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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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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09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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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반드시 우리가 잡아야 하는 녀석이라는 거군요(2)

DUMMY

“이신후 씨죠?”

한 달 간의 길었던 사냥을 마친 후 그 동안 모은 템들을 거래소에 맡기고 나오는 길이었다.

한 여성이 그의 앞을 막아서며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누구······?”

“백의민족 길드의 이진아라고 해요.”

순간 신후가 흠칫했다.

“아, 그 미친 불도저······.”

“예? 뭐라고요?”

“아, 아닙니다.”

순간 신후는 저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에 놀라 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런 그의 눈은 신기한 듯 이진아를 보고 있었다.

이름 정도는 들어봤다.

체력적인 불리함을 가진 여성 탱커임에도 불구하고 백의민족에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되었고, 또한 한국 여성 탱커 최초로 80층을 뚫은 걸로도 꽤나 유명했다.

특이한 것은 사냥스타일이 일반적인 여성 탱커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여성 탱커들은 남성 탱커들보다 체력적인 부분에서 불리한 반면에 민첩은 수치 이상으로 능력을 발휘하기에, 사냥에서도 민첩을 최대한 살려 충돌을 최소화 하는 패턴의 탱킹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진아는 체력이 아슬아슬한 한계점에 이를 때까지 무모할 정도로 공격일변도의 탱킹을 했다.

‘탱커는 탱커다워야지! 탱커에게 있어 민첩은 회피하라고 있는 게 아냐. 공격력을 극대화해서 어그로를 꽉 붙들어 매라고 있는 거지!’

그야말로 단순무식한 지론. 미친 불도저란 별명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상남자 같은 마인드가 제대로 걸크러쉬를 저격했는지 국적을 막론하고 여성 탱커들 사이에선 인기 만발이었다. 여성 탱커들로만 구성된 꽤 큰 규모의 팬클럽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그 소문의 미친 불도저가 지금 그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의외였다.

소문으로만 듣던 미친 불도저의 이미지란 건 우락부락한 근육질에 키도 180이 넘는, 그야말로 아마존의 여전사 같은 모습이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니 작달막하고 이목구비도 오밀조밀한 것이 꽤나 귀여운 여대생 스타일이다.

“근데 저한텐 무슨 일이십니까?”

“이신후씨를 만나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세요.”

“혹시 저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는 분이 백의민족 길드마스터입니까?”

“맞아요.”

이진아의 대답에 신후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이런 상황을 유도했던 만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신후의 그런 태연함이 신경이 거슬리는 이진아다.

백의민족 길드마스터가 직접 만나고 싶어 한다는데, 황송해하지는 못할망정 저 무신경해보일 정도의 건조한 반응이라니.

‘어휴. 이래서 신삥은 너무 띄워주면 안 되는 건데, 지가 벌써 산왕이라도 된 줄 알아요.’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던 이진아가 이내 따라오라는 고갯짓을 하고는 몸을 돌린다.

“따라오세요.”

신후는 군말 않고 이진아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그런데, 그렇게 이진아의 뒤를 따르고 있자니 뭔가 좀 이상하다.

이진아의 뒷모습에서, 그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는 신경질적이고 짜증스러운 분위기 때문이었다.

단지 뒷모습만이 아니다. 아까 그를 보면 눈빛부터가 첫 대면치고는 이유모를 못마땅함이 가득했었다.

궁금해서 물었다.

“저한테 뭐 화나신 거라도 있습니까?”

그러자 앞서가던 이진아가 걸음을 멈추고는 홱 고개를 돌려 신후를 본다.

부라려진 눈, 쏘아보는 눈빛, 치켜 올라간 눈썹······.

“대체······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예요?”

“예?”

“내가 당신 찾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요? 사냥터란 사냥터는 다 뒤지고 다녔고, 여기 마을 구석구석 안 찾아본 데가 없어요. 심지어 엘리시온까지 13차가 다닐 수 있는 곳은 죄다 뒤졌는데 대체 한 달 동안 어디서 뭘 했던 거예요?”

“사냥터에서 사냥했습니다만······.”

