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8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8
“으으으으으...!”
그들이 다가가자 깡패들은 두려움에 몸을 떤다.
“지금부터 수검이다. 말로 할 때 순순히 협조하는 게 좋을 거다. 백 냥이다. 단 한 푼도 부족하면 앉은뱅이다. 물론 황금으로 백 냥이다. 흐흐흐! 그건 없다는 뜻이냐?”
두목이 고통을 참으면서 품속을 뒤지지만 황금 백 냥이란 거금이 있을 리가 없다.
“그..그게 아니라.”
“왜, 조금 전에 니가 저 아주머니에게 한 말이 기억 안 나냐? 몸으로 때우라며? 너도 때워라. 몸뚱이로.”
태운은 발로 두목의 팔을 밟아버린다.
“크아아악!”
연달아 양쪽의 팔을 분지르자 두목은 비명을 지르다 기절한다.
“아차! 큰일이다. 노를 저어야 하는데 팔까지 부러졌으니 어떡한다?”
“어떡하긴요? 이빨로 하면 되지.”
“그래. 그러면 되겠다. 다음!”
태민 사형제는 이렇게 차례대로 깡패들에게 통행세를 받는다. 물론 단 한 명도 황금 백 냥을 내놓지 못한다. 겨우 전체에게 거둔 게 이백 냥 정도다. 그걸 모두 두목에게 곤욕을 치른 두 모녀에게 준다.
“아..아니에요. 도와주신 것만 해도 갚을 길이 없는데, 어떻게.... 받을 수가 없습니다.”
부인은 강력하게 거절한다. 하지만 태민의 한 마디에 상황이 달라진다.
“그건 아주머니가 아니고, 따님에게 주는 겁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 돈이면 더 이상 도망 다니지 않아도 될 겁니다. 빚부터 갚고 조그마한 장사라도 하세요.”
“그..그걸 어떻게 아세요?”
부인은 물론 어린 딸까지 놀란 눈으로 태민을 쳐다본다. 하지만 그도 방금 무진에게 전음을 받은 거라 자세히 알진 못한다.
태민의 말대로 두 모녀는 소녀의 아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근데 생전 본 적도 없는 자들이 남편이 빚을 졌다며 찾아와선 소녀를 뺏으려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야반도주를 한 것이다. 그게 한 달 전의 일이다.
“자, 이제 상황이 끝났습니다. 각자 빼앗긴 돈과 귀중품을 가지고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아주머니께서도 그만 쉬세요. 돈 문제를 자꾸 거론하시면 우리도 곤란해집니다.”
“가..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두 분이서 행복하게 사시는 게 은혜를 갚는 길입니다. 그럼.
그 말을 끝으로 태민 사형제는 무진과 함께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한편 갑판 위의 상황과 무관하게 구석에 홀로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거지 몰골을 하고서 의식적으로 갑판의 일을 무시하려 애쓴다.
진운자.
무당의 장로이자 태민 사형제의 사부이다. 그는 소림과 더불어 중원제일의 도량인 무당이 세속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실망해 무당산을 떠났고, 지금은 수년째 천하를 주유하고 있다.
근데 지금 그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몰골이 추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항상 무당인으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던 그가 오늘은 극도로 긴장하고, 초초한 기색이 역력하다.
‘벌써 보름이 지났다.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온 게. 대체 이 물건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집요하게 추적을 한단 말인가?’
그는 두 손을 품속에 넣고서 생각에 잠긴다. 그는 보름 전에 우연히 두 사람이 추격전을 펼치는 걸 보곤 호기심에 따라갔다. 그게 불행의 씨앗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복면을 한 무림의 절대고수였다. 무당제일의 고수라고 자부한 진운자가 겨우 한 명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가지 물건을 놓고서 죽음의 결투를 벌였다. 무려 다섯 시진이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펼치다 두 사람 다 목숨을 잃었고, 물건은 진운자의 손에 떨어졌다.
그때부터 그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자들에 의해서 수십 차례 공격을 받았고,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것만 해도 다섯 차례나 된다. 지금도 내상을 입은 채로 간신히 놈들을 피해 다니고 있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공격을 받으면 목숨을 보장하기 어렵다.
“허억! 이곳까지?”
그는 본능적으로 긴장한다.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으음! 목소리로 봐선 어리다. 게다가 귀에 익은 목소리다. 누굴까? 지금까지 공격한 자들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진운자는 그래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혹시 제가 아는 분인가 해서....”
‘으음! 놈들이라면 이렇게 말하진 않을 텐데.... 내가 잘못 생각했나?’
진운자는 긴장을 풀면서 고개를 돌려 상대방을 쳐다본다. “허억! 사...사부!”
목소리의 주인공은 태운이다. 그는 진운자의 제자이다.
“우..운아!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진운자도 태운을 알아본다. 못 알아본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다만 워낙 예상치 못한 일이라 당황해서 머뭇거린다.
“사부야말로 어찌 된 일입니까? 옷차림은 또 왜 이렇습니까?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저리로 가시죠. 사형도 와 있습니다.”
“민이도?”
“예!”
이때 배는 막 나루터에 도착하고 있다. 근데 그곳에는 수십 명의 무사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이..이런! 놈들이 여기까지.”
순간 진운자는 당황한다. 자기 혼자도 문젠데 잘못하면 제자들까지 죽음으로 내몰 수 있기 때문이다.
“사부, 왜 그러세요? 무슨 일입니까?”
“운아, 넌 천천히 내려라. 놈들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이때 태민이 달려온다.
“사...사부! 민이가 사부님을 뵙습니다.”
태민, 태운 사형제가 큰절을 올린다.
