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 성한] 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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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Banyan
작품등록일 :
2018.09.15 05:15
최근연재일 :
2018.09.15 20:00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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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글자수 :
232,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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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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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쪽

63. 올해, 겨울

DUMMY

휴대폰을 꺼내 1번을 꾹 누르면 오빠 번호로 전화가 걸린다. 뚜르르, 신호음이 두 번도 가기 전에, 가람이니, 하는 오빠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생글생글하다고, 들은 목소릴 시각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될까. 듣는 것만으로 눈에 훤히 보이는 목소리의 빛깔에 나도 모르게 신이 난다.


“오빠, 물 틀어 놨어?”


이사 후 충격을 먹은 일이 몇 번 있었고, 이것도 그 중 하나. 아파트에는 보일러가 없다. 수도꼭지를 빨간 방향으로 돌리고 위로 꾹 들어 올리면, 쏟아져 나오는 물이 천천히 알아서 데워진다. 그게 얼마나 신기하던지. 내게는 마치 타국에서 들어온 신문물 같아서 난 물에서 김이 솔솔 올라오는 모습을 빤히 구경하기도 했었다.


‘응, 한 삼십분 전부터?’

“뭐어? 나 때문에?”


나 하나 때문에 물을 얼마나 틀어놓고 있었던 건지. 수도세도 만만치 않을 텐데. 오빠는 이상한데서 돈을 아끼지 않는다.


“나 괜찮은데, 꾹 참으면 차가운 물에서도 목욕할 수 있는데!”

‘그래도 공기도 데워놔야 하고···.’

“아이, 진짜! 괜찮다니깐!”


대체 30분간 얼마를 하수도로 흘려보낸 것이냐고, 공기에 돈 퍼줄 일 있냐고 하나하나 잔소리를 하고 있으려니, 오빠는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삐져서 뾰로통 입술을 부풀리고 있으려니 수화기 넘어 하하하 웃음소리가 터져온다.


‘아냐, 사실 삼분 밖에 안 됐어.’

“진짜지?”

‘그래. 그러니까 서있지 말고 얼른 들어와.’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웃하고 있으려니 저어 아파트 위에서 가람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드니 오빠가 복도 난간에서 나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이쪽으로 오라고 수신호를 하는 오빠. 전화에 너무 열중했던 걸까.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니 난 아파트 올라가기 전, 수위실 조금 먼 곳에 가만히 서서 전화만 하고 있었다. 아마 걸어오던 중에 오빠 말을 듣고 놀라서 멈춰 서서 전화 통화에만 열을 올렸던 거 같다. 아파트 바닥은 온돌밭이 아닌데 굳이 여기서 더 몸을 얼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 잽싸게 뛰어서 아파트 입구로 들어왔다.


“왜 다 와서 가만히 서있니?”

“오빠가 나 놀리니까 그러지!”


방에 들어가 재킷을 걸어놓았다. 내 방은 이럴 때 빼고 쓸 일이 없다. 입은 옷을 분류해서 정리하고, 옷장에서 목욕 후에 입을 옷을 챙겨 나오는데, 오빠가 얼른 자기 방 안으로 꽁무니를 뺀다. 항상 내가 목욕할 때면 자기 방에 쏙 들어가서는 끝날 때 까지 안 나오는 심산이야 뻔하다. 또 옛날처럼 서로 민망한 일 생길까봐 먼저 피하시는 거겠는데, 아니, 그 날 일은 내 부주의인데 꼭 내가 목욕 다했다고 문 앞에서 소리칠 때까지 문 잠그고 방에서 고개도 안 내미는 게 말이나 됩니까? 부엌에도 안 나오고, 심지어 안방에 화장실도 안 들어가는 거 같던데?


“오빠! 오오빠아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심호흡 크게 하고 방 앞에서 크게 소리쳤더니 오빠 공부해! 하고 그제야 대답 한 가닥이 문틈 새로 실려 온다.


“왜 들어가. 밖에 나와 있어!”


오빠의 회피. 대화가 좀 이어지나 싶었더니 뚝 그쳐버린다. 또 불러도 역시 대답은 없다.


“하여튼 순해 빠져가지고는···.”


킬킬 웃으면서 욕실에 들어왔다. 그래도 목욕물은 따뜻하네, 뭐. 금방 목욕을 끝내고 수건을 찾으려는데, 어랍쇼, 벽에 수건이 없네? 오늘 수건 당번은 분명 엄마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난 목욕탕 문을 열고 큰 소리로 냅다 외쳤다.


“오빠, 수건!”

“몇 장?”

“두 개!”


오빠 올 때까지 기다리자, 랄랄라. 흥얼거리며 있으려니 별별 소리가 다 들린다. 저어쪽 방문의 걸쇠가 돌아가는 소리. 고장 난 옷걸이가 공회전을 하는 소리. 베란다 창문이 삐거덕거리는 소리. 마지막으로 목욕탕 문고리가 밖에서 작게 철컥대는 소리.


“문고리에 걸어놨어.”


얌전히 들리는 오빠 목소리. 대답하기도 전에 발소리가 후다닥 방 안으로 사라진다. 얼마나 수줍은지 방 문 닫히는 소리도 부끄러움이 묻어나는 것 같다니깐.


“하여튼 순진하다니깐.”


옷을 갖춰 입고 나와 올 때 입었던 겉옷들을 판판하게 정리해서 걸어놓았다. 빨래거리까지 깔끔하게 분류하고 오빠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잠긴 걸쇠 풀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폴짝 오빠 방에 착지. 오빠가 숙제하는 동안 뒤에서 친구들이랑 문자하면서 뒹굴뒹굴 굴러다닌다.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면 이불이 몸에 꼭 맞게 꽁꽁 싸매어진다. 그러고 있으면 오빠가, 돌돌 알차게도 말려 계시네. 쥐며느님이세요? 하고 뒤를 돌아서 핀잔을 준다. 그러면 난, 아뇨, 댁의 동생인데요. 하고 낄낄 웃으면 오빠도 따라서 웃고 만다.


올해, 난 가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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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5. 생채기(1) 18.09.15 62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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