“거짓말 마요! 1층 사냥터에 내 발자국이 안 남겨진 곳이 없을 정도로 샅샅이 뒤졌다구요! 혹시나 해서 어제는 2층까지 가봤구요. 부수리의 호수, 엘초의 숲, 라돈의 들판, 무사야의 협곡까지······.”

“그 뒤는?”

“예? 그 뒤라니? 그 뒤를 왜 가요? 13차 원정대가 벌써 거기까지 갔을 리가 없잖아요. 선두 파티도 이제 겨우 라돈의 들판을 공략중인데······ 더구나 당신, 솔플이라면서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냐는 표정으로 신후를 보던 이진아가 신후의 담담히 가라앉아 있는 눈을 보며 흠칫한다.

“설마 그 거짓말······ 진짜예요?”

“다음부터 절 찾을 일이 있으면 그쪽이 생각하는 상식선보다 좀 더 멀리까지 찾아보셔야 할 겁니다.”

그러고는 걸음을 내딛어 이진아를 지나쳐가는 신후다.

그렇게 몇 걸음이나 더 앞서 가도록 멍해 있던 이진아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급히 신후를 쫒았다.

“자, 잠깐만! 혼자 어딜 가요! 위치도 모르면서!”


※※※


‘화염의 폭군 강일우······!’

이진아를 따라 도착한 곳은 상인회에서 임대를 목적으로 각 마을에 운영 중인 작은 별장이었다. 별장 안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앉은 사내를 확인한 순간 신후는 그 자리에 거의 얼어붙다시피 하며 우뚝 멈춰서야 했다.

백의민족 길드마스터 화염의 폭군 강일우.

대한민국 최고의 클라이머이자 붉은 황무지 최강의 딜러 중 하나. 그리고 기억이 정확하다면 7년 후 여덟 번째로 100층을 정복하는 한국인 최초의 산왕.

그 사이 그 전설적인 인물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터벅터벅

크다.

거대하다.

실제 키도.

그 존재감도.

다가오는 걸음걸음마다 태산이 움직이는 느낌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질 때마다 솜털 하나하나, 세포 하나하나까지 다 곤두선다.

그야말로 아우라에 압도당하는 느낌.

비욘드 클라이머의 기백이다.

붉은 황무지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강한 마수들을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는 절대 강자의 기백.

하지만 지금 강일우가 그에게 보이고 있는 기백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다.

서슬 퍼렇게 날을 세운 기백으로 일부러 신후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시험인가?’

단지 그를 테스트 하고자 함이라면 이건 너무 위험한 장난이다.

그가 아니라면, 여기 서 있는 것이 심기가 약한 신입 클라이머였다면 자칫 큰 내상을 입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오기가 치밀었다.

그리해 더 이를 악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한 점 흔들림 없이 강일우의 눈을 마주했다.

찰나간, 강일우의 눈에 약간의 놀람과 약간의 의아함이 스쳐간다. 그리고 찰나의 시간이 지난 후 언제 그랬냐싶게 얼굴 가득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고는 신후에게 악수를 청한다.

“자네가 그 소문의 이신후 군인가? 난 백의민족의 강일우네.”

“이신후입니다.”

“알지. 알아. 한 달이나 여기서 자넬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이름을 어떻게 모르겠나?”

“한 달이요? 줄곧 여기서 절 기다리신 겁니까?”

“그래! 한 달! 하하하하! 신후 군이 생각해도 웃기지? 내가, 이 강일우가, 귀환을 결심한 말년 클라이머처럼 여기서 하릴없이 한 달이나 빈둥대고 있었다니까? 이제나 저제나 이신후군을 기다리면서.”

“왜 굳이 여기서 한 달이나······.”

“‘왜 굳이 여기서 한 달이나’ 라고?”

강일우가 어이없다는 듯 반문한다. 그러다 울컥 그간 쌓인 울분를 토해낸다.

“나도! 아무리 비싼 이동비가 아깝다고 해도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할 줄 알았으면 당연히 여기서 안 기다렸지! 금방 찾아서 데려올 줄 알았더니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사흘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고. 그러다 다시 이삼일 내로는 돌아오겠지, 또 이삼일 내로는 돌아오겠지 하다 보니 어느새 보름이 훌쩍 지나버렸고. 그때부터는 오기밖에 안 남더라 이거야. 그렇게 한 달이라고, 한 달! 사냥하랴, 길드 관리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공사가 다망하신 이 몸이 말이야. 고작 신인 하나 영입하려고 한 달이나 여기서 망부석이 되어 있었다니까? 진짜 웃기지 않은가? 하하하하.”

