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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빈둥거리다
작품등록일 :
2018.09.10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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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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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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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천하제일 격구꾼

DUMMY

“하하하. 역시 전하시옵니다. 전하 앞에선 감히 숨길 수가 없으니···. 하하하하.”


영문을 모르는 세자가 의혹을 품은 눈으로 옛 스승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기에 한편으로는 초조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뒷배는 아니옵니다. 그럴 주제가 돼야지 말입니다. 다만 그들을 이끄는 자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어, 절제사의 추천서를 받아다 주었을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안다?”


“예, 전하.”


“군에 속한 자들이라면 의당 속한 부대에서 추천서를 받을 수 있었을 터인데, 사사로이 추천서를 얻었다면 군에 속한 자들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옵니다, 저하.”


해괴한 말이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니? 지금 말장난을 하자는 것인가? 전하의 앞에서?


세자가 발끈해 호통을 치려는데, 인조의 새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하하하. 노망이 났어. 천하의 최찬형이 정신줄을 놓아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군.

그래, 그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자들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이냐?”


“그것이··· 그들 나름 생각이 있기에 복면을 쓴 것 아니겠습니까? 헌데 제 3자인 제가 함부로 발설해도 좋은 것인지 자신이 안 섭니다. 허니 요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하여 임금인 내 질문에도 답하지 않겠다?”


인조의 한쪽 눈썹이 날카로운 선을 그리며 위로 치켜 떠졌다. 그걸 빤히 보면서도 여전히 태평한 목소리로 답을 하는 최찬형이었다.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전하시온데 당연 하문하신 것에 답을 해야지요. 다만···”


“다만?”


자존감이 낮은 인조는 반대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땅히 신하로서 해야 하는 정책 제시조차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기 일수였다.


그런 부왕의 성정을 아는 까닭에 세자는 초조와 불안으로 몸을 떠는데, 그런 세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작 장본인인 최찬형은 허연 수염을 느긋히 쓰다듬었다.


“허면 이리하면 어떻는지요? 그 자를 직접 이리 불러 얼굴을 드러내라 전하께서 명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허면 그 자가 판단을 내리겠지요. 복면을 벗든가, 아니면 어명을 어겨 목숨 줄을 내놓든가 말입니다.”


“아니 될 말! 복면을 한 자를 대전에 들여놓겠다니 지금 제 정신입니까?”


세자에 이어 상선 역시 반대 의견을 내었다.


“세자 저하의 말씀이 옳으십니다. 어찌 이리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시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 자의 정체를 안다 하셨으니 누군지 이름을 말씀하시면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게 그렇지가 않네. 자네야 아래쪽이 부실한 사람이라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겠으나, 사내 대장부란 한번 발설치 않겠다 약조한 이상 어길 수 없는 법이란 말이지.

아니 그렇습니까, 전하?”


대답 대신 인조는 입술만을 움직여 조소하는데, 상선은 완연한 불쾌감을 얼굴에 드러내며 말을 받는 것이었다.


“그 자가 지금 장군의 말을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합니다. 나는 너의 이름을 발설하는 대신 너를 사지로 내몰았다, 그리 말하시겠습니까?”


“하하, 상선, 자네 화났는가? 발끈하는 것이 단단히 뿔이 난 모양일세, 그려? 미안하이. 자네를 놀리려 한 것은 아니나··· 아니지. 자네가 부실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것이 내 탓이 아니거늘 어찌 내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야? 쯧쯧.

내가 풍을 앓아 외모는 비록 이 모양이 되었으나 소싯적에는 내가···”


끝도 없이 이어질 것같은 허튼 소리에 버럭 호통을 쳐 막는 세자였다.


“도대체 지금 무얼 하시는 겁니까? 여기가 저잣거리 주막집이라도 된 양 처신하지 마세요.

그 자들이 누구냐 전하께서 하문하셨으니 그에 대한 답을 하시면 족한 것입니다!”


“됐다. 그 자를 불러라. 보고 싶어 졌느니.”


인조의 명에 세자와 상선이 낯빛이 함께 흐려졌다. 이 사태를 미리 예견하고, 또한 바라마지 않았던 최찬형만이 홀로 빙긋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왕의 침전 방문이 열렸다. 검은 옷과 복면을 쓴 박희열이 막 들어오려는데.


“멈춰라!”


박희열은 세자의 명에 침전 문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저 자의 복면을 벗겨라.”


내관이 다가가 벗기려 하자 박희열이 손을 들어 제지하였다. 두 눈을 제외하고는 얼굴과 머리 모두를 가렸던 복면을 그리고 벗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박희열이 침전 밖에서 엎드리니 인조가 드물게 반색하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게 누구냐? 네가 살아 있었더냐?”


“오래간만에 문안 올리옵니다. 그간 강령하셨습니까, 전하?”


“그래, 그래. 죽었다는 얘기를 내 들었는데?”


“죽을 뻔 하였지요. 청국 놈의 칼을 맞고 쓰러진 후 운신을 못해 근 일년간을 자리보전을 하였었습니다. 어찌 어찌 자리를 털고는 일어났으나 통 기운을 쓰지 못해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에 좌절 하기를 또 3,4년···.

사람 목숨이 어찌나 질긴지 결국 이렇게 돌아다니게는 되었으나 반송장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전하.”


“웬 엄살이냐? 죽지 못해 산다는 자가 격구를 해? 머리 허연 중늙은이가 펄펄 날고 있다며?”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 소싯적에 비하면 지금은 겨우 흉내만 내는 수준이라 전하께 보여 드리기는 참으로 송구할 지경입니다.”


