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무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중·단편

Gatmeu
작품등록일 :
2018.10.08 19:59
최근연재일 :
2018.10.17 05:3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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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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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3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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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PM - 2

DUMMY

와장창!


무언가가 있는 힘껏 유리창을 깨는 소리가 맵 전체에 울려 퍼졌다. 온 몸을 던져 유리창을 깨 먹은 장본인인 동휘는 자신의 몸 군데군데에 박혀있는 유리 조각을 무시한 채. 전력으로 대저택의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공포 게임. 공포 게임 제기랄!”


괴물. 혹은 그 이상 가는 무언가에게 쫓기고 있는 동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며 공포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장르의 게임이 존재한다. 그 중, 공포 게임은 갑작스럽게 괴물이 튀어나오는 것만 주의한다면, 다른 어느 게임보다 단순해지는 게임 중 하나였다. 특히나 공포 게임을 즐기는 동휘에게 있어선 이만큼 간단하고 무난한 게임도 없었다.


그럴 터였다.


“제작자 이 시부럴놈아아아아아아!”


동휘는 있는 힘껏 달리며 자신을 쫓아오던 그것을 잘 따돌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뒤로 돌렸다. 하지만 그의 기대를 완벽하게 배신해버린 그것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다.


“제발 좀 죽어라! 좀! 조오옴!!”


그를 쫓아오고 있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섬뜩한 표정으로 쫓고 쫓기는 이 상황이 즐겁다는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다행히 달려오는 속도는 동휘가 거리를 벌리고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이따금 안전거리를 확보한 후 총알을 박아 넣어 주곤 있지만, 총알을 맞으면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으니 데미지를 입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 점이 동휘를 더욱더 무섭게 했다.


쫓아오고 있는 괴물의 정체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옆에 서서 괴물과 자신에게 권총을 갈기던 그녀였다.


폐허가 된 저택을 배경으로 하는 흔하디흔하고 무난한 게임을 나아가던 도중. 실수를 가장하여 동휘에게 총알을 몇 발 쏘는 것으로도 지루함이 가시지 않은 그녀는, 너무 지루하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척 보기에도 함정인 것을 건드리고 말았다.


지금껏 나온 적 없는 괴물의 시체. 플레이어인 자신들이 죽이지 않았는데 괴물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면, 십중팔구는 죽은 척하는 괴물이란 것을 동휘도 그녀도 알고 있었다. 다가가면 괴상한 소리를 내며 플레이어를 덮칠 거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괴물이 벌떡 일어난다면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 넣어 줄 생각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괴물이 그녀의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공격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공격이 있을 거란 생각 자체가 보란 듯이 빗나갔다.


괴물은 그저 연기를 내며 사라졌다. 정확하겐 괴물이 사라지며 남긴 연기가 그녀의 몸을 뒤덮은 후, 그녀에게 흡수당하듯 사라졌다.


그리곤 이 꼴이다. 끽 해봐야 데미지를 좀 먹던가, 행동 불능이 되던가. 다른 괴물이 튀어나오던가 할 거란 동휘의 생각은 딱 반만 맞았다. 다른 괴물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꽤 익숙한 형태를 한 괴물이. 그리곤 그에게 데미지를 입혔다. 물리적인 데미지가 아닌 정신적인 데미지를.


“어, 저기. 누님?”


연기를 흡수한 그녀는 동휘의 말에 반응해 고개를 돌렸다. 육식성 맹수가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사냥감이 공포에 짓눌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맹수의 눈에서 안광이 보였기 때문일 거라고 동휘는 생각했다. 그리고 붉은 빛의 안광을 자신에게 내뿜는 그녀를 본 동휘는, 그녀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한 박자 늦게 있는 힘껏 그 자리를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 내 언젠가 이럴 줄 알았지!


언제 자신을 공격할지 모르는 괴물을 옆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늘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어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오고 있으니, 이만한 공포가 없다.


그녀는 저런 모습이 아니라도 여러모로 성가신 존재였다. 옆에 있으면 사건이 끊이질 않고, 높은 확률로 불똥이 자신에게 튀었으며, 게임을 풀어나가는 머리가 좋다는 것 이외에는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가 그녀와 함께 하는 것은 장점이 단점을 모두 커버하기 때문이었거늘.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 이건 끝나고 한소리 해야겠네. 아니, 하지 않곤 못 넘어가.


