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릴리 (Shanghai L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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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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Ⅺ. 황혼의 릴리 (3)

DUMMY

상하이 릴리Shanghai lily



글- 소리글




제154회



Ⅺ. 황혼의 릴리 (3)



암호명 릴리, 암호를 반납합니다. 2


덕보 노인은 옥희 노파의 손을 꼬옥 잡은 채 놓지 않고 있었다.

옥희 노파도 덕보 오빠를 쳐다보고 또 쳐다보면서 그 어깨 쪽으로 고개를 살며시 기울이고 있었다.


“하이고오 동생아.”


박딸고만 노파는 김소녀 노파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내가 언니구만 그런다.”


“안 해, 안 해, 내가 언니야. 난 동생 같은 거 안 할 거야.”


-------------------


“중국에는 집에서 제사 지내는 집이 없어요. 거의 안 지내는데, 공산당이니까 제사 같은 거 못 지내게 하니까, 그걸 따르면 그냥 편하니까, 못 이기는 척하면서 기꺼이 안 지내는 거죠. 반면에 절에 위패를 모셔놓고 날짜 되면 가서 재 올리는 집도 많아요. 우리집도 그렇게 해요. 할아버지 할머니 제삿날엔 정안사엘 가요. 그 절에 위패를 모셨으니까요.”


두선은 소녀(소냐)에게 진정따의 위패를 발견한 때 얘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 전에 편지로 말씀하셨잖아요. 국민당 시절 군통요원이었던 진정따라는 사람에 대하여 알아볼 방법이 없겠냐구요.”


“나는 옛날에 가르쳐 준 그 주소에 그대로 살고 있을 줄 알고 국제편지를 했던 건데 문화혁명 이후에 주소 바뀌고, 편지도 제대로 전달이 안 됐다가 나중에 전해진 사실을 어떻게 알았겠어. 이번에 북경의 호텔에서 전화통화하면서 그런 내막을 알게 됐지. 고생 많았어.”


“그렇게라도 제게 편지가 전달이 됐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마음이 있고 뜻이 있으면 두르고 둘러서라도 반드시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진정따라는 분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직장에 다닌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구요. 마침 제 직장이 인민출판공사라서 그런 쪽 자료를 찾아볼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인민출판공사의 그 많은 역사 자료들 속에서 군통 관련 자료는 그다지 많지 않았어요. 개인의 세세한 기록은 더구나 보기 힘들었구요.”


“옥불사 영령전 위패에서 찾아냈다고?”


“예.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군이라든가 경찰이라든가 소방서라든가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봉사하는 직업 단위에서 각 단위별로 사찰 영령전에 위패 모시는 걸 제가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국민당의 군통도 그런 것이 있지 않을까 하고...”


“공산당 독재인데 옛날 국민당 군통의 위패를 모시는 데가 있다고?”


“있어요. 어떤 경우인가 하면요, 과거 국민당 인사들이 홍콩이나 대만으로 거의 다 갔잖아요. 그 사람들 중에서 뜻 있는 사람이 중국의 사찰에다 돈을 보내는 거예요. 이러이러한 단위 영령의 위패를 모시고 싶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한 뒤로 직접 홍콩이나 대만, 캐나다 같은 데서도 옛날 국민당 인사나 그 후손이 와서 돈을 내놓고 가는 거예요, 절에. 제가 그 점에 착안을 했어요.”


“화교 관련 자료를 파고 들었구나?”


“예. 저희 회사에 화교 관련 자료가 많아요. 찾아보면, 과거 국민당 군통 출신의 화교 재력가 명단도 쭈욱 나와요. 홍콩에서 부동산으로 갑부가 된 사람이 죽을 때 아들에게 유언을 했다는 겁니다. 나중에 중국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때가 되면 가서 국민당 정부 군통 희생자를 위한 재를 올려주어라... 부친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아들이 그 유언을 받든 거예요. 옥불사 영령전에 국민당 군통 출신 희생자들의 위패를 모신 거죠. 그 자료가 회사 자료실에 있더라구요.”


“그 사람의 묘소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알아냈는가?”


