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릴리 (Shanghai L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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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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Ⅺ. 황혼의 릴리 (2)

DUMMY

상하이 릴리Shanghai lily



글- 소리글




제153회



Ⅺ. 황혼의 릴리 (2)



강은 흐르고 2


중국과 일본의 수교는 1972년에 이루어졌고 미국과 중국의 수교는 1979년, 한국과 중국의 수교는 1992년에 이루어졌다.


한중수교 전 해인 1991년 중국 절강성 주산군도 보타산(보타섬) 신라초(신라암초) 위에 대대적인 불사가 이루어졌다.

불교선원인 서방정원의 낡은 건물을 헐고 새롭게 중창하는 공사였다.

이 공사에 일본이 돈을 댔다.

보타산 신라초 위의 서방정원 중창 불사가 완성되었을 때 서방정원은 그 명칭이 변경되어 있었다.

변경된 이름은 혜악기념당이었다.

혜악을 기념하는 절이라는 것이었다.

혜악은 1300년 전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승려였고, 그는 신라 상인의 배를 타고 와서 신라 상인의 배를 타고 귀국을 한 사람이었다.

중국 4대 불교성지의 한 곳으로서 ‘관음성지’인 이곳 보타산의 모든 불교시설물들은 신라 상인의 시주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이 바다는 온통 신라의 이름, 신라의 전설로 가득했다.

우리 효녀 심청의 전설도 이 바다에 있다.

그러한 보타산 신라초 위의 서방정원이 일본의 돈으로 재건축이 되면서 일본 승려 혜악을 기념하는 집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보타산을 불교성지로 조성한 공로는 신라 상인들에게 있는 것인데 이때부터 일본승려 혜악의 조성한 것으로 고쳐버렸다.

대한민국의 힘이 미치지 못한 때,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한국의 신라를 밀어내고 일본이 중국 관음성지 보타산을 차고 앉았다.

보타산은 중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이자 기도처로 꼽는 곳이다.

보타산을 찾는 중국인들은 신라 상인이 시주하여 이룩한 보타산 불교성지를 일본 승려 혜악의 업적으로 여기고 감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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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보 박딸고만 부부와 그 아들 이두선은 그러한 세월을 상해에서 한인으로 살아왔다.

이덕보의 사마로 한성상회는 중국인 상대의 잡화상점이 되어버렸고, 두선이 교편을 잡고 있는 한인들의 인성학교는 해가 갈수록 입학생이 줄어들어 전교 학생이 불과 몇십 명에 불과했다.

한 해 지나면 열 명이 빠지고 또 한 해 지나면 스무 명이 빠지고 그러다가 입학생도 졸업생도 없는 해가 오고 말 것이었다.

그렇게 상해에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도 배우는 사람도 없게 될 것이었다.

두선은 중국인들이 다니는 중국의 직장을 알아봐야 할 처지가 되었다.


정안사 외인묘지가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재개발지구로 지정된다는 공고가 나붙었을 때 이덕보 박딸고만은 참으로 바빴다.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한인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정안사 외인묘지에 혹시 아는 사람이 묻혀 있지 않은지 묻고 물었다.

나라 없는 시절 상해에 와서 살다가 나라 되찾은 뒤 돌아간 한인들 중에는 부모를 아내를 남편을 이곳 상해의 외인묘지에 묻어놓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홀로 외롭게 이국의 묘지에 남은 고인도 많았다.

그 고인들의 유해는 묘지가 도시개발구역으로 바뀔 때마다 무연고 유해가 되어 대륙의 바람에 흩날려버리게 되었다.

정안사 외인묘지가 도시개발지구로 지정되었을 때 교민들은 힘을 모아 관계 당국에 청원했다.

한인 무연고 유해들을 다른 공묘에 이장되도록 해달라는 청원이었다.

이리하여 홍교 만국공묘로 이장된 무연고 유해 중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 대리를 역임한 박은식 선생, 임시정부 요인 노백린, 안태극 선생 등이 있었다.

상해에 남아 한국인들로부터는 잊혀진 존재였던 이덕보 박딸고만 이두선 같은 이들은 이런 일들을 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한국인들에게는 보이지도 기억되지도 않은 일을 이들이 했다.

이들 뒤의 일은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채로.




암호명 릴리, 암호를 반납합니다. 1


1990년 여름 소냐 브론슨, 김소녀 할머니가 상해를 방문했다.

이옥희 할머니와 함께였다.

이 두 할머니는 북경 아시안게임 관람객으로 미수교국인 중국을 방문한 것이다.

아시안게임 관람은 핑계였다.

80세를 넘긴 노파와 70세를 넘긴 노파가 아시안게임을 보려고 중국에 왔다고는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김소녀 이옥희 두 할머니는 북경에서 곧바로 상해로 날아왔다.

이덕보 박딸고만 부부와 그 아들 이두선의 식구가 상해 홍교공항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포플라나무 울타리가 멀리 널찍하게 둘러쳐진 홍교비행장의 한복판에서 100인승 여객기 트랩을 내린 김소녀 노파와 이옥희 노파는 2~300미터 앞에 서 있는 2층 건물의 비행장 여객청사를 향해 걸어갔다.

여객청사 1층 유리창에 옹기종기 붙어서 비행장 활주로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비행장 부지만 황량하게 넓을 뿐 시설과 시스템은 지방도시 옛날 시외버스 터미널 수준이었다.

이때 서울 김포공항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모두 경험했으므로 이곳과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한 시설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여객청사 유리창에 붙어 서서 활주로를 내다보는 이덕보 노인과 박딸고만 노파의 눈 앞에 김소녀 이옥희 두 노파가 걸어오고 있었다.

