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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아이-The child of 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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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스요한
그림/삽화
제네스 요한
작품등록일 :
2018.11.02 16:02
최근연재일 :
2019.04.1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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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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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그루터기 위 새싹

DUMMY

“날 이 지경으로 만든 모든 이들에게 복수하리라! 그것이 온 세계를 배신하는 것이라 해도!”

궁지에 몰린 남자가 반쯤 미쳐 한 말이었다.


숲이 품고 있는 오후의 바람엔 갖가지 동식물, 정령들의 소리가 담기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유독 오늘의 초록 천둥 숲은 도떼기시장 한복판인 것 마냥, 요란스럽게 들끓고 있었다.


‘가르델족이 돌아다니고 있네, 정말 드문 사건이야!’


‘멀찍이선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어!’


‘정말? 가르델이 왜 여기까지 온 거지?’


‘나도 모르겠어! 낌새도 못 챘는데?’


신기하게도 세크 종족의 영역 한복판에, 가르델 종족이 별똥별이 뚝 떨어진 듯 등장한 까닭이었다. 풀을 뜯던 사슴 가족, 굴을 파던 토끼, 도토리를 모으던 다람쥐 모두가 하던 행동을 늦추며 화제의 인물을 관찰하기 바빴다. 하지만 그들을 진정으로 놀라게 한 건 따로 있었다.


‘왜 가르델과 같이 계시는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걸!’


‘사이가 나쁘지 않아 보여!’


‘지, 지금 물어봐도 될까?’


‘참는 게 좋을 것 같아.’


숲의 중재자, 세크족의 수호자이자 위대한 현자인 세르몬이, 일개 가르델과 화기애애하게 산책을 만끽하는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다. 두 종족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였기에, 세크족을 대변하는 베룬이 가르델족과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게다가 더욱 경악스러운 점은, 세르몬이 그녀에게 매우 친근하게 ‘가르침’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세르몬님? 이 신기하게 생긴 꽃은 뭔가요? 음······. 향기도 좋아요.”


“그, 그건 ‘엎드린 사, 사슴 꽃’이, 이다. 잘 보, 보거라. 꼬, 꽃의 형태가 마치 고이 어, 엎드려 아, 앉아있는 사슴처럼 새, 생겼지 않느냐? 이, 이건 사, 사슴의 뿌, 뿔과 머리, 그, 그리고 이건 모, 몸통 부분······.”


메리엘의 질문에 세르몬은 꽃의 부분 부분을 가리키기도 하고, 상하지 않게 어루만지기도 하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와, 정말이네요! 이제야 꽃에서 사슴이 보여요. 저, 그럼 이 꽃은 어떻게 쓰이나요?”


“보, 보다시피 꼬, 꽃의 생김새가 트, 특이하고 희, 구, 귀하기 때문에 과, 관상용으로 쓰인! 단다. 그밖에 꼬, 꽃을 잘 말려 달이면 차로 마시, 실수도 있지.”


“에, ‘차’는 뭔가요? 어떻게 마실 수 있는 거죠?”


“그, 차라는 것은 꼬, 꽃잎 같은 시, 식물의 일부분에 해, 햇볕을 듬뿍 쬐인 다음, 맑은 무, 물을 다, 담은 주저, 전자에 넣고······. 부, 불로 끓여 우려내는! 음료를 뜨, 뜻하, 한 단다!”


“물과 불을 한꺼번에 이용해 마실 걸 만든다니, 굉장해요! 으응······. 그런데 물이 불에 닿으면, 보글보글 해지고 뜨거울 텐데?! 그럼 ‘차’라는 건 호호 불어 마시나요?”


“마, 막 만드, 들었을 땐 뜨겁지만, 워, 원한다면 식히, 힌 뒤 시원하게 머, 먹기도 하지. 주로 나, 날이 추우, 운 겨, 겨울엔 따뜨, 뜻하게, 날이 더운 여름에, 엔 서늘하게 해, 해서 마시, 신단다.”


“우와아, 여러 방법이 있네요!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같은 재료를 쓴 차의 맛이 달라지기도 할 것 같은데요?”


