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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en(시엔)
작품등록일 :
2018.10.2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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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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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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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DUMMY

달조차 뜨지 않아 무거운 어둠이 낮게 내리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밤새조차 숨소리를 죽이는 밤, 고풍스러운 서재는 방 곳곳에 놓인 촛대에서 흘러나오는 아른한 불빛으로 어두운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방에 걸린 초들은 하나 같이 질이 좋은 것들로 웬만한 것들 여러 개 보다도 밝은 빛을 내뿜는 최상품의 것이었지만 서재의 주인은 빛이 어둠을 잠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듯 최소한의 어둠만이 걷힐 정도로만 촛불을 밝혔다. 서재의 주인은 수심에 잠긴 듯 그의 짧은 흑발을 헤집으며 유리병에 담긴 갈색의 독주를 유리잔에 따라 입으로 가져갔다. 그의 회색빛의 눈은 어딘가 묘한 느낌을 주었는데, 마치 그의 눈은 허공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쫓듯 서재 천장 한 귀퉁이에 고정되어있었다. 그가 응시하던 허공에서 눈을 떼어 다시 술잔을 입으로 갖다 대자 떡갈나무로 만들어진 서재의 문을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십시오.”


흑발의 남자가 피곤한 음색으로 허락의 뜻을 내뱉자 떡갈나무 문이 열리며 적갈색의 머리를 한 중년의 남자가 들어왔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중년의 남자는 의자에 앉아 술잔을 들고 있는 흑발의 남자에게 허리를 굽히며 예를 갖췄다. 남자의 회색빛 눈동자는 잠시 중년의 남자를 응시하다 시선을 거두었다.


“늦은 밤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세르지오 백작.”


적갈색 머리의 중년 남자는 리엔 왕국의 유일한 마법사 카일 세르지오의 아버지이자 리엔 왕국의 대신 중 한 명인 라미르 세르지오였다. 라미르는 슬쩍 흑발의 남자 앞에 놓인 술병과 술잔을 응시하다 조용하고도 다정함이 약간 묻어나는 음성으로 말했다.


“무슨 수심이 있으신지요. 전하. 입에 잘 대지 않는 술을 드시는 것을 보니 걱정스럽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대신의 걱정 어린 말에 전하라 불린 흑발의 사내는 실소를 했다. 그는 현 리엔 왕국의 왕인 몬테규 리엔이었다.


“걱정이라···. 백작께선 나를 참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군요.”


몬테규의 삐뚤어진 태도에 라미르는 그저 어색한 웃음을 지었을 뿐이었다.


“아, 손님을 불러놓고 이리 세워두다니. 저기 앉으십시오.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일전에 내가 공표했던 계획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볼까 함입니다.”


몬테규는 맞은편 의자를 가르키며 전보다 음색을 높여 화제를 전환했다.


“저와 다른 기타 몇몇의 대신들의 뜻은 전과 같사옵니다. 부디 저희의 간곡한 청을 들어주십시오.”


몬테규는 다시 술잔을 들어 독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 청은 그대들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나를 위한 것입니까?”


“전하를 위한 것입니다. 전하를 위한 것이 곧 이 나라를 위한 것이며, 그것은 또한 저희를 위한 것입니다.”


몬테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청은 오로지 그대들, 특히 그 중심에 있는 라미르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라미르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전하의 뜻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현재 왕국의 시기상 알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줄지은 국상과 왕권교체로 인해 불안정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때 주변국들을 통합하기 위해 변방에 군사를 배치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큽니다. 어느 정도 왕권이 다져지고 왕국의 분위기 역시 안정된 후 거사를 치러도 늦지 않습니다.”


몬테규는 라미르의 말을 들으며 눈을 감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끄덕임은 긍정의 뜻과는 거리가 멀었다.


“맞는 말입니다. 충신의 입에서 나올법한 훌륭한 말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충신일 때만 해당되는 것이지요. 반역을 꾀하려는 자에겐 그저 그 자의 검은 속내를 감추기 위한 허울 좋은 핑계거리일 뿐입니다.”


몬테규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단어에 라미르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변국을 통합하면 나의 세력이 더욱 커지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나의 세력이 이 이상 커질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전에 나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이지.”


몬테규의 입에서 나온 말에 라미르는 입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가당치도 않는 말입니다. 신은 결코···!”


몬테규의 눈빛은 이제 매서운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렇다면 제1기사단장 카일 세르지오는 어디에 있습니까?!”


몬테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라미르 앞에 섰다.


“카일은 현재 전국을 은밀히 순찰하러 간 것을 전하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라미르의 말에 몬테규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하하···. 끝까지 거짓을 늘어놓는군. 얼마 전 발로우 영지에서 올라온 문서입니다. 카일 세르지오는 그곳에서 기존의 영주의 비리를 파헤치고 새 영주를 임명했더군요. 그런데 그 새로 부임한 영주에게서 참으로 재미있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한 소년을 찾고 있었다는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미르는 일어나 몬테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식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저의 불찰입니다. 어명을 어기고 멋대로 행동한 것은 큰 죄이오나···. 분명 무슨 사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카일을 왕궁으로 소환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죄를 추궁하는 것도 늦지 않습니다. 정확한 증거 없이 왕국 유일한 마법사가 반역을 꾀했다는 소식이 퍼지게 된다면 분명 이 나라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 분이 풀리지 않으신다면 그 죗값은 제가 대신 달게 받겠습니다.”


