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릴리 (Shanghai L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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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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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1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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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마도魔都의 암호暗號 (6)

DUMMY

상하이 릴리Shanghai lily



글- 소리글



제74회



Ⅴ. 마도魔都의 암호暗號 (6)



샹하이 베니스, 주쟈쟈오쩐朱家角鎭 1



두상이 꼭 끼는 동그란 청국淸國모자 꽈피마오瓜皮帽에 동그란 안경을 끼고 흰색 소주蘇州비단실로 소주수蘇州繡를 놓은 흰색 파오쯔 차림의 사내가 쥘부채를 접어들고 방생교放生橋를 건너왔다.

꽈피마오도 흰색 소주비단에 흰색 소주비단실로 수를 놓은 것이었다.

조항하漕港河 운하바람과 오후의 햇빛이 그 사내가 입은 흰색 소주비단 파오츠의 흰색 소주수를 드러냈다가는 지우고 드러냈다가는 지웠다.


“왕따거汪大哥 오셨다!”


그 사내가 조항하 방생교를 건너 북대가北大街에 들어서자 길 좌우의 가게들에서 환호하는 소리가 났다.


“왕따거, 오랜만이예요!”


사내는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환호의 답례를 했다.

그는 유장한 걸음으로 백년노포百年老鋪 찻집 천하제일다루天下第一茶樓로 향했다. 다루에서도 대환영이었다.


“어서 오세요, 왕따거!”


그는 2층의 전망 좋은 난간 쪽 테이블로 안내되었다.

명나라 청나라 시대 상업과 하운河運의 자취가 한 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잘 다듬은 돌로 포장한 도로 좌우로 홍등과 주렴珠簾을 단 술집과 여관과 찻집과 각종 상점이 끝없이 이어진 북대가는 그 풍경 그대로 주가각의 오래 된 영화를 설명하고 있었다.

상해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주가각의 원래 이름은 주가촌朱家村이었고, 이곳은 명‧청대의 상해 관문이었다.


“따거, 빙빙冰冰을 부를깝쇼?”


다루 여급의 말에 사내가 기겁을 하면서 부채를 펼쳐들었다.


“내가 허락할 때까지 빙빙의 이름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빙빙한테도 부를 때까지 내 앞에 얼씬도 말라고 해.”


“알겠습니다, 따거.”


사내는 안경을 벗고 눈을 감았다. 5년 세월이 꿈만 같았다.


-오오, 정말 꿈만 같아.


1932년 4월 이덕보와 함께 새벽의 물안개 자욱한 소주하 마진마두馬鎭碼頭에서 정크선에 오른 김요섭은 그 날 점심 때가 기울어서 소주 동리진同里鎭 천陳대인의 장원에 당도했다.

천대인 장원 입구의 운하나루에 개나리꽃이 노랗게 만발해 있었다.


-그 꽃이 나중에 알고보니 개나리가 아니라 영춘화迎春花였지.


운하에 휘늘어진 영춘화 가지를 잡고 뭍에 오르는 돌계단을 밟았던 그 날로부터 꼭 5년이었다.

-처음 1년은 동리진을 벗어나지 않았어.


2년째되는 때부터는 서북쪽의 풍교나루까지 출입을 했다.


-그러다가 상해 소주풍교상회 납품물자의 배송책임을 맡으면서부터 동남쪽의 주장周庄나루까지 행동범위를 넓혔지.


천대인의 소주풍교상회 정크선은 김요섭을 소주에 숨긴 이후로 소주하 대신 정포하淀浦河를 이용했다.

거리상으로 유리한 소주하가 교통의 혼잡함으로는 정포하에 비해서 불리할 뿐만 아니라 홍구 일본군의 입김이 미치는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김요섭이 소주 단풍다리 나루에서 구입한 물자는 동리‧ 주장‧ 주가각‧ 정포하를 거쳐 황포강 동가도董家渡에서 소주풍교상회에 인계되었다.

소주풍교상회에서 독립한 이덕보의 한성상회도 이 같은 경로로 소주의 물자를 납품 받았다.


“왕따거께서 부를 때까지는 아무도 위층에 올라가지 마. 알았어?”


다루 지배인이 종업원을 조심시키는 소리가 아주 먼 소리처럼 들려왔다.


-2년 전 아주 조심스럽게 주쟈쟈오를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김요섭이 주가각에 처음 넘어온 것은 2년 전이었다.

상해지역에 들어서는 기분이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했지만 그만큼 즐기는 기분도 있었다.

소주풍교상회와 한성상회에 물건을 실어보낼 때만 주가각으로 건너오던 것이 소일삼아 한두 번 건너오게 되었고 그러면서 안면과 인기가 생기게 되자 출입하는 데의 아슬아슬한 마음도 조심도 없어졌다.

요즘은 언제라도 마음이 한가하면 주가각으로 건너와 북대가의 백년노포 무소관茂蘇館에서 밥이나 술을 먹고 천하제일다루에서 차를 마셨다.

다루에서 빙빙과 노는 데에도 재미를 붙였다.


“따거.”


요섭은 번쩍 눈을 떴다.


“손님이 당도하셨습니다.”


벌떡 일어섰다.

