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에서 생존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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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왜뭐왜
작품등록일 :
2018.09.1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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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1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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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 (2)

DUMMY

화련이가 졸업할 때까지만 버텨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애초에 빚을 갚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애비라는 인간이 1억이나 빌렸다는데 그걸 내가 무슨 수로 갚아?


솔직히 정말로 그만한 돈을 빌렸을 것 같지도 않다. 어떤 미친 사채업자가 아무것도 없는 놈한테 1억이나 빌려줄까?


어쨌든 1년 가까이 참은 것은 그 새끼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그저 화련이의 학창시절이 끝날 때까지라도 가족이라는 틀을 유지해 주고 싶어서다.

그것만 위해 미친 듯이 일하고, 그렇게 번 돈을 가져다 바쳤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감히...


지난 1년, 병신같이 돈만 바치고 있던 건 아니다. 준비는 이미 끝났다.

그렇다고 엄청 대단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고.


그런 말도 있잖은가. 심플 이즈 베스트.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그냥 다 날려버리면 된다.


한참을 놀이터에서 서성이며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어느새 새벽이 됐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시간을 너무 낭비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나갈 준비를 하는데, 화련이가 부스스한 얼굴로 나왔다.


“이 시간에 뭐해?”


“화련아. 나 일 생겨서 가봐야겠다. 현장이 멀어서 며칠 못 들어올 거야.”


갑작스러운 말에 화련이 표정이 울상이 된다.


어휴, 귀여워. 고등학생씩이나 됐으면서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거야?


이런 녀석을 두고 가야하다니. 양아치 새끼들과 염병할 애비에 대한 분노가 다시 들끓는다.


“오래 걸려?”


“어. 좀 오래 걸릴 것 같아. 통장 어디 있는지 알지? 혹시 무슨 일 있으면 그거 쓰고.”


애비가 도망가기 전까지 내가 모았던 돈을 화련이 이름으로 된 통장에 모아 놨다. 많지는 않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달간 생활할 정도는 된다.

그 이후까지 내가 책임지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다.


나와 사채업자가 둘 다 화련이 근처에 있는 것 보다는, 둘 다 없는 쪽이 화련이가 세상 살기에는 더 나을 거다.


현관문을 열고, 마지막으로 화련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왜 그래?”


한참을 바라보는 내 눈길에 뭔가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화련이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그 눈을 바라보며, 나는 태연하게 웃었다.


“너무 못 생겨서. 너 그래가지고 연애나 할 수 있겠냐?”


“이런 미친! 나 인기 많거든! 네 걱정이나 해!”


“푸하핫. 그러시겠지.”


화련이는 정말로 인기가 많다.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아이다. 하긴, 누가 이 아이를 싫어 할 수 있겠어.

게다가 귀엽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야무진데다가, 생활력도 강하고 꼼꼼하다.


내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거다.


“나 간다. 나오지 말고 들어가서 자.”


“알았어. 갔다 와.”


“...그래. 갔다 올게.”


좀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현관 밖으로 나오자 서늘한 냉기가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벌써 11월 중순. 늦가을의 바람이 유난히 섬뜩하게 다가온다. 이른 새벽의 거리는 인적이 없어 쓸쓸하다.


나는 오늘 사람을 죽인다.


* * *


내가 죽여야 하는 건 다섯 놈이다. 낮에 본 빡빡이와 올백머리, 그 외에 양아치 두 놈, 그리고 사채업자 한 사장.


한 놈이라도 놓치면 나중에 무슨 보복이 있을지 모른다. 놈들이 나를 경계하지 않는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처음에는 하나씩 습격해서 처리할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어렵지 싶었다.

중간에 하나라도 놓치면 바로 반격을 할 텐데, 그럼 화련이도 위험하다. 내가 허구언날 주먹 휘두르고 돌아다니는 놈들의 상대가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한 번에 모두 보내버리는 방법을 고민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놈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동선을 파악했다.

그리고 단번에 끝내기에는 놈들의 사무실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놈들은 건물을 허물고 생긴 공터 한쪽에 컨테이너 박스를 놓고 사무실로 썼다.

듣기로는 한 사장이 돈을 벌어서 새 건물을 올리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단다. 그래서 굴리는 돈에 비해 허술한 컨테이너 박스를 사무실로 쓴다는데, 믿거나 말거나다.


어차피 오늘 다 죽을 놈들인데 알게 뭐야.


놈들은 매일 오전 7시에 사무실로 모여서 1시간 정도 그날 일정을 결정하고 흩어진다. 양아치 주제에 하루 시작이 빠르다.


