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 일으켜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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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선생
작품등록일 :
2018.10.02 23:17
최근연재일 :
2018.10.1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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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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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5,855

작성
18.10.0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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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
9쪽

이 책은 뭐야?

DUMMY

인근에 순찰중인 경비병에게 도둑을 인계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는 내 몸이 성한지 살펴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 어쩌자고 그리 위험한 짓을 했느냐!”

“그럼 그냥 다 도둑맞게 놔둬요?”

“그게 아니라 네가 다치기라도 하면······.”

“다치기라도 하면요? 그냥 치료받으면 되죠. 죽기라도 한답니까.”

“고얀 놈. 이 할아비는 네가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진 눈 못 감는다.”

그래, 생각해보면 할아버진 날 끔찍이 아끼시는 분이다.

수련 중에 부상이라도 당하면 오만 호들갑을 떠시며 그 비싼 신관들 치료부터 받게 하시니까.

이게 또 앞뒤가 안 맞는 것이 작은 상처 하나에도 큰 걱정을 하시면서 왜 자꾸 검술을 배우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죄송해요. 앞으론 조심할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할아버지 앞에서는 절로 작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할아버지는 없어진 물건이 있나 살펴보더니 잠깐 나갔다 오겠다며 또 외출을 나가셨다.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오늘은 유흥가 쪽으로 가서 기집들 가슴이나 훔쳐볼까 했지만, 영 흥이 나질 않았다.

아직도 도둑을 쓰러트렸을 때의 감정들이 가라앉지 않았다.

불현듯 내 인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봤다.

이제 진정으로 검을 놓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할아버지한테 가게나 하나 차려달라고 할까?

상단에 안면을 익혀놓은 사람들도 있으니 물건 좀 떼다가 팔면 먹고 사는데 문제는 없을 것 같긴 한데.

그리되면 내 목표인 귀족 여식들과 사귀는 건 포기해야겠지.

아! 이 잘생긴 얼굴이 아깝구나.

지금 상태에서 딱 기사만 되면 아쉬울 것 없는 인생을 살 것 같은데 저주받은 운동신경은 매번 날 좌절하게 만든다.

‘젤라에게 편지나 쓸까?’

내 관점에서 봤을 때 이 도시에서 가장 미인이다.

10살 때 처음 젤라를 보고 한 눈에 반한 후, 짝사랑하는 수준이다.

아무리 찍어도 넘어지지 않는 나무랄까.

몸매하며 얼굴하며 부족함이 없어 그녀를 노리는 경쟁자들이 상당히 많았지만,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훔치지 못했다.

콧대 높은 젤라는 아예 담벼락을 쌓아버리고 일체 접근해 오는 남자들을 만나지 않는다.

젤라가 그리 행동하는 이유가 있다.

대장간 딸인 그녀는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하다.

자신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젤라가 성인이 되면 백작 가문에 시집을 보내기로 혼약을 했다고 한다.

3번째인가 4번째 부인이라나? 지금쯤이면 5번째 첩이 될 수도 있겠군.

어릴 적부터 지닌 특출한 외모가 지나가던 백작의 눈에 띈 것이 그녀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 자리에서 백작은 젤라의 아버지를 찾아가 대장간의 규모를 늘려주고, 왕국군에 공급할 군수물품 일부를 생산하게 해주겠다고 꼬드겼다.

젤라의 아버지는 그 달콤한 유혹에 끔뻑 넘어가버렸지.

이게 다 돈 때문이었다.

돈과 권력이 미인을 쟁취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나도 검을 놓지 않는다고 핑계를 대본다.

이 달 안.

늙은 백작에게 팔려가기 전에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아 보려 한다.


‘이왕이면 점수 좀 따야겠지.’


젤라는 아직 남자의 맛을 모른다.

시집가기 전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

의식이 깨어나는 축복을 그녀에게 내려 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희생정신인가.

난 다시 말하지만 성욕이 아주 왕성하다.

매일 밤 여자 생각만 하면서 잠들 정도이니.

내 훤칠한 외모 덕에 여자들과 잠자리는 이미 많이 가져봤다.

성에 차지 않는 여자들이라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원하는 여성과 사귀고 싶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난 다시 창고로 향했다.

아까 본 그 책의 종이 질이 상당히 특이하고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창고를 뒤져보면 예쁜 찻잔이라도 있으면 선물해 주면 되고.

급히 외출하느라 할아버지는 창고 문을 열어둔 상태.


“요거 괜찮네.”


아무래도 값진 것은 도둑이 더 잘 알아보는 법.

도둑의 포대기에 담겼다가 나온 물건들 중에 두 개의 투명한 보석이 박힌 작은 조각물이 있었다.

