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37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37
“나리! 제가 물건을 잘못 본 모양입니다. 오십 년 근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칠십년 근입니다. 이런 물건은 저희도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서기는 이 와중에서도 잔머리를 굴린다.
“흐흐흐, 그럼 칠십 년 된 건 얼마나 해?”
“이백 냥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럼 그 놈으로 몇 개를 가져와봐. 이백 냥씩 쳐줄 테니까.”
“예에? 그..그건....”
“뭐해? 가져오지 않고?”
“아이고, 나으리!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 크악!”
서기는 말을 다 하지도 못하고 일초의 오른발에 배를 맞고 바닥을 뒹군다.
“마지막 기회다. 일각 안에 가져오지 못하면 우릴 능멸한 것으로 간주하겠다. 이후 발생할 일은 전적으로 네놈 책임이란 걸 명심해라.”
중저음으로 천천히 말하는 일초의 목소리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덜덜덜덜덜...!
서기는 일초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전신을 떨면서 식은땀을 흘린다. 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목숨을 구걸한다.
“나..나으리,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욕심이 지나쳐서 나으리를 속였습니다. 죽여주십시오.”
“그래? 그럼 죽여줘야지.”
일초는 다가가서 서기의 목을 잡고 손에 힘을 준다.
우드드득!
“크으윽! 나...나으리! 컥! 컥!”
이 상태에서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서기의 목뼈는 부셔질 수밖에 없다. 이 때 바깥에서 비명 소릴 듣고 위사들이 달려온다.
“서기 어른!”
“뭐하는 짓이냐?”
다섯 명의 위사들이 모두 검을 들고 일초를 공격한다. 하지만 그들은 일초에게 가기 전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군다.
“크으윽!”
“끄아악!”
태민 사형제가 발로 그들의 옆구리와 허벅지를 공격하자 힘도 써보지 못하고 쓰러진다.
‘허억! 끄..끝장이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
서기는 그때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나..나으리! 뿌리 당 이천 냥을 드리겠습니다.”
서기는 승부수를 건다. 나름대로 상술에는 뛰어난 인물이다. 지금으로선 이 방법 이외는 해결할 길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흐흐흐! 단 번에 이백 냥에서 이천 냥으로 열 배가 뛰어버리네. 그럼 한 번 더 겁을 주면 이만 냥을 주려나?”
일초는 최대한 험악한 얼굴로 서기를 노려본다.
으으으으!
서기는 겁을 먹어 오줌을 지리기 직전이다. 만약 무진이 나서지 않았다면 정말 그렇게 됐을 지도 모른다.
“됐다. 그 정도면 적당하다. 거래는 여기서 끝낸다.”
“예, 형님!”
일초는 두 말 하지 않고 물러난다. 순간 서기는 또 다시 놀란다.
‘이..이 자가 대장이 아니었나? 대체 이들이 누구지? 이런 영초들을 대량으로 가져올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거래를 안 할 거냐?”
“아..아닙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일초의 한 마디에 서기는 정신을 차리곤 어디론가 사라진다.
“란!”
“예, 정랑.”
“소미를 풀어놓으시오.”
“왜 그러세요?”
“아무래도 그 놈이 찾아야 할 게 있을 것 같소.”
“냄새 때문인가요?”
“그렇소.”
“알았어요. 소미야, 정랑이 뭘 원하시는지 알겠니?”
“야옹!”
소미는 대답을 하고는 쏜살같이 달려간다. 그때 서기가 제법 큰 상자를 하나 들고 온다.
“이것도 황금상단에서 발행한 전표입니다. 황금 이십만 냥입니다. 확인해 보시죠.”
서기는 상자를 무진에게 내민다.
“확인해봐라.”
“예, 대형!”
태운이 나선다. 돈 문제는 그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대답하면 우린 조용히 물러날 것이다.”
일초가 다시 서기에게 말한다.
“예, 나으리 하문하시면 바로 대답하겠습니다.”
