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현실과 마주하다 – 10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뜨겁게 현실과 마주하다 – 10
“하하하하! 부맹주, 정말 섭섭하오.”
“예에?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그는 혹시 태허도장이 거부할까봐 잔뜩 긴장한다.
“잘못은 무슨. 부맹주!”
“예.”
“우리가 절친은 아닐지 몰라도 난 지난 오십여 년 동안 친구로 생각해왔습니다. 헌데 부맹주께선 달리 생각하신 것 같아서 섭섭한 생각이 들었소이다.”
“아! 그렇다면 이 소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헐헐헐! 사과까지 하실 필요는 없소이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 답을 드리리다. 우선 현철 문제부터 말씀드리면 필요한 양이 얼만지는 모르지만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대..대장주!”
“아..아버님!”
부맹주와 부하들은 물론이고, 태허도장의 가족들도 놀란다. 그 정도로 현철은 귀하고도 값비싼 물건이다. 오죽하면 금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겠는가?
“많은 양을 원하는 건 아닙니다. 장로들의 병기를 만들 정도만....”
부맹주는 자신이 말하고도 과하다는 걸 깨닫고는 말끝을 흐린다.
“당연히 그 정도는 있어야 다른 세력과 차이를 보일 테죠. 다만 부맹주도 아시겠지만, 철광산 문제는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방금 대장주께서 해결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허언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야 전 무림이 다 아는 사실이죠.”
“헐헐헐! 공치사를 하는 것 같아서 낯이 뜨겁소이다. 각설하고, 다행히 철광산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현철을 얻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그..그 정도로 매장량이 많습니까?”
“전부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우리가 알아낸 것만으로도 중원과 세외의 전쟁에서 한 쪽의 승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라면 믿겠소?”
“오오! 정말이오? 하긴 그 정도니깐 세외오천과 황실이 나섰겠죠. 허면 첫 번째 문제는 어떻게 하시런지?”
“그 문제는 제가 결정할 사항이 아닙니다.”
“태산장의 문제를 대장주가 결정하지 않으면 누가? 혹시 장주에게 모든 걸 넘기신 겁니까?”
“물론 전권을 장주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경우가 다릅니다. 태산장의 운명과 관련된 것이니까요. 해서 향후 태산장의 운명을 무 대협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이번 세력간의 공정한 분배 문제도 무 대협이 결정하신 겁니다.”
“무 대협? 그게 누구요?”
태허도장이 무진을 보면서 설명을 해도 남궁수는 눈치 채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무진과 같은 새파란 젊은이가 중원의 운명을 결정지을 권한을 가질 거란 생각을 못할 것이다.
“무 대협! 어떻게 하면 되겠나?”
어쩔 수 없이 태허도장이 무진을 부른다. 순간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린다. 태민 사형제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 중에서 부맹주 남궁수가 가장 크게 놀란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태허도장과 무진을 번갈아 쳐다본다.
“대장주, 지금 나랑 농을 하자는 거요? 중원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저런 꼬마에게 맡긴다니 말이 되는 소릴 하시오.”
“아버님! 저도 련이에게 들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홍명까지 반대하고 나선다.
“그럼 할 수 없지. 부맹주. 현철 문제는 없던 일로 합시다. 그리고 이번 결정엔 무림맹은 제외될 거요. 그리고 명이는 잘 들어라. 너와의 부자의 연은 지금 이 순간부터 끝이다. 금옥이도 마찬가지다. 니 남편과 뜻을 같이 한다면 부녀의 연은 여기까지다.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더니 아쉽구나.”
“대..대장주!”
“아..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어린 아이 하나로 인해 천륜을 끊으시다니요!”
“가알(喝)!”
금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태허도장이 소리친다. 이건 그가 쓰러지기 전에 사용한 창룡후(蒼龍吼)와는 격이 다르다. 처음 것이 화가 나서 다소 격하게 소리친 거라면 이번 건 천둥치는 소리와 비교될 정도이다.
콰콰콰콰쾅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일행이 앉은 방이 통째로 공중 분해되며 태허도장 본인과 무진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간다.
‘이 늙은이가 미쳤나? 아니, 이 자의 내공이 이렇게 강했단 말인가? 내가 날아갈 정도로. 우욱! 내..내상을 입었다.’
남궁수는 바닥을 구르면서도 현실을 믿지 못한다. 그 정도로 태허도장의 내력이 급증했다. 모두가 무진의 치료 덕분이다.
“크으윽!”
무진이 보호한 태민 사형제와 호란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입에선 피가 흘러나온다. 심지어 홍명을 비롯한 태허도장의 가족은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허도장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불호령을 내린다.
“꼴도 보기 싫다. 당장 눈앞에서 사라져라. 당장!”
“대..대장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소?”
“아..아버님! 저희는 가족입니다. 이..이건 아닙니다.”
‘부맹주! 현철을 얻고, 무림맹을 살리고 싶으면 무 대협께 사과하시오. 어서!’
‘멍청한 놈아. 내가 아무에게나 머리를 숙이는 사람이냐? 목숨이라도 부지하고 싶으면 저 사람에게 매달려야 한다. 그래도 모르겠느냐?’
태허도장은 자식들에게 전음을 보내며 재촉한다. 하지만 그들보다 무진이 먼저 나선다.
“영감탱이, 애쓰지 마라. 지금 상황에서 무림맹이 나선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다. 집안 문제는 영감이 알아서 하고. 삼 일 뒤에 보자.”
무진은 곧바로 발걸음을 밖으로 돌린다. 하지만 채 몇 걸음도 옮기지 못한다.
“무 대협!”
태허도장이 황급히 달려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영감탱이, 난 더 이상 볼 일이 없다.”
