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 성한] 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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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Banyan
작품등록일 :
2018.09.15 05:15
최근연재일 :
2018.09.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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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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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부인 앞에서 첫사랑 이야기는 하는 게 아냐.

DUMMY

“말도 안 돼.”“진짜라니깐?”

“에에이.”


난 낮은 목소리로 야유했다. 엄마가 메이퀸에 나갔었다고? 솔직히 저건 뻥이다. 나이를 20년은 앞으로 돌려서 계산한다해도! 암만 그래도 메이퀸은 아니지.


“아잉, 그러지 말고. 그래도 엄마 쫌 귀엽지 않니? 이정도면 미인 반열에 오르지~잉.”

“그해 미인들은 다 얼어죽었나···.”

“떼끼, 말 버릇이 그게 뭐야!”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버럭 소리치는 아빠. 간만에 근엄한 모드다. 쳇, 하여튼 엄마 앞에서는 권위 있는 가장처럼 보이려고 온갖 쇼를 다 한다니까? 저러고 또 나랑만 있으면 싹싹 빌 거면서. 내일 시장가서 아빠를 때릴 베개들을 비축해둬야겠군.


“우리 여보야가 얼마나 예쁜데 그래. 여보야 보면 김태희 전지현도 깜짝 놀라서 도망갈걸?”


얼굴을 붉힌 아빠가 호들갑을 떤다. 여보야, 여보야, 하면서 은근슬쩍 어깨에 손을 올리고 엄마 손등을 만지작거리는데···. 지금 내 표정이 어떤진 모르겠는데, 아마 내 앞에 마주앉은 오빠 표정과 똑같으리라 예상한다. 나랑 오빠는 눈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래, 커서 저런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여보야는 분명 1등 했을 거야! 그치?”

“아니? 본선도 못나갔는데?”


그럼 그렇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축체 때 나도 메이퀸 나갈래! 하고 손들었다가 예선에서 뚝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도 나 K대 의대생도 바람맞혔었어!”


남자 바람맞힌 건 자랑이 아니야, 엄마···!


“대학 학과도 얼굴도 나보다 너무 잘나서 난 장난치는 줄 알았지. 요즘말로 쪽팔려 게임인가 하는, 그거 벌칙인줄 알았어 난. 근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글쎄, 진짜 날 하루 종일 기다렸대! 와, 그거 알고 너무 미안해서···.”


애매하게 말끝을 흐리고는 얼른 고갤 들려 아빠 눈치를 본다. 어라? 고개를 갸웃하고 생각하던 나는 엄마의 이상행동의 이유를 알아냈다.


‘아하, 그거군. 요즘 유행하는 밀고 당기기인지 질투 유발인지 하는 그거.’


엄만 일부러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흘리고는 아빠 반응을 구경하고 있는 거였다. 엄마는 눈을 깜빡이며 아빠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빠가 버럭 화를 내려나, 아님 유치하게 질투하면서 흥, 나도 따라다니는 여자 많았거든! 하고 치고 들어오려나.


‘엄마 아빠만 안 보고 있었으면 오빠랑 천원빵 내기하는 건데. 매우 안타깝군.’


아빠는 아직도 묵묵부답. 분위기는 한 발로 긴장의 선을 줄타기하고 있다. 와아, 어디 팝콘 없나, 팝콘! 아쉽게도 집 안에는 팝콘 장수가 없었다. 난 아쉬운 대로 근처의 땅콩 캔을 뜯어서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었다.


“나도···.”


오오, 드디어 아빠가 입을 열었다! 흥미진진해서 한 손 가득 퍼서 땅콩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그런 적이 있었지···.”


응? 뭐지? 화도 안 내고 삐지지도 않고, 엄청 슬픈 목소리로 나긋나긋 이야기를 하는데, 눈망울이 추억 속에 빠져계십니다요.


“내게 과분한 여자였어···. 외모도, 집안도, 학력도, 어디 하나 부족한 점 없는, 단지 곁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벅차오르던···. 나와 같이 있으면 주변 시선에 시달리는데도, 항상 나한테 괜찮다고, 당신만 있어주면 된다고···.”


