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떨어진 용과 멸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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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명드래곤
작품등록일 :
2018.10.1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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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9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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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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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DUMMY

그보다 조금 더 전, 소녀가 눈을 뜨자 케이텐의 일행들 사이에서도 놀람이 퍼져나갔다. 지금껏 수없이 많은 폴리모프를 봐왔던 그들이지만 만들어낸 육체가 살아 움직이는 건 처음이었다.

유하가 경악했다.


"여의가 말을 해요!"


케이텐의 드라고아, 여의. 드래곤하트의 변신능력만을 극대화시킨 드라고아로, 케이텐의 기를 불어넣는 것으로 어떤 모양으로든 자유롭게 변한다. 상황에 따라 도끼, 창, 칼, 철퇴 등등 다양한 무기로 변하는 진정한 의미의 만병이다. 다만 여의에 쓰인 드래곤하트는 죽은 드래곤의 것이라 무생물로밖에 변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시켜봤자 인간의 모습을 한 죽은 존재, 즉 시체로밖에 변하지 못했다.

숫돌에 검을 갈던 로기탄이 여의를 보고 중얼거렸다.


"왠 인형놀이 중이냐, 케이텐?"


로기탄은 이 중에서 드래곤하트에만 한정하면 가장 지식이 많은 사람이다. 유하가 여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로기탄 님, 여의가 살아 움직여요!"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라, 풍수사. 여의를 벼린 건 다름 아닌 이 몸이다. 이 몸이 만든 무기의 능력도 모를 것 같더냐? 이 몸이 만든 드라고아에 살아 움직이는 기능은 없어."


로기탄이 콧방귀를 끼었다.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억울해진 유하가 양손을 모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움직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웬 인형놀이 중이냐고 묻는 거다, 풍수사. 저건 애초에 케이텐 전용으로 만든 드라고아야. 아비의 심장을 일부 가져서 같은 불씨를 지닌 그 녀석 말고는 변신시킬 수 없다. 그러니..."


그때였다. 망토를 두른 여의가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그녀가 걸어올 때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망토 사이사이로 흰 피부가 보였다.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빛은 결코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여의는 인형이라기에는 너무 압도적인 생동감을 가지고 있었다.

바르톨이 로기탄에게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아저씨, 요새 인형 많이 좋아졌는데?"

"뭣?! 아니, 연이 이어져있다고 해도 떨어진 채로 움직일 수가... 어떻게?!"


경악하는 로기탄을 앞에 두고 여의가 멈췄다. 여의는 짐짓 헛기침을 하고는 어깨를 곧게 폈다. 케이텐이 천을 덮어주기는 했지만 여의를 위해 만든 게 아닌 터라 군데군데 흰 피부가 드러나있었다. 유하는 작은 세계수를 휘둘렀다. 천자락 사이사이에 덩굴이 생기더니 마치 매듭처럼 서로 엮여 빈틈을 메웠다. 유하다운 배려였다.

하지만 여의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배려는 좋지만, 지금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모두 전투 준비. 우리는 이제 메블로프와 싸운다. 죽일 각오로.]


난데없이 들이닥친 여의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드래곤과 싸운다는 말에 전부 표정을 달리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들은 드래곤과 싸운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가끔 공포에 미쳐 폭주하는 드래곤을 상대했지만 진정될 때까지 적당히 막아내는 게 전부. 서로 죽일 각오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야 그럴 것이, 그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드래곤의 구원이었으므로.

바르톨이 한걸음 나서 물었다.


"아니, 잠깐. 그 전에 네 정체부터 이야기해줘야지. 갑자기 나타나서는 뭐야?"

[나는 윌, 인간이 되고자 했던 의지다.]


생전 처음 듣는 이름에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여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부모가 지을 법한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너희에게는 이 소개가 더 와 닿겠지. 난 케이텐이라는 못난 아들을 둔 불행한 아버지다... 아, 지금은 여자의 몸을 하고 있으니까 어머니인가.]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 바르톨은 가장 먼저 기색을 눈치 채고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케이텐이 메블로프에게는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손을 움직여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전투준비.'

