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한 건, 죄라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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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8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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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2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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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벨리아

DUMMY

“저 새끼. 잡아!”


아스티는 악에 찬 목소리로 다른 엘프들에게 소리쳤다.


도망치기로 마음먹은 그를 잡기 힘들 거라는 걸 아스티는 알고 있었다.


‘젠장. 벨리아를 처리하려다가 이상한 게 붙어버렸군.’


다른 엘프들은 아스티의 말을 따라 지성을 쫓았다. 그를 향해 화살을 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지성은 그 화살에 의해 사망불허가 발동하면 화살 궤적 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엘프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따라잡을 수가 없잖아!”


그의 능력을 파악하지 못한 엘프들은 지성이 도망가기 편하게 도움을 주는 모양이 되었다. 그렇게 한껏 약이 오른 아스티 일행과는 다르게 지성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마을로 도망쳤다.


마을에 도착하자 엘프들은 더는 지성을 쫓아올 수 없었다.


휴-


‘다들 무사하려나.’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욱과 벨리아를 찾아다녔다. 의원과 신전에 들른 지성은 벨리아가 집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갔다.


지성은 욱과 벨리아의 상태를 한시라도 빨리 확인하고자 했다. 그런 그에게 해가 사라져 어둑어둑한 거리는 방해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도착한 집에는 그가 찾던 모두가 모여 있었다.


“괜찮아?”


지성은 침대에 누워있는 벨리아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허둥지둥하는 그를 욱이 진정시키며 이야기를 했다.


“목숨에 지장은 없다.”


침착한 그의 목소리에 진정한 지성은 그녀가 괜찮다는 말에 안도했다.


“그렇지만 마력고갈상태에서 무리하게 마법을 사용해서 내상이 너무 심하다.” “심각한 거야?”


욱은 그의 질문에 조금 뜸을 들이더니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아마 마법을 쓰지 못할 거다.”

“뭐?”


‘말도 안 돼. 벨리아가 마법을 못 쓴다고?’


헤카테 후보로서 마법이 그녀에게 끼치는 영향은 목숨 이상이었다. 마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그였지만 그녀의 전부였던 마법을 잃은 벨리아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렇게 그녀를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그녀의 어머니가 젖은 수건을 들고 다가왔다.


“그래. 일주일동안은 마법을 쓰지 못할 테니 둘이 벨리아의 일을 좀 도와주렴.”


‘응? 일주일?’


어머니의 말에 지성은 욱을 바라봤다. 하지만 욱은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뭐가 잘못됐나.”

“넌 일부로 그러는 거야, 컨셉이야?”


지성의 말에 욱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벨리아가 마법을 쓸 수 있다니, 다행이다.’


안심한 그는 누워있는 벨리아를 바라봤다. 그녀와 숲에서의 일로 서먹했지만, 곤히 자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조금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그녀가 아픈 게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았다.


이마에 얹어놓았던 수건을 새 수건으로 바꾼 어머니가 자리를 떠나자 방안에는 지성과 벨리아 둘 뿐이었다.


‘오욱, 얘는 어디 간 거야.’


지성은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누워있는 그녀를 간병했다. 간병이라지만 앉아서 그녀를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새근새근 잠이든 그녀를 바라보다 조용히 속삭였다.


“미안... 그러려던 건 아닌데.”


지성은 그녀가 깨어는 것처럼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네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답답했어. 나와는 달리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고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는 걸 좋아하는 너를 보면서 나 자신이 싫어진 거 일지도 몰라.”


어느 순간부터 집착처럼 무리하는 그녀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그였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냥 외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문제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잘난 나태가 그녀를 외면했다.


“하지만 넌 그런 이기적인 놈을 도우려고...”

“넌 이기적이지 않아.”


지성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


“너는 좋은 사람이야. 좋은 놈이라고. 항상 귀찮은 척하면서 도와주고 어머니가 부탁하면 다 들어주잖아?”

“그건...”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지성은 당황스러우면서도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너 다 듣고 있었냐.”

“네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깼거든.”


지성은 벨리아의 이마에 놓여있는 수건을 손가락으로 툭 치면서 말했다.


“그럼 인사라도 해야지.”

“아까 너 나 싫어했잖아.”


그녀의 말에 지성은 볼을 긁적였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서로에게 할 말은 많았지만 둘 사이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넌 날 왜 도와주는 거야?”


