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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철과 화염의 시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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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레
작품등록일 :
2018.10.2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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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0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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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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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귀환, 그리고 책략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명은 전부 실존인물입니다만, 장르의 특성상 사실과는 다소 성격이나 행적이 달라질 수 있음을 고지합니다.




DUMMY

내가 대교에게 미끼를 던진 지 대충 한 달 정도가 지나자 한양에서 내려온 조보에 실록에 대한 것이 실렸다. 조보에 의하면 실록의 인쇄가 잘못된 것 때문에 나머지 사고를 모두 열어 기록을 확인하게 했는데, 다행히 문제가 있는 건 전주에 있는 것뿐이라 한양에서 새로 인쇄를 해서 보내주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걸로 문종실록의 파본은 막았지만, 막상 나는 한양에서 내려온 그 조보를 전주에서 편히 앉아 읽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2월 중순쯤에 흥양(興陽)에 왜적이 쳐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진데다 급보를 알리는 파발이 며칠 후 전주를 지나치는 것이 더해지니 종친들이 나를 서둘러 한양으로 밀어 보낸 것이다.


전주에서 흥양까지는 한양에서 전주까지만큼 멀어서 개인적으로 별문제는 없을 거로 생각했지만, 억지로 떠밀려 말에 타서 전주를 떠난 후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만에 하나 왕자인 내가 왜적들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조선으로서는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미적지근한 대응을 할 수 없게 되니까.


그래서 전주 감사가 붙여준 마군(馬軍) 셋을 호위 삼아 전주를 떠난 나는 일주일 뒤, 익숙한 한강의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아무런 일도 없을 때는 강행군을 했다가 왜적을 피해 한양으로 올라갈 때는 느긋하게 움직였다는 게 우습기는 했지만.


그러나 도보로 움직일 왜적들이 말을 타고 움직이는 날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솔직히 여행 가는 셈 치고 느긋하게 움직이고 싶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이맘때에 한양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이 없으니까.


그런 심정과는 상관없이 고작 3개월 만에 한양에 다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왕과 왕비에게 문안 인사를 올렸다. 왜적의 출몰로 조정의 분위기가 뒤숭숭한 와중에 지방에 내려가 있던 내가 무사히 한양으로 돌아오니 왕보다 왕비가 더욱 나를 반겼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방으로 돌아온 나는 이번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심했다. 나로서도 왜적을 물리치는 건 남의 일이 아니었고, 몇 년 후를 생각하면 이건 전초전(前哨戰)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왕자의 신분으로 개입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전무했고, 기껏해야 농림청에 퇴비 대신 염초를 만들어 병조에 넘기면 좋겠다는 식의 관원들도 다 아는 일들을 조언하는 것밖엔 없었다.


사실 이것도 임시 관청인 도감에서 벗어난 농림청의 입장에선 내 조언을 흘려들어도 그만인 문제였고, 어쩌면 이미 일이 그렇게 진행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싸움이 난 것을 알아도 손을 쓸 방법이 없다는 무력감에 찌들어 방에 처박혀 있던 나는 별안간 왕이 나를 찾는다는 내시의 말을 듣고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한양에 돌아와서는 쥐죽은 듯이 방에 틀어박혀 있었는데다 농림청의 일도 이제 궤도에 올라 내가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송아지가 제대로 크는지 확인하는 정도가 농림청에 내가 개입하는 일의 전부나 다름없을 뿐더러, 왜적이 쳐들어왔다는 소문이 민보를 통해 빠르게 퍼져서 한양의 분위기가 뒤숭숭해 밖으로 나가기가 눈치 보인다는 것도 있었다.


더욱이 아직 눈에 핏발이 가라앉이 않아 있을 삼사의 시선도 있어 최대한 자숙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왕이 찾으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침전으로 가서 인사를 올린 나는 왕이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왜 부른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이거라면 내가 아니면 뾰족한 수가 없을 거다.


"소금···, 말씀이시옵니까?"

"그렇다. 이미 연안의 염전에서 거둔 소금이 1만 섬을 넘겼고, 섬을 만들 지푸라기가 모자라 염퇴장에서 뺄 수가 없을 지경이라는 장계가 올라왔다. 그러니 염전을 만든 너라면 묘안이 있을까 싶어 이리 부른 것이다."


