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병, 선수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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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세포
작품등록일 :
2018.09.15 21:23
최근연재일 :
2019.02.1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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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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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0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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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6쪽

석호니까요.

DUMMY

“자유형 1500m 시작합니다.”


준석의 아카데미 수영장에서 스타트 블록을 보고 있는 석호는 주위를 둘러봤다. 권재와 타쿠지가 수경을 쓰고 있었다. 석호도 다를 바 없다. 수경을 고쳐 쓰며 한솔과 지훈을 쳐다봤다. 한솔은 한 손에 스톱워치를 들고 있었고, 지훈은 펜과 수첩을 들고 있었다. 그저 연습 시합일 뿐인데 긴장이 서린다.


“영광하고 다른 선수들은?”


석호의 물음에 한솔이 대답해주었다.


“이미 워밍업 다 마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중이야. 영광 선수가 칼을 갈고 있더라. 눈빛만 봐도 어찌나 살벌한 지...어우.”


“형은 영광이 싫지 않아?”


“싫은 건 싫은 거고, 선수인 건 맞잖아? 그리고 과거에 얽매여봤자 달라질 것도 없고, 뭐 어쩌겠어. 한국 국가대푠데 응원해야지.”


어깨를 들썩이며 희미하게 미소 짓는 한솔. 석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가볍게 털어준다.


‘내 주종목.’


자유형 1500m.


이제 시작이다.


한솔이 휘슬을 불기 무섭게 스타트 블록 위로 올라간다. 준비란 말에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를 취하며 바닥을 쳐다봤다. 이윽고 들려오는 출발 신호에 거침없이 정면으로 뛰쳐나간다. 수면 위로 입수할 때의 자세는 한결 같다. 돌핀킥을 차줄 때도 15m 코스라인 직전에 수면 위로 떠올라 자유형 킥으로 연결 시켜주는 것 까지 정말로, 자연스러웠다.


‘...할 수 있어.’


어제까지만 해도 권재가 선수를 관둔다는 말이 머릿속에 아른거렸지만 이제는 정리해야만 할 때였다.


팔을 뻗는다.


터-억.


수면 위로 올라온 손이 가라앉을 때, 타이밍에 맞춰 많은 물을 품속으로 끌어당기며 뒤로 밀쳐냈다. 그럼으로써 몸이 앞으로 나아간다. 4비트 킥과 3스트로크 1호흡을 해주며 일정한 리듬을 유지했다. 4비트 킥은 말마따나 한 번의 스트로크에 킥 한 번, 그리고 다음번의 스트로크에 킥 세 번 차주는 걸 의미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싸해지는 뒷목. 오른쪽 호흡을 할 때, 타쿠지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동시에 팔을 뻗으며 앞으로 뻗쳐 나간다. 한솔은 그런 석호와 타쿠지를 보며 실소를 흘렸다.


“정말, 산 넘어 산이네요. 선수들도...”


“한국에는 약 5천만 인구가 있다고 했을 때, 세계는 70억의 인구가 있으니까. 당장 일본에만 해도 한국의 약 2.5배 되는 1억 2천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 그런 가운데서 국가대표로 선발된 일본인이니, 절대 무시할 수가 없는 거지.”


“그래도 전 석호가 이길 거라고 생각해요.”


“왜지?”


그저 한국인이라서? 그간 해온 노력 때문에? 신체 능력이 월등해서? 세계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간절하기 때문에 국가의 대표가 돼서 전국대회에 참여한 것이다. 한솔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석호니까요.”


“...그렇군. 그래...이거,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네.”


“그렇죠?”


한솔이 봐온 석호는 그런 녀석이었다. 지고, 낙심하고, 초조해지고, 절망과 같은 부정적인 상황이 들이닥쳤을 때 직면하고 밑거름 삼아 나아가는 선수.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집중과 과몰입.’


같은 시간이 주어졌을 때, 한계의 한계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그렇게 남들이 생각하는 틀을 부숴버린다.


‘내가 처음 봤을 때의 넌, 정말 허접한 수준이었지.’


준하와는 현저히 비교될 만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실력이었다. 하지만 종래에는 보란 듯이 선수가 되어 있었다. 전국대회에서 끊임없이 우승하고, 생애 첫 국가대표 선발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5살 때부터 해왔다고 했었나.’


