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류(무림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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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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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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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28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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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DUMMY

붉은 옷을 입은 사십여 명의 무리는 모두 혈살문도였다. 그들은 곧 장원의 대문에 이르렀고 익숙하게 그 문턱을 넘었다.


그들이 담장 너머로 사라지자 운조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의 침입을 눈치 챈 걸까요?"


무경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모를 일이다. 잠시 지켜본다."


무경은 운조와 도윤을 이끌고 다시 한 번 나무를 타고 올랐다. 그리고 장원 안을 살폈다.


조금 전 들어선 무리가 장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들은 곧장 나아가더니 가운데 자리한 전각 안으로 사라졌다.


어쩔 수 없이 무경 일행은 침묵 속에서 기다렸다.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어둠과 함께 그들을 내리눌렀다.


잠시 후.

전각 안에서 사내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더니 장원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각 구역에서 경비를 서던 자들을 대신했다.


부산한 모습들···.

그들은 분명 교대하고 있었다.


먼저 경비를 서던 혈살문도들이 마당으로 모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장원 밖으로 향했다.


문을 벗어난 그들에게서 시시껄렁한 농담과 왁자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일과를 끝마친 그들은 몹시 즐거워보였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자, 무경은 다시 땅으로 내려섰다.

뒤따라 내려온 운조가 왼손으로 뒷목을 문지르며 조용히 속삭였다.


"교대하러 왔나 봅니다. 다행입니다. 저희가 공격하던 중에 몰려왔으면 힘들어질 뻔 했습니다."

"음···."

"무슨 문제라도?"


안도하는 그와 달리 무경의 인상은 굳어져 무언가 못마땅해 보였다.

무경이 잠시 턱을 쓰다듬고서는 대답했다.


"모두 다른 자들이다."

"네?"

"전각 안에 들어선 자들과 나온 자들은 모두 동일인이 아니었다."

"···!"


무경의 말에 운조가 눈을 치켜떴다.


"그랬습니까?"

"그래."

"그럼 저 전각 안에 40명 정도가 더 대기하고 있단 말이군요?"


무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경의 확신에 운조가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 먼 거리에서 저들의 얼굴을 구분해낸 건가? 대주가 흰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지만 쉬이 믿기지 않는구나.'


어찌 보면 무경의 말한 사실보다 무경의 능력이 더 놀라웠다. 어두운 밤, 먼 거리에서 낯선 이들의 인상착의를 구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이 경지의 차이인가?'


그가 무경에 대해 또 한 번 놀라고 있을 때.

도윤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대원들이 지켜보는 자리이기에 그는 무경에게 말을 높였다.


"대주님 말대로라면 놈들의 수가 적어도 팔십은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문도들을 이끌 조장급이 최소 넷은 존재할 겁니다. 게다가 이류무사인 흑살당주 역시 대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 거야."

"이렇게까지 철저히 경비를 서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정말 중요한가 봅니다. 혈살문의 수입 대부분이 노예경매에서 나온다는 말이 사실인 듯합니다."


도윤의 결론에 무경은 담장 너머를 잠시 바라보았다. 저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갇혀있을지 종잡을 수 없었다.


운조가 말했다.


"보이는 것보다 놈들의 수가 너무 많군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운조의 우려석인 말에 대원들의 시선이 순간 만적에게 모였다가 이내 흩어졌다.


상황만 보면 잠시 물러섰다 인원을 보충한 후 공격해야 옳았다. 하지만, 지금 만적의 딸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데 그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러니 그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그 시선을 느낀 만적이 이를 악물었다.


"대주! 여기까지 와 준 것만도 감사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만적의 말을 끊고 웅천보가 끼어들었다. 그는 손바닥에 침을 퉤하고 뱉고는 허리춤의 철퇴를 움켜잡았다.


"다들 분위기가 왜 이래? 뭐가 두려워 주저하고 있어?"

"어허, 천보! 난 괜찮아. 괜찮대도!"

"우리 식구가 일을 당했는데 이대로 꼬리를 말고 도망갈 거야? 무사의 수는 우리와 똑같잖아. 일반문도들이야 수가 많아봤자 한번 밀리면 도망가기 바빠! 안 그래?"


