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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재앙급 빌런의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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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삼마
작품등록일 :
2018.10.10 22:37
최근연재일 :
2018.11.2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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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0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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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내리는 비가 무거워 (3)

DUMMY

언뜻 보면 노인도 자존심이 아주 강해 보였다.

아까도 혼자서 상대해줄까 물었고.

이렇게 내 발을 묶어뒀을 때 부하들과 협공하면 쉽게 쓰러트릴 수 있을 텐데.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즉, 노인이 부하들에게 미리 말해둔 것이다.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뭐, 굳이 노인과 상대한다고 나선 나도 피차일반이긴 한데.


나는 자세를 고쳐잡고 노인을 도발했다.


“곧 부하들을 보게 될 거요.”


내 말에 노인이 코웃음 쳤다.

우리의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쿠구구구!

노인이 공중에 떠올랐다.

그의 주변이 시끄럽게 요동친다. 몸에서 일렁이는 무형의 기운과 함께 돌멩이와 먼지들이 떠오르더니 먼지 태풍이 불었다.

폼을 보니 중력은 아닌 것 같고.

상대의 능력에 확신이 서질 않으니 선뜻 나서기 어려웠다. 독액 같은 경우는 어떻게든 흑갈로 버텨낼 수 있었다지만, 만약 바람이라면 근접형으로서 상당히 골치가 아파진다. 다가가는 것 자체에 제약을 받을 테니까. 염동력도 마찬가지였다.

화마처럼 대놓고 유명한 게 아니라면 상대가 강할수록 심리전이 점점 깊어지는데, 지금 같은 경우가 바로 그 꼴이었다.


그때 노인 쪽에서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피피핑!

공중에 떠 있던 돌멩이들이 탄환처럼 쏘아졌다.

제길, 염동력이었다! 나는 옆으로 굴러 피한 후 최대한 힘을 모아 발을 내디뎠다.

쾅! 콰앙!

두 번의 발돋움에 땅이 움푹 파였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움직임이 도중에 멈췄다. 내 몸이 서서히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곧바로 달려드는 걸 보니 감각은 나쁘지 않다만, 너무 늦었군.”


확실히 생각이 짧았다.

염동력인 줄 알았다면 정면승부는 피했을 텐데.


염동력은 정신지배나 시선제압과는 능력의 본질이 조금 달랐다. 정신에서 파생되긴 했으나, 상대가 이를 파훼하려면 육체적인 힘 또한 필요했다.

그런데 모든 능력이 그러하듯 능력에는 수준에 따른 격차라는 게 있다. 서대륙으로 가기 직전에 봤던 항구의 염동력 능력자는 속도도 느리고 힘에도 제한이 많았다.

그런데 노인의 염동력은 달랐다.

아무리 애를 써도 풀리지 않는다.


콰아앙!

그가 내 몸을 땅에 처박았다.

쓰러진 상태로 하늘 올려다보니, 어느샌가 커다란 바위들이 하늘에 둥둥 떠 있었다.


바위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추락했다.

마치 유성처럼.


콰과과과광!



***



새카만 어둠 속.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몸이 꼼짝도 하질 않았다.

무거운 중압감만이 온몸을 지배했다.

노인의 시야에서 벗어났으니 염동력 때문은 아니었고, 그저 바위에 짓눌렸기 때문일 테지.

어둠 속에서 나는 그저 누워있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아, 내가 졌구나.

그것도 엄청 허무하게.


과거의 영광에 취했던 걸까. 지금의 내가 상대하기에 역부족인 상대는 이 세상에 차고 넘쳤다.

이번에는 순전히 나의 불찰이었다.


그것보다 대체 얼마 만에 느껴보는 패배인가.

억울함보다는 새로운 감회에 젖었다.


과거에도 그랬듯 패배는 내게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것도 목숨을 부지했을 때의 얘기지.


어떻게든 벗어나려 해봐도 요지부동이다.

방법이 없었다.


기적처럼 새 삶을 얻어, 이제 막 새로운 목표가 생긴 참이었는데. 고작 이런 곳에서······.


내가 체념하려는 순간.


갑자기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런데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나의 의지가 아닌데도 나의 의지처럼 느껴졌다.

이게 무슨?


의지가 내게 속삭인다.

지금이라고.

지금 달라고 내게 애원했다.

고작 단순한 사념일 뿐인데, 나는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누구의 의지인지.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사물도 역사가 깊어지면 의지가 깃든다고.


무수한 히어로를 죽였다. 그들은 항상 나를 죽이려고 혈안이 됐으나 정작 내 앞에 선 자들은 공포에 휩싸인 채로 죽었다.

무수한 빌런을 죽였다. 나를 경외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같은 빌런이라고 동질감 따위를 느끼진 않았다. 그저 내 눈에 거슬리고 방해되면 죽였다.


히어로들이 나를 보고 일컬었다.

최악 최흉의 빌런이라고.

빌런들이 나를 보고 일컬었다.

빌런의 정점이라고.

모든 이가 나를 보고 일컬었다.


흑갈(黑蠍) 가온이라고.


흑갈은 내게 무기이자, 파트너이며, 삶이었다.

흑갈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흑갈로 세상을 평정하고 정점을 찍었다.


과거로 회귀해서도 또다시 흑갈을 만들었다.

한몸과도 같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흑갈이 내게 보내는 ‘의지’를.


전생에선 이런 적이 없었다.

두 번째 삶에서야 의지가 느껴지다니.


······그런가. 그런 거였나.

과거로 돌아와도 너는 나를 따라와 줬구나.