내가 한양에서 제방 공사를 벌일 무렵에 완공되었다는 염전의 규모는 약 5백 정보, 그것도 현재진행형으로 늘어나고 있으니 지금쯤이면 적어도 1천 정보는 되었을 것이다. 당장 써먹을 수 없는 절반을 자르고 이미 완성된 5백 정보의 생산량만 가정해도 당장 쓸 수 있는 소금의 양만 수천 섬은 족히 될 것이다. 염퇴장에 쌓인 것까지 합치면 왕의 말마따나 1만 섬은 가볍게 넘었을 것이고.


그 말은 연안의 염전 하나로 조선 전체의 소금 수요를 충당하고도 남아돌아 염퇴장에 묵혀야 한다는 소리다. 더욱이 염전의 규모가 더 커지면 지금까지 생산된 양은 코웃음을 칠 정도로 소금이 쌓일 것은 바보라도 알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쌓이고 있는 소금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를 궁리하던 왕이 나를 부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 염전을 만든 것이 나니까 거기서 나온 소금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는 수단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겠지.


실제로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왕에게 태안에서 모래를 담을 때 써먹었던 가마니의 존재를 알렸다. 크기가 작다곤 해도 소금을 담는 기존의 섬보다 3할 정도 작을 뿐더러, 같은 양의 짚을 사용해 2배나 되는 소금을 담을 수 있는 가마니의 존재는 꽤 구미가 당길 것이다. 실제로 가마니를 태안에서 알차게 써먹기까지 했으니 그걸 전파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지.


그러나 소금을 운반할 수단은 가마니로 때운다 쳐도, 정작 그 가마니에 담은 소금을 처리할 수단에 대해선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일단은 미봉책으로 왕에게 지방에서 각자 만들던 소금 생산을 중단하게 하는 대신 미곡을 한양에 옮기고 돌아가는 조운선에 소금을 실어 보내게 하자는 제안을 꺼냈다.


"조운선에 소금을?"

"그렇사옵니다. 조운선은 올 때는 무겁게 오지만, 갈 때는 아무것도 싣지 않고 돌아가니 급격한 중량의 변화 때문에 운행에 지장이 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옵니다. 그런 조운선에 소금을 싣는다면 배가 무거워져 풍랑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옵니다. 또한, 태안의 운하를 이용한다면 침몰을 걱정하지 않고 소금을 삼남으로 운반할 수 있으니 굳이 지방에서 소금을 만들어 재목을 낭비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옵니다. 그리고 나라에서 소금을 염가로 지방에 보내면 백성은 품이 많이 드는 소금을 직접 만들어 먹지 않게 될 것이옵니다. 본디 백성이 소금을 사사로이 만드는 것은 그것이 귀하기 때문이지만, 나라에서 소금을 보내준다면 그런 수고를 거칠 이유가 사라지게 되오니 농사에 전념하게 될 것이옵니다."

"과연 묘안이로다. 도염원에 일러 속히 실시하라 명할 것이다."


소금으로 조선을 통제할 생각이 잔뜩 꼈을 왕으로서는 내 제안을 따르지 않는 것이 바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염퇴장의 소금들을 모조리 소진할 수 없는데다 조선의 처지에서 그걸 처리할 수단은 오직 하나뿐이니,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그 방법을 입에 담았다.


"또한 염퇴장에 남은 소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회전(會典)에 따라 실시하고 있는 해금령을 풀어야 하옵니다."

"···지금 해금령이라 했느냐?"

"그러하옵니다, 아바마마. 조선은 국토가 작아 그 많은 소금을 모두 사용할 수 없사오나, 중국은 대국이라 조선에서 나온 소금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설사 네 말대로 조선이 해금령을 푼다 한들 명이 해금령을 지키고 있으니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돌아온 왕의 대답을 들은 나는 설마 했던 생각이 들어맞아 한숨이 절로 나올 것만 같았는데, 왕이 진짜로 명의 해금령이 완화되었다는 걸 모른다는 걸 확인하고는 곧바로 입을 열어 명의 해금령이 완화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당연히 그걸 들은 왕의 표정은 실로 가관이었고, 그걸 어디서 들었느냐는 질문에 내가 개성에서 상인들이 하는 얘기를 주워들었다고 대답하니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일개 상인도 아는 걸 왕이 모르고 있으니 진짜로 쪽팔리겠지. 미안해요, 송상들.