그는 대원들을 둘러보며 도끼눈을 뜨며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쉬이 동조하지 못했다. 목숨을 거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만적의 딸이 잠깐만 굴욕을 참으면, 많은 대원들이 안전하게 일을 도모할 수 있으니까.


"천보! 목소리를 낮춰!"


무경이 웅천보에게 주의를 주었다.


다행히 그의 목소리가 아직 담장을 넘지 않았으나, 조금 지나면 흥분으로 더 커질 것을 우려해서다.


제 실태를 깨달은 웅천보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무경에게 물었다.


"대주! 정녕 이대로 물러날 거요?"


그의 질문은 소리만 작아졌지 아직도 불만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아니."


짧게 대답한 무경이 운조를 돌아보았다.


"운 조장, 나는 아까 자네가 말한 대로 했으면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때?"


상황이 변했으나 그의 목소리는 긴장감이 없이 차분했다.

그것은 대답하는 운조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찬성입니다. 여기 일류의 실력자가 있는데 저들이야 한입거리죠."


운조의 가벼운 대답.

그 말에 대원들 모두가 무경을 돌아보았다.


"이, 이게 무슨 말?"

"어, 어."

"운조장님, 대주가 일류라구요?"


그들의 질문에 운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흑영대의 두뇌역할을 하는 운조와 친우인 도윤은 무경의 진정한 실력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도 얼마 전에 안 일이다. 우리 대주께서는 이미 일류에 올라섰다."

'뭐, 내공이 부족해서 진짜 일류는 아니지만···.'


운조는 자신이 아는 사실을 굳이 모두 다 말하지는 않았다.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약간의 과장이 필요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대원들이 허탈한 눈으로 무경을 바라보았다. 당혹과 의문, 경이와 존경이 담긴 눈빛들이었다.


더 소란스러워지려는 것을 무경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질문은 다음에 받지. 우선 이 문제부터 해결하고. 운조, 계획을 말해라!"


운조가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좀 전까지도 위태롭던 대원들의 눈빛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적을 알고, 적은 우리를 모릅니다. 이럴 때는 뭐니 뭐니 해도 각개격파가 최고입니다."

"그래서?"

"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담장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적들을 처리하시죠. 바로 앞 작은 창고부터 시작해서 폭풍처럼 몰아쳐야 합니다."


그의 의견에 무경이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잠시 담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명을 내렸다.


"그대로 가지. 나와 1조는 함께 담장을 넘고, 3조는 외곽을 돌며 망보는 자들을 처리한다. 전장의 운영은 여기 제2조장이 대신한다. 운 조장이 보고 필요한 곳을 지원해."

"네."

"네."


만적과 운조가 짧게 대답했다.


"다들 몸조심하기 바란다. 혹시라도 다칠 거 같으면 뒤로 물러나 동료의 도움을 받아라."

"네."

"4조는 지원사격 철저히 하고."

"넷!"


도윤이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어엿한 삼류무사가 된 그는 믿음직스러운 궁수였다.


"강적이 나타나면 나에게 바로 알려. 괜스레 덤비다 맞지 말고."

"걱정 마십시오. 대주."


무경의 장난스런 당부에 도윤도 장난스러운 미소로 대답했다. 둘의 눈빛이 끈끈하게 이어졌다.


늦은 가을 저녁.

하늘에는 어느새 달이 떠올랐다. 그 빛을 짙은 구름이 잠시 가렸다.


순간, 무경이 담을 넘었다. 짧은 바람소리와 함께 그의 신형이 담장 밑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빠른 월장과 자연스러운 은신을 담장 뒤에서 망을 보던 두 명의 혈살문도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이야기 나누기에 바빴다.


"아! 글쎄 내가 딱 마지막 패를 들었는데!"

"들었는데?"

"그게···."

"야, 이 사람아! 현기증 나게 왜 이러나? 어서 말을 해보게."

"꽝이지 뭐야. 하하하하!"