몇 달 전 거주지역인 상해시 노만구(루완취) 정부 관리가 찾아와서 한국의 김소녀와 이옥희를 아느냐고 물어온 데서 시작된 이 사건이었다. 김소녀로 개명한 소냐 브론슨과 이옥희가 당신네의 행방을 찾는다고 한 것이 이 만남의 출발점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2~300미터, 그 거리를 하염없는 걸음걸이로 김소녀와 이옥희, 두 노파가 걸어오고 있었다.

여객청사 유리창에 붙어신 노인과 노파가 지나간 세월을 되짚어 회상하기에 충분한 보행거리요 보행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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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보 박딸고만 부부는 지금도 옛날 그 동네에 산다고 했다.


“집은 그 집이 아니지. 문화혁명 끝나고 그 근처에 새로 배정받아 살고 있어요. 전에 살던 데서 담수로의 제성당교회 쪽으로 조금 내려가는 곳이죠.”


“저희는 길안로 법장사 쪽에 살아요.”


덕보 아들 두선은 한인들의 인성학교가 1981년 입학할 학생이 없어 폐교된 뒤 상해 인민출판공사에 취직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년이 정년이예요, 하하. 저희 사는 집은 직장 단위 주택이예요. 그래서 부모님한테서 독립할 수 있었죠. 아내는 3년 전에 퇴직하고 퇴직수당을 받아요. 아이들도 같이 나오려고 했는데 우리 원식이 재식이 우식이 모두 우리보다 더 바빠요. 직장 일에 쫒기고 학교 공부에 시달리고...”


“이름을 들으니까 아들만 셋인가보네?”


“예. 딸도 없이 아들만 셋이예요 만고에 재미가 없죠. 집사람이 애들 키우느라고 고생 많이 했어요. 집사람, 여기 신신이, 신신이 아시죠? 양레이레이 아저씨 아들 신신이, 신신이가 중매 서서 결혼했어요. 나도 모르는 우리 동포 아가씨를 신신이가 알아서 소개시켜 주더라구요. 세상 참.”


“저 신신이예요.”


운전석에서 신신이 인사했다.


“이 차, 신신이 영업하는 찬데 오늘 무료 서비스해주는 거예요.”


15인승 승합차였다.

인민광장에서 서가회(쉬쟈후이)를 거쳐 홍교(홍챠오)까지 허가 없는 노선버스 운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소녀 노파가 양레이레이와 링링의 안부를 물었다.


“아버진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돌아가셨구요, 어머닌 8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박딸고만 노파가 신신의 가정 사정을 얘기했다.


“신신네가 아주 알부자로 잘 살아요. 색시도 얼마나 잘 만났는지, 장인이 핵심당원에다가 저쪽 쟈딩(嘉定) 쪽 농촌단위의 영도자예요. 그래서 문화혁명 시절에도 이 집은 끄떡 없이 잘 살았어요. 이 집에는 아들 하나 딸 하난데 아들은 즈이 할머니를 쏙 빼닮았고 딸은 즈이 할아버지를 빼다박아놓았지 뭐예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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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1) 소설 <상하이 릴리>에 대한 설명 18.11.13 870 0 -
155 Ⅺ. 황혼의 릴리 (4) -상하이 릴리 완결- +2 19.02.28 209 6 10쪽
154 Ⅺ. 황혼의 릴리 (3) 19.02.28 109 3 9쪽
» Ⅺ. 황혼의 릴리 (2) 19.02.27 115 3 8쪽
152 Ⅺ. 황혼의 릴리 (1) 19.02.26 116 3 9쪽
151 Ⅹ. 한국 6•25전쟁 (10) 19.02.25 113 3 11쪽
150 Ⅹ. 한국 6•25전쟁 (9) 19.02.23 118 3 7쪽
149 Ⅹ. 한국 6•25전쟁 (8) 19.02.22 137 3 8쪽
148 Ⅹ. 한국 6•25전쟁 (7) 19.02.21 110 2 7쪽
147 Ⅹ. 한국 6•25전쟁 (6) 19.02.20 138 3 7쪽
146 Ⅹ. 한국 6•25전쟁 (5) 19.02.19 115 2 7쪽
145 Ⅹ. 한국 6•25전쟁 (4) 19.02.18 101 3 8쪽
144 Ⅹ. 한국 6•25전쟁 (3) +2 19.02.16 122 3 8쪽
143 Ⅹ. 한국 6•25전쟁 (2) 19.02.15 124 3 7쪽
142 Ⅹ. 한국 6•25전쟁 (1) 19.02.14 159 2 10쪽
141 Ⅸ. 1946년 봄~ 1950년 6월 (5) 19.02.13 137 2 7쪽
140 Ⅸ. 1946년 봄~ 1950년 6월 (4) 19.02.12 96 3 7쪽
139 Ⅸ. 1946년 봄~ 1950년 6월 (3) 19.02.11 112 2 7쪽
138 Ⅸ. 1946년 봄~ 1950년 6월 (2) 19.02.09 109 2 8쪽
137 Ⅸ. 1946년 봄~ 1950년 6월 (1) 19.02.08 129 3 8쪽
136 Ⅷ. 상봉, 그리고 작별 (4) 19.02.07 122 2 11쪽
135 Ⅷ. 상봉, 그리고 작별 (3) 19.02.06 120 2 10쪽
134 Ⅷ. 상봉, 그리고 작별 (2) 19.02.05 110 2 9쪽
133 Ⅷ. 상봉, 그리고 작별 (1) 19.02.04 135 2 8쪽
132 Ⅶ. 싼뎬수이三点水와 띠챠오敵僑 (23) 19.02.02 145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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