“아들놈이 결례를 범한 건 이 늙은이가 벌을 받겠습니다. 하지만 부디 집안의 명맥만은 잇게 해주십시오. 제발!”
태허도장은 오른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의지를 표시한 것이다.
“지랄하네. 그러면 내가 무서워할 줄 알고? 마음대로 해. 손을 조금만 움직였단 봐라. 나도 꼴리는 대로 할 테니까.”
“무...무 대협!”
“알았다니까! 그러니까 그만 해! 태산장 문제는 이번 일을 끝낸 다음 얘기하고, 무림맹은 어떻게 할 거야?”
무진은 말을 하면서 몸을 돌려 부맹주를 노려본다. 순간 부맹주의 몸이 크게 흔들린다. 그의 눈빛을 감당하지 못한 탓이다.
“솔직히 난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하겠소. 다만 대장주를 믿고 향후 무 대협의 뜻을 따르겠소이다.”
남궁수도 태허도장의 말을 따르기고 한다.
“후후! 솔직한 건 마음에 드네. 좋아. 현철의 문제는 내 알바 아니고, 삼 일 뒤 태산장에서의 회합에 무림맹도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할 것을 허락한다.”
그 말을 끝으로 무진 일행은 사라진다.
“휴우!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태산장주 홍명이다. 하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른다.
“아악!”
태허도장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강타한 것이다.
“아..아버님!”
“멍청한 놈! 내일 모레가 오십인 놈이 사람을 그렇게 볼 줄 몰라? 그러고도 네놈이 수천 명의 식솔을 거느린 태산장의 장주란 말이냐?”
옆에서 이 말을 듣던 부맹주의 몸이 움찔거린다.
‘으음! 나보고 들으란 말인가? 그나저나 저 놈의 정체가 뭐기에 천하의 태허도장이 저리도 쩔쩔맨단 말인가? 혹시 우리가 모르는 제 3의 세력이 있는 건가? 아님 황제의 사람인가? 아니다. 황실에선 동창이 참여했다. 큰일이다. 갈수록 우리의 정보망이 무너지고 있으니..... 휴우!’
부맹주 남궁수는 무림맹의 현실을 생각하며 한숨을 쉰다.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몸은 천금만큼이나 무겁다.
“무림맹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봐라.”
태허도장의 생가를 나온 무진 일행은 미행을 피하기 위해 뒷산의 숲으로 들어왔다.
“저희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30년 전만 해도 무림의 중심세력이었으나 이후 힘을 잃고 지금은 허울뿐인 세력으로 전락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태양장과 사이가 나빠져 대부분의 문파들이 탈퇴하면서 그리 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태양장이 무림사에 개입하고 있느냐?”
“그게 좀 이상합니다. 표면적으론 봉문 상태라 무림사에 끼어들지 않지만, 실질적으론 정 반대입니다. 이번 일만 하더라도 가장 먼저 뛰어들었습니다.”
“조금 다른 얘기도 있습니다.”
무진과 태민의 얘기에 태운이 끼어든다.
“들어 보자.”
“아시겠지만 태양장은 구파일방은 물론이고, 사대문파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파도 마찬가지고요. 아무리 무림 거대문파라 해도 태양장의 뜻을 거역하고 편히 살 수 있는 세력은 없습니다. 근데 정파의 핵심세력인 무림맹이 태양장과 사이가 나쁜 건 앞뒤가 안 맞는 얘깁니다. 물론 저희 사부의 말씀입니다.”
“사부?”
“예, 사부께선 무림사에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오히려 태양장이 무림사에 지나치게 개입하면서 무림맹의 힘이 약화됐다고 합니다. 물론 소수의 의견입니다.”
“그래도 설득력은 더 있군.”
“아, 예!”
“그렇죠? 우리 사부가 다른 건 몰라도 사물을 보는 직관력은 무당 제일이란 평을 받는답니다.”
태운 사형제는 무진이 사부의 편을 들어주자 기분이 좋은지 표정이 밝아진다.
“오늘은 저기서 지내자. 란이의 치료도 해야 하니까. 후후후! 저녁은 푸짐하게 먹겠군.”
무진은 앞의 작은 동굴을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잠시 후.
일행은 동굴 입구에서 모닥불을 피워 멧돼지 구이를 먹는다. 동굴은 멧돼지의 소굴이었다.
“끄어억! 잘 먹었다. 운이의 음식 솜씨가 갈수록 좋아지는구나.”
“감사합니다. 그럼 치료를 준비하겠습니다.”
“오늘은 조금 오랫동안 해야 할 것 같다.”
“새로운 혈도를 뚫으실 겁니까?”
“그래. 너희도 삼 회전 할 때까지 본 다음 호법을 서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무진은 태민 사형제에게 새로운 혈도를 가르쳐 주기 위해 지켜볼 것을 명한다.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태민이 벼르고 벼르다 질문을 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즉시 해야 도움이 된다. 앞으론 기탄없이 해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마치 사부와 제자처럼 대화를 나눈다.
“운이도 있니?”
태운도 머뭇거리다 마음을 들킨 것이다.
“예, 제가 먼저 여쭙겠습니다.”
“바보 같은 놈들. 원래 질문은 먼저 하는 놈이 임자야.”
“그럼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태민이 잽싸게 나선다.
“보법에 관한 겁니다.”
“나도 보법인데....”
“연결 동작에 관한 거냐?”
“그렇습니다.”
“같이 수련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 풀어놔 봐라.”
“예. 동작을 취하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태민은 일어서서 즉시 보법을 펼친다.
“이렇게 일직선으로 나가다가 세 가지의 길로 나설 때가 문젭니다.”
“으음!”
태운의 표정이 굳어지는 걸 보니 같은 고민인 모양이다. 태민은 동작을 부드럽게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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