동휘는 배경 소품으로 널브러져 있는 하녀의 시체를 뛰어넘은 후, 미끄러지듯 복도의 모퉁이를 돌아 눈앞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가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잡몹 두 마리의 머리에 각각 총알을 세 발씩 박아 제거. 괴물이 떨어트린 총알을 주워들고 다시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이대론 끝이 없겠는데.”


7발씩 장전되는 권총의 탄창을 네 번이나 갈아 끼우면서 그녀를 공격했지만, 총알을 맞고도 미동조차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플레이어를 제물로 챕터 보스를 만들 리는 없으니 분명 기본 몹일 텐데. 기본 무기론 데미지를 입지 않도록 설정된 건가? 쓰러트리는 다른 방법이 있나? 숨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스치고 지나갔다. 보스몹이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쓰러지지 않을 리가 없다.


그는 그녀가 문을 열고 나타남과 동시에 방에 배치된 탁자를 있는 힘껏 밀어 그녀를 벽으로 몰아넣었다.


“그, 으윽.”


“제발 여기서 끝냅시다. 예?”


그는 벽과 탁자 사이에 끼어 버둥대는 그녀의 머리에 정확하게 총구를 겨누고 내리 7발을 꽂아 넣었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 그녀가 쓰러지는 일은 없었다.


“아, 진짜!”


동휘는 몸으로 탁자를 밀어 넣으며 권총을 재장전 했다. 이대로 한 탄창을 더 그녀의 머리에 선물 해주려던 찰나에 이게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 간단하게 생각해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녀가 탁자를 두 동강 내기 직전, 동휘는 수많은 생각을 마치고 행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는 파격적인 판단을 내린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당연하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공포 게임을 많이 해본 자신들에게야 그녀를 저 꼴로 만든 시체가 함정으로 보이는 것이지, 공포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개 그 게임을 처음 하는 사람에게 맞춰서 난이도를 책정한다. 그렇다면 저 시체는 엔간해선 한 번쯤 걸리고 넘어가야 하는 구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해답 또한 가까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이벤트가 발생하면 그 이벤트가 끝나기 전에 다른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다.


동휘는 괴물 화 되어버린 그녀를 피해 지금까지 꽤 먼 거리를 달려왔다. 그동안 일어난 일이라곤 부자연스럽게 배치된 기본 몬스터 몇 마리가 자신에게 달려든 것 외엔 없다. 동휘는 지금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 이대로 가다간 분명 어딘가에서 막히는 구간이 온다.


그렇게 되면 막힌 이유를 찾기 위해 같은 방향을 빙빙 도는 일이 발생한다. 급박한 상황이 닥쳐오면 깜짝 놀라 도망치게 되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사라지게 되고, 앞으로 나아갈 열쇠를 놓치게 된다. 초보자들이 자주 하는 실수이며 제작자가 의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게임의 잔뼈가 굵은 동휘는 자신이 그런 초보자 적인 실수를 했다는 것에 어이없음을 느꼈다. 동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그녀를 확인했다. 그녀는 포기를 모른다는 듯이, 어떻게든 자신을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눈에 불을 켜고 쫓아오고 있었다. 동휘는 한숨을 쉬며 지도를 펼쳐 들었다.


- 보자, 분명 누님이 트랩을 건드렸을 때 있었던 곳이······.


어째서인지 영어로 된 지도에서 1F Main Kitchen이라 쓰여있는 장소를 찾아내고 동그라미를 친다. 거기서부터 자신이 달려온 거리를 역산하자 그녀를 내버리고 온 장소가 2F Kid's Room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도에는 자신과 그녀가 조사한 내용이 간략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자신들이 조사한 곳은 어디 어디가 있는지. 어떤 문이 열리고 어떤 문이 열리지 않는지. 동휘는 그 정보들을 토대로 2층에서 1층으로 가는 가장 빠른 루트를 파악해냈다.


- 여기는 조사한 적이 없는데. ······과연, 시현인가.


1층 메인 식당까지 가는 최적의 루트를 짚어가다 보니 그와 그녀가 조사한 적 없는 곳이 열려있는 것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먼저 갔다던 팀원들이 조사한 것도 지도에 연동이 되는 모양이었다. 아직 가본 적 없는 3층의 지도를 펼치자, 실시간으로 지도에 표시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문을 열고 라운지와 화장실을 지나쳐 나오는 계단을 이용해 1층으로 달려온 그는, 점점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대저택이란 설정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보니 지나쳐 온 방이 몇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거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지쳐가는 그에 비해, 체력에 한계가 없는 그녀가 그와 벌어진 거리를 점점 좁혀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동휘는 숨을 고르며 달리기에 박차를 가했다. 쉬려면 좀 더 나은 상황을 만든 후에 쉬어야 한다. 힘들다고 멈춰설 타이밍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있는 힘을 다해 달리던 동휘는 기나긴 복도 끝에 보이는 무언가에 시선이 닿자, 그 자리에서 멈춰 서버리고 말았다.