여의를 믿지 못하더라도 케이텐의 신호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리더란 위기에 필요한 존재. 급박한 상황 때 리더의 판단을 따르지 않는다면 와해될 뿐이다.

로기탄과 유하도 곧이어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는 몸을 움직였다. 로기탄은 가방을 내리고 장비를 꺼내들었고, 유하는 지맥에 작은 세계수를 박아 넣었다. 드워프 치프틴이 온힘을 다해 벼려낸 드워프제 무기들이 세상에 드러났고 지팡이처럼 가느다랗던 묘목은 지맥의 기운을 받아 사방으로 가지를 뻗으며 꽃처럼 만개했다.

우왕좌왕하는 건 아직 수신호에 익숙하지 못한 야켄이었다. 바르톨은 야켄에게 소리쳤다.


"야켄, 높은 곳으로 가!"


분지에서 높은 곳은 가장자리이며, 그곳은 야켄의 힘이 가장 잘 발휘될 장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싸움으로부터 먼 안전한 곳이다. 바르톨이 그 중 어느 이유에 더 집중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타당했기에 야켄은 그의 말을 따랐다.

남겨진 건 알키에였다. 상황에 따라가지 못하는 알키에를 보며 바르톨 아주 짧은 시간동안 계산을 끝마쳤다. 드래곤의 딸, 해츨링. 그녀를 인질로 삼는 편이 드래곤을 상대하는데 편하지 않을까. 바르톨이 알키에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가.]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미처 행동하기도 전에 판단을 읽힌 바르톨은 곧장 몸을 돌렸다. 파티원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해서 마음을 읽은 것처럼 지시를 내리는 건 케이텐의 특기였다. 바르톨은 케이텐의, 그리고 여의의 판단을 따르기로 했다.

남은 건 알키에와 여의뿐이었다. 알키에는 분위기를 읽었다. 세상이 자신을 내버려두고 무언가 큰 변화를 꾀하는 것 같았다. 알키에는 초조함을 느끼며 바르톨을 따라가려고 했다. 그때 여의가 알키에의 손을 잡았다. 강하지는 않았지만 완고함이 느껴지는 손길이었다.


[아서라. 가지 마. 우리는 여기서 구경이나 하자.]

"구경이라니, 무엇을..."


그러나 알키에는 대답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구경할 만한 일이 눈앞에서 일어났으니까.

메블로프가 케이텐을 들이받는 걸 시작으로 갑작스럽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케이텐이 뒤로 크게 뛰었다. 메블로프의 거대한 주둥아리가 그가 있던 공간을 통째로 삼켰다. 거대한 이빨이 눈앞에서 반짝이고 비늘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스쳐지나갔다. 케이텐과 메블로프의 눈이 잠깐 마주쳤다. 짧은 순간 메블로프의 큰 눈동자에 케이텐이 담겼다. 케이텐은 이를 악물며 곧장 몸을 숙였다. 메블로프의 거대한 날개가 그보다 약간 위의 허공을 잡아챘다. 움켜잡힌 공기가 비명을 지르며 터져나가고 어마어마한 바람이 케이텐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뒤로 크게 누운 케이텐은 땅을 짚으며 백덤블링을 해 뒤로 물러났다.


"받아라, 케이텐!"


미리 준비하고 있던 로기탄이 검을 망치로 한 번 쓸어내린 뒤 던졌다. 날이 곧게 선 검이 햇빛을 반사시키며 허공을 날았다. 케이텐은 그걸 보지도 않고 잡아챈 뒤 그대로 휘둘렀다. 푸른 곡선이 메블로프의 날개를 얕게 베어냈다. 거대한 나비 날개가 갈라지고 피가 튀었다.

케이텐은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질겼다. 드워프제 검으로 벴음에도 드래곤의 크기에 비하면 티끌만한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 공격을 가하고 난 뒤의 치명적인 빈틈, 그때 메블로프의 꼬리가 꿈틀거렸다.


