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욕심 사이
“어서 오세요, 사돈.”
가슴 벅찬 얼굴로 사돈인 장 포수에게서 새신랑이 된 아들에게로 시선을 옮기는 천동의 모친이었다. 모친의 시선을 받은 천동이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 뒤에선 새색시가 탄 가마가 땅에 내려지고 있는데 일에 서툰 가마꾼 한명이 쿵하는 제법 거친 소리를 내며 가마를 내리는 것이었다. 그걸 본 천동 모친이 놀라 한걸음에 달려가며 말을 했다.
“아이구, 살살, 살살 들 내려놔요. 우리 며늘아기 다치지 않게.”
그 모습에 장 포수도 천동도 다함께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가마 문이 열리니 아이들과 아낙들이 새색시를 보기 위해 다투어 몰려 들어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꽃처럼 어여쁜 며늘아기의 모습을 본 천동의 모친은 그 동안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며 감정이 복받치는 것이었다. 가마에서 내릴 수 있게 손을 내밀며 천동의 모친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어서 오니라···. 아가!”
**
해가 뉘엿뉘엿 지었으나 새 신랑, 새 신부를 맞은 천동의 집은 여전히 잔치 중이었다.
하나뿐인 아들 장가 보낸다고 돈까지 빌려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한 천동의 모친이었다. 거기에 더해 진성관에서 음식을 보내오고, 신부의 집에서 가져온 이바지 음식까지 얹어지니 동네 사람들이 모두 먹고 마시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하 호호. 웃음 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장 포수는 새신랑의 발바닥을 때리려는 젊은 것들을 거의 우격다짐 식으로 떼어냈다. 그리고는 꾹꾹 힘으로 어깨죽지를 눌러 반강제적으로 자리에 앉힘으로써 사위의 발바닥을 지켜냈다.
당연지사 젊은 것들 사이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들을 달래기 위해 천동의 모친은 땀깨나 흘려야 했지만 즐거운 고생이라 힘든줄을 몰랐다.
하하 호호. 거푸 술잔을 비우며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보는 사람마다에게 연신 술을 권하며 흥에 겨운 장 포수였다.
마신 술이 족히 몇동이가 되니 소피를 봐야해 자리에서 일어서며 끄윽, 시원하게 트림을 한 것이 또한 기분이 좋아 하하하하, 한바탕 걸죽한 웃음을 터뜨리는 장 포수였다.
그러나 그 기분은 이어지지 못했다. 마당으로 나오던 정 포수가 돌연 뭐 씹은 얼굴이 되어 우뚝 자리에 멈춰선 것이다.
“뭐하냐, 너?”
“응? 나?”
동네 여자들과 모여 먹고 떠들며 웃던 딸 연이가 돌아보며 해맑게 물었다. 그새 제법 자란 머리카락은 꽁지머리일망정 뒤로 가지런히 묶어 더는 흉하지 않았다.
“안 가냐?”
“어딜?”
천진무구하게 묻는 딸아이의 모습에 장 포수는 기가 막히는 한편, 복장이 터져 바드득 이를 갈며 말하는 것이었다.
“나와!”
“어딜?”
장 포수가 도끼눈을 하고 쳐다보자 그제서야 연이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었다.
아비가 대문으로 향하는 걸 곁눈으로 확인한 연이는 와중에도 재빨리 술잔 한잔을 깨끗이 비웠다. 헤헤, 몰래 먹는 술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로 맛난 맛인 것이다.
한편 남들의 눈을 피해 사돈 집 대문 밖으로 나가 딸아이를 기다리고 선 장 포수는 부아가 나 씨근대고 있었다.
한발 뒤쳐져 졸레 졸레 아비의 뒤를 따라 나온 연이는 여전히 해맑은 얼굴로 우적우적 손에 든 전을 안주로 씹어먹으며 물었다.
“왜, 어딜 가는데?”