“무, 물론이다. 또, 똑같은 꽃이, 잎을 쓰, 쓴다고 해도······. 어, 얼마나 말리느냐에 따, 따라, 우리, 느냐에 따라! 바, 발효시키느, 느냐에 따라, 어떠, 떤 요, 용기에! 담아 끄, 끓이느냐에 따라, 뜨거우냐, 차, 차가우냐 드, 등등······. 그 푸, 풍미가 급겨, 격히 벼, 변하기도 하지.”


“헤헤······. 차라는 건 정말 재밌네요! 차에 관한 책이 있다면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요.”


“으, 음! 내 고, 공방에 한 궈, 권쯤 있을 드, 듯 한데······. 어, 없다면 구해, 해다주마.”


연달아 이어지는 문답의 향연에 말더듬 병까지 더해져 피곤해할 법도 했지만, 세르몬은 내색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런 수고와 자극을 동력원 삼아, 메마른 열정에 불을 지피며 앞으로, 앞으로 내달렸다.


나무 사이로 부는 선선한 바람과 함께, 그녀는 아기 사슴 같은 눈을 햇살에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오손도손 둘러 앉아 한 송이 꽃에 시선을 담아두면서, 나긋한 목소릴 나누는 모습은 ‘평화의 정원’에 방문한 느낌을 선사했다. 그만큼 세르몬과 메리엘,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숲의 풍경은 한 폭의 맑은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정작 세르몬의 속마음은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후우, 내가 메리엘님을 잘 지도하고 있는 것일까? 전신에 엄습하는 긴장 탓에,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군. 의욕이 펄펄 생기는 건 좋다만······.’


첫 야외수업을 나온 세르몬은 부담감에 깊이 짓눌린 상태였다. 아는 게 너무 방대한 탓에, 오히려 그 지식들 중 메리엘에게 유용한, 혹은 도움이 될 만한 걸 추려내는데 애를 먹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주변의 호기심 어린, 평소와는 다른 주목을 받는 게 부담스러웠다. 마치 가르델 종족의 방문을 왜 허가했는지, 당장 해명을 하라고 외치는 눈빛들이었다.


‘그래, 이 숲에 가르델이 온다는 게 흔치 않은 일이긴 하지. 허나 무관심한 성격으로 유명한 이슬의 정령들까지 이토록 지대한 관심을 보일 줄이야······.’


세르몬의 생각처럼, 메리엘이 끄는 이목은 지나칠 정도였다. 아무리 그녀가 가르델의 껍데기를 쓰고 있다 해도, 도도한 정령들까지 관심을 보인다는 건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큰 나무 밑, 채 마르지 않은 이슬에 몸을 담그고 있던 정령들이 메리엘을 빤히 관찰하고 있는 광경은 진귀한 모습임에 틀림없었다.


꽃을 살펴보던 메리엘은, 세르몬이 가만히 있자 방긋 웃으며 속삭였다.


“세르몬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메리엘의 말에 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아무 것도 아니, 니다. 크, 크흠. 뭐, 더, 구, 궁금한 거, 것은······?”


세르몬이 말을 흐리자 그녀는 꽃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방금 전 설명을 참고하여 심화적인 질문을 던졌다.


“조금 전에 깜빡하고 물어보지 못한 게 하나 있어요. 그 ‘엎드린 사슴 꽃차’를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요!”


처음부터 ‘냠냠소풍’을 목표로 삼은 메리엘이었기에, 그녀의 흥미를 끈 것은 단연 ‘차’였다. 메리엘의 조각난 기억 속에서 ‘마음을 부드럽게 진정시켜주는 알쏭달쏭한 마실 것’이라는 개념이 희미하게 꿈틀대기는 했지만, 누가 뭐래도 파묻힌 지식을 발굴하는 최상의 방법은 직접 체험해보는 것이었다.


‘음, 아무래도 차를 마셔보고 싶으신가 보구나! 앞으로 그쪽에 무게를 두어가면서 찻잎거리를 채집하면 좋겠어. 특히 엎드린 사슴 꽃차는 메리엘님께 꼭 필요할거야. 육식을 했을 때의 포만감을 비슷하게나마 내어 줄 테지. 다음에 나올 땐 잊지 말고 관련된 책이나 도감을 드려야겠군. 그나저나 먼지가 좀 쌓였을 텐데······.’