내가 노리는 것도 그 시간이다. 그 이후에는 따로 움직이기 때문에 기회가 없다.


택시를 타고 공터에 도착한 나는 폐건물의 잔해 속에 숨겨둔 20kg짜리 LPG가스통을 찾았다. 이거 때문에 용달차까지 빌려서 직접 옮겨야 했다.


가스통을 꺼내 컨테이너 박스 뒤편으로 향했다.

컨테이너 뒤편에는 작은 환풍기가 달려 있었다. 환풍기 앞을 장식장으로 막아놔서 안에서는 환풍기가 보이지 않는다.


가스통에 호스를 연결해서 환풍기 틈으로 살짝 밀어 넣고, 그 옆에는 심지로 쓸 종이 끈을 함께 늘어트렸다. 기름을 먹은 종이 끈이 번들거린다.


빈틈은 테이프를 빽빽하게 붙여서 막아버렸다. 그리고 컨테이너 주변을 돌며 창틀마다 못을 박아서 창문이 열리지 않게 만들었다.

준비는 끝났다. 생각보다 간단하다.


나는 가스통에 푸른 방수포를 뒤집어씌우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놈들이 모두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서늘한 냉기가 올라오는 가스통에 등을 기대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화련이에게 전화를 해 볼까?


마음이 수런거린다.


고개를 휘휘 젓고 살인 형량을 검색해 봤다. 희망적이다.

그래, 초등학생을 토막 살인한 미친년도 고작 13년이라는데, 설마 그 이상 나오겠어? 내가 죽이는 건 양아치 새끼들이잖아? 기껏해야 10년 정도겠지.


까짓거, 10년 살고 나와도 서른하나다. 그때부터 열심히 살면 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소주라도 몇 병 사다가 마실까? 취해서 그런 거라고 하면 믿으려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생각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내 결심은 더 확고해졌다.

빨리 놈들이 왔으면 좋겠다.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끊어버리고 싶다.


내 마음을 들어주기라도 하듯, 하나둘 도착하더니 마지막으로 육중한 체구의 한 사장까지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어- 씨발, 춥다. 야! 빡빡이! 난로 켜!”


“사장님, 이거 고장 나서 잘 안 켜지는데요.”


“그러니까 잘 켜보라고, 이 빡구 새끼야!”


“넵!”


한 사장의 목소리가 밖으로 울린다. 빡빡이는 여기서도 빡빡인가 보다.


나는 잠가놨던 밸브를 최대로 열고, 가스통을 숨겨놨던 폐건물 잔해로 향했다. 놈들이 가스 냄새를 맡아도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다행히 문은 하나뿐이다.


“야, 박 실장. 그쪽은 어떻게 됐냐?”


“누구 말씀이십니까?”


미리 숨겨놨던 지지대를 찾아서 가져왔다. 쇠파이프를 이리저리 용접해서 만든 거다.

ㄷ자 모양의 윗부분은 문고리 밑을 받치고, 삼지창처럼 세 가닥으로 이어붙인 끝부분은 땅에 단단히 박았다.

안에서 바깥쪽으로 문을 열 수 없게 잠깐은 버틸 거다.


“그 남매 있잖아.”


“아, 그쪽은 어제 이달치 이자를 받아왔습니다.”


한 사장과 박 실장의 대화 소리가 이어진다. 박 실장은 어제 봤던 올백머리다.

그런데 저거, 아무래도 우리 이야기 같은데?


“아니, 내가 지금 돈 때문에 이래? 고년 어떻게 됐어? 할 것 같아?”


“아직은 반항이 심하지만, 얼마 안 걸릴 겁니다. 지 오빠는 끔찍하게 생각하는 년이잖습니까.”


“그래, 그래. 내가 요즘 그년만 생각하면 아랫도리가 서서 잠을 못자. 빨리 좀 해봐.”


더럽다. 할 수만 있다면 직접 때려죽이고 싶다. 발끝에서부터 시작해 온몸의 뼈란 뼈는 죄다 으스러트리고, 살점이란 살점은 모조리 발라내고 싶다.


“흐흐흐. 곧 사장님 앞에 대령하겠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죽을 놈들이다.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래. 좀 더 닦달하라고. 내 스타일 알지? 난 좋은 건 나눠먹는다.”


“제가 그래서 사장님 밑을 못 벗어나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년이 사나워서 돌려먹는 맛이 있을 겁니다. 최대한 빨리 끌어내겠습니다.”