“최근에 약초를 대량으로 구입하는 이유가 뭐냐?”
“전 의원님의 지시에 따를 뿐입니다.”
“그래서 이유를 모른단 거냐?”
일초의 표정이 다시 험악하게 변한다.
“그..그게 누군가로부터 의뢰를 받은 모양입니다. 그게 누군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좋다. 그 일로 너랑 실랑이를 벌일 생각은 없다. 운아!”
“예, 정확합니다.”
“수고했다. 자세한 건 의원에게 직접 물어보겠다. 안내해라.”
“예에? 그건 좀.... 곤란합니다.”
“곤란한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한다. 조용하게 끝내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해라. 싫다면 할 수 없고. 원래 그런 걸 처리하는 게 우리 주특기니까.”
일초는 말을 하면서 옆에 있는 의자를 하나 집어 든다.
“크아악!”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의자로 서기의 머리를 내리찍는다.
“네놈이 아니라도 우릴 안내해줄 놈은 많다.”
일초는 쓰러져 있는 위사들을 보면서 말을 한다. 위사들은 그의 눈빛을 마주보면서 공포에 휩싸인다. 일초는 이번에는 아예 탁자를 들어올린다.
“아..아닙니다. 안내하겠습니다.”
서기는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면서도 벌떡 일어나 앞장선다.
“잠깐!”
문을 나서려는 순간 무진이 손을 들어 걸음을 멈춘다.
“왜 그러십니까?”
“약초는 주로 어떤 것을 매입하느냐?”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주로 나으리들이 가져오신 물건처럼 영초를 매입하고 있습니다.”
“혹시 염(殮)을 하는데 필요한 약초도 취급하느냐?”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얼마나 매입했느냐?”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제일 많이 매입했습니다.”
“몇 명 분 정도 되느냐?”
“그게.... 적어도 백 명분 이상은 될 겁니다. 헌데 그건 왜?”
“이..이런! 빨리 가자!”
무진은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진다. 서기도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걸 깨닫고 발걸음이 빨라진다.
“저건 또 뭐야?”
서기가 무진일행을 안내한 곳은 약초방과 붙어 있는 의원의 숙소이다. 약초방의 주인인 의원은 태산의원도 같이 운영하고 있다. 일행이 태산의원의 뒤편 숙소에 도착하자 수십 명이 입구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고의원은 우리 딸을 내놓아라!”
“당장 내놓지 않으면 납치범으로 관가에 고발하겠다.”
“내 마누라도 내놔라!”
“고동무! 이 고자새끼야! 내 딸을 내놔라. 안 그러면 니 딸년도 똑 같이 만든다.”
사람들은 악에 바쳐서 고래고래 소릴 지른다.
“쯧쯧! 어딜 가나 이런 놈들 천지니...”
“후후후! 좋은 것만 처먹으니 힘 쓸 데가 없겠지.”
“형님, 아무리 세도가라지만 저렇게 많은 여인들을 납치해서 욕보이는 게 가능한가요?”
“돈과 권력만 있으면 다 되는 세상이니까, 못 할 게 없지. 개새끼! 저런 놈들은 거시기를 잘라버려야 해.”
태민의 물음에 일초가 욕을 해댄다.
“시간 없다. 들어간다!”
무진은 마음이 급한지 곧장 움직인다.
“민아!”
“예! 가시죠.”
일초가 부르자 태민이 사람들을 뚫고 앞으로 간다.
“뭐하는 놈이...크악!”
“마..막아라! 케엑!”
“사형! 이번에는 내 몫이요.”
“커억!”
태민 사형제는 번갈아가면서 위사들을 제압한다. 순간 항의하던 사람들이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난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저희가 책임지고 가족을 데려올 게요.”
호란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막으며 설명을 한다.
“지금은 안 됩니다. 저희도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릅니다. 마음이 급하시더라도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으음! 그거야 알겠는데, 정말 구할 수 있는 거요?”