"하오나 완화된 해금령을 따른다 하여도 조선에서 명으로 소금을 가지고 가는 것은 불가하옵니다."

"그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명의 상인들을 조선으로 들이기라도 해야 한단 것이냐?"

"그랬다가는 조선의 비밀인 염전이 명에 알려지게 되니 해가 더욱 클 뿐이옵니다. 대신 소자에게 대안이 있사옵니다."

"그것이 무엇이더냐?"


미치지 않고서야 조선의 돈줄이나 다름없는 염전을 드러낼 수는 없다. 더욱이 연안 인근에는 고려 시절부터 교역로로 애용하던 벽란도가 있으니 무작정 해로를 개방했다간 그 곳으로 명의 상인들이 몰려들 것은 뻔하고, 그 과정에서 지척에 놓인 염전이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그러니 명의 상인들을 조선으로 들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선택지지만, 대신 나에게는 다른 방안이 있었다.


하지만 내 대안을 들은 왕의 표정은 멋지게 구겨졌는데, 확실히 사정을 모른다면 내 대안이란 녀석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소금을 명에 조공(朝貢)하는 것이 바로 소자의 대안이옵니다, 아바마마."


조선이 명에 미친 듯이 조공하며 물건들을 바치긴 하지만, 조선의 처지에서도 그만큼 이득이 남으니 조공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조선에 죄다 얼간이들만 있어서 대들보를 뽑아 명에 바칠 리가 없잖아.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조선은 정말 특산물이 없다. 사신들이 출발하는 시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편적으로 인삼을 빼면 돗자리와 동물 가죽이 각각 반반일 정도로 조악하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명에 바치는 조공품의 경우이고 사행에 따라붙어서 별도로 교역하는 자들의 것들은 별개지만, 조공 규모가 작은데 사무역이라고 해 봐야 거기서 거기다. 그 정도로 명에게 바치는 조공품이 빈약하기 그지없는 조선에서 갑자기 수천 섬 단위의 소금이 조공 품목에 오르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공식적으로 바치는 조공조차 1년에 3번이고 별사행까지 합치면 육로로는 절대로 그 많은 양의 소금을 운반 못 한다. 하지만 번국이 수천 섬이나 되는 소금을 바치겠다는데 그걸 거부하는 건 명의 처지에선 황제국으로서의 체면이 안 서니 어떻게든 받아들일 것이다. 다만 최대한 손실이 안 나도록 물가 변동이 심한 사치품 위주로 주려고 애를 쓰겠지. 조공 품목이 늘어나는 것은 명으로서는 손해가 커지는 거나 마찬가지니 말이야.


그러나 조선의 처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그딴 사치품이 아니라 바로 쌀이다. 안 그래도 연이은 흉년으로 상당히 타격을 입은 조선으로서는 강남에서 대운하를 통해 올라오는 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마침 흉년도 들었으니 쌀이 필요한 근거도 있고, 소금을 해로로 운반한 뒤에 남는 곳에다 쌀을 실어 가져오면 되니 육로를 고집할 필요도 없어진다.


처음에는 그 많은 소금을 조공으로 바치자는 말에 찡그려졌던 왕의 표정도 이어지는 내 설명을 듣고는 이해한 것 같았다. 해금령은 어디까지나 상인 간의 교역을 막는 용도이지 조공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당장 바다 건너 유구(琉球)에서도 해로로 조공하고 있지 않은가. 뭐, 거긴 섬나라니까 어쩔 수 없지만.


"그러니 조선의 해금령을 풀고, 소금을 조공으로 바치는 대신 쌀을 받아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백성에게 구휼을 실시한다면 조선 팔도가 아바마마의 공덕을 칭송할 것이옵니다."

"허나 명이 순순히 쌀을 조선에 하사하겠는가?"

"그것은 명의 미상(米商)들을 포섭하면 되는 일이옵니다."


조공에서 난데없이 상인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넘어가니 왕은 의아해했다. 왕의 상식으로는 국가 간의 문제에 상인 따위가 왜 끼어드나 싶겠지만, 조선과는 달리 명은 상인이 국가의 흐름을 뒤흔들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점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매년 수천 석 규모의 소금을 육로로 온전히 운반하는 건 조선의 역량만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조공을 바치기 위해 해로를 사용하고 싶다고 명에 조르는 동시에 미상들에게 접근해 해로가 열리면 조선에서 소금을 팔아 쌀을 구매한다는 약조를 하면 된다. 미상들의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코앞에 막대한 시장이 새로 생기는 거나 다름없으니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지.