엎드려 있는 박희열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세자였다. 그런 세자를 향해 인조가 말하였다.


“너는 처음 보겠구나?”


“예.”


“한때 조선 제일 격구꾼이라 불렸던 자다. 내 젊은 시절, 이 자의 격구 솜씨에 반해 아니간 곳이 없었으니 덕분에 네 할머니께 혼이 나기도 여러 차례였었다.”


마치 제 자랑을 하는 듯 신명 난 어조였다. 그 모습을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던 최찬형이 입을 떼어 말하였다.


“송구하오나 전하, 틀리셨습니다. 조선 제일 격구꾼이 아니라 천하 제일의 격구꾼이라 불렸었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그렇지. 천하 제일의 격구꾼···. 격구꾼의 제 1 자질이 무엇인지 아느냐?”


근자에 들어, 아니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듯한 부왕의 막힌 데 없이 활달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놀라는 한편 기쁜 마음이 든 세자는 얼른 공손히 답을 하였다.


“말을 다루는 기술이 아닐른지요? 하여 기병들로 하여금 훈련의 일환으로 격구를 권장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바로 그것이다. 말을 다루는 데에 저 자를 따를 자가 없다. 타지 못하는 말이 없고, 길들이지 못하는 말이 없느니라. 말과 함께 태어나고 죽는다는 몽골놈들도 인정한 실력이니 어련하겠느냐? 하하하하.”


청량하기까지 한 부왕의 웃음소리가 몹시 생경한 만큼, 그것을 가져다준 박희열에 대한 호기심이 더한층 높아져 쳐다보게 되는 세자였다.


”헌데 어찌해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는가?”


세자가 물으니 박희열이 답하였다.


“일종의 위장막이옵니다.”


“위장막?”


“그렇습니다, 저하. 저와 함께 뛰는 자들 중엔 저와 같은 중늙은이들이 다수 차지하고 있사옵니다.

반백의 늙은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상대편 젊은이들에게는 껄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한편으론 저희들을 얕잡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보는 관중들에게도 해당되는 일일 테고 말입니다.

격구가 무예 단련의 한 방편이기는 하나 엄연히 승부를 가르는 시합, 저희는 오직 실력만으로 저들을 상대하고 싶기에 얼굴을 가리게 된 것입니다.”


오호라, 세자가 감탄하는데 인조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또다시 침전을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하하하하. 그렇지! 과연 천하 제일 격구꾼답지 않느냐? 저 자의 저 자신감이야말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것이니라! 하하하하 아하하하하.”


반정으로 보위에 오르기 전 사저 시절이 떠오르는 인조였다. 왕좌라는 무거운 짐에 짓눌리지 않았어도 좋았던 시절. 언제 쫓겨나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았어도 좋았던 그 시절....


내자와 자식들로부터 사랑 받고, 충분히 사랑하였었던 그 시절을 격구꾼 박희철은 인조로 하여금 상기시키게 만들었다. 하여 지금 이순간 인조는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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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천은사 부처님 19.01.28 228 2 10쪽
113 치유되지 않은 과거를 앓다 19.01.26 222 3 10쪽
112 다 죽여버릴거야! 19.01.25 218 2 10쪽
111 쌍무지개 19.01.24 215 1 10쪽
110 염탐 19.01.23 227 1 9쪽
109 곪은 상처 19.01.22 210 1 10쪽
108 이것이 나라인가? 19.01.21 238 3 10쪽
107 투서 19.01.19 233 1 10쪽
106 빚이 있는 몸 19.01.18 234 1 10쪽
105 짜여진 각본 19.01.17 238 1 10쪽
104 병자년 그 날! 19.01.16 265 1 11쪽
103 이기는 자가 승리한다 19.01.15 239 1 10쪽
102 대망의 결승 19.01.14 231 2 10쪽
101 하늘님은 없다 19.01.12 218 3 10쪽
100 우리 참매단 19.01.11 237 2 10쪽
» 천하제일 격구꾼 19.01.10 255 2 9쪽
98 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19.01.09 223 3 11쪽
97 앗싸, 한양! 19.01.08 223 2 11쪽
96 수줍은 연심 19.01.07 281 3 10쪽
95 꺆! 꺆! 꺄악! +2 19.01.05 243 4 10쪽
94 격구 열풍이 불다 19.01.04 275 3 10쪽
93 왕의 취미 19.01.03 235 3 10쪽
92 반정을 논하다 19.01.02 242 2 10쪽
91 세상을 바꿀 힘 19.01.01 28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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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사랑과 욕심 사이 18.12.27 263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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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거래의 조건 18.11.28 286 3 10쪽
61 연이는 야한 생각 중 18.11.27 327 4 10쪽
60 신뢰의 문제 18.11.26 300 2 9쪽
59 소중한 선물 18.11.24 336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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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완곡한 부정 18.11.22 286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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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신명나는 잘난척 18.11.16 333 5 9쪽
51 어전에서 묻다 18.11.15 352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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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무릎을 꿇으라! 18.11.13 317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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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흥정은 없어 18.11.03 377 3 10쪽
40 또 다른 실종 18.11.02 446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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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사람 목숨이 달린 일 18.10.31 426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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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나를 믿지 못해? +2 18.10.24 459 4 10쪽
32 청국 사람, 기림 18.10.23 491 6 10쪽
31 허파에 바람 든 사내 18.10.22 487 4 10쪽
30 모범적 관리 18.10.19 558 6 10쪽
29 실종 18.10.18 526 5 9쪽
28 위로가 되는 사이 18.10.17 565 3 9쪽
27 쌀 1만3천포 18.10.16 627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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