“이 사람아, 방금 저분들이 위사들을 처리하는 걸 봤잖아?”
“그래. 저 정도 무사들이면 우리 딸을 충분히 구해줄 거야.”
사람들은 태민 사형제가 위사들을 제압하는 걸 보곤 믿는 눈치다.
한편 여긴 태산의원에서 가장 화려한 의원의 침실이다. 방안에서도 사내와 세 명의 여인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사내는 의원인 고동무로 오십대 중반의 늙은이다. 그는 물론이고, 여인들도 간신히 몸을 가린 거의 나체 상태로 있다.
“내가 말했지? 내 말만 잘 들으면 평생 호의호식하며 지낼 수 있다고. 일단 내 후처가 되면 네 가족들에게 집 한 채와 황금 천 냥을 줄 거다. 그뿐인 줄 아니? 평생 가족의 건강은 우리 태산의원에서 보장할 것이고, 먹고 입는 것도 다 내가 책임지마.”
고동무는 지금 여인들을 돈으로 유혹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싫어요. 전 집으로 가고 싶어요.”
“저도 싫어요. 안 보내주면 그냥 혀를 깨물 거예요.”
소녀 두 명은 그의 제안에 강하게 거부한다. 하지만 유부녀로 보이는 여인은 생각이 조금 다른 모양이다.
“전 받아들이겠어요. 대신.”
“대신?”
“그 정도론 안 되겠어요.”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이 여인이 셋 중에서 가장 예쁘다. 그래서 고동무가 더 애가 탄다.
“황금으로 이만 냥을 주세요. 제가 당신 첩이 되면 제 남편과 아이들이 이곳에서 살 수가 없어요. 다른 곳에서 정착하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해요.”
“황금으로 이만 냥이라고? 흐흐흐! 이년이 드디어 미쳤구나. 가능하면 좋게 해결하려고 했더니. 오냐! 전신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 보겠다.”
고동무는 탁자 위에 놓인 채찍을 들더니 여인을 향해서 마구 휘두른다.
“이얍!”
쫘아악!
“아아악!”
여인은 채찍 한 방에 바닥을 나뒹군다. 그녀의 등에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다. 연이어 세 번에 걸친 채찍질에 여인은 기절한다.
“흐흐흐! 네년들도 이 맛을 보고 싶니?”
고동무는 채찍으로 어린 소녀들을 위협한다.
“아..아니에요. 살려주세요.”
“제발 시키는 대로 할 게요. 때리지만 마세요.”
“진즉 그렇게 나올 것이지. 이리 가까이 오너라.”
소녀들은 겁은 먹었지만 그렇다고 고동무가 시키는 대로 하진 않는다.
“이것들이 정말!”
고동무는 다시 채찍을 휘두르며 겁을 준다.
“아아악!”
“아..알았어요.”
두 소녀는 서로 손을 꼭 잡고 몇 발자국 움직인다. 동시에 고동무도 다가간다.
“하긴 앙탈도 적절하게 부리면 자극도 되고 좋지. 흐흐흐흐!”
고동무는 소녀들의 몸매를 살피며 침을 질질 흘린다. 간신히 가려진 옷 사이로 중요 부위가 살짝 드러난다.
“크크크, 더..더 이상은 못 참겠다.”
그는 채찍을 던져버리고 두 손으로 소녀들의 손을 잡아당긴다. 아니, 당겼다고 생각하는데 그보다 먼저 자신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걸 느낀다.
“어..어! 이게 뭐지? 으아악!”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몸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이런 개 쓰레기 같은 새끼를 봤나? 일초야!”
“예, 형님!”
“다시는 흉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라.”
“예,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당신은 여인들을 모두 데리고 나가시오.”
“예, 정랑!”
호란이 여인들의 옷을 입힌 다음 데리고 나가자 일초는 곧바로 명령을 실행한다. 우선 멱살을 잡고 공중으로 들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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