아, 씨발. 신경 쓸 필요 없는데.


“좋아. 이왕이면 그 건방진 오빠 새끼한테도 보여주자고. 그 새끼는 나이도 어린노무 새끼가 어른을 무슨 개좆으로 알아.”


니미럴, 못 참겠다.


어차피 준비는 다 끝났고, 가스가 적당히 차기를 기다렸다가 심지에 불만 붙이면 된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올백 머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라? 이 새끼가 먼저 전화를 다 하네?”


“누군데?”


“방금 그 사내새낍니다. 아마 지 동생 찾아간 걸 알았나봅니다. 그냥 끊겠습니다.”


“받아봐. 또 뭔 지랄을 하는지 한번 들어보자. 그래야 나중에 지 동생년이 따먹힐 때 더 후회할 거 아냐.”


한 사장의 허락을 받은 박 실장은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우리 고갱님께서 웬일로 전화를 다···”


“미친 새끼야. 해가 서쪽에서 어떻게 뜨냐? 뇌가 없어? 공부 좀 해, 병신아.”


- “뭐?”


창문 아래에 붙어 슬쩍 안을 들여다봤다. 박 실장의 벙찐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귓구멍이 막혔냐? 공부 좀 하라고! 평생 양아치 짓만 하다가 인생 끝낼래?”


남은 생이 그렇게 길지는 않겠지만.


- “허...허허... 화남아. 미쳤냐? 아무리 우리 고객님이라도 지금 이건 도가 지나친데?”


박 실장은 슬슬 열이 올라오는지 얼굴이 시뻘게졌다. 한 사장뿐만 아니라 밑에 부리는 동생들까지 다 듣고 있는데 크게 쪽팔렸으니, 열 좀 받을 거다.


“한 사장 밑이나 닦아 주는 새끼가 말은 잘한다. 됐고! 옆에 한 사장, 그 돼지새끼 있지?”


- “뭐? 이 개새···”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을 사정없이 구긴 박 실장이 소리를 지르는데, 한 사장이 막는다. 잔뜩 흥분한 박 실장과 달리 한 사장의 얼굴은 차분했다.


- “나다.”


“오- 한 사장! 내가 네놈 새끼한테 꼭 할 말이 있어서 전화했어.”


- “해봐라. 곧 죽을 놈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데, 그 정도는 들어 줘야지.”


한 사장의 입가에는 살짝 미소마저 돌았다. 아마 이 일을 꼬투리 삼아서 화련이를 데려올 생각이겠지. 개새끼.


“너 개좆 맞아.”


나는 창문에서 떨어져 다시 컨테이너 뒤쪽으로 발을 옮겼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으니 가스도 꽤 많이 들어갔을 거다. 이제 심지에 불을 붙이고 내 몸만 피하면 된다.


- 뭐?


“너 개좆 맞다고. 이 빌어먹을 새끼야. 감히 누굴 넘봐?!”


그제야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수화기 너머가 부산스러워진다. 내가 어디선가 보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 너 이 새끼. 어디야?”


“내가 어딘지는 아실 거 없으시구요, 이 시발넘아.”


찰칵-


나는 라이터를 켰다. 일렁이는 작은 불꽃이 황홀하다. 복수가 부질없다는 건 다 개소리다. 머리가 그 어느 때보다 상쾌했다.


심지가 타는 건 순식간이다. 솔직히 나도 가스 폭발의 위력을 모른다. 시험해 볼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불을 붙이자마자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한다.


“어디서 가스냄새 안 나냐?”


- 이... 이 미친 새끼야!


그제야 알아챘는지, 수화기 너머로 쾅쾅거리며 문을 열려는 소리가 들린다. 유쾌하다.


“푸하하하! 잘 가라, 이 개···”


살며시 라이터를 심지에 가까이 대는 그때,


- 사장님. 켜졌···


- 이 병ㅅ···


쾅-!!!


흉포한 화염이 공기의 진동을 타고 컨테이너를 찢어발겼다. 갈라진 철판 사이로 뛰쳐나온 막대한 열량이 하얗게 타오르며 울부짖는다.

그 울음소리에 공간 전체가 흔들렸다. 주변의 모든 사물이 먼지처럼 흩날렸다가, 그 먼지에서 다시 불꽃이 발화했다. 온 세상이 지옥처럼 불타오른다.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서 나는 그저 멍하니 생각했다.


화련이, 괜찮을까?


화염의 폭풍이 사납게 덮쳤고,


나는 죽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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