"케이텐! 꼬리!"


피하기에는 늦었다. 케이텐은 최대한 충격을 줄일 요량으로 즉각 양팔을 교차시키며 뒤로 뛰었다. 직후 통렬한 꼬리치기가 케이텐을 강타했다. 뒤로 뛰어 타점을 흘리기는 했지만 드래곤의 꼬리는 그 무게만으로도 흉기였다. 팔이 눌리고 갈비뼈가 움츠러들어 폐부가 쥐어짜였다. 케이텐이 공기를 토해내며 허공을 날았다.


"케이텐 님!"


유하가 비명을 지르며 양손으로 작은 세계수를 잡았다. 그리고 이전 그 어떤 순간보다도 간절하게 외쳤다.


"작은 세계수, 제 친구를 도와주세요!"


직후 작은 세계수의 끄트머리가 나뭇가지처럼 갈라졌다. 그러더니 녹색 폭발이 땅에서 일어났다.

나무가 자라났다. 수십 년의 세월을 빠르게 돌린 것처럼, 새싹은 묘목이 되고 묘목은 가지를 피우며 순식간에 자라났다. 가지 틈틈이 피어난 잎사귀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잔가지들이 서로를 붙잡았다.

나뭇가지와 잎사귀가 모여 아슬아슬하게 케이텐을 받아냈다. 나뭇가지가 우수수 부러지고 나뭇잎이 힘없이 떨어졌지만 그들의 희생 덕에 케이텐은 안전하게 착지했다. 케이텐을 구한 유하는 이제 양팔을 뻗었다. 수없이 솟아난 나무덩굴이 땅을 타고 메블로프에게 달려들었다. 케이텐을 추격하던 메블로프는 덮쳐오는 나무덩굴의 파도에 휩쓸렸다.

유하의 석장, 작은 세계수는 세계수가 대행자에게 선물한 자연의 증표다. 이걸 지닌 자는 세계수의 권능을 일부 행사할 수 있다.


[이 까짓 것!]


메블로프가 거칠게 몸을 흔들자 덩굴이 가닥가닥 끊어졌다. 물과 공기, 그리고 먼지로 급조한 나무덩굴은 드래곤의 날개힘을 견디지 못했다. 구속을 풀어낸 메블로프가 케이텐을 앞에 두고 용수철처럼 몸을 웅크렸다.

그 순간 허공에서 검은 선이 그어졌다.

어둠을 꼬아 만든 듯한 검은 돌화살이 어느새 메블로프의 지척에 있었다. 야켄이 쏘아낸 거대한 돌화살은 어두운데다 너무나 빨라 보통의 화살보다도 가늘게 보였고 기척도 작았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한 박자 늦게 들렸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쏘아진 돌화살이 메블로프의 동체에 비스듬히 꽂혔다.


끼기기긱.


돌과 돌이 마찰하는 소리가 대기를 찢었다. 불똥이 튀며 그와 동시에 드래곤의 거대한 몸이 파도치듯 출렁거렸다. 충격이 전신을 타고 흘렀으며 비늘은 손으로 움켜잡고 뜯긴 것처럼 뽑혀나갔다. 영원과도 같았던 충돌이 끝나고 빗겨 맞은 돌화살이 튕겨나갔다. 튕겨나간 돌화살은 날개를 뚫은 뒤 땅에 말뚝처럼 박혔다. 지면이 부르르 진동했다.

메블로프는 격통을 느꼈다. 돌화살에 담긴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강철과도 같은 강도를 가진 비늘이 단 일격에 부서지고 메블로프의 거체가 밀려났다. 더 위험한 건, 이게 단지 빗겨 맞은 결과라는 것이다. 직격 당했으면 가차 없이 몸을 꿰뚫었을 것이다.

메블로프가 경계를 끌어올리는 사이 케이텐의 옆으로 바르톨과 로기탄이 도착했다. 바르톨이 메블로프를 보며 중얼거렸다.