“옥불사에 가니까, 그렇게 위패가 모셔졌다는 신문 보도를 본 유족 중에 더러 찾아와서 참배하고 시주도 하고 가는 사람도 있다더라구요. 진정따의 유족 중에 찾아온 사람이 있냐고 물어봤죠. 시주 장부를 꺼내놓더라구요. 하아, 그 장부 속에 진또우또우(金豆豆)라는 여자 이름이 있어요, 진정따 영전에 참배하고 시주장부에 3천 위안 시주금액을 써놓은 여자 진또우또우! 시주 금액 적고 이름 적고, 주소도 적잖아요, 스님이 불공 드릴 때 그 주소 한번이라도 읊어달라고 적어놓는 주소! 주소지가 항저우더라구요. 그 주소로 편지를 썼죠. 진정따라는 분에 대하여 알고 싶다고... 진또우또우라는 분한테서 답장이 왔어요. 자기는 진정따의 누이동생이다, 시댁의 터전인 항저우에서 살고 있다, 오빠의 산소는 고향인 산동성 칭다오(청도)의 마이따오(맥도) 야산에 있다, 그곳으로 갈 일이 있으면 찾아가봐라, 마이따오의 오빠 산소 주소이다, 작은 돌비석이 있어서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렇게 된 겁니다.”


--------------------


택시가 청도대학(칭다오따쉐) 정문 앞길을 돌자 푸른 바다가 금방 쏟아져내린 듯 눈 아래로 깔렸다.

그 가운데 동그란 푸른 섬이 떠 있었다. 맥도(마이따오)였다.

그 작고 예쁜 섬의 이름이 이쪽 해안도로 일대의 이름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청도대학에서 산동성의 명산인 노산(라오샨) 방향으로 푸르게 뻗은 나지막한 산줄기, 이 일대의 지명도 대체적인 맥도였다.

솔숲과 흰 바위가 적당히 조화된 나지막하고 푸른 산줄기의 속살은 황토였다. 강남의 흙은 습기 머금은 진흙 성질의 검은 흙인데 이곳 산동 야산의 흙은 한국의 흙과 비슷한 황토였다. 택시를 내려 가파르지 않고 편안한 황토길을 오르는데 까치들이 떼지어 까작거렸다.


-당신 성품처럼 묘소 가는 길도 편안하네요...


까치가 참새떼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까작까작까작... 온 산에 까치떼의 지저귐이었다.


-당신인가요... 진정따, 당신인가요...


까치떼가 모이고 흩어지며 까작거리는 소리에 저 아래 푸른 바다의 잔물결이 반짝였다.


-여기에 있었나요...


진정따의 무덤이 솔숲과 흰 바위와 황토의 조화 속에서 조촐하게 앉아 있었다. 이름을 새긴 돌비석도 작았지만 단정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가방에서 술병과 종이컵을 꺼내 한 잔 따루었다.


-항상 미안하다고만 해서 미안해요...


무덤에다 잔의 술을 뿌리고 또 한 잔 채웠다.


-나도 한 잔 할라구 그래요. 당신, 석 잔은 마셔야죠? 석 잔 따루고 나도 한 잔 할라구 그래요.


반짝거리던 바다가 침침해지고 있었다. 오후가 기울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겠지요... 기다리다 지쳐서 차라리 잊고 있었겠지요... 이제사 나타나서... 성의 없이 찾아와서... 잠깐 앉았다 가고 말 걸... 나 훌쩍 가고나면 당신은 또 나를 기다릴 거잖아요... 그러니 미안한 거예요... 그래서 미안한 거예요... 그래서 내가 우는 거예요...


무덤에 한 잔 따루고 한 잔은 홀랑 마시고, 그렇게 주거니받거니 대여섯 잔을 비웠다.


“당신은 영원히 꼼짝 못하고 여기 누워서 영원히... 나를 기다리겠지만 나는... 못 와요... 지금 돌아가면 다시... 못 와요...”


햇볕 아래 빛나던 황토길이 누르팅팅하게 드러눕고 있었다.