웃기지 않냐고 연신 물어보며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데 정작 그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이 친구 정말 사냥을 열심히 하는 친구였어. 아주 장래가 기대되는 친구야. 하하하하”

대견하다는 듯 신후의 어깨를 툭툭 치는 그 손길에서 살기가 느껴지는 것도 기분 탓이겠지?

“뭐, 어쨌든 이렇게 만났으니 됐고. 원래 귀한 인연은 멀리 돌아 돌아서 만나는 게 제 맛이기도 하니까. 자 그럼 그런 인연으로다가 여기에다 싸인을 하게.”

“이게 뭐죠?”

“뭐긴 뭐야? 길드 가입서지.”

“저는 아직 길드 가입할 생각 없습니다만?”

“응?”

“길드 가입할 생각 없다구요.”

“자, 잠깐만······ 내가 요즘 귀가 좀 어두워서 말이야. 다시 말해봐. 뭐라고?”

정말 잘 안 들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옆으로 귀울여 귀를 톡톡 두드린다.

그래서 다시 말해줬다. 크게.

“길드! 가입! 안합니다!”

“······ 아! 그래? 그러니까 신후군 말인즉슨, 나 강일우가 사냥도 내팽개치고 길드도 내팽개친 채 오직 신후군을 영입하기 위해서 여기서 한 달 동안이나 망부석처럼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신후군은 우리 길드에 오지 않겠다는 말이지?”

“예.”

“하하······ 하하······ 역시 재밌는 친굴세. 재밌는 친구야. 농담도 잘······.”

“농담 아닙니다.”

“······.”

“······.”

“대체 왜! 이번 기수 신인들은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저 말고 거절을 한 사람이 또 있습니까?”

“성요한! 두 번째 재능인지 뭔지 하는 살수 말이야!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요한군에게도 제의를 했지. 누구랑은 달리 사냥 오덕은 아닌 덕에 만나기도 쉬웠고. 근데 단박에 거절을 하더군. 신후군과 같이가 아니면 어느 길드에도 들어갈 생각 없다고. 두 사람 혹시······.”

“아닙니다. 게이.”

“그, 그렇지. 딱 봐도 그쪽은 아닌 것 같긴 했어. 하하······.”

뒷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한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강일우를 보며, 순간 신후는 강일우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가 상당히 왜곡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사람 좀 푼순데?’

스페셜-G의 길드마스터. 한국인들의 자랑이자 자부심.

그 영웅의 풍모가 사방 수백 미터를 덮어버리는 필살기 ‘화염비’의 난폭하고 치명적인 권능에 더해져 그야말로 절대자의 이미지였는데, 그러한 이미지와 카리스마가 이 순간 신후의 마음 안에서 와장창 깨져버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래서 처음의 경계심이 옅어지고 이 강일우라는 사람이 한층 더 호감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대체 이유가 뭐지? 우리 길드에 대해선 당연히 잘 알 테고, 한국인이면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없다는 것도 잘 알 텐데, 도대체 왜?”

“그냥 번거로울 것 같아서요. 아직은 혼자가 편합니다.”

“단지 그 이유뿐인가?”

“예. 단지 그 이유뿐입니다.”

“그럼 추천장을 받고도 입 싹 닦은 것도 단지 번거로울 것 같아서?”

“예. 단지 그 이유입니다.”“좋아. 그럼 혼자가 편하지 않게 되면? 길드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겠다 싶어지면 그땐 우리 길드에 올 텐가?”

“1순위겠죠. 아마 그때도 백의민족은 최선의 선택지로 남아 있을 테니까요.”

“당연하지. 백의민족은 한국인 클라이머들에게 있어 언제나 최선인 곳이니까.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좋아! 그럼 신후군은 당분간 숙소에 가지 말로 여기 머물도록 해.”

“예?”

무슨 말인가 싶다.