평소 세르몬은 차를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물론 그의 공방에는 수많은 식물들이 수집되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식용이 아닌 약용이었다. 동일한 부위라도 그 가공법에 따라 성질이 극과 극으로 달라지곤 했기에, 선뜻 용도를 바꿀 순 없었다. 따라서 메리엘을 위한 질 좋은 차를 준비하려면, 오늘 싱싱한 재료를 구해가야만 했다.


세르몬은 꽃을 채집하기에 앞서, 메리엘의 질문에 답해주기로 했다.


“크, 크흠! 어, 엎드린 사슴 꼬, 꽃의 잎, 줄기, 뿌리를 차로 마, 만들어 마시, 시면 모, 몸이 따, 따뜻해지고 동시, 시에 배, 배가 부른 듯 나르, 른해 진단다, 그, 그럼 어, 어디 한 번 이, 이 걸 드, 들어 보거라.”


느릿한 설명을 마친 세르몬은 가방에서 작은 나무 삽을 꺼내 메리엘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호기심 찬 눈길로 도구를 관찰하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받아들었다. 앙증맞은 삽은 메리엘의 손에 꼭 맞았고,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르몬이 무엇을 바라는지 눈치 챘다.


“음, 이건 꽃을 채집하는데 쓰이나요?”


“그, 그래! 어디 그 도, 도구를 사요, 용해서 뿌, 뿌리가 사, 상하지 않도록 꼬, 꽃을 채지, 집해 보, 보겠느냐? 내, 내가 그것을 사, 사용해 마, 맛 좋은 차, 차를 끄, 끓여주마.”


예쁜 꽃을 캐내어 보라는 제안에 메리엘은 망설였다. ‘차’를 맛보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 이었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를 위해선 어떻게든 꽃을 ‘채취’해야 했다. 그녀도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막상 한 생명의 평화로운 삶을 해치려 하니, 그 심적 부담감이 커지고 있었다.


‘망설이시는 것 같군······. 심성이 참으로 선하시니, 앞으로의 길이 순탄치는 않겠구나. 분명 이 땅을 빚으신 창조주의 신성이 남아있으신 거겠지.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동요하는 메리엘의 모습에, 세르몬은 순수함에 대한 기쁨보단 걱정이 앞섰다. 노즈라우스의 권능이 세계 곳곳에 미칠 때라면 모를까, 현시대는 고통과 억압, 슬픔이 즐비했다. 선의와 배려, 친절만을 쥐고 세상 풍파를 헤쳐 나가기엔 큰 어려움이 따랐다.


세르몬은 깊어지는 고민에 내적인 한숨을 내뱉었다. 그동안 메리엘이 먹은 음식들은 모두 그가 준비한 까닭에 그녀는 아무런 부담 없이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허나 이번엔 스스로 과업을 해결해야 했고, 그 죄책감에 머뭇거리는 듯 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자연과의 조화를 최우선시하는 중재자 종족 중, 메리엘처럼 만물을 아끼고 사랑한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기만으론 생명 유지가 불가한 유년기에까지 꼭 필요한 영양소를 수확하는데 이정도의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례는 전무했다. 세르몬만큼, 메리엘도 머리가 복잡하긴 마찬 가지였다.


‘아직도 기다리고 계시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빨리 이 꽃을······. 하아······. 분명 세르몬님이 가져오신 것들도 이런 과정을 거쳐 왔을 텐데······. 나는 왜······.’


야속한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삽을 쥔 메리엘의 손도 미세하게 떨렸다. 급기야 자신의 한심함과 이기심에 대한 원망으로, 그녀는 눈시울마저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경악한 세르몬은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이 꼬, 꽃을 따느, 는 게 마, 망설여지, 지느냐? 하, 하나의 생며, 명을 거, 거두는 것이 스, 슬픈 것이, 이냐?”


“······네······.”


울먹거리기 일보 직전이었던 메리엘은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어투와 표정을 면밀히 살펴본 세르몬은 그녀의 사고를 깨워주기로 결심했다.


“네가 왜 주저하는지 이, 이해 모, 못하는 건 아, 니다. 하, 하지만 떠, 떠올려 보, 보거라, 차, 창조주께서는 어, 어째서 우리가 이런 뼈, 뼈아픈 선택을 하, 할 수 밖에 어, 없도록 하신 거, 걸까? 삶을 이어 가, 가기 위해, 다, 다른 생을 희, 희생시켜야 하는 일, 마, 말이다.”