아빠, 지금 엄청 아련한 눈빛하고 있는 거 아세요? 동시에 엄마 눈초리가 매서워지고 있는 것도 알아요, 지금?


“승마를 좋아했어. 부잣집 외동딸이었거든. 아버님이 금지옥엽, 난초처럼 키우셨지. 한번은 나한테 그랬어, 가르쳐줄테니 다음엔 같이 타자고. 같이 가고 싶어 했는데···. 차마 그럴 수 없었어. 나 따위가 감히···.”


아빠가 이야기에 빠져드는 동안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는데···.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알라님 돌턴님. 제발, 제게 오늘의 대참사를 막을 힘을 주소서. 난 아버지 이야기를 어떻게든 끝내려고 죽을힘을 다해 방해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결과는 전부 참패. 이래선 안 된다. 저건 어떻게든 막아야해.


“사, 사랑이란 감정은 상대적이죠. 수학 공식이나 과학으로 증명이 불가능하잖아요.”


그래, 여기서는 사랑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어필하는 수밖엔 없다. 난 싱긋 웃으며 아버지의 말을 칼같이 잘라냈다.


“시간이 가면서 변하는 것도 사랑이고, 눈에서 멀어지면 맘이 떠난다고, 세월이 흐르면 그렇게 묻히고, 잊혀지고···. 그렇게 쌓여서 현재에 오는 거죠. 과거형의 사랑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떤지, 어디에 있는지가 아닐까요?”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아버지가 살짝 표정을 구기고 나를 바라보는데, 잠깐. 설마 지금 하시려는 말씀이···.


“넌 소꿉친구한테 차이고 2년 동안 연애도 안하면서 사랑이 과거형이니 뭐니 말할 수 있어?”




와아, 기가 막힌다. 오빠가 중간 중간 말을 끊을 지점은 몽땅 찾아서 끊을 대로 끊었지만 아빠의 추억은 막을 수 없었다. 도리어 오빠한테 돌직구를 날려서, 지금 오빠 반쯤 정신 나가있다. 저게 말로만 듣던 폐인의 표본이구나 싶을 정도인데···. 아니, 왜 멀쩡한 사람 가슴을 후드려 패냐고!


오빠는 크리티컬 히트 이후로 자기 자리에서 조금씩 뒤로 가더니, 결국엔 저어기 방구석에 처박혔다. 그리곤 얌전하게 무릎을 감싸 안고 어두운 기운을 폴폴 흘리고 있다. 난 아빠를 매우매우 노려본 후 오빠 옆에 앉아서 괜찮아, 하고 등을 두드려줬다.


“···.”

“괜찮아, 울지 말고, 괜찮다니까.”


으으으! 저놈의 인간 때문에! 아까까진 동정심이라도 들었지 이젠 도와주고 싶지도 않다. 나도 모르겠다. 난 오빠나 달랠거니까 뒷감당은 알아서 하셔!


“···그래, 다 그런 거지. 한 번쯤은 실패하는 사랑. 젊을 적 불처럼 타올랐다 픽 꺼지는, 그런 일이지. 그러고도 평생 가슴에 매달려있는···. 당신도 때때로 가슴 아픈 날엔 나한테 털어놔. 다 이해해줄 테니.”


이걸로 길고 긴 이야기는 끝. 난 고개도 들지 않고 끝났군, 하고 중얼거렸다.


“그···으래···. 꽤나 예쁘셨나봐. 몇십 년 동안 추억하고 있는 걸 봐서.”

“예뻤지. 사미자를 꼭 빼닮았었어. 긴 머리가 늘 찰랑거리면 다들 눈길을 빼앗겨서는···.”

“그래서, 지금 그 긴 생머리 그녀랑 만나고 싶다 이거야?”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듯, 엄마가 듯다못해 아빠 말을 잘라버리고 버럭 소리쳤다. 아빠는 엄마의 반응을 보면서 뭔 일이래, 하고 의아해하는 듯. 엄마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아빠를 매섭게 노려본다. 와아, 엄마가 폭발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무슨 소리야? 이야긴 당신이 먼저 했잖아?”

“난 내 쪽에서 매달리진 않았거든!”

“무슨 말이야, 대체?”