"꼬리치기라니, 뱀이 할 공격이 아니잖아!"

"따지자면 나비에 더 가깝겠지만, 나비도 꼬리치기를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지. 상대는 드래곤이다. 섣불리 판단하는 건 곤란해."

"그렇겠지! 그런데 드래곤이신 분이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건데? 우리는 저쪽 편 아니었나?"


케이텐은 가라앉은 눈으로 메블로프를 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역린을 건드렸나보지."

"아따, 찾기 힘든 것도 건드렸구나! 온다!"


야켄의 화살에 움츠렸던 메블로프가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전투가 재개되었다.

접근해온 메블로프는 머리를 쭉 잡아당긴 뒤 단숨에 폈다.

메블로프의 머리가 창처럼 쏘아졌다. 찰나 간 거대해지는 메블로프를 마주하며 케이텐과 바르톨은 서로를 박차고 양옆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뱀과는 다르게 메블로프는 옆도 사각이 아니다. 그녀의 거대한 날개가 사람을 잡아 뜯을 기세로 다가왔다.

바르톨은 한껏 허리를 꺾었다. 한쪽 다리를 길게 뻗으며 땅으로 비스듬히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동시에 한손으로 넓적한 검날을 받치며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케이텐은 검을 한껏 당겼다. 바르톨이 유라면 케이텐은 강. 검을 날개 뿌리에 겨눈 뒤 힘껏 내질렀다.

메블로프의 나비 날개가 검날을 타고 올라갔다. 다른 쪽에서는 검이 삐걱거리며 날개뿌리를 찢었다. 유효한 타격이었다. 아주 잠시간은.

검신이 크게 휘며 케이텐의 발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드워프제 검이었지만 충격을 다 해소하기는 무리였다. 용수철처럼 휘어진 검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튕겨나가고 케이텐의 몸이 뒤로 굴렀다.

바르톨은 그보다는 조금 더 버텼지만, 결국 칼을 밀어내며 바닥을 굴렀다. 나비 날개는 질기고 무거웠다. 베기는 했지만 얕다. 결국 날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힘을 땅으로 흘리며 물러났다. 바르톨이 팔을 휘두르며 충격을 해소했다.


"으, 질겨!"


바르톨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땅을 박차고 뛰었다. 꼬리가 땅을 휩쓸며 바람에 휘말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바르톨은 허공에서 검날을 슬쩍 내려 메블로프의 동체를 베었다. 하지만 힘을 싣지 못한 참격은 비늘을 꿰뚫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메블로프가 허공에 떠오른 바르톨을 포착했다. 인간은 허공에서 움직일 수 없다. 메블로프는 바르톨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빈틈투성이다.


"흥! 이 몸을 까먹다니!"


메블로프의 몸이 북처럼 진동했다. 찌릿찌릿한 푸른 전기가 그녀의 몸을 타고 흘렀다. 그와 동시에 근육이 멋대로 수축했다. 메블로프는 몸이 의지를 벗어난다는 말을 실제로 체험했다. 바르톨을 노렸던 꼬리가 빗나갔다.

온몸이 갈려나가는 것 같은 격통이었다. 충격 자체는 대단치 않으나 그 안에 내포된 힘은 메블로프에 있어서 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므루낙, 마나를 부여할 수 있는 망치. 그 망치는 위력도 위력이지만 메블로프처럼 마나로 이루어진 육체에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진동의 마나가 부여된 메블로프의 몸이 한순간 멈췄다.

진짜 위협적인 건 드워프 쪽이다, 짧은 다리를 가진데다 오만한 드워프는 일격 후에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메블로프는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하하! 그래도 잊으면 곤란하지!"