“그건······.”


메리엘은 선뜻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생처음 생각해보는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세르몬은 그녀가 용기 있게 말해줄 때까지, 하늘에서 노 젓는 바람 소릴 경청했고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던 주민들도 어느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창공에서 쏟아지던 햇살이 흔들리는 잎사귀와 두어 번 입을 맞춘 후에야, 깊이 고민하던 메리엘이 입술을 달싹였다.


“······전 아직 어리고, 배울 것도 많지만 이런 생각이 났어요. 창조주님이 우릴 그렇게 만드신 이유는,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라고······. 누구든 배가 너무 고플 때,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까요? 하, 하지만 그런 고마움 없이 생명을 빼앗는다면······. 아! 그래서 세르몬님이나 저 같은 ‘중재자’들을 만드신 것 같아요. 마구잡이로 다른 이를 해치는 악당을 막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또······. 만약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살아갈 수 있다면······. 평화롭겠지만! 그만큼 음, 뭐라고 해야 할까? 다른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미처 상상하지 못한 부, 부작용? 같은 거요.”


메리엘이 입을 열었을 때, 세르몬은 그녀의 가는 목에서 나오는 단 하나의 떨림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미숙하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지성이 발현되는 순간을 영원히 뇌리에 새기려하듯이 말이다. 노즈라우스라는 위대한 창조주의 분신인 메리엘이 어떤 말을 할지 기대를 품긴 했으나, 그녀는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과연 겸손하시구나. 메리엘님 또래의 중재자들은 이 정도의 고찰을 쉬이 할 순 없거늘······. 포식자가, 먹잇감이 존재함으로써 얻는 감정은 고마움보다 더한 감정이겠지. 다른 생명을 무분별하고 무자비하게 거두는 이들을 통제하는 것 역시, 중재자의 사명인 것도 맞다. 또한 서로가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세계가 보다 빨리 성장한 것도 옳은 분석이로다.’


머릿속에서 메리엘의 의견을 곱씹던 세르몬은 그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실을 말해주었다.


“주, 중재자들은 대부, 부분 너, 너와 같이 어, 어린 시저, 절엔 피, 필멸자들과 가, 같이 다, 다른 새, 생명을 통해서만 굶주림을 면할 수 이, 있지만 어느 저, 정도 히, 힘을 키우면 다른 이, 이를 희새, 생시키지 않아, 아도 사, 삶을 이어나가, 갈 수 이, 있다.”


단절된 골짜기에 다리를 놓아주듯, 세르몬은 메리엘에게 적절한 도움닫기를 제공해주었다. 기존의 지평을 훌쩍 뛰어넘은 그녀는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냥 손바닥을 마주치며 말했다.


“······저, 정말요? 아아! 그럼 누군갈 먹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된 중재자들이 고마운 마음을 잊어 버릴까봐, 창조주께서 특별한 역할을 내려주신 거군요! 받았던 고마움을 더욱 크게 베풀어주라는 거죠! 어릴 땐 필멸자의 입장에서 세계를 이해할 일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하신 것도 그 이유고요! 세르몬님도 그러셨나요? 제 생각이······맞나요?”


메리엘은 신이 난 표정으로 세르몬에게 질문을 퍼부었고,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상냥한 목소리로 답하였다.


“비, 비슷하다고 보, 볼 수 있겠구나.”


“헤에······.”


세르몬은 황홀해하는 메리엘을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평화롭게 자연과 어울린 꽃을 필요에 의해 채취하는 행위’로부터 사고를 시작하여, 과정은 힘겨웠지만 달콤하고 감미로운 ‘지혜의 열매’를 얻을 수 있었다. 새로이 찾아온 즐거움은, 몸 안쪽에서부터 메리엘을 간지럽히며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스스로의 힘으로 쥔 보상은, 그녀에게 허공에 둥둥 떠 흘러가는 고양감을 전해주었다. 덕분에 메리엘은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맞아······. 내게 꼭 필요했기에, 세르몬님이 부탁하신거야. 오늘, 바로 이 장소에 나와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엎드린 사슴 꽃아. 그럼 아프지 않게 살살······.’