그 모습에 몬테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게도 자식을, 가족을 위하는 분께서 도대체 왜 저와 제 어머니에게는 그랬습니까?”


몬테규의 말에 라미르는 고개를 들어 몬테규를 바라보았다. 몬테규의 몸이 조금씩 떨렸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저 표정! 저 얼굴! 참으로 뻔뻔합니다. 제 어머니가 선왕의 무관심속에서 외롭게 죽어갈 때 당신은 뭘 했습니까? 어린 내가 눈치만 보며 따뜻한 사랑한 번 못 느껴봤을 때 당신은 뭘 했습니까?”


“누가 들을까 염려됩니다. 전하.”


몬테규는 분노를 참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시겠지요. 남의 이목을 그리도 무서워하시는 분이니, 당신에게 나와 어머니는 숨기고 싶은 치부였겠죠! 나도 내 혈관에 당신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 정말로 몸서리치게 싫습니다.”


“전하. 부디 말씀을···.”


몬테규는 라미르의 말을 막았다.


“당신에게 난 어떤 존재였습니까? 단 한 번도 날 아들로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까?”


분노 어린 몬테규의 외침에 라미르는 고개를 떨궜다.


“···제가 감히 어찌 전하를 제 아들이라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그것은 21년 전 가슴속에 묻은 일입니다. 선왕께선 감사하게도 그 일을 용서하셨고, 전하를 친아들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니 전하의 부친은 제가 아니라 선왕이십니다. 그런데, 어찌 제가 전하를 제 아들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라미르는 그간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심중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진심이 몬테규에겐 닿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생각은 들어맞았다.


“웃기는 소리! 아놀드 리엔이 날 친아들로 받아들였다고?! 아니, 그에겐 난 남보다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직접 가까이서 그것을 보고도 아직도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당신의 뜻을 잘 알았습니다. 친아비에게서도 버림받고 양아비에게서도 버림받았으니 나 역시 그 둘을 저버릴 것입니다. 이제부터 나에게 아버지는 없습니다.”


몬테규의 외침은 이제 거의 울부짖음으로 변했다. 라미르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라미르는 어떤 대꾸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여봐라! 당장 이 반역자를 끌어내어 포박하라! 그리고 세르지오 일족은 어린아이, 여자,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잡아들여 참형에 처하고··· 그 목을 모두가 본보기로 잘 볼 수 있게 광장에 걸어두어라!”


몬테규의 외침소리에 서재 밖에서 무장을 한 병사들이 들어와 라미르 세르지오를 포박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일가족의 몰살이란 명령에 라미르는 몬테규를 바라보며 간청했다.


“전하! 제 목을 치십시오! 제발 가족들은 살려주십시오! 전하!”


“라미르 세르지오는 무기징역에 처한다. 너는 그 두 눈으로 네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꼴을 보고 죽지 못해 괴로워하며 일생을 북쪽 변방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또한, 제1기사단장 카일 세르지오는 현시점부로 그 직위를 박탈하며 전국에 그의 수배령을 내려라! 그를 잡아오는 자에게는 막대한 보상을 내릴 것이며, 카일 세르지오는 직접 내 손으로 죽일 것이다.”


“안됩니다! 전하! 부디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전하!”


라미르는 병사들에게 끌려가면서도 계속 외쳤으나 몬테규는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어느새 몬테규 곁에는 그의 호위대장인 모리탄이 가다와 그의 어깨를 손으로 집었다. 손을 통해서 몬테규의 떨림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저 자에게 일말의 동정조차 주지 마십시오. 잘 하신 일입니다.”


“고맙네. 모리탄경.”


한바탕 소란이 휩쓸고 간 서재는 더욱 적막했지만 곧 그 적막을 깨고 서재의 문을 열고 들어온 자가 있었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카만 옷을 입었고 머리엔 두건을 뒤집어써 정확한 얼굴조차 확인하기 어려웠다.


“꽤나 요란스럽군요. 새로운 도약을 하려면 이정도 소란이야 어쩔 수 없겠지요. 참으로 인간은 어리석습니다. 아까 끌려가며 그자는 왕국 유일한 마법사가 없어지는 것을 걱정하더군요. 하하하.”


“전하 앞에선 예를 갖추시게.”


모리탄이 경고조로 끼어들자 몬테규가 그를 저지했다.


“괜찮네. 모리탄. 궁지에 몰릴수록 인간이란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너무 그를 나무라지 마십시오. 어찌 한낱 필부의 머리로 자신의 아들을 대신한 마법사가 나타났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의문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몬테규의 책상에 걸터앉고는 그가 마시다 만 술잔을 들어 술을 따랐다. 술잔을 들어 올리자 소매가 흘러내리며 그의 손목에 작게 새겨진 검은 초승달 문양이 보였다. 그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들이켰다.


“이르지만 축배를 들기엔 썩 괜찮은 술이군요. 카일 세르지오를 죽인 뒤 마시는 술맛 보다야 못하겠지만···. 이제 전하와 나의 목적을 이룰 일만 남았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술잔을 말끔히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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