“아니, 이게 무슨······.”


목적지인 메인 주방까지는 일직선으로 쭈욱 이어진 복도가 전부였다. 어림잡아 200M는 되는 긴 복도는 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 하나 없이 오로지 복도뿐인 공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택을 내부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지는 배치였다.


그런 비효율적인 배치의 복도에 중앙에 도착하자, 복도 끝에 나타나 그를 멈춰 서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뒤를 쫓아오고 있던 그녀였다.


“텔레포트 기능도 생겼슴까? 아니면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비밀 통로라도 있어요? 그거 좀 반칙 아니······.”


뒤따라오던 그녀가 눈앞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보며 그는 합리적인 생각을 비아냥을 섞어 입 밖으로 내뱉었다. 자신이 보지 못한 채 지나친 이벤트가 재생될 때. 가끔 등장인물들의 배치가 바뀌곤 하니, 그런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동휘가 무의식적으로 돌린 행복회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벅저벅. 저벅저벅저벅.


“······.”


발소리가 두 개. 앞에서 하나. 그리고 뒤에서 하나.


“젠장.”


이번엔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오른쪽과 왼쪽은 벽으로 막혀 있고. 앞과 뒤는 똑같이 생긴 괴물에게 막혀 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 그녀에게 죽어 나간 괴물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라고? 설마 여기서 더 늘어날 생각은 아니겠지?”


지금 벌어진 일까지가 이벤트라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동휘는 생각했다. 만약 이것이 이벤트가 아니라면. 자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이 맞는다면. 자신은 빠르게 이 게임을 포기하고 그녀에게 죽어 나간 괴물들처럼 비명에 가까운 노래를 부르며 자결할 생각마저 들었다.


보스 괴물이라면 그 디자인이 사용되는 것은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가 끝이다. 하지만 이것이 잡몹이라면. 앞으로 지나가는 곳엔 그녀와 똑같은 모습을 한 괴물이 널려있을 거란 이야기가 된다.


“에이, 설마. 이건 공포 게임이지 코즈믹호러 게임이 아니잖아.”


그는 들고 있던 권총을 굳게 잡았다. 빈약하기 그지없는 기본 무기였지만, 이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줄 유일한 무기기도 했다.


판단은 신중하게. 행동은 빠르게.


남은 총알은 장전된 7발을 제외하면 21발이 전부. 뒤따라 오고 있는 괴물에게 맞춘 총알은 조금 전 머리에 박아준 7발까지 합하여 총 35발이다. 앞에 있는 괴물에게 남은 총알을 낭비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여기서 하나는 쓰러트려야 살아날 구멍이 생긴다. 그렇게 판단이 끝난 동휘는 새롭게 나타난 괴물을 깔끔하게 무시하기로 했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


Kid's Room에서 그랬듯이, 자신이 먼저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한 발의 총알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다. 혹여나 한 발이라도 빗나가 괴물이 죽지 않는 상황을 방지하려면 위험하더라도 거리를 좁힐 수밖에 없다.


남은 총알을 모두 필중하고도 괴물이 살아있다면 그땐 깔끔하게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일정한 간격으로 7번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괴물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동휘는 혀를 차며 빠르게 권총을 재장전 시킨 후,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확실하게 좁혀져 가던 괴물과의 거리가 0이 되었을 때. 얼마 없던 총알도 모두 소진되어 0이라는 숫자를 띄웠다. 방아쇠를 당겨도 짤깍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젠장. 젠장.”


동휘는 단 한 발의 총알도 낭비하지 않았다. 하지만 괴물은 쓰러지지 않은 채. 자신에게 이를 드리우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아쉽지만 이 괴물을 쓰러트리는 방법은 따로 있는 모양이며, 자신은 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죽음뿐이었다.


- 이건 나가서 잔소리를 좀 해야겠군.


그렇게 어려운 게임이 아님에도 자신이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한 것은. 9할 8푼은 그녀 때문이었다. 남은 2푼은 그녀를 말리지 못한 자신의 잘못인 걸로 치더라도 그녀가 자신보다 49배는 더 잘못 한 것이다.