아래층 계단에서 이덕보의 나카오리 모자가 올라왔고

활짝 웃는 얼굴이 올라왔고 양복 입은 어깨가 올라왔고,

그리고

그 어깨 너머로 소냐의 망사網絲 드리운 모자가 올라왔고,

아 망사의 아른거리는 그늘에서 소냐의 슬픈 눈망울이 나타났다.

작별도 없이 헤어진지 5년만이었다.


이덕보는 소냐를 김요섭 앞에 인도해주고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여기에 이렇게 있으면서...”


“상하이에는 어떻게 다시...”


“이렇게 있으면서...”


“저 사람은 어떻게...”


소냐의 두 팔이 활짝 날개처럼 펼쳐졌다가 요섭의 목을 끌어 감았고 요섭의 들뜬 입술이 소냐의 열에 뜬 입술을 덮쳤다.

입술을 떼고 다시 봐도 그리운 얼굴이었다.

다시 입술을 포갰다.

홍등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북대가는 석조 포장도로 좌우로 5리에 걸쳐 2층 3층의 건물이 줄지어 있어 조항하 방생교 쯤에서 바람이라도 일라치면 곧바로 외줄기 바람의 통로가 되었다.

5리 북대가 좌우 처마마다 줄지어 걸려있는 홍등들이 일제히 바람을 타고 흔들렸다.


“꼭 중국인 같아요.”


“이렇게 차려 입고 거울을 볼 때마다 나도 속아.”


“성은 왜 하필 왕씨예요? 나도 왕가인데.”


“근친상간일까봐 겁이 나나 보지?”


“종씨宗氏끼리 연애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나는 임금 왕 자 앞에 삼三 수水가 붙은 왕 자를 선택했지. 나는 삼수변의 왕이오.”


“그렇구나. 안심해도 되겠다.”


또 입을 맞추며 자리에 앉았다.


“정말 너무 중국인 같아요.”


“거울 앞에서 내가 보고 내가 놀란다니까?”


“그 전엔 도무지 한국인 같지를 않아서 황당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는데.”

요섭의 입가에서 갑자기 웃음기가 스러지고 있었다.


“마음고생이 많았나봐요. 피곤해보여요.”


“이젠 됐소. 당신을 만났으니까.”


계단에서 얼굴만 뺄춤히 올려놓다가 도로 내려가려던 덕보가 요섭과 시선이 마주치자 성큼 2층으로 올라왔다.


“나는 돌아가야 하니까 김형은 나하고 볼일부터 본 뒤에 연애를 하든 뭐를 하든 하슈.”


덕보를 향해 일어서는 요섭의 파오쯔 자락 구겨진 데를 만져주면서 소냐가 인사의 말을 했다.


“고마워요, 이선생님.”


“아니예요, 나는 가게 물건 떼러온 겁니다. 내 볼일 보러 온 거라구요.”


“그래도 고마워요, 아주, 대단히.”


덕보와 요섭은 소냐의 건너편 테이블에 마주앉아 사업상의 얘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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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Ⅺ. 황혼의 릴리 (4) -상하이 릴리 완결- +2 19.02.28 209 6 10쪽
154 Ⅺ. 황혼의 릴리 (3) 19.02.28 109 3 9쪽
153 Ⅺ. 황혼의 릴리 (2) 19.02.27 115 3 8쪽
152 Ⅺ. 황혼의 릴리 (1) 19.02.26 116 3 9쪽
151 Ⅹ. 한국 6•25전쟁 (10) 19.02.25 113 3 11쪽
150 Ⅹ. 한국 6•25전쟁 (9) 19.02.23 118 3 7쪽
149 Ⅹ. 한국 6•25전쟁 (8) 19.02.22 137 3 8쪽
148 Ⅹ. 한국 6•25전쟁 (7) 19.02.21 110 2 7쪽
147 Ⅹ. 한국 6•25전쟁 (6) 19.02.20 138 3 7쪽
146 Ⅹ. 한국 6•25전쟁 (5) 19.02.19 115 2 7쪽
145 Ⅹ. 한국 6•25전쟁 (4) 19.02.18 101 3 8쪽
144 Ⅹ. 한국 6•25전쟁 (3) +2 19.02.16 122 3 8쪽
143 Ⅹ. 한국 6•25전쟁 (2) 19.02.15 124 3 7쪽
142 Ⅹ. 한국 6•25전쟁 (1) 19.02.14 159 2 10쪽
141 Ⅸ. 1946년 봄~ 1950년 6월 (5) 19.02.13 137 2 7쪽
140 Ⅸ. 1946년 봄~ 1950년 6월 (4) 19.02.12 96 3 7쪽
139 Ⅸ. 1946년 봄~ 1950년 6월 (3) 19.02.11 112 2 7쪽
138 Ⅸ. 1946년 봄~ 1950년 6월 (2) 19.02.09 109 2 8쪽
137 Ⅸ. 1946년 봄~ 1950년 6월 (1) 19.02.08 129 3 8쪽
136 Ⅷ. 상봉, 그리고 작별 (4) 19.02.07 122 2 11쪽
135 Ⅷ. 상봉, 그리고 작별 (3) 19.02.06 120 2 10쪽
134 Ⅷ. 상봉, 그리고 작별 (2) 19.02.05 110 2 9쪽
133 Ⅷ. 상봉, 그리고 작별 (1) 19.02.04 135 2 8쪽
132 Ⅶ. 싼뎬수이三点水와 띠챠오敵僑 (23) 19.02.02 145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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