 지리산 깊은 산골짜기까지 들어온 것이라고 또한 미루어 짐작하는 장 포수였다.
**
아비로부터 도공의 아들이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던 이야기를 전해들은 연이는 바로 다음날로 도공의 집을 찾았다.
“복성아, 누나 왔다!”
여느 때 같으면 인기척을 느낀 강아지가 먼저 짖고, 그러면 아이가 구르듯 뛰어와 냅다 안겼을 터였다. 그런데 내내 조용하기만 한 것이 이상타 생각하며 사립문을 들어서던 연이는 놀라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집 안이 엉망이었다. 방문이 모두 열려 있고, 마당엔 항아리며 평상이 깨지고 뒤집혀져 있었다.
“복성아! 아저씨!”
놀란 정신을 수습한 연이가 방과 부엌, 작업장까지 모두 찾아보았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복성아!”
연거푸 불러대고 있자니 어디선가 작게 낑낑대는 강아지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집 뒤쪽으로 간 연이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울타리 너머 긴 풀숲 사이로 쓰러져 있는 복성이와 그 옆에서 울고 있는 강아지를 찾아냈다.
얼른 다가가 복성이를 안는 연이였다.
“복성아! 복성아, 정신 차려!”
“··· 누나·····”
겨우 눈을 뜬 복성이가 그 한마디를 하고는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필시 산도적놈들의 짓이겠지.”
“예, 아마도···. 허니 속히 사람들을 풀어 찾아주십시오.”
장 포수의 말에 이방이 떨떠름하게 말하였다.
“우리 관아에서 말인가?”
“예.”
“만수골 계곡이라면 우리가 아니라 육이촌 관아의 관할일세. 그곳에 가 고변을 해야지.”
“갔었습니다. 헌데··· 산은 넓고 산도적들의 무리가 한둘이 아닌데 어찌 찾겠느냐며 불가하다 하셨습니다.”
“으음···. 틀린 말은 아니지. 그 넓은 산 속에서 사람 하나를 어찌 찾는다는 말인가? 또한 자네도 알겠지만 지리산은 산세가 워낙 험하고 깊지 않은가? 거기에 더해 전라, 충청, 경상까지 삼도에 걸쳐 있다 보니 관할의 문제도 복잡하기 짝이 없어.
그래서 그런지 그곳엔 도적떼들이 판을 치지. 내가 알고 있기에만 큰 도적 무리가 셋이야. 거기에 작은 무리까지 더하면 그 수가 수십이 될지 수백이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 중 어느 무리가 데려갔는지 알고 포졸들을 풀겠는가?
관직에 몸담은 자로서 이런 얘기 뭣하네만 지리산 도적떼의 소행을 막기엔 지방 관아의 힘만으론 역부족인 상황일세. 그렇다고 도공 하나 사라진 것을 이유로 조정에 관군을 파견해달라 청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허면 어찌합니까? 사람이 없어졌는데 그래도 관아에서 나서 찾아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흠. 그것이 말이야. 장사치에겐 상도라는 게 있듯이, 우리 관료들에게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거든. 남의 관할 일에 나섰다간 당장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 건 물론이요, 소문이 나 관직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기 십상이라.
육이촌 관아에서 자기들은 못하겠다 말을 했다지만, 막상 우리가 나서보라지? 당장 이게 무슨 경우냐며 사시미 눈을 하고 따지고 들 걸?”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이방의 모습에 장 포수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나 차마 내색은 하지 못하고 다시 허리를 조아리며 간청하는 장 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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