“왜? 그걸 말이라고 해?”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딸아이를 향해 장 포수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동생은 시집을 가서 머리를 올렸구만! 어디서 남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시집도 못간 언니가 사돈네 집에서 희희덕 거려, 희희덕 거리길?
“나보고 오랬어, 천동이 엄마가! 아니, 사돈 어른이 나 보고 와서 먹고 놀다 가랬다니까. 진짜야, 물어 봐.”
“그걸 말이라고? 사돈이 그런다고 진짜로 와? 그리고 너 술도 마셨지? 이게 진짜 제 정신이야?
사돈댁 어려운 줄 모르고 어디서? 네 동생 얼굴에 똥칠하려고 작정을 했냐, 응? 이 애비 손에 경을 쳐봐야 네가 정신을 차리지?”
움찔한 것도 잠시 입을 삐죽거리며 뭐라뭐라 혼자 쫑알대고 있는 딸아이를 보며 장 포수가 으르렁댔다.
“고 입 못 다무냐? 확-!”
합죽이가 되어 눈만 뒤룩거리고 섰는 딸아이를 향해 장 포수가 다시 말하였다.
“얼른 가라. 동네 창피해서 원. 안 가!”
히잉. 새삼 풀 죽은 모습으로 몸을 돌려 가는 딸아이를 향해 장 포수가 물었다.
“어딜 가?”
“가라며?”
“왜 그쪽으로 가냐구? 이 오밤중에 다 큰 기집애가 산길을 가겠다는 거야, 뭐야? 달래한테 가 자, 오늘밤엔. 알았어?”
“······”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 얼른 가라니까!”
“걸음마 떼고부터 다닌 산길 밤길을 새삼···? 왜 그러는데?”
“그게 바로 망조였다고! 기집애 간뎅일 그리 키워놨으니 시집 갈 생각을 안 하고 요모양 요꼴인 거지. 동생은 시집 가 어엿한 어른이 되었고만.
아이구, 내 시커맣게 탄 속을 누가 알아?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르지. 자고로 옛말에 기집을 밖으로 내돌···”
“알았어, 가! 가면 될 거 아니야?”
끝도 없이 이어질 게 분명한 아비의 잔소리를 싹둑 반토막으로 자르며 진성관 쪽으로 방향을 돌려 걷는 연이였다.
털털털털. 조신한 구석이라곤 없이 선머슴마냥 걷던 딸아이가 누가 못돼 먹은 성질머리 아니랄까 봐, 발끝에 채이는 돌이라도 걷어찬 모양이었다. 뭘 어떻게 잘못 찼는지 아프다며 소리를 지르고 깨금발을 뛰며 한바탕 난리를 쳐대는게 아닌가.
그런 딸아이의 조신치 못한 모습을 행여 누가 보았을까 우세스러워 우선 홰홰 고개부터 돌려 사방을 살피는 장 포수였다.
그러다 내가 이게 무슨 짓인가 싶고, 머리 뒤꼭지로는 열불이 치솟아 돌아버릴 장 포수였다. 사돈댁 앞이니 차마 큰 소리는 치지 못하고 한탄하듯 중얼거리는 장 포수였다.
“사람의 종자가... 아이구, 내 신세야!”
**
늦은 밤, 인기척도 없이 벌컥 문이 열리니 바느질을 하고 앉아있던 달래가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그에 아랑곳없이 씩씩대며 들어와 방 한가운데로 대자로 눕는 연이를 보며 달래가 한소리 했다.
“깜짝이야! 인기척 좀 내고 다녀!”
“······”
“왜? 또 아부지한테 혼났냐?”
아부지 소리에 부루퉁한 얼굴로 뭐라뭐라 한껏 궁시렁 대는 연이였다. 그 모습을 본 달래가 싱긋 웃었다. 베개를 내려 연이의 머리에 대주며 달래가 말했다.