수영은 재능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얼마나 오래, 꾸준히 하느냐의 시간 싸움이기도 했다.


“근데 이번에 너무 오버페이스로 나아가는 게 아닌가 싶은데...”


석호도 그렇고, 타쿠지도 상당히 빠른 페이스로 물을 헤치고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야 100m 얼추 넘었는데 말이다. 장거리 수영은 마라톤과 같다. 순간적으로 빨리 달리면 체력이 소진되어 종래에는 느려지게 된다. 그렇기에 적정한 스피드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었다.


“스톱워치로 끊어 봐. 바퀴 당 몇 초 나오는 지 봐야겠어.”


“100m 58초 정돈데요?”


“...기분 탓인가?”


지훈의 플라스틱 의자를 두 개 가져와 하나에 걸터앉으며 팔짱을 꼈다.


“한솔이 너도 여기 앉아. 어차피 15분이나 걸리는 시합이니까.”


스타트 블록 옆에 의자를 깔고 앉는데, 상당히 위험한 느낌이 없잖아 들었다.


“이거 그냥 서서 보는 게 낫지 않나요?”


“응? 원하는 대로 해. 난, 이게 편해서.”


지훈은 앉은 상태에서 타쿠지와 석호, 권재를 살피며 종이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록했다. 한솔이 그런 지훈의 수첩을 살폈다.


‘...화...가야?’


대충 봐도 어떤 게 문젠 지 알 수 있는 그림이다. 왼쪽 상단엔 선수의 이름을 적고, 뭐가 문제인 지 끊임없이 적는다. 약간의 버릇이나 습관 같은 게 보이면 그것도 적어두고 있었다.


“선생님은 시력이 어떻게 됩니까?”


“2.0이었나.”


“...굉장하네요.”


“선수만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감독도, 코치도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되거든.”


“시대에 맞춰 변화한다...라...”


때마침, T자벽 바로 앞으로 온 석호가 플립턴을 해주며 발로 벽을 박차고 나아간다. 수면 위로 떠오르기 무섭게 팔을 뻗는다.


“그런 의미에서 석호는 변화의 상징이지. 수시로 성장해대면서 발전을 거듭하니까.”


석호의 손끝이 무엇을 향하는 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한 녀석.”


한솔은 그저 실없이 웃으며 석호에게 찬사를 보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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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안전을 버리고 미지를 택하다. 19.02.15 115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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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너 본선 진출하면, 나 이 일 때려치운다. 19.02.12 131 3 10쪽
87 미래를 붙잡기 위해. 19.02.11 162 3 6쪽
86 신에게 선사받은 재능 19.02.10 134 3 7쪽
85 아리카케 19.02.10 130 3 9쪽
84 무상 19.02.10 121 3 6쪽
83 하여간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라니까. 19.02.09 135 2 7쪽
82 개최되다. 19.02.09 124 3 6쪽
81 이제 시작이야. 19.02.08 118 4 8쪽
80 이기는 건 나야. 19.02.08 156 4 6쪽
79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야. 19.02.07 124 4 8쪽
» 석호니까요. 19.02.07 123 3 6쪽
77 나 힘낼게, 콜리야. 19.02.06 178 2 7쪽
76 지금처럼 말이야. 19.02.06 154 2 10쪽
75 다음은 200m다. 19.02.06 143 2 5쪽
74 스프린터의 영역 19.02.05 148 3 10쪽
73 범고래 샤치 19.02.05 150 4 8쪽
72 그러게 말이다. 19.02.04 153 3 8쪽
71 호프스와 희망 19.02.03 167 3 12쪽
70 저는, 동현이라고 합니다. 19.02.03 155 3 6쪽
69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 19.02.02 178 3 7쪽
68 결과는... 19.02.01 181 2 9쪽
67 남은 거리, 100m 19.01.31 170 4 6쪽
66 세상에 신(神)은 없지만 신(信)은 있다. 19.01.31 167 3 7쪽
65 양산형이 아니다. 이거냐? 19.01.30 188 4 8쪽
64 내가 이겨. 19.01.30 179 2 9쪽
63 1500m 19.01.28 180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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