동휘는 죽기 직전. 자신이 그녀에게 잔소리하는 미래의 모습을 미리 떠올려봤다. 무슨 말을 하든 핑계로 일축하며 자신이었다면 간단히 클리어했을 거라 말하는 그녀의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증명할 방법이 없어진 후라면 더더욱 자신을 놀리기 위해 그렇게 대답하리라.


“숙여요!”


“······!”


괴물이 자신에게 이를 드리울 때. 동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찌 되먹은 것인지 요 3일간 진행한 게임들은 게임 속 고통이 여과 없이 전해져 왔다. 첫날 그녀가 있는 힘껏 휘두른 야구 방망이에 등짝을 후드려맞고 30분을 뒹굴면서 확인한 사실이었다.


나무로 된 탁자 정도는 간단하게 두 동강 내는 괴물의 이빨에 씹히면 필히 피부부터 그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이 뜯겨 나갈 테니. 그 고통이 무서워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던 것인데, 어둠 속에서 의외의 소리가 들려왔다.


괴물의 이빨에 물어뜯기기 직전. 소리에 반응해 몸을 숙였다. 그러자 두타타타타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직전까지 그의 상반신이 놓여있던 곳을 쏟아지는 총알과 살점이 휩쓸고 지나갔다.


“······휘유.”


“아슬아슬했네요! 그쵸?”


그는 자신의 뒤통수에 붙은 괴물의 살점을 손으로 툭툭 털어내며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가 들려 온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반가운 얼굴이 싱긋 웃고 있었다.


“시현아아아아!”


동휘는 반가운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그런 행동이 쑥스러운지, 시현이라 불린 소녀은 헤헤거리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있긴 한데. 일단 이 자리에서 벗어난 후에 하죠!”


“응. 응, 그래. 그러자 제발.”


동휘와 시현은 하나 남은 괴물을 무시한 채 계단을 올라 라운지로 향했다.


앞장서는 시현을 보며 동휘는 든든함을 느꼈다. 키도 작고 자신보다 나이도 다섯은 어리지만, 적어도 실수를 가장해 자신에게 총을 쏘지도 않고, 쓸데없는 짓을 하지도 않는다. 그런 시현이 자신을 구해주기까지 했으니 그 자그마한 등이 커다랗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리라.


“휴. 여기라면 안전할 거예요.”


“정말 고맙다야. 나 진짜 죽는 줄 알았거든.”


“팀원이 팀원을 살려준 건데 고마워할 거까진······.”


“네가 저 마녀랑 하루라도 함께 다녀봐! 당연하고 사소한 것에도 감동하는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다.”


“아하하, 성아 언니가 또 사고를 친 모양이네요.”


성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이름이었던가 하고 동휘는 새삼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되새겼다. 친해진 이후론 괴물이니 악마니, 마녀니 하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데다가 메신저에도 마녀로 저장되어 있었다. 그녀의 앞에서 그녀를 부를 땐 어쩔 수 없이 누님이라 호칭했으니,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을 일이 없어 자연스레 잊고 지냈다.


“그 사고가 대형사고로 번질 뻔한 걸 네가 막은 거야. 넌 영웅이다. 영웅.”


“대처법만 알면 그렇게 어려운 구간도 아니에요. 끽해봐야 잡몹 3 정도?”


“잡몹 3? 그렇게 간단한 거야?”


동휘는 63발이나 되는 총알을 맞고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던 괴물을 떠올리곤 고개를 저었다.


“기본 권총으로는 데미지를 못 주지만 그 외에 다른 무기론 서너 발이면 잡을 수 있어요. 거기다 괴물이 나오기 전에 획득 가능한 아이템인 ‘T3의 체액’을 가지고 있으면 덤비지도 않는걸요.”


시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숨김없이 동휘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동휘가 들고 있는 무기를 확인하곤 그가 위기에 처해있던 이유를 짐작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도 권총을 쓰고 계신 거예요? 기관단총 계열의 무기가 두 개나 나왔을 텐데?”


“그래. 나오긴 나왔지. 내가 줍지를 못했을 뿐.”


나오는 열쇠며 무기며 잡다한 아이템 하나하나까지 모두 성아가 들고 갔다. 자신에게 떨어지는 거라곤 권총 한 탄창을 채울 수 있는 총알 7발이 전부였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괴롭힌 것은 제작자가 아니라 성아 그녀였음을 실감했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엿먹일 수 있는 건 그녀뿐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하아. 생각도 말고 말도 말자. 그럴수록 나만 피곤해져. ······그건 그렇고 용케 여기까지 내려왔네. 3층에 있던 거 아니었어?”