“천동이네서 잔치 음식 가져왔던데 먹을래? 갖다 줄까?”
“안 먹어! 더럽고 치사해!”
“하하하. 그러게 시집을 가지, 왜 안 가고 허구한 날 혼이 나냐, 나길?”
가자미 눈이 되어 연이가 노려보지만 달래는 모르는 척, 하던 바느질거리를 도로 잡으며 말을 이었다.
“동생은 시집을 가는데 언니가 안 가고 있으니 너의 아부지도 속이 상하신 거지.”
“동생? 딱 열하루 차이 나는데 그게 뭔 동생이냐? 동갑내기 친구지!”
“오뉴월 한볕 차이도 차이라는데 열하루씩이나 차이 나면 엄청난 거 아닌가?”
“지금 시비 거는 거냐? 한판 뜰래?”
“싫다. 힘이나 말발로나 질 게 뻔한데 뭐하러? 나 그렇게 머리 나쁘지 않거든?”
실실 웃으며 남의 속을 긁어대는 달래를 향해 연이가 대들보가 들썩이도록 크게 콧방귀를 뀌었다.
"흥!"
“그나저나 너의 아부지 정말 대단하시다. 죽은 친구 아들 장사 밑천 대줘, 이제는 딸까지 시집 보내주고. 그러기 쉽지 않은데···. 복 받으실 거야.”
“아이구! 친딸한테나 제발 좀 잘하라고 하셔! 친딸이 가죽 하나 팔아먹은 건 벌써 몇달째 구박에 입이 닿도록 쪼아대면서, 남의 집 자식들한테는 그 가죽 벌써 몇장째 팔아 뒤 봐준 줄 아냐?
세상에서 제일로 서러운 게 사람 차별인 법이야! 그것도 부모한테 받은 차별은 뼈에 새겨지는 법이라고!”
“아부지 몰래 훔쳐 팔았는데, 그럼 안 혼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저게! 너 우리 아부지한테 뭐 받아먹었냐?"
"말이 그렇다는 얘기야···. 아무튼 천동이 어머니도 이번에 큰 짐 내려놓으셨겠네. 며느리 봤으니 이제 손주 하나만 보면 여한이 없으실 거 아니야?”
연이가 다시한번 콧방귀를 뀌어댔다.
“흥! 그래서 내가 시집을 안 가는 거라고. 알지도 못하면서.”
“뭐래? 말도 안되는 억지 소린 아무튼.... 하하하.”
달래가 비웃음을 날리자 연이가 당장 반박을 해댔다.
“억지 소리 아니거든? 어른들 얘기는 다 똑같아. 다 똑같이 앞뒤가 안맞고,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고.
자식들한테 어른들 맨 하는 얘기가 뭐야? 시집 장가 가기 전엔 제발 혼례만 치뤄다오, 그럼 내 소원이 없을 거다.
그래놓곤 막상 혼례 치르고 나면 어서 손자 하나만 안겨 다오, 그러면 내 진짜 원이 없겠다 또 그러고.
그래서 그 소원 들어주고 나면 이번엔 또 그럴 걸? 식구도 늘었는데 집은 한 채 마련해야 하지 않겠니? 그래서 죽을똥 살똥 피똥까지 싸가며 돈 모아 집 마련하고 나면 그걸로 끝날까?
절대, 절대 아니지! 보나마나 또 다른 소원 들이밀며 이게 어미 아비 진짜 마지막 소원이다 그러겠지.
결국 한도 끝도 없는 거야. 인간이란 결코 만족을 모르는 족속들이거든!”
”하하하. 그래서 어차피 만족은 불가능하니 아예 시작도 안 하겠다?”
“그렇지! 기대치만 잔뜩 높여놓았다 실망 시키느니 아예 아무런 기대조차 품지 못하게 하는 거야. 그게 결과적으로 보면 더 큰 효도라고 생각해, 난.”
어이없어 코웃음을 치며 달래가 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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