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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믁
작품등록일 :
2018.10.11 21:31
최근연재일 :
2018.10.1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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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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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UMMY

-질겅질겅


저녁에 먹은 햄버거가 소화가 덜 됐는지 오른쪽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어깨를 누가 짓누르듯 몸 전체가 무거웠다. 이럴 때 껌을 씹는 것은 상당한 도움을 줬다. 턱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생성해낸 침이 소화를 원할 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껌 씹기도 꽉 막힌 소화불량엔 효과가 없었다.


-퉤


껌을 뱉어버렸다. 가슴까지 답답해서 한숨이 나올 정도로 꽉 막힌 상태. 병원을 가야겠으나 일단은 참아야 했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달빛은 별들까지 집어삼킬 정도로 밝았다. 보름달이 뜬 날. 구름은 한 점 없었고 바람은 청명했다. 하늘은 그야말로 평화로웠다. 마천루라고 하던가. 난 120층 높이의 빌딩 옥상에 걸터 앉아있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하지 않고 그저 담벼락에 앉은 상태. 바람만 불어도 떨어질 것 같은 위태로움 속에 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120층의 높이는 나에게 막대한 시야를 선사했다. 지상에서는 고층 건물들에 가려 볼 수 없었던 광활한 풍경이 꽤나 볼만했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낮보다 밝아 보이는 화려한 조명들과 네온사인들. 그리고 그곳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인간들. 저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 내 자리는 없다. 난 그들과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나와 다르다.


그들은 인간이지만 난 인간이 아니다.


-


문을 열고 집을 들어오니 적막한 어둠만이 깔려 있었다. 난 굳이 불을 켜지 않고 바로 냉장고로 걸음을 옮겼다.

인스턴트로 가득 찬 냉장고 안에서 생수 페트병을 꺼내서 벌컥 벌컥 들이켰다. 차가운 물 때문에 목 안이 얼얼하다.

리모콘을 찾아 티비를 켰다. 즐겨보는 것들은 드라마나 영화였지만 오늘만은 뉴스를 틀었다. 뉴스에선 늘 이슈가 되는 몬스터와 외생물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난 속옷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몸을 씻어야했다.

옷을 벗으니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복부의 검상이 깊게 나 있었다. 상처 난 부위를 살짝 건드렸더니 살을 째는 고통이 밀려온다. 그러나 난 굳이 상처에 어떤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어차피 내일이 되면 말끔하게 나을 테니까.

적절한 온도의 물은 내 몸의 안락함을 선사한다.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며 화장실 전체를 덮는다.


“오늘 서울 서초구에 출현한 거대 몬스터 때문에 약 30명의 시민이 다쳤고 9명의 사상자가 났습니다. 몬스터 출현 후 5분도 되지 않아 10명의 ‘에메넨스’가 출동했지만 몬스터 진압 과정에서....”


수건을 머리에 걸치고 옷을 입는 동안 앵커의 목소리가 귀에 속속히 박혔다. 근래 일어난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이지만 앵커의 톤은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았다. 난 다시 냉장고를 뒤적거려 초코바를 하나 꺼냈다. 곡물이 여기저기 붙어있는 에너지바다.


“아차차..”


순간 까먹은 약속이 생각났다. 오늘 분명 그녀에게 들리기로 했었는데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난 재빨리 핸드폰을 찾았다. 핸드폰은 이미 빨래통으로 들어간 내 옷 안에 있었다. 찾고 나니 지이잉하고 진동이 울렸다. 그녀였다.


“어디야! 오늘 오기로 한 거 잊었어?”

“아. 미안. 방금 집에 들어왔어. 까먹었네.”


전화기 뒤로 그녀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난 살짝 전화기를 귀에서 떼었다.


“진짜 지금 장난해!? 어떻게 내 생일을 까먹을 수가 있어?”


그녀의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듣자 피곤함이 몰려왔다. 뭐 내 잘못이긴 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싶다. 벽에 걸려 있는 전자시계가 10:14 분을 표시하고 있었다.


“지금 갈게.”

“됐어. 오늘로 우리 끝내.”


싸늘한 목소리 뒤로 강아지가 짖었다. 그녀의 강아지다. 말티즈로 40cm 정도 되는 소형견인데 나를 상당히 좋아했다. 이름이 체리였던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은 것 같았다.


“체리가 더 보고 싶군.”


난 끊어진 전화기를 소파 위로 던졌다. 그녀는 분명 내가 다시 전화 걸 길 바라겠지만 난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애초부터 이런 관계는 나한테 맞지 않았다. 내 주제에 연애라니.