메리엘은 섬세한 손길로 꽃 주변 흙을 걷어냈다. 혹여 뿌리가 상할까, 삽으로 퍼내기 애매한 곳은 쓰다듬듯 곱게 털어내었다. 그 모습을, 세르몬은 감동어린 눈동자로 지켜보았다.


‘메리엘님, 손에 넣은 환희의 감촉을 기억하십시오.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시고 올곧은 의지로 그 답을 쟁취하십시오. 그렇게 연마한 지성은 일방적인 지성과는 달리, 영원히 가슴속에 남을 것이며 그 어떤 보석보다도 값질 겁니다.’


그렇지만 가혹한 세상에 발을 들이기 전이라서 그런지, 그녀의 생각엔 허점이 있었고 모르고 있는 것도 많았다.


‘메리엘님은 어리시다. 굳이, 잔혹한 민낯을 낱낱이 고할 필요는 없지. 아름답고 선한 것들도 충분히 남아 있으니······.’


세르몬이 더러운 세상의 온갖 부조리들을 기억해내며 쓴웃음을 지을 무렵. 드디어 꽃을 캐내는데 성공한 메리엘은, 꺾이기라도 할까 두 손바닥 위에 조심조심 올려놓았다. 미소 짓는 그녀가 캔 꽃은 잎사귀의 털끝 하나 상하지 않은 온전한 모습이었으며, 놀랍게도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보다 더 생생해보였다.


‘······이, 이건? 뭔가 이상한데······.’


보통 수확당한 식물은 땅이라는 탯줄에서 떨어짐에 따라, 점차 활기를 잃어가기 마련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엔 뽑은 지 얼마 안 된 식물의 경우, 기운이 소모되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없겠지만, 중재자인 세르몬은 달랐다. 그러한 힘을 능숙히 사용했기에 미세한 차이를 분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한 줄기 빛이 번뜩였다.


‘설마······.’


세르몬은 자신이 두른 자연의 힘을 일제히 비활성화 시킨 채로, 메리엘의 꽃을 받아들기 위해 두 손을 모았다.


“자, 잠까, 깐 그 꼬, 꽃을 내게 주, 줄 수 있게, 겠느냐? 사, 살펴, 보고 시, 싶, 구나.”


“아, 네!”


간절한 부탁에 메리엘은 아래쪽에 위치한 세르몬의 손바닥 위로 꽃을 떨어뜨렸다. 일순간, 그는 꽃의 활력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걸 명확히 감지할 수 있었다.


‘이럴 수가! 미약하기는 해도, 메리엘님이 자연의 힘을 방출하고 계시는구나!’


실로 경악할만한 일이었다. 메리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깨달음에 대한 기쁨을 맛보아서였을까? 아니면 작은 생명에게 진심어린 예우와 감사를 표해서였을까?


‘대체 언제 부터란 말인가? 너무 희미해 감지하지 못한 건가? 아니, 우선 그것보단······.’


의문이 펑펑 샘솟았지만, 지금의 세르몬에겐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네, 네가 꼬, 꽃을 캐, 캔 자, 자리, 리를 두, 두 소, 손으로 지, 짚어 보, 보거, 거라.”


메리엘은 세르몬의 갑작스러운 지시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폭신한 흙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이후 그녀는 세르몬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지만, 그는 침묵속의 침을 꿀꺽 삼키고 곧 일어날 변화에 집중할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흙더미 아래, 무언가가 꿈틀대며 메리엘의 손바닥을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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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그루터기 위 새싹 19.04.19 4 0 19쪽
10 09화- 불꽃 튄 살얼음판 19.03.21 5 0 18쪽
9 08화- 말문을 연 나들이 19.01.04 17 0 19쪽
8 07화- 작은 맹세의 성찬 18.12.19 9 0 19쪽
7 06화- 가시 박힌 독수리 18.12.11 9 0 19쪽
6 05화- 푸르른 그 목소리 18.11.26 12 0 19쪽
5 04화- 불신의 첫 희생양 18.11.19 11 0 20쪽
4 03화- 서리에 박힌 햇살 18.11.10 19 0 19쪽
3 02화- 썩은 낙엽과 잿불 18.11.05 17 0 20쪽
2 01화- 메마른 숲속 은자 18.11.03 26 0 19쪽
1 서장- 신을 내버린 아이 18.11.02 71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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