“아, 그게 말이죠. 3층에서 막혀서 진행이 안 되고 있어요. 저보다 뒤늦게 도착한 상대 팀은 아무런 제약 없이 지나갔는데 저는 막혀 있으니, 뭔가 빠트린 게 있나 싶어서 되돌아보려고 내려왔어요. 그러던 도중에 총소리가 들려서.”


“다른 팀은 전부 지나갔는데 총소리가 밑에서 났으니 우리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죠.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려나.”


“좋았지. 아니, 천운이지. 덕분에 내가 살았잖아.”


동휘는 시현의 손을 잡고, 있는 힘껏 위아래로 흔들었다. 시현은 동휘가 때때로 오버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반응 없이 아이템 창을 열었다.


“그럼 일단 제 아이템을 나눠드릴게요. 보자, 약초 몇 개하고. 총은 이거에 총알은 이 정도면 되겠고······.”


동휘는 자신의 아이템 창으로 하나씩 아이템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진짜로 눈시울이 붉어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이제야 좀 게임다운 게임을 할 수 있겠네. 야, 걱정하지 마라. 이 아저씨가 클리어까지 안전하게 모셔줄 테니까.”


“기대하고 있다고요.”


“그래 인마. 이제부턴 이 오빠만 바짝 쫓아오면 돼. ······라고 말하고 싶긴 한데,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근황을 모르니 당분간은 네가 앞장서야겠다.”


“아하하. 일단 지도를 봐주세요.”


시현은 지도를 열어 브리핑을 시작했다.


“지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1층부터 3층까지 저희가 조사하지 않은 곳은 한 곳도 없어요. 그리고 막혀 있는 곳은 여기.”


3층의 지도에서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공간에 동그라미가 쳐졌다.


“2층과 3층에서 얻은 조각들을 결합해 여기서 사용. 숨겨져 있던 다락방이 나왔어요. 그리고 다락방 안에는 Pantry의 열쇠가 있었고요.”


“Pantry?"


“식료품 저장고. 오빠랑 만난 복도 끝에 있는 메인 식당과 이어져 있는 곳이죠.”


“3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게 되어 있었군.”


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1층의 식료품 저장고에서 2층 Study Room으로. 거기서 다시 3층의 Piano Room으로 도착하자 시현의 손이 멈춘다.


“해서, 이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이벤트는 다 본 게 되는 거죠. 그런데도 여기. 여기서 막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어요.”


“상대 팀은 지나갔다며? 차이점 같은 건 없었어?”


“사용한 열쇠는 똑같았어요. 그 열쇠를 얻는 것이 마지막 관문이었으니 이벤트를 빼먹진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아이템을 빠트린 게 아닌가 확인하러 온 거군.”


“그렇죠.”


동휘는 시현이 해준 이야기만으로 어떤 식으로 게임이 흘러간 것인지 상상을 할 수 있었다. 퍼즐의 위치. 얻은 아이템의 사용.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시현의 설명은 흠잡을 곳 없이 깔끔하게 맞아떨어졌다. 공략 사이트에서 공략을 보는 느낌과 흡사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아무래도 헛다리를 짚은 거 같은데.”


동휘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시현에게, 동휘는 성아에게 했듯이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일단 두 가지만 대답해줘.”


“아, 네. 알고 있는 거라면.”


“상대 팀에 탈락자는 있었어?”


“아뇨. 한 명이 팔을 다친 모양이지만 탈락자는 없었어요.”


그는 단번에 그것이 성아의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마녀 누님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거야? 아니면 저대로 탈락?”


“아. 성아 언니라면 트리거가 발동한 메인 식당에서 얻은 아이템을 사용하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예요.”


“방금 네가 날려버렸는데도?”


“다들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잖아요? 아무한테나 사용하면 그 자리에서 풀리고 괴물도 원래 모습을 드러내요.”


후우우.


지금껏 참아왔던 모든 짜증이 한숨과 함께 동휘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이것으로 게임을 하는 동안은 그녀에게 이번 일로 짜증을 내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꽤 담담한 목소리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지시했다.


“일단. 우리 잠자는 마녀부터 구하러 가야겠군.”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 않다는 티가 팍팍 나는 목소리라고 시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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