그녀가 나한테 접근해 온 것은 어느 한 카페에서였다.


“에메넨스이신가 봐요?”


오해할 만도 했다. 커피 한잔을 시키고 내가보던 자료는 온통 에메넨스에 관한 자료였으니까. 당시 그녀는 굉장히 고혹적이었다. 짙은 화장과 어깨까지 내려오는 흑발의 머리. 아, 특히 입술이 굉장히 섹시했었다. 두툼하지도 얇지도 않은 두께에 강렬한 레드색의 립을 발랐는데 난 잠시 동안 그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앉아도 되죠?”


내가 앉은 자리는 카페의 창가 쪽이었다. 일렬로 된 탁자에 오직 바깥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 세상과 단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자리였다.

그녀는 치마를 훑으며 의자에 앉았다. 굉장히 짧은 가죽치마였다. 검정색의 치마인데 앞쪽의 자크가 달려 있어 남성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저 자크만 내리면 당장이라도 치마가 벗겨질 것 같은. 그녀는 하얀 허벅다리를 꼬며 탁자에 몸을 기댔다.


“어디 소속이에요?”


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 그녀는 흰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던 것 같다.


“전 에메넨스가 아닙니다.”

“정말요? 아 그럼 지망생인가?”


당시에는 그녀가 왜 내게 다가왔는지 몰랐다. 후에 얘기를 들어보니 내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고 한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만나게 됐는데, 문제는 그녀가 에메넨스라는 사실이었다.


에메넨스는 흔히 말하는 초인들이다. 어느 날, 원인은 모르지만 지구의 동식물들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그것을 일종의 돌연변이로 취급했지만 돌연변이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들은 점점 커졌고 많아졌으며, 지능도 높아졌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을 ‘먹이’로 생각했다. 처음엔 정부가 군대를 동원하여 이들을 진압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들이 점점 진화했기 때문이다. 군대를 겪으면서 그들의 피부는 총탄이 뚫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해졌고, 그들끼리 조직을 갖추어 대항하기도 했다. ‘몬스터’라 불리는 그들은 점점 숫자를 늘려나가며 인류를 위협했다. 하지만 당대의 NASA를 뛰어넘는 천재과학자 집단인 ‘에메넨스 루프’는 몬스터를 이용하여 인간을 개조하는 실험을 강행한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에메넨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신체능력을 가진 초인이 탄생한 것이다.


그녀는 ‘가문비 아카데미’ 소속이었는데, 가문비 아카데미는 서울에서도 명망 높은 아카데미였다. 아카데미는 대부분 내놓으라하는 대기업이 운영 중이었지만 어느 정도 정부의 제재를 받고 있었다. 아무튼 그녀는 에메넨스에서도 귀한 인재였다. 그녀는 그 유명한 ‘철의 여우’의 유전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난 그런 그녀가 곤란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해야할 그녀를 어느 순간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건 아마 나의 불찰이라기 보단 그녀의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 때문이었다.


지이잉. 소파에 있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액정에 ‘내 사랑 하영’이란 텍스쳐가 표시됐다. 그녀는 정하영이라 저장돼 있던 내 핸드폰을 뺏어 저렇게 바꿔 놓으며 나에게 핀잔을 줬었다. 오빠 날 사랑하는 거 맞아?


난 이 기회에 그녀와 확실히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난 인간이 아니었고 그녀가 이 사실을 알기 전에 떠나야 했다. 난 그날 하루 종일 울리는 핸드폰을 꺼버렸다.


소파에 앉아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인간의 감정이란 것은 참으로 쓸모없다. 고작 관계 하나 끊는 것으로 이렇게 마음이 뒤숭숭하다니. 난 애써 그녀를 생각하지 않고 뉴스에 집중했다.


몬스터가 서울에 출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특히 서초구는 아카데미가 몰려있는 지역이어서, 세간에는 완벽한 안전지대로 꼽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곳에서 거대 몬스터가 출몰했고 사상자가 무려 9명이나 났다. 이건 일반인에 한해서였고 출동한 에메넨스도 넷이나 사망했다. 에메넨스가 죽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 만큼 이번 몬스터는 그동안 나온 몬스터와는 급을 달리했다. 뉴스에서는 이번 몬스터의 등급을 SS로 매겼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 알고 있다. 에메넨스는 몬스터가 죽인 게 아니었다.

난 오늘 네 명의 인간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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