만일 소금을 모조리 조공으로 바치게 되어도 별문제는 없는데, 바치는 양보다 많은 소금을 만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염전은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으니 소금이 남으면 남았지 모자라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공을 바치고 남은 소금을 팔아 얻은 돈으로 쌀을 사서 조선으로 가져오면 될 일이다.


이런 전개를 대략 설명하면 몸이 달아오른 미상들이 알아서 명의 관리들을 포섭할 것이고, 그다음은 사행을 가는 사신들의 혓바닥에 맡기면 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기존의 염상(鹽商)들과의 충돌이지만, 이것은 천일염 특유의 염도를 무기로 휘두르면 될 것이다.


사행로 인근에서 소금을 만드는 방식은 조선과 유사한 자염이다. 사천(四川)에 천일염보다 염도가 높은 암염 광산이 있긴 하지만, 대운하가 멀기 때문에 운송비가 무지막지하게 깨지니 자염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염이 암염보다 싸게 생산될 리가 없기 때문에 만리장성 이북에서의 소금값은 상당히 비싼 편이다.


아니, 당대에 동서를 통틀어 소금이 흔한 곳은 암염 광산이 있는 곳이 아니면 전무할 것이다. 그런데 자염보다 염도가 높으면서도 값이 암염보다 싼 조선의 천일염이 풀리면 사행로에 자리잡고 있는 기존의 염상들은 막대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명에서도 소금은 황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 이 점을 해결해야 어떻게든 일이 풀리겠지.


당장 생각나는 거라면 천일염이 염도가 높으면서도 저렴한 점을 내세워 빈민들을 위주로 공략하고, 자염은 값을 올려 부유층들에게 파는 명품 전략을 알려 시장이 겹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그런 자잘한 것보다는 소금을 움켜쥔 황제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


마침 이맘때면 만력제가 황태자 옹립으로 대신들과 으르렁거릴 시기니 그 틈을 노려 파고들어 어떻게든 황제를 알현할 기회를 잡아낸 뒤,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 황제의 마음을 사기만 한다면 그다음은 일사천리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어떻게 황제의 마음을 얻느냐가 관건인데, 나는 내 기억 속에 있는 만력제의 성격을 떠올리며 황제를 세 치 혀로 구슬린다는 대담한 계획을 세워 왕에게 설명했다.


"···그것이 정녕 가능하겠느냐?"


그런 내 설명을 들은 왕은 놀라서 체면도 잊고 입을 벌린 지 오래였다. 사실 왕은 혓바닥만 가지고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내 미친 발상이 나올 때부터 진작에 입을 벌렸지만, 내가 생각해도 황실과 명의 대신들 사이를 파고들어 이익을 취하겠다는 건 솔직히 제정신으로 나올 발상이 아니다. 그러니 왕이 입을 벌린 채 굳어도 할 말이 없지.


"가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대로 소자는 하늘의 뜻에 맡기기 전에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할 것이옵니다, 아바마마."

"허어···. 그 계책(計策)을 성사시킬 수 있다면 기꺼이 조선의 해금령을 철회할 수 있겠지만, 그다음부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소자도 알고 있사옵니다. 허나 지금도 소금이 산을 이루고 있으니 지금 당장 움직여야 때를 맞출 수 있을 것이옵니다."


사실 나로서는 소금이 쌓이는 건 아무래도 좋지만, 그걸 처분할 수 없게 되면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러니 애물단지로 전락하기 전에 어떻게든 남아도는 소금을 명에다 팔아서 얻은 이득으로 쌀을 사서 가져오는 것이 최선이다. 조공 때문에 대놓고 사무역을 벌일 수는 없으니 기존의 조공에 곁들어서 행하는 교역의 규모를 키운 것뿐이라고 어떻게든 얼버무려야겠지만.


그렇게 되면 조공을 바친다는 명분 아래 당당하게 소금을 명에 팔고 그 대금으로 쌀과 필요한 것들을 골라 사서 해금령의 허점을 파고들어 배를 사용해 조선으로 가져오면 된다. 조선이 해금령을 폐지해도 명에서 유지하는 건 변함없는데다, 나도 상인들을 함부로 풀어 줄 생각은 없으니 조정에서 허가를 내린 자만 받아들이게 한다면 어떻게든 통제는 되겠지.