기사의 포효하는 모습을 정밀하게 조각해 놓았는데 나무 조각치고는 참으로 정교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어깨에 박힌 두 개의 보석은 설마 진짜는 아니겠지?

진짜 보석이 박힌 것을 이런 창고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진 않았을 것이다.

조각물을 챙기고 바닥을 열어 책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있는 물건들은 시중에서 볼 수 없는 형태가 많았고, 큐빅인지 진품인지 모를 보석들로 장식된 것이 많았다.

내 방으로 돌아왔다.

한 손에 딱 잡히는 책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화려한 표지를 손바닥으로 쓸어보고는 펼쳐 보았다.

속지 한 장, 한 장이 두툼하고 표면처리도 상당히 잘 된 것이 이렇게 질 좋은 종이는 난생처음 본다.

어느새 난 검술에 대한 고민 따위는 잊어버리고 젤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열중했다.

펜에 잉크를 묻혀 하얀 백지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젤라 누님.

하늘에 별을 훔쳐다 달아놓은 듯 그윽한 두 눈빛이 내 가슴에 박힌 날, 난 이미 그대의 노예가 될 운명인지도······.]


이 오글거리는 글은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연애편지 방식이니 나도 편승해야지.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미 혼약한 집안이 있는데 외간 남자의 구애를 받아 줄 여지는 거의 없다.

다만 그녀는 연애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런 편지로 순수한 감수성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

연애편지 같은 건 귀족들이나 주고받는 것이기에 꽤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게 한 페이지에 장황하게 글을 적고 있을 때였다.

‘응?’

기껏 한 페이지를 정성들인 문체로 꽉 채워 가는데 위에서부터 글씨가 차례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무... 무슨!”


머리를 쥐어 짜낸 내 서정적인 문구들이 사라지니 아깝기 그지없다.

종이가 잉크를 빨아먹는 건가?

이런 미친 흡수력은 처음 봤다.

글자가 사라진 종이 표면은 펜에 눌린 자국조차도 남지 않고 처음처럼 깨끗하게 돌아가 있었다.

글씨들이 차례대로 사라지더니 결국 장문의 문구들은 흔적도 없어 증발해 버렸다.

“아!”


마법서라도 되는 건가?

황당 그 자체다.

그때였다.

난 너무 놀라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백지의 윗부분부터 글자가 새겨지는 것이다.

꼭 누군가가 펜을 들고 글을 쓰는 듯, 한자 한자 획이 차례로 이어지며 단어를 완성하고 문장을 만들어냈다.

글씨체도 제각각이었다.

분명 내 글씨체가 아니었다.

지금 유행하는 편지의 방식도, 말투도 아니었다.

터질 듯한 가슴을 진정시키고 읽어보았다.


[미친놈. 발정 났냐? 여기다가 연애편지 쓰고 자빠지고 앉아 있네. 아주 집안 말아 먹을 새끼구먼.]

[크크크크. 간만에 미친 듯이 웃고 있다. 손발이 오글거려서 아직도 못 펴고 있구나. 내 배꼽 내 놔라!]

[보아하니 우리집안 가보를 이어받은 아이 같은데,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한 모양이구나. 그래도 글은 잘 봤단다. 꼭 그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길···]

[답변 거부.]

[내용 없음.]

[답변 거부.]

[답변 거부.]


7개의 문장.

7개의 다른 글씨체.

도대체 뭐지? 마치 답변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이 쓴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들은 내 편지를 읽었고, 그에 대한 반응을 내놓고 있었다.

‘미친! 도대체 이거 뭐냐? 누구지?’

맞다. 방금 침대에 누워서 깜빡 잠이 든 것일 수도.

볼을 꼬집어 봤는데 생생하게 아프다.

편지와 답장.

발신자는 누군지 모른다.

난 다시 떨리는 손으로 펜을 집어 들었다.

서서히 그들이 보낸 답장이 사라지고 백지가 드러났다.


[누구세요?]


물어보았다.

방금 전 상황이 사실이라면 답장도 다시 올 것이다.

내 물음이 사라지고, 한참을 기다리자.


[버릇 고약한 개망나니 납셨군. 예절교육 안 받았냐?]

[크크. 알면 뭐하게? 찾아와서 인사라도 하게?]

[위에 분들, 누구신지 모르지만 상당히 말투가 거칠고 더러우시네요?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손이 닳기라도 하나요? 오랜만에 우릴 깨운 아이잖아요.]

[3번째 괴인이여. 우리라 하였나? 본좌를 아는가? 엮지 말고, 가르치려 들지 말라.]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답변 거부.]

[답변 거부.]

[답변 거부.]


작가의말

내일부터 연재시간은 오후 8시 정도로 잡고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글이 기대되거나 재밌게 읽고 계시다면 추천 한 번 부탁드려요.

선작, 댓글도 좋아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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