“신후군 숙소 앞은 아직도 각 길드의 스카우터들로 바글거리고 있거든. 어차피 우리 길드가 1순위면 귀찮게 그런 사람들 상대할 필요 없잖아. 이 마을에 있는 동안은 그냥 여기서 지내도록 하라고. 이미 자네 짐도 저 방에 다 옮겨놨으니까.”

그 말인즉슨, 아예 다른 길드의 접근을 원천 차단해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아, 그리고 이건 부담가지라고 하는 말은 아닌데······ 내가 여기 오면서 쓴 돈, 여기서 신후군을 기다리느라 쓴 돈, 여기 대여료까지 전부 다 내 사비야. 우리 길드 총무가 워낙에 성격이 지랄 맞아서 성과가 없으면 결재를 안 해준단 말이지. 선성과 후결재라고나 할까? 무슨 말인지 알겠나?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 신후군이 우리 길드가 아닌 다른 길드로 가버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내 피 같은 돈이 다 날아가게 된다는 말이야. 그럼 내가 무척이나 슬프겠지? 화도 엄청 날 거야. 아, 물론 말했다시피 부담가지라고 하는 말은 아니고. 그냥 뭐 그런 사정이 있다는 정도는 알아줬으면 해서 말이지.”

“······.”

그렇게 부담 팍팍 주고는 그제야 볼 일 다 봤다는 듯 개운한 표정을 하고서는 그대로 신후를 지나쳐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런 강일우를 신후가 불러 세웠다.

“화염의 폭군께서 이렇게 직접 저를 찾아와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저도 묵인해드리겠습니다.”

“묵인? 뭘?”

“제가 이미 백의민족에 가입했다고 소문을 내셔도 됩니다. 저한테 달라붙는 날파리들을 걱정하셔서 이런 별장까지 내어주신 것 아닙니까? 그런 날파리들을 쫓는 데는 제가 백의민족에 가입했다는 소문만큼 확실한 것도 없죠. 그러니 그걸 묵인해드리겠다는 말씀입니다.”

“······.”

잠시 신후를 빤히 보던 강일후가 피식 실소를 흘린다.

“왜 내 귀엔 소문을 내달라는 걸로 들리지? 번거로운 게 싫어서 당장 가입하기는 싫지만 그래도 백의민족으로 바람막이는 하고 싶다. 그거 아닌가? 그렇다면 여기서 사용할 단어는 ‘묵인’이 아니라 ‘부탁’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아닙니다. 묵인입니다.”

“어째서?”

“백의민족에선 사냥하랴 길드 관리하랴 공사가 다망하신 와중에도 길드마스터께서 그 비싼 이동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이렇게 저를 직접 찾아오셔야 할 만큼 선택지가 저 하나뿐이지만, 저를 위해 기꺼이 바람막이가 되어줄 길드는 백의민족 외에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부탁이 아니라 묵인인 게 맞습니다.”

묵인과 부탁을 굳이 이렇게까지 구분 짓는 것은 부탁은 빚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빚이란 경우에 따라서 아주 비싸게 지불해야 될 때도 있다.

그러니 굳이 지지 않아도 될 빚을 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실 사냥터에서 한 달이나 시간을 끌었던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급한 쪽이 어디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그래서 부탁이 아니라 묵인을 하는 위치에 서기 위해.

그제야 신후의 의도를 파악하는 강일우다.

한 달이나 그를 기다리게 한 이유도 이젠 확실하게 알았다.

그걸 알고 나니 새삼 이 신인이 다시 보인다.

징그럽다고 할까? 무섭다고 할까?

‘음······ 뭔가 말리는 기분인데?’

아니, 이미 말렸다.

여기서 한 달이나 기다린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을의 입장에 서버린 것이다.

하지만 누가 갑인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 눈앞의 신인이 굳이 이렇게까지 자신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가시를 세우며 경계하는 것도 결국 아직 기댈 곳도 믿을 것도 없는 이 거칠고 험난한 땅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일 뿐이다.

묵인이라는 단어 하나마저도 얼마나 고민하고 어렵게 선택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자신에게 한 달은 그저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었지만 이 신인에게 한 달은 이 묵인이라는 단어 하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쟁같은 치열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게다가 묵인이니 부탁이니, 이미 그 자체로 최고인 백의민족에겐 그런 하찮은 허울이나 명분 따위도 하등의 의미가 없다.

