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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곧 힘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연재 주기
채아노
작품등록일 :
2018.11.17 19:05
최근연재일 :
2018.12.28 00:34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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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03
추천수 :
115
글자수 :
217,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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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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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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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나는 누구인가

DUMMY

물에 옅은 농도의 잉크를 넣은 것처럼 하늘은 조금씩 조금씩 어두워졌다.

점심을 먹기엔 너무 늦고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기 때문에 저녁 먹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간단하게 몸을 씻고 방에 들어온 나는 그대로 침대로 뛰어들었다.

누워있기만 했는데도 여독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여러 가지 것들이 떠오른다.


처음 본 마기아에서의 풍경이 생각났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활달한 거리의 생기가 아직도 보였고 느껴졌다.


난생처음 정화라는 것을 받았다.

따듯한 기운이 상처로 들어가 온몸을 순환했다.

아직도 그 온기가 몸속에 남아있는 것 같다.


괜히 헤르바 아빠의 말을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금방 다시 볼 것 같다...라.

혹시 임프들의 습격에 대한 나름의 힌트인가?

임프들이 습격하게 된다면 우리 가족을 구하기 위해 헤르바네 가족들이 올 테니까.

그 시간이 곧 다가온다는 말이려나.


신경 쓰이는 말은 또 있다.

헤르바 아빠는 헤르바가 나를 좋게 본다고 하였으며 내가 그녀와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헤르바가 나를 좋게 생각한다니.

지금 곱씹어 보니 괜히 얼굴에 열이 올라오는 것 같다.


위르디아 헤르바.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녀의 웃음, 그녀의 미소, 내 말에 반응해주는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에 대한 생각은 점점 커져 어느새 내 뇌는 그녀의 세세한 형태까지 떠올리기 위해 별로 남아 있지도 않은 탄수화물을 소모하고 있었다.

배가 점점 더 고파졌다.


초등학교 이후로 여자와 이렇게까지 긴 접점이 없었던 소년에게 그 하루조차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의 만남은 마약과도 같았다


.

그녀가 계속 생각났으며 그녀와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다.

나는 이 감정이 뭔지 궁금했다.

아니 사랑을 해봤어야 이게 사랑인지 아닌지 알지.

그저 계속 떠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사랑이라면 공포영화와 별 차이가 없지 않은가.


그냥 새롭게 생긴 이성 친구 때문에 들떠서 그런 건가?

아니면 내 마음은 그녀를 친구 이상으로 느끼고 있나?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번에는 엎드렸다.

몸을 일으키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몇 초 동안 가만히 있다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로 침대를 굴러다녔다.

생소한 이 느낌, 갈비뼈가 간질간질한 느낌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굴러다닌 나는 다시 누워있게 되었다.

헤르바가 다시 생각났다.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져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이상하게 들뜨고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헤르바와 다시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녀와 좀 더 같이 있고 싶다.


"헤르바."


나는 이 세 음절을 깨지기 쉬운 골동품을 닦는 것처럼 말했다.

알고 있었다.

임프의 습격이 끝난다면 그녀를 다시 한번 볼 수 있고 그녀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겠지만 결국 그녀는 마법사고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녀와 더 사이가 좋아지겠지. 웃으며 말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다음은?

습격이 어떤 결과를 가진 상태로 마무리가 되고 그녀와 헤어지면 그녀와 만나는 건 솔직히 어렵다.

그녀는 그녀만의 세상이 있고 나도 나만의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욕심 때문에 그녀의 세상으로 침입하는 건 그녀와 나의 세상 모두 끝으로 향하는 지름길일 뿐이다.


그렇기에 깨지기 쉽다.

하지만 그렇기에 소중하다.

그 소중한 것을 오랫동안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그녀의 세상에 들어가는 게 '침입'이 아닌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마법을 사용해 마법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어야 (사실 자격이 뭔지도 모르지만) 그녀와 함께 걸어갈 수 있다.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나는 그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한다.


'존재하지만 인식할 수 없는 것을 인지한다.'


어차피 나중에 꼭 생각해야 하는 것이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몬스터들을 사냥할 힘을 얻고 마석을 얻어 부모님과 좀 더 잘 살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녀와 다시 8번 정도는 만나기 위해서는.

이 수수께끼를 푼 사람들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을 뿐이지만, 0%는 아니다.

그게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억, 조, 경의 하나라도 0이 아니면 나에게는 충분히 넘치는 확률이다.


반드시 해답을 찾아 멋지게 마법을 사용해 보이겠다.


헤르바, 그녀와 더 길게 만나게 된다면 이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 아버지와 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는다.

항상 해왔던 일인데 오늘따라 왠지 새로운 느낌이 든다.


저녁을 먹으며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값이 나가는 마석을 상당히 많이 받으셨다고 한다.