그렇게 되면 조정은 엄격한 절차를 밟아 뽑힌 상인들이 충실한 개가 되어 조선에 필요한 것들을 사오게 만들도록 고삐를 움켜쥔 거나 마찬가지가 된다. 여기에 조선이 해금령을 철폐했다는 것을 엄격히 숨긴다면 명의 상인은 조선에 와서 물건을 팔 수 없으니 자연히 조선에서 보낸 상인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게 된다. 과연 조선 상인들이 해금령 철폐라는 비밀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가 의문이긴 한데, 이건 무능한 명의 국제 정보 수집력을 믿어 볼 수밖에.


다만 훗날 명과의 거래 규모가 커진다면 상인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배가 동원되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소금과 쌀의 운반을 의탁하는 대신 상인들이 사적으로 벌어들이는 교역을 묵인하면 되겠지. 어차피 해금령이 풀리면 명과의 교역만 못 할 뿐이고 그 이외에는 자유가 되니 머리가 돌아가는 상인이라면 해상으로의 진출을 노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내 목적과도 어느 정도 겹치는 면이 있으니 막을 이유가 없다.


다만 이 계획은 실행에 옮기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당장 써먹을 수는 없었다. 뜬소문 정도를 퍼트리는 거라면 사신들을 통해 곧바로 실시할 수는 있지만, 그 전에 조선은 명과의 문제를 완전히 매듭지어야 했다. 바로 종계변무 문제인데, 조공에서 난데없이 엉뚱한 얘기로 넘어간 내 말을 들은 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라면 이미 거의 다 해결된 것이 아니더냐?"

"하오나 소자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틀림없이 명에서 변무를 무기로 삼아 조선을 농락하려 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이 일은 종계변무가 이루어진 직후에 개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옵니다. 이백 년에 걸쳐 간신히 이룬 대업을 이런 일로 망칠 수는 없지 않사옵니까?"

"흐음···."


어차피 소문을 퍼트리려면 시간이 걸리니 그동안 사전작업을 해 두어도 나쁘진 않다. 그러나 행동을 개시하는 것은 종계변무가 마무리된 후가 아니면 주도권을 조선이 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식으로 왕에게 설명하자 한참 동안 고심하던 왕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느릿하게, 하지만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좋다. 네 계책대로라면 조선에 큰 이익이 될 것이니 해 볼 가치는 있겠구나. 다만 이 일은 과인이 주도해서 벌일 것이니 광해 너는 오직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을 계책만을 시도하도록 하여라."

"소자 광해가 어명을 받드옵니다."


내가 생각해 둔 계획 중에서도 손으로 꼽힐 정도로 어마어마한 음모는 그렇게 왕의 허가를 받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 계획대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였지만, 앞날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으니 왕에게 절을 올리면서도 나는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적, 논문 등의 타당한 근거를 가진 지적에 대해서는 24시간 접수하고 있습니다.


작가의말

조공 품목에 대한 것은 '朝鮮時代 對明貿易構造에 관한 硏究'을 참조했습니다. 연도가 꽤 차이나긴 하지만 품목은 별 차이는 없을 거라 예상되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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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3

  • 작성자
    Lv.73 주차장알바
    작성일
    19.02.12 00:59
    No. 1

    종계변무가 이성계의 아버지가 이인임이라고 적힌 그거 말하는거 맞죠???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37 해견
    작성일
    19.02.12 01:01
    No. 2

    45화인데 언제 임진왜란을 볼지ㅠㅠ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42 bomb
    작성일
    19.02.12 01:10
    No. 3

    왕이 그래도 견제 안하니 다행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48 에랄드
    작성일
    19.02.12 01:12
    No. 4

    이 앞 화에 내용이 추가 되었는데 알림이 안 떠서 못 볼 뻔 했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수용
    작성일
    19.02.12 01:18
    No. 5

    생선 소금으로 염장 하면 꽤 많은 소금이 소비되겠네요.
    당시의 바다는 진짜 물반 고기반, 그러나 유통망이 없고 많이 잡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많이 잡으면 썩어버리니까요.
    하다못해 생선을 썩혀서 비료로 사용할 정도였으니 염장하면 새로운 수익원창출.