강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묵인해준다니 우리 백의민족이 기꺼이 자네의 바람막이가 되어주겠네. 어차피 한국의 자산을 지키는 것도 우리의 일이기도 하고.”



그렇게 강일우가 별장을 나가자 강일우 앞이라 그때까지도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조용히 있던 이진아가 그제서야 신후에게 한 마디 툭 던진다.

“너무 튕기지 말아요 후배님. 조만간 길드에서 우리 꼭 다시 봬요. 알았죠? 백의민족에 들어오면 내가 진짜 많이 도와줄게요.”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유모를 못마땅함으로 짜증만 팍팍 내던 이진아가 웬일인지 지금은 치아를 다 드러내며 아주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실 그녀는 이 건방진 신삥이 정말 다 마음에 안 들었다.

강일우가 직접 길드 가입을 권유하기까지 했는데도 단박에 거절해버린 것도.

감히 백의민족을 바람막이로 쓰겠다는 것도.

그것으로도 모자라 묵인이라는 건방진 말을 내뱉는 것도.

그럼에도 강일우의 결정이고 그녀가 감히 거기에 대해서 뭐라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기에 참았다.

참긴 참는데 그래도 복수는 하고 싶고, 그렇다고 양아치들처럼 차수 좀 높다고 쥐어 패기는 좀 그렇고, 최고의 복수는 역시 사랑스런 후배님으로 만들어서 선배의 사랑을 듬뿍듬뿍 전해주는 것만큼 확실한 게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그래봤자다.

자기 나름으로는 꼬신다고 꼬시는 것 같은데 전혀 안 어울린다.

너무 안 어울려서 오히려 더 찝찝하다.

아니, 찝찝한 정도가 아니라 머리털이 쭈뼛거릴 정도의 불길함이랄까?

“그럼 우리 꼭 다시 봐요. 후.배.님!”

“······.”

눈은 왜 찡긋거리는 건데? 무섭게!

엄습해오는 공포에 한마디 버럭 쏘아주고 싶지만 차마 입 밖으로는 내지 못했다. 그사이 이진아도 이유모를 불길함만을 남겨두고 별장을 떠났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신후는 그들이 나가버린 문을 잠시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별장 안을 둘러보았다.

그다지 화려하거나 으리으리한 건 아니다. 하지만 정갈하고 깔끔하다. 그래서 혼자 덩그러니 있으려니 묘한 적막감마저 흐른다.

그때였다.

끼이익―

닫혔던 현관문이 다시 열리고 낯익은 얼굴 하나가 삐죽이 고개를 내민다.

“어?”

그러다 신후를 발견하고는 놀란 눈을 휘둥그레 뜬다.

“신후 형!”

신후를 확인하고는 와다닥 껴안을 태세로 달려드는 인형은 다름 아닌 요한이었다.

물론 껴안기 전에 쭉 뻗은 신후의 손이 먼저 요한의 머리를 막았다.

“그 꼬라지로 어딜 들러붙어.”

혹시라도 닿을까 팔을 쭉 뻗은 것으로도 모자라 잔뜩 싫은 얼굴로 상체까지 뒤로 쭉 뺀다.

그만큼 지금 요한의 모골이 말이 아니었다. 사냥 중에 어디 진흙탕에라도 뒹군 건지 아직도 마르지 않은 진흙이 온 몸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신후의 거부에 반가운 애정표현이 막히자 울듯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던 요한이 또 금방 언제그랬냐는 듯이 반갑게 웃으며 묻는다.

“근데 형이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그러는 너는 왜 여기 있는 건데? 너도 여기서 지내라고 한 거야? 백의민족에서?”

“어? 그럼 형두요? 하긴 저보다는 형한테 더 관심이 많은 것 같긴 했어요. 그럼 백의민족에 가입하기로 하신 거예요?”

“아니. 당분간은 어느 길드든 들어갈 생각 없어. 그보다 얼른 씻어. 밥부터 먹자. 한 달 동안 밥 같은 밥을 못 먹었더니 파스타가 미친 듯이 땡겨. 아직 밥 안 먹었지?”