나는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힘도 부족할뿐더러 바위에 짓눌려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팔 하나를 움직이기 위해 전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때 흑갈의 의지가 나를 도왔다.

그제야 조금씩 돌무더기를 헤치기 시작했다.

모든 힘을 쏟아부어 천천히 팔을 움직였다. 그러자 저절로 가슴 부분에 흑갈이 풀렸다.

정장 속에 있던 마지막 주사기를 꺼냈다. 조금 찌그러졌지만 흑갈 덕분에 완전히 부서지진 않았다.

그러나 주삿바늘이 휘어 꽂는 데 지장이 있었다.

나는 다시 힘겹게 팔을 움직여, 입 위에서 주사기를 움켜쥐었다.

콰직! 플라스틱 잔해와 검은 추출액이 입안으로 떨어졌다. 플라스틱을 씹으며 추출액을 삼켰다.


“욱!”


안쪽에서부터 구역질이 올라온다.

플라스틱 잔해가 목구멍에 긁혀 따가웠다.

숨조차 내쉬기 어려웠다.

억지로 액과 함께 꾸역꾸역 삼키자, 곧바로 반동이 찾아왔다.


“끄윽······!”


전보다 심한 고통에 나도 모르게 신음했다. 몸이 피로한 상태라 견디기가 더욱 힘겨웠다.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예상을 넘어선 고통 탓에 실성한 게 아니라, 조금 전까지 포기하려 했던 나 자신이 우스워서였다.

내가 언제부터 이리 나약했었나. 몸이 약해지더니 정신까지 썩어가나. 패배할지언정 체념이라니.

스스로 되뇌었다. 악착같이 살아온 그간의 일생을 부정할 생각이냐고.


어둠 속에서 혼자 실실 웃었다.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



노인은 허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가온의 반응이 없었다.


‘벌써 끝인가?’


노인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한 명씩 숨어서 기습했다지만, 제 부하를 열이나 죽인 상대였다.

제 앞으로 당당히 나선 패기며,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결과는 허무했다.


‘이리 약한 놈에게 대체 몇이나 당했단 말인가.’


일단 전투가 끝나긴 했는데, 이겨도 이긴 것 같지가 않았다. 상부에 뭐라고 보고해야 좋단 말인가?

고작 저 한 놈 잡으려고 끌고 온 게 백사 전원에 용병이 수십이다. 그런데 열씩이나 당했다고 어찌 보고한단 말인가.


노인이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끝난 건 끝난 거고, 일단 시체를 거둬야 하니까.

그리고 염동력으로 돌무더기를 치우려 하는데.


노인이 움직임을 멈췄다.

전신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노인이 다시 몸을 띄워 크게 물러났다.


돌무더기가 조금씩 흔들린다.

역시 아직 살아있었다.


‘이게 대체······.’


그런데 좀 전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와 마주한 느낌이었다.

노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도망······.’


노인은 스스로 한 생각에 놀랐다.


‘도망쳐야 한다고? 이 내가?’


그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

노인은 제 감정과는 반대로 오히려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손이 떨리는 걸 애써 외면하며.

근처에 있던 차량과 바위, 나무, 집채, 보이는 건 전부 공중으로 띄웠다. 저 돌무더기에서 나오는 순간 전부 한곳에 때려 박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콰아아앙!

충격과 동시에 돌무더기가 한꺼번에 흩어졌다.

눈앞까지 다가온 파편을 노인이 염동력으로 멈추게 했다. 그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노인의 눈에 검은 게 보였다.

가온이다. 분명 가온인데.

아까와는 그 모습이 확연히 차이 났다.

골격이 더 커지고 외피가 더 세밀하게 변형됐다. 묵빛은 더 진해졌으며 꼬리가 조금 커졌다.

그런데 그런 외형적인 부분은 노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끔찍하고 흉흉한 기운에 저도 모르게 떨었다.


‘내가 두려워한다고? 고작 저런 애송이한테?’


노인은 A급 능력자였다.

서열로만 따지자면 A급의 중위권 정도 됐으나, 같은 A급이더라도 대우를 달리 받을 정도로 노인은 완숙한 베테랑이었다. S급을 넘기엔 재능이 한참이나 부족했지만, 그래도 노인은 만족했다. 이 정도도 못한 이들이 많았으니까.

또한, 그렇기에 자부심도 넘쳤다.

염동력은 다른 능력들과의 상성이 아주 좋았다. 한 마디로 약점이 별로 없는 능력이었다. 거기에 그 격까지 높아지니 S급만 아니라면 누구든 상대해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자부심이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우, 우오오오오!”


노인이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억지로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공중에 떠 있던 물체들을 일제히 가온에게 쏘아냈다.


콰과과과광!

흙먼지가 거칠게 피어오른다.

먼지가 걷히고.


가온은 멀쩡하게 서 있었다.


가온이 천천히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다시 한 번 가온의 움직임을 멈추려 했다.

염동력을 사용하자 가온이 멈췄다.

그제야 노인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하, 하하하! 그럼 그렇지! 네깟 놈이 갖은 수를 다 써봐야 아무 소용 없다!”


노인이 가온을 비웃었다.

입으로는 웃고 있는데, 눈은 불안에 떨었다.

그가 신뢰하는 ‘감’이 계속 경고했기 때문이다.


가온이 고개를 까닥였다.


‘뭐······.’


노인이 그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분명 염동력을 사용했는데, 움직일 수 없을 텐데.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걸어온다.

무슨 특별한 반응도 없이, 염동력이 풀렸다.


노인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의 머릿속에 더 이상 자부심 따윈 없었다.


작가의말

정말 비가 오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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