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 일으켜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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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선생
작품등록일 :
2018.10.02 23:17
최근연재일 :
2018.10.1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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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8.10.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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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쥐뿔도 없는 재능.

DUMMY

#

The Sword - 七星座




푸르른 하늘 아래 오색 색종이가 흩날렸다.

멀리 북녘에서 큰 전공을 세워 당당히 금의환향한 홀렌드 형을 향해 주민들이 손수건을 흔들어주며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좀처럼 얼굴을 보기 힘든 영주까지 마중 나왔고, 영지 병사들이 반듯하게 도열하여 환영의 나팔을 불어댔다.

햇빛에 반사된 풀 플레이트 갑옷이 더욱 빛나 보인다.

홀렌드 형은 늠름한 자태로 전마를 몰며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만연한 미소 속엔 진한 자부심을 뿜어내고 있었다.

국왕을 직접 알현하고, 작위까지 하사받았다고 하니 개천에서 큰 인물이 난 것이다.

홀렌드 형은 이제 남작의 작위를 가졌고, 정식 기사로 서임되었으니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인다.

어릴 때만해도 동네 골칫거리일 만큼 무식하고 힘만 센 형이 저렇게 대성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 세상일은 한치 앞도 모르는 법이다.

그래서 희망을 갖고 사는 거고.


안타깝게도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딱!

“아야!”

정수리를 때리는 지팡이에 울상을 지으며 돌아보니 할아버지께서 무섭게 눈을 부라리고 계셨다.

내 유일한 핏줄.

자글자글한 주름이 세월의 흔적을 채워주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 가장 깔끔하고 단정하신 분.

작은 것에도 소홀하지 않고, 세심하게 신경 쓰는 우리 할아버지.

하지만 요즘 점점 괴팍해지는 건 왜 일까.

가족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부모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10살 전의 인생은 내 머릿속에서 송두리째 뽑혀 증발해 버렸다.

기억 상실증이라고 들었다.

지금 15년을 살았으니 난 할아버지와 산 5년간의 기억이 전부이다.

할아버지 말로는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머리를 다쳤다나?

웃긴 건 도시 근방에 있지도 않은 감나무에서 내가 왜 떨어졌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은 골동품 가게를 하셨다.

두 분은 어느 날 뭔가를 구하러 먼 길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다 소식이 끊겨 버렸는데 실종 기간이 13년도 넘었으니 돌아가셨다고 봐야지.

살아계시더라도 그 동안 날 찾지 않은 분들을 굳이 반길 이유도 없고.

이미 난 그분들을 가슴에서 떠나보냈다.

얼굴조차 모르는데 미련도 크게 없었다.

그래도 그 두 분이 남긴 유산 때문에 궁핍하게 살진 않아서 좋았다.

할아버지는 돈이 부족할 때마다 어디서 골동품 같은 걸 가져와 수도에 갖다 팔고 금화 몇 개를 챙겨 오시곤 했으니까.

금화 열개만 있어도 주변 마을에서 씨가 빠지도록 한 해 농사짓는 것보다 넉넉하게 살 수 있으니 난 어떻게 보면 복 받은 놈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큰 인물이 되길 원하신다.

공부머리는 안 되는 줄 아시는지, 강한 무인이 되길 은근히 바라시는 것 같다.

할아버지는 내 기억이 있는 10살부터 죽어라 검술을 가르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돈을 들여 외부에서 개인과외 스승을 구해다 주셨다.

남들은 먹고 살기도 바쁜데, 목검이나 휘두르고 있었으니 역시 난 복 받은 놈이다.

문제는 돈을 쏟아 부었는데 결과가 시원찮다는 것이다.

진도를 따라가기는커녕 가르친 것도 흉내 내지 못하는 수준이니 심각한 둔재였다.

검술에 재능이 없다는 걸 느끼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골격도 크지 않아 호리호리한 편이고, 땀 흘리는 것도 싫어했고, 반복적으로 한 가지 동작을 한다는 것에 금방 실증을 내버리니 오는 스승들마다 진저리를 쳐버리고 그만두었다.

왜 그러냐고?

그걸 알면 내가 지금껏 이러고 살진 않았겠지.

천부적으로 게으른 편인 것 같긴 하다.

아니면 밥걱정 없이 살다보니 절실함이 없을 수도 있고.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데 어쩌라고.