바르톨이 떨어지면서 검을 양손으로 잡으며 깊게 찔러넣었다. 무게를 온전히 실은 공격은 치명적이진 않더라도 분명이 통했다. 케이텐 역시도 옆구리를 길게 베었다. 무시할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그러나 메블로프는 움찔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로기탄 쪽으로 향했다. 그때 땅에서 수많은 나무덩굴이 솟아올라 메블로프를 감쌌다. 로기탄을 지키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급조된 나무는 크기 치고는 너무 연약하다. 메블로프는 나무로 된 벽을 찢어발기며 한 마디 더 나아갔다. 메블로프는 로기탄의 코앞에 도달했다.

로기탄은 도망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망치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느리다. 이미 메블로프는 지척이었다. 순식간에 다가온 메블로프를 맞이하며 로기탄은...

미소를 지었다.


"걸렸군."


검은 화살이 난데없이 나타났다. 돌화살은 발사 직후 날아오는 과정을 생략한 것 같았다. 소리조차 꿰뚫은 돌화살이 메블로프의 몸통 한가운데를 향해 날았다. 하지만 메블로프는 예상했다는 듯 재빨리 몸을 뒤틀었다. 강력하고 빠르지만 그 속도 때문에 궤도가 직선에 가깝다. 그러니 발사하는 순간만 포착한다면 피할 수 있다. 돌화살은 메블로프를 절묘하게 피해가며 땅에 박혔다. 땅이 나선형으로 터져나갔다. 격렬히 회전하는 돌화살은 땅을 두더지처럼 헤집으며 들어갔다.

이것이 비장의 수라면 틀렸다. 메블로프는 단 한 순간도 야켄에게서 경계를 거둔 적이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언제나 야켄을 주시하고 있었고 진동을 느끼는 코는 이상을 즉각 알려왔다. 상대방의 공격을 흘려낸 메블로프는 온몸으로 땅을 박찼고,

땅이 통째로 허물어졌다.

흘러내리는 흙 속에서 메블로프는 당황했다. 누가 미리 땅을 파낸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더라면 드래곤이 통째로 들어갈만한 구덩이가 생길 리 없다. 하지만 이곳은 메블로프의 레어. 그녀가 구덩이 따위를 파낼 이유 없다. 도대체...

그러던 중 땅 속의 무언가가 메블로프의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나무덩굴이 동면하는 뱀처럼 땅 아래에서 꿈틀거렸다. 말이 뱀이지 그 굵기는 하나하나가 나무줄기에 비견될 정도로 컸다. 메블로프는 지금껏 유도된 건 그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무뿌리가 땅을 헤집고 화살이 땅을 부순다. 그러기만 한다면 메블로프의 어마어마한 무게를 버티지 못한 땅은 자연스럽게 꺼진다.

이건 인간들이 급조해낸 거대한 함정이었다.


"울어라, 므루낙!"


로기탄이 므루낙을 치켜들었다. 존재하는 모든 걸 녹이는 화산심장부에서 드래곤하트를 가공해 만든 망치, 므루낙. 드워프의 정수가 전부 녹아있는 이 망치가 가지는 권능은 오직 하나다.

므루낙은 마나를 불어넣을 수 있는 유일한 망치이다. 그 덕에 로기탄은 드래곤하트의 힘을 완전히 이끌어내는 드라고아를 만들 수 있었다.

므루낙은 모든 사물에 마나를 불어넣을 수 있으며, 로기탄이 가진 능력과 조합하면 지맥을 따라 마나를 전달할 수 있다. 로기탄이 강타한 부분은 지맥의 혈. 거기로 강습한 마나가 지맥을 타고 흘렀다. 마나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지맥을 타고 나아갔다. 그 끝에는 구덩이에 빠진 메블로프가 있었다.

둔중한 충격이 몸을 타고 흘렀다. 똬리를 튼 마나가 파직거리며 뱀의 몸을 헤집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나의 강습은 영육을 가진 드래곤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그래서 반응부터 대응까지가 늦어졌다.

소리조차 없이 날아온 돌화살은 이미 지척이었다. 몸을 뒤틀어 피하기에는 늦었다.

돌화살이 메블로프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비정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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