    찬성: 7 | 반대: 0

  • 작성자
    Lv.56 Eniac
    작성일
    19.02.12 01:21
    No. 6

    수익원이라기보다 나라 전체의 식량풀도 커지고 보존기한이 길어지니 국력신장쪽이 맞는거같아요.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55 f512_bib..
    작성일
    19.02.12 01:29
    No. 7

    고려천자 똥꼬빨러갑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오들이햇밥
    작성일
    19.02.12 01:32
    No. 8

    14% 가라앉이 → 가라앉지
    오타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4 pokjk
    작성일
    19.02.12 01:33
    No. 9

    500정보라..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전인 주안 염전이 1정보로 1년에 72톤을 생산했다고 하네요. 노하우가 부족해서 생산성이 반토막 난다고 해도 500정보면 18000톤이니, 쌓인 양이 너무 적어 보이긴 합니다. 그것보다 500정보 150만평이란 염전을 그렇게 빨리 만드는 것 부터가 너무 빠른거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1 트래픽가이
    작성일
    19.02.12 01:38
    No. 10

    지금 광해가 몇살이죠?
    나이에 비해서 너무 튀는거 같은데..

    찬성: 2 | 반대: 1

  • 작성자
    Lv.60 고양아
    작성일
    19.02.12 02:04
    No. 11

    오오 재밌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2 벼이삭
    작성일
    19.02.12 04:15
    No. 12

    소금은 아무리 많아도 쓸데가 넘쳐날텐데? 생선 염장만 해도 엄청들어감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49 추어동천
    작성일
    19.02.12 05:56
    No. 13

    염장이 미치는 영향이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원정 전쟁이 가능하게 된다는게 크더라구요

    예전 동영상 테스트 할 일이 많아서 ebs 파일로 했는데, 거기서 과거 바이킹의 원정이 가능했던 가장 큰 요인이 염장물고기로 인한 식량확보라고 분석하더라구요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32 마마존
    작성일
    19.02.12 06:04
    No. 14

    소금이 많으면 염장식품이 늘어나겠군요.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58 수월류
    작성일
    19.02.12 06:38
    No. 15

    소금을 조공하면 조선에 소금이 많아진 이유를 알아보라고 할건대요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99 이통천
    작성일
    19.02.12 08:44
    No. 16

    북방에 파는것도 좋죠. 우호적인 부족에 교역권줘서 똘마니도 키우고 말과소도 늘리고.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41 라야샤토
    작성일
    19.02.12 11:42
    No. 17

    작가님이 사료 덕후라 그런지 댓글도 그럴듯하고 재미있는 의견이 많군요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챠크라
    작성일
    19.02.12 12:05
    No. 18

    모든건 고려천자께서 해결해주실꺼임 자신과 선조를 유관장의 화신이라고 생각한 인물인만큼 직접가서 고려천자를 빨아주면 원역사보다 더 했음 더하지 덜하진 안할듯...전조에도 두번이나 비슷한 일이 있었죠 고려태자가(원종) 항복하러 카라코룸으로 안가고(당시 상황에선 꼬였으면 고려황실 멸절당할만한 결정이었던...) 4째황자에게 가서 결국 그가 황제가 되었고 그가 바로 쿠빌라이 칸이 되었죠 그이유로 고려가 멸망하지않고 고려가 원한 6가지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졌고 고려만의 미풍양속을 유지하는걸 인정 받았죠 심지어 부마국이 된건 딴게 아니라 이 사건이 커씀 훗날 아들인 충렬왕이 원황실 no4까지 간게 다 초절정의 라인타기 능력이었죠.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49 초록
    작성일
    19.02.12 19:53
    No. 19

    니가 가라 하와이... 광해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만력제 꼬셔야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하남시민
    작성일
    19.02.12 20:01
    No. 20

    가마니는 일제시대에 생긴 일본어의 잔재임.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19.02.12 21:38
    No. 21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9 아우에이
    작성일
    19.02.13 00:55
    No. 22

    명나라 국제 정보력 개쩌는 수준인데 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오르텔
    작성일
    19.02.13 14:13
    No. 23

    중국은 대국이라 -> 명나라는 아닌가요?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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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개성의 밤(上) +11 18.11.30 19,421 456 17쪽
25 염전 개발(下) +8 18.11.29 19,715 473 17쪽
24 염전 개발(上) +8 18.11.28 20,216 465 15쪽
23 길 넓히기(下) +9 18.11.27 20,239 48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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