“민아,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뒤로 물러나라.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끼어들면 안 된다. 절대로. 알았지? 명심해야 한다.”
“사부, 왜 그러십니까?”
“혹시 저들 때문입니까? 감히 놈들이 사부를 공격한단 말입니까?”
“이유가 있을 게 아닙니까?”
“나도 잘 모르겠다. 놈들이 왜 나를 추적하는지.”
“쯧쯧, 그래서 영물은 주인이 따로 있고,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물건에 욕심내면 목숨을 잃는다는 옛말이 생긴 거야.”
뒤따라온 무진이 끼어든다. 그의 등에는 호란이 업혀 있다.
“누구신가?”
진운자는 눈빛을 반짝이며 그를 쳐다본다. 자신의 일이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들켰으니 긴장하는 건 당연하다.
“저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도와준다? 무슨 일로?”
“그게....”
태민이 대답하기도 전에 무사들이 배 위로 올라온다.
“흐흐흐! 진운자, 겨우 여기까지 왔더냐?”
상대방은 중년인으로 무사들의 책임자다. 그 뒤로 십여 명의 무사들이 따라 올라온다. 그들이 들고 있는 깃발에는 흑룡방이란 글이 선명하게 적혀 있다.
“네놈은 독 안의 든 쥐다. 순순히 물건을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바..방금 놈이라고 했느냐?”
태민은 흥분해서 말을 제대로 못한다. 자신의 사부가 일개 변방의 중소문파 무사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건 태운도 마찬가지다.
“감히 흑룡방의 조무래기들이 대무당의 장로에게 그런 말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쯧쯧! 이제 무당의 운도 다했구나. 하긴 무당이 강호인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은 게 오늘 내일의 일은 아니지.”
무진은 불난 집에 기름을 뿌린다.
“사형은 빠지시오. 이런 일에는 내가 적임자요.”
“무슨 소리야? 이런 일을 사제인 네게 맡기면 앞으로 사부의 얼굴을 어떻게 뵙는단 말이냐? 물러서라!”
태민은 이미 몸을 날리고 있다.
“미..민아!”
영문을 모르는 진운자는 혹시라도 제자들이 다칠까봐 노심초사한다.
“사부! 걱정 마세요. 과거의 사형이 아닙니다.”
“그래도 저 놈들은 흑룡방의 고수들이다. 허억! 저.. 저게 민이란 말이냐?”
“사부, 저도 저 정도는 한답니다. 제가 조금 밀리긴 하지만....”
“그게 무슨 소리냐?”
‘대체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리고 장문인은 이 아이들을 왜 강호로 내보냈을까?’
진운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태민이 싸우는 곳을 쳐다본다. 하지만 다시 눈이 휘둥그레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태민의 손에 흑룡방 무사가 세 명이나 쓰러졌기 때문이다. 흑룡방 고수 열 명에 책임자까지 나서면 자기도 감당하기 힘들다. 그런데 제자가 그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옛날의 사형이 아니라니까요.”
태민은 화를 참지 못하고 처음부터 격권을 사용하고 있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무공을 펼친 것이다. 두 사형제는 최근 시간만 나면 격권과 신법을 익혀 실력이 꽤 늘었다.
불과 반각도 지나지 않았는데 흑룡장의 책임자는 물론이고, 열 명의 무사들이 모두 바닥을 뒹굴고 있다. 나루터에 있던 무사들은 범선 위의 상황을 보고는 아예 올라올 생각도 못한다.
“저게 무슨 무공이냐? 태극권과 비슷해도 완전히 다른 무공이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운은 혹시라도 사부가 문파 외의 사람에게 무공을 배웠다고 야단칠까봐 일단 말을 돌린다. 그때 태민이 흑룡장의 책임자를 끌고 온다.
“민아! 몸은 어떠냐? 안 다쳤어?”
진운자는 자신의 수제자가 다치기라도 할 세라 안절부절 못한다.
“사부, 사형은 이제 이 정도 싸움은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습니다.”
“땍! 네놈은 언제부터 사부가 말하는데 끼어들었느냐?”
“죄..죄송합니다. 제자가 사부님을 오랜만에 뵙는지라 그만....”
“됐다. 넌 물러나 있어라.”
“쯧쯧, 제자들을 버리고 떠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사부 노릇을 하시겠다고?”
“으음!”
무진이 한 마디에 진운자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무 대협 그래도 그건 사부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십니다.”
“그래서 나도 니 사부에게 고개를 숙이란 말이냐?”
“그..그건 아니지만....”
태민은 말을 해놓고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다. 무진에게 들은 것이 사실이라면 사부도 항렬이 그보다 한참 밑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이놈들이 무슨 이유로 사부님을 공격했는지 알아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태운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화제를 돌린다.
“너도 눈치가 있는 놈이면 지금 상황을 알 것이다. 살고 싶으면 사실 대로 말해라. 죽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만.”
태민의 말에 흑룡방의 책임자의 몸이 크게 흔들리며 얼굴이 흑색으로 변한다.
“네놈의 신분부터 밝혀라.”
질문은 진운자가 한다.
“흐...흑룡방의 총관 대룡입니다.”
“누구의 지시를 받았느냐?”
“바..방주님입니다.”
“그래? 감히 흑룡방 따위가 대무당과 척을 지겠단 말이지? 죄송....”
태운이 나섰다가 사부의 눈치를 보고는 꼬리를 내린다. 대신 무진이 한 마디 거든다.
“그 새끼 그거 진짜 무당 자랑 더럽게 많이 하네. 개뿔도 없는 주제에.”
“흠! 흠!”
진운자는 듣기가 거북했던지 헛기침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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