지금은 내가 사는 도시에 실력 좋다는 관장이 운영하는 검술도장을 다니고 있다. 그곳에서도 옆 동네 제과점 아들 뚱뚱이 던버만 제외하고 관원들 모두 나보다 실력이 좋으니 말 다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술을 왜 배우냐고?

남자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존재가 되기 위함이지.

장래희망 일 순위 ‘기사’가 되는 게 내 꿈이다.

말은 안하고 있지만 무지무지하게 강한 왕국최고의 기사가 되고 싶다.

힘이 있고 명성이 쌓이면 기본적으로 따르는 것이 돈과 권력, 그리고 여자들이 아니던가.

이 중 내가 진짜 기사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바로.

여자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나이에 당연한 목표잖아.

한창 이성에 호기심이 왕성할 때이기도 하지.

난 남자의 본능과 지배욕을 애써 부정할 생각이 없다.

기사가 되면 귀족여식들과도 혼인할 가능성도 있고.

솔직히 여자랑 잠자리하는 시간이 너무 좋다.

색을 너무 밝히는 거 아니냐고?

솔직한 거지.

내 나이 때 아이들이라면 당연한 생리현상이고, 인간의 욕구고, 본능이니 나쁘게 보지 말자고.

내가 고자도 아니고, 아들, 딸 줄줄이 낳아서 키우고 싶은 평범한 남자잖아.

이게 다 내가 부족함 없이 크고, 배가 불러서 하는 말일 수도 있으니 너무 새겨들을 필요는 없어.

그래도 요즘 세상이 냉정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놈의 검술.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지.

할아버지는 귀가 따갑게 ‘넌 재능과 잠재력을 지녔다. 그런 피를 물려받았어.’라고 말하는데, 정적 당사자인 난 그것을 못 느끼고 있는 게 문제다.

내가 무식한 놈도 아니고 그런 피를 물려준 할아버지는 검술에 검자도 모르고, 부모님은 장사를 했으니 그냥 하는 말인 것쯤은 안다.

그래서 믿지 않았다.


“이놈! 도장에 안 가고 여기서 뭘 하는 게야.”

“지나가다 구경 좀 하는 거예요. 그리고 할아버지! 정수리 좀 때리지 마세요. 여기 급소라서 잘 못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요.”

딱!

다시 한 번 지팡이가 정수리를 강타하고, 난 멀어져가는 홀렌드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검술도장으로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정말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왜 감나무에서 떨어져 한 번 망가진 내 머리를 자꾸 때리냐는 것이다.


자꾸만 나에 대한 부족함만을 알려줬는데 나름대로 장점도 있는 놈이다.

첫째로 얼굴 하나는 잘생겼다.

주위에서 호감형이다, 남자답게 시원시원하게 생겼다, 멋지다, 빠져든다. 등등의 이야기를 쉽게 듣곤 한다.

흔치 않은 흑발도 선명한 이목구비와도 엄청 어울린다.

5년간 생긴 것 때문에 시비 걸거나, 놀리는 인간이 한 명도 없을 정도이니 이만하면 어디를 가도 빠지지 않는 외모라 자부할 수 있다.

둘째는 눈썰미다.

한 두 번 보면 누구라도 그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

재주가 둔해 모방 할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피하기는 무지하게 잘 피한다.

과거에 한 번 벌집을 건드린 적이 있는데 처음 몇 방 물리고, 이래선 죽겠구나 싶어 집중 좀 했더니 그 수많은 녀석들의 움직임이 보여 요리조리 피해버린 믿기 힘든 일을 경험했다.

그 이후, 도장에서 아이들과 대련을 하면서 그 집중이란 것을 하니 거짓말처럼 다음 동작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 아닌가.

상대는 내가 상상하고 예측한 궤적을 그리며 검을 뻗어왔고, 당연히 난 쉽게 피할 수 있었다.

나도 잘하는 게 있다는 말씀.

생존 본능인가?

어쨌든 눈썰미 하나만큼은 자부심을 가진다.

얼굴에 상처하나 없이 지금껏 이 미모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그런 눈썰미로 인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어쨌거나 문제는 검술에 대한 재능이다.

나도 한 때는 이 악물고 검을 휘둘러봤지만, 발전이 없는 걸 누구한테 하소연하랴.

할아버지가 아직 날 포기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아직은 내 스스로가 아쉬워 검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작가의말

새로운 글로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신선이 되어보렵니다.]를 연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네요.
독자님들에게 죄송한 마음 재미있는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선작, 추천, 댓글 많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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