지성은 지금까지 가슴 한편에 가지고 있던 의문의 답을 듣길 원했다. 모녀가 자신을 구해주고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이유를. 지성은 만약 자신이 같은 상황이었다면 무시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한테 이렇게까지 잘해줄 이유도 없었잖아. 나였으면 그냥 무시했을 거야.”

“아니, 넌 무시하지 않았을 거야.”


그녀는 누워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까도 말했잖아. 너는 착한 사람이야.”

“나를 왜 그렇게까지 믿는 거야.”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야. 나를 믿어 주는 너에게 나는 숨기기만 하는걸.’


지성은 자신의 감정을 억눌렀다. 그 모습에 벨리아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믿는데 이유가 어디 있어.”


그 말에 그녀를 바라봤다. 창가에 기대어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는 어리기만한 소녀가 아니었다. 그 소녀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그때 오우거한테 당해서 엉망진창으로 쓰러져있는 너를 보면서..”


소녀의 말에 지성은 당시 상황을 생각하고 두려움에 살짝 몸을 떨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습을 소녀에게 보인 것이 창피할 뿐이었다.


“아버지가 생각났었어.”


벨리아의 말에 지성의 잡다한 생각들은 사라졌다. 그는 자신을 집중시킨 그녀의 입을 바라봤다.


“나를 구하려다 고블린에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가. 그래서 믿고 싶었어. 아니, 내 욕심이었는지도 몰라.”


그녀는 몰려오는 감정을 추스르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지성은 그녀를 조용히 바라볼 뿐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나는 항상 생각했었거든. 그때 내가 조금 더 일찍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그때 그곳에 있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살아계시지 않을까.”


벨리아는 창가 넘어 밤하늘에 자기 마음대로 빛나고 있는 별들을 바라봤다.


“나는 그때 나랑 아버지를 공격한 고블린들도 증오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약한 나 자신을 증오했어.”


슬픔에 잠겨있던 눈에서 분노가 일렁였다. 그 분노가 향한 곳은 다른 곳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법에 몰두했어. 강해지기 위해서. 어떤 것으로든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슬픔과 분노가 뒤엉킨 눈이 지성을 비췄다.


“그래서 너를 구했던 거야. 너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그 눈에서 밤하늘을 비추는 별과 같은 무언가가 반짝이며 흘러내렸다.


지성은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살포시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리곤 그녀와 같은 곳에 섰다.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구한 건 너야.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녀는 살짝 놀란 얼굴로 지성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를 믿고 최선을 다해 도와준 것도 너야.”

“그렇지만...”

“그 이유가 뭐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벨리아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부엌에서 벽에 기대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손으로 막고 있던 그녀의 어머니의 입가에도 작은 미소가 걸렸다.


“미안해.”

“응?”

“나는 아직 사과 못했잖아.”


지성은 조금 전 그녀가 잠든 줄 알고 떠들었던 말들이 생각나면서 얼굴을 붉혔다.


“나 때문에 오늘 위험했다는 거 알아. 내가 괜히 고집부려서. 요즘 마음이 너무 급했거든.”


벨리아는 지금까지 지성과 마음에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한 덕에 편한 마음으로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헤카테 후보는 성인이 되는 해에 제사를 통해서 진짜 헤카테인지 판별이 된다고 전에도 말했었지.”

“응. 그랬지.”


지성은 갑작스럽게 나온 헤카테에 대한 이야기에 의문이 들며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사실 그 제사를 지내는 신성절이 일주일 뒤거든. 그때도 말했지만 나는 헤카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실망하는 모습만 떠오르더라고.”


벨리아의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저번에 오우거한테 당했던 일을 생각나면서 지금까지의 노력이 다 의미 없는 것 같고 나라는 존재도 다 필요 없는 것 같고...”


그녀의 말을 밖에서 듣고 있던 욱이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풉-


“너 생각보다 소심하구나.”


지성은 평소의 분위기와는 달리 걱정을 줄줄이 이어가는 그녀가 귀여워 보이면서도 어린 소녀가 가지고 있는 부담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헤카테가 아니면 어때. 너는 너로서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잖아. 그걸 모두 알고 있을 거야.”


지성의 반응에 화를 내려던 벨리아는 이어지는 말에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 마을에 너 정도 수준에 마법사가 흔한 것도 아니고 너무 걱정하지마. 멍청아.”

“멍청이!?”


그렇게 둘은 해가 올라올 때까지 대화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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