그래도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듯 ‘왜?’라고만 물어보는 아빠. 설명해달라는 표정인데. 아니, 설명하려다 더 열 받지. 엄마는 속이 답답해서 가슴 한 번 팍 치고 으으으, 하고 이를 갈고 나서.


“됐다, 됐어. 내가 말을 말지!”


왈칵 속상한 게 터졌는지 큰방에 뛰어 들어가서 문을 쾅 닫아버린다. 구석에서 등 토닥여주던 오빠는 당황해서 얼른 따라 들어간다. 그렇게 한 세 시간은 지난 거 같다.


저녁시간인데 엄마는 밥도 안 해준다. 밥은커녕 화장실 가려고 나오는 것도 못 봤다. 그리고 아빠는 내 옆에서 대체 어떤 말에 엄마가 화가 났는지 이야기를 거꾸로 되짚어보고 있는데, 이야기가 아니라 주제에서 잘못되었습니다, 아버지.


“그···아직도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대체 왜 화를 내는 거지···.”


혼잣말처럼 나한테 말을 걸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러든가 말든가. 난 오빠랑 문자나 해야겠다.


-안방 상황은?


문자를 꾹꾹 눌러서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일단 달래고 있음. 근데 그다지.


오빠 답장은 빠른 배송이다. 근데 희망찬 내용은 아니군.


-하여튼 바보갔다니깐-_- 거기서 첫사랑 예기가 왜나와?


-별 수 없지. 우연인데.


-아니, 분위기 파학도 못하는게 바보갔다는 거지. 솔직히 오빠가 좀 노력헸어? 분위기 좀 쌔-헤졌다 싶고, 엽사람이 걔속 말을 돌리고하면, 어느정도 눈치는 체야 하는거 아냐?


오 분이 지나도 답장이 없음. 으이구, 내가 아빠 욕을 할 때마다 조용하다니. 하여튼 착해서 탈이라니까. 난 새로 문자를 쓰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래서, 몇일 갈거같아?


-생각보다 심각


-이틀?


-ㅇㅇ 그 정도는 넘음


-오케이. 알갰어.


난 홱 고갤 아빠한테 돌렸다.


“한 이틀 정도 집에 발붙일 생각 마쇼.”

“뭐?”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버튼을 꾹꾹 누르면서 벌침처럼 톡 쏘아붙였다. 아빠는 기가 막히다는 얼굴이다.


“들어오면 곱게 주무시다 엄마 일어나기 전에 얼른 나가셔.”

“야, 잠깐, 옷은 어쩌고?”

“회사에서 갈아입으시던가, 아니면 잠깐씩 와서 탈의실처럼 이용하셔.”

“밥은?”


나는 휴대폰 액정에서 고개도 안 떼고

“알아서 하셔. 밖에서 먹고 들어오시던가.”


그랬더니 아빠가 버럭 목소리를 높인다.


“너, 너도 남일 아니잖아!”

“상관 없지롱. 그래봤자 난 오빠가 다 해주지롱.”


메롱메롱. 실컷 하고 방을 나갔다. 마루엔 아무도 없다. 오빠는 아직 큰방인 거 같다. 미리 오빠 방 가서 기다려야겠다. 말은 막 했지만, 저 멍청 씨가 싸지른 일을 해결해야 하니. 오늘도 또 오빠와 함께 골머리를 앓아야겠군. 우리가 사랑의 파수꾼도 아니고 맨날 이게 무슨 짓이래. 신나게 구시렁거리는데 오빠가 슬쩍 방문을 밀고 들어왔다.


“오늘도 그거지?”

“응. 해야 할 거 같네.”


오빠도 동의했군. 그렇다면! 내가 얼른 A4용지를 가져와서 싸인펜으로 크게 ‘엄빠 대책 위원회 토론회(5회)’라고 적었다. 그리고 오빠가 등을 기댄 벽에다가 찰싹 붙였다.


이걸로 준비 끝. 자아 그럼 엄빠 대책 위원회,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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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50. 엄빠 대책 위원회 18.09.15 82 0 5쪽
» 49. 부인 앞에서 첫사랑 이야기는 하는 게 아냐. 18.09.15 9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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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7. 2년 전 여름, 성한이 18.09.15 70 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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