이제 일어서야 할 시간이었다.


“진정따 동지... 이제 가면 또 못 와요. 나도 이제 나의 길 떠날 준비를 해야 되니까요... 너무나도 오랜만에 왔는데 이제 다시는 못 온다는 말을 하고 있네요... 잘 있어요, 동지... 사랑하는 동지...”


술병을 거두어 가방에 넣고 종이컵을 봉지에 담아서 가방에 넣었다. 앉은 자리를 살피고 일어났다. 까치떼도 보이지 않고 까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산소 주변을 둘러보고 산소에서 내다보이는 바다도 바라보았다.


“동지...”


편안해졌다. 너무나도 편안해진 마음이었다.


“진정따 동지...”


이제는 정리해야 할 시간이었다.

엄숙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진정따 동지, 당신의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는, 당신의 위치를 확인하기 전에는 퇴임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됐습니다. 당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상황을 파악했으니... 퇴임할 수 있게 되었어요...”


허리를 곧추세우고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섰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보고했다.


“암호명 릴리, 임무를 마쳤습니다!”


보고할 상대가 특별히 따로 있는 건 아니었다.


“릴리, 임무를 마치고 퇴임합니다. 이에 암호를 반납합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안녕히... 릴리도 안녕히...”


돌아섰다.

마음도 몸도 바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허깨비 같이 바람인형 같이 훌렁훌렁한 걸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거리의 바람이 몰려왔다.


“미안해요, 사랑해요, 나의 영원한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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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1) 소설 <상하이 릴리>에 대한 설명 18.11.13 870 0 -
155 Ⅺ. 황혼의 릴리 (4) -상하이 릴리 완결- +2 19.02.28 209 6 10쪽
» Ⅺ. 황혼의 릴리 (3) 19.02.28 110 3 9쪽
153 Ⅺ. 황혼의 릴리 (2) 19.02.27 115 3 8쪽
152 Ⅺ. 황혼의 릴리 (1) 19.02.26 116 3 9쪽
151 Ⅹ. 한국 6•25전쟁 (10) 19.02.25 113 3 11쪽
150 Ⅹ. 한국 6•25전쟁 (9) 19.02.23 118 3 7쪽
149 Ⅹ. 한국 6•25전쟁 (8) 19.02.22 137 3 8쪽
148 Ⅹ. 한국 6•25전쟁 (7) 19.02.21 110 2 7쪽
147 Ⅹ. 한국 6•25전쟁 (6) 19.02.20 138 3 7쪽
146 Ⅹ. 한국 6•25전쟁 (5) 19.02.19 115 2 7쪽
145 Ⅹ. 한국 6•25전쟁 (4) 19.02.18 101 3 8쪽
144 Ⅹ. 한국 6•25전쟁 (3) +2 19.02.16 122 3 8쪽
143 Ⅹ. 한국 6•25전쟁 (2) 19.02.15 124 3 7쪽
142 Ⅹ. 한국 6•25전쟁 (1) 19.02.14 159 2 10쪽
141 Ⅸ. 1946년 봄~ 1950년 6월 (5) 19.02.13 137 2 7쪽
140 Ⅸ. 1946년 봄~ 1950년 6월 (4) 19.02.12 96 3 7쪽
139 Ⅸ. 1946년 봄~ 1950년 6월 (3) 19.02.11 112 2 7쪽
138 Ⅸ. 1946년 봄~ 1950년 6월 (2) 19.02.09 109 2 8쪽
137 Ⅸ. 1946년 봄~ 1950년 6월 (1) 19.02.08 129 3 8쪽
136 Ⅷ. 상봉, 그리고 작별 (4) 19.02.07 122 2 11쪽
135 Ⅷ. 상봉, 그리고 작별 (3) 19.02.06 120 2 10쪽
134 Ⅷ. 상봉, 그리고 작별 (2) 19.02.05 110 2 9쪽
133 Ⅷ. 상봉, 그리고 작별 (1) 19.02.04 135 2 8쪽
132 Ⅶ. 싼뎬수이三点水와 띠챠오敵僑 (23) 19.02.02 145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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