"뭐? 이런 싱거운 소리가 있어! 술 한 잔 사줄 거라 기대했더니. 좋다 말았잖아."

"첫 끗발이 개 끗발이었던 거지 뭐."

"에이, 퉤!"


퍽-


"응?"


침을 뱉던 사내가 이질적인 소리에 옆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쓰러지는 동료가 보였다.


그리고 머릿속을 울리는 종소리도 들렸다.


"큭!"


짧은 신음을 토한 그가 힘없이 꺼꾸러졌다.


경비 둘을 쓰러뜨린 무경은 자갈을 하나 주워 담장 너머로 던졌다. 그리고 조용히 기다렸다.


곧 여덟 개의 그림자가 담을 넘어 무경의 곁으로 다가왔다. 만적과 그의 조원들이었다.


무경이 앞장서서 창고로 달렸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빼든 단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쉬익-

식-


그의 손을 떠난 단검이 창고의 벽에 기댄 사내의 명치에 박혔다.


동시에 뒤에서 날아온 화살이 그 옆 털보의 목을 꿰뚫었다. 담장 너머 나무 위에서 도윤이 쏜 것이다.


길이 열리자 만적과 조원들이 뒤따랐다. 무경은 그들과 함께 옆을 따라 돌며 경비를 서던 경비들을 일거에 쓰러뜨렸다. 워낙 무경과 만적의 실력이 뛰어난데다가 도윤이 활로 지원까지 하니 손바닥 뒤집듯 쉬웠다.


하지만 소리 없이 모두를 쓰러뜨리기는 힘든 일이어서, 결국 둘을 남겨놓고 발각되고 말았다. 무경의 검갑이, 도윤의 화살이 닿기 전 그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해냈다.


삐익-

"침입자다!"


호각소리와 외침이 장원의 정적을 깨뜨렸다.


퍽-

슉-


그러다 이내 무경과 대원들의 공격에 그들은 정신을 잃었다.


"서두르자."


경비들을 쓰러뜨린 무경은 조원들을 이끌고 곧바로 창고의 문으로 향했다.


그 사이에 장원의 마당에서는 호각소리와 외침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튀어나온 혈살문도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뒤이어 담을 넘은 제2, 제3조의 흑영대원들과 경비들이 부딪치는 모습도 보였다.


'아직은 우리가 우세하다.'


첫 실전에 걱정했던 무경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운조와 웅천보가 이끄는 대원들의 실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장원 곳곳에 분산 배치된 적들보다 현재는 머릿수로도 앞섰다. 당장 큰 위험은 없었다.


그는 작은 창고의 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혹시라도 있을 상대의 공격을 예상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때, 바람을 타고 안에서 시큼하고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마치 썩은 생선에 간장을 뿌려놓은 것 같은 악취가 코를 후벼팠다.


창고로 들어선 모두가 코를 붙잡았다.


"이게 무슨 냄새지?"

"뭔가 썩은 거 같은데요."


그 순간 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드러나며 창고 안을 비췄다.


탁자 위에는 이제 막 작업한 고깃덩이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천정에서 내려온 갈고리들에는 빨간 핏물을 머금은 고기들이 줄줄이 걸려 흔들리고 있었다.


이곳은 푸줏간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무언가 이상하다. 빨간 육질과 달리 그 가죽은 새하얗고 매끄러웠다. 그리고 터럭 하나 없이 깨끗했다.


대원들의 입에서 하나둘씩 헛구역질이 나왔다.


"이런, 우웩!"

"뭐야. 이거 사람이잖아!"

"혈살문, 이 개새끼들이!"


탁자 위의 고깃덩이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이었다.


그런데 사지가 모두 잘려나가 보이지 않았고 배가 갈린 몸뚱이만 놓여있었다. 죽음의 순간까지 깨어있었던 듯 두 눈은 경악으로 치떠져있었고 입매는 울음을 머금은 듯 찌그러져있었다.




무인은 피를 먹고 자라고, 저는 선작과 추천을 먹고 자랍니다.


작가의말

무인은 피를 먹고 자라고, 저는 선작과 추천을 먹고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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