“예. 저도 이제 막 사냥을 끝낸 참이니까요. 얼른 씻고 올게요.”

“아, 그리고······.”

신후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이번 사냥 중에 챙겨뒀던 살수템들을 꺼내어 요한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그냥 사냥 중에 살수템이 몇 개 나와서.”

“저 주시는 거예요? 형······.”

“저번 퀘스트에서 진 빚 갚는 거다.”

맑고 큰 눈이 감격으로 그렁그렁 해진다.

“감동하지 마! 그런 얼굴도 하지 마! 그런 얼굴을 하니까 사람들이 이상한 오해를 하잖아! 들러붙지도 마!”

다시 와락 뛰어들어 안기려는 요한의 머리를 밀어내자 넘쳐나는 감동을 주체할 길이 없는 요한이 힝힝거리며 아등바등 양팔을 허우적댄다.

그 모습은 또 어찌나 귀여운지, 이러니 마성의 미소년이라 하는구나 싶다. 물론 그 바람에 이상한 오해도 받는 걸 테고.

“얼른 씻기부터 해. 나 배고프다니까.”


작가의말

월미도횟집님 후원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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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그걸, 지금, 나더러, 믿으라는 거야?(2) +37 18.11.06 41,297 1,301 12쪽
28 그걸, 지금, 나더러, 믿으라는 거야?(1) +62 18.11.04 42,034 1,445 12쪽
27 이래서야 진짜 답이 안 나오는데(4) +48 18.11.03 43,130 1,346 14쪽
26 이래서야 진짜 답이 안 나오는데(3) +46 18.11.03 42,626 1,340 11쪽
25 이래서야 진짜 답이 안 나오는데(2) +50 18.11.01 43,708 1,386 17쪽
24 이래서야 진짜 답이 안 나오는데(1) +43 18.10.31 44,421 1,201 14쪽
23 퀘스트 같이 하실래요?(5) +31 18.10.30 45,526 1,228 12쪽
22 퀘스트 같이 하실래요?(4) +22 18.10.29 46,585 1,270 15쪽
21 퀘스트 같이 하실래요?(3) +19 18.10.29 46,198 1,322 12쪽
20 퀘스트 같이 하실래요?(2) +38 18.10.27 48,506 1,317 11쪽
19 퀘스트 같이 하실래요?(1) +29 18.10.26 50,523 1,288 12쪽
18 나 제대로 미쳤는데?(4) +45 18.10.25 50,651 1,389 12쪽
17 나 제대로 미쳤는데?(3) +33 18.10.24 49,841 1,202 12쪽
16 나 제대로 미쳤는데?(2) +46 18.10.23 50,821 1,211 10쪽
15 나 제대로 미쳤는데?(1) +24 18.10.22 51,911 1,293 13쪽
14 그럼 돈 좀 되겠는데?(3) +30 18.10.21 51,216 1,270 9쪽
13 그럼 돈 좀 되겠는데?(2) +16 18.10.21 51,211 1,262 10쪽
12 그럼 돈 좀 되겠는데?(1) +27 18.10.20 54,826 1,223 14쪽
11 너 왜 안 죽냐?(2)-(10월 19일 수정) +34 18.10.19 55,449 1,250 13쪽
10 너 왜 안 죽냐?(1) +22 18.10.18 55,785 1,302 14쪽
9 피통 이거 진짜야?(3) +23 18.10.17 56,896 1,422 14쪽
8 피통 이거 진짜야?(2) +41 18.10.16 56,924 1,395 9쪽
7 피통 이거 진짜야?(1) +48 18.10.16 57,851 1,415 11쪽
6 저게 어딜 봐서 신삥이라는 거야?(3) +25 18.10.15 60,243 1,324 13쪽
5 저게 어딜 봐서 신삥이라는 거야?(2) +48 18.10.14 61,011 1,382 11쪽
4 저게 어딜 봐서 신삥이라는 거야?(1) +31 18.10.14 61,300 1,439 9쪽
3 17년 만인가?(3) +34 18.10.14 63,455 1,480 10쪽
2 17년 만인가?(2) +24 18.10.14 66,325 1,447 7쪽
1 17년 만인가?(1) +24 18.10.14 81,720 1,47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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