헤르바 아빠 나름의 성의의 표시라고 한다.

그것들은 당분간 밖에 나가 사냥을 하는 것은 위험할 확률이 높으니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자금이 될 것이다.


"아들, 괜찮겠어?"


아머니가 말씀하셨다.


"뭐가요?"


빵을 찢어 수프에 찍으며 나는 말했다.


"당분간 밖에 나가는 건 힘들 텐데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다 반납했으면 집에서 딱히 할 게 없어 심심


하겠네."


아버지가 샐러드를 드시며 말씀하셨다.


난 샐러드가 싫다.

그 이상한 식감이 싫고 은은하게 느껴지는 그 맛이 싫다.

그리고 위에 뿌려지는 드레싱도 싫다.

그래서 돈가스 먹을 때 같이 나오는 양배추들의 집합체들을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보며 한숨을 많이 쉬신다.

비타민을 먹지 않으면 여러모로 몸에 좋지 않으니 하루에 조금씩 먹기는 하는데, 그래도 샐러드를 싫어하는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하시는 것 같다.


"괜찮아요. 안전한 게 최고죠. 그리고 며칠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예요."


"며칠로 끝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서 문제죠."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마법에 관련된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므로 일단 도서관에 가서 도움 될 만한 책을 찾아봐야 하는데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

죽는 것보단 집에서 안전하게 있는 게 좋다.


뭐 올해 죽는다면 내년에 죽지 않아도 되긴 한다.


"당분간은 가지고 있는 책으로 참아야죠. 얼마나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저녁을 모두 먹고 사과와 비슷한 과일을 씹으며 아버지께 말했다.


"한 2주에서 3주 정도는 지켜볼 생각이야. 그랬는데도 습격해올 기미가 안 보인다면 조금씩이라면 밖에 나가도 되겠지. 오히려 그때쯤 되면 밖에 나가서 습격의 징조를 찾는 게 오히려 안전에는 이로울지도 몰라."


아버지께서 마지막 조각을 드셨다.

정말 맛있는 과일인데 아쉽다.


"잘 먹었습니다."


음식을 차려주신 어머니께 감사 인사를 하고 완벽하게 잘 준비를 마친 후에 방으로 들어갔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들이 마구잡이로 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단서가 부족하니 일단, 이 튀어 오르는 것들을 일일이 다 검토해볼 생각이다.

과연 시간이 얼마나 걸리려나.


비슷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집에서 세 끼를 먹고 방에서 뒹굴뒹굴하며 생각을 거듭했다.

지금까지는 별로 도움 되는 것들이 없었다.


계속 먹고 자기만 해서 그런지 살이 좀 찐 것 같았다.

손을 펴서 봤는데 손가락의 두께가 좀 늘어난 것 같아 신경 쓰였다.


이 상황이 마치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았다.

아무리 결과라는 독에 노력을 부어도 노력은 새어나가기만 할 뿐, 안을 채운다는 결과에 도달할 수 없었다.

이걸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과연 답은 있는 걸까.

감정이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이제 사춘기인가, 하고 스스로 농담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왠지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기에.


계속 누워있어서 그런지 잠이 슬그머니 노크했다.

돌려보낼까 하다가 조금 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조금 자고 나면 들끓는 마음이 조금 잠잠해지지 않을까.

나는 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먹은 솜처럼 서서히 생각이 끊어지는 게 느껴졌다.



뭔가 꿈을 꾼 것 같기는 한데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꽤 재미있었던 것 같았는데 아쉬웠다.


왜 꿈은 금방금방 잊힐까?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인데 기억을 하지 못한다니.

물론 꾼 게 악몽이라면야 빨리 잊는 게 좋겠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현실까지 힘든데 꿈까지 악몽을 꾸면 무슨 기분일까?

고된 하루를 끝내고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풀어주고 내일을 보낼 수 있게 하는 모든 깨어있는 자들의 휴식처인 잠마저


고통으로 얼룩지면 무슨 느낌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기억이 나지 않는 편이 행복할 것 같다.

반반의 확률로 황홀한 기쁨과 슬픔의 끝을 보느니 차라리 소소한 행복의 지속이 좋지 않으려나.



맞아, 행복.

생각해보니 이제는 대답할 수 있다.


다른 세상에 태어난 나는 지금 행복한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나름 힘들었던 고등학교 생활에서 벗어나 지금 15년을 놀고 있다.

가끔 아버지를 도와 사냥을 하러 가기는 하지만 공부보다는 재밌었다.

탐구과목 암기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나 공동체 생활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들이나 성적을 가지고 하는 상담 등등이 없어서 행복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나는 '보람'을 느낄 수 없었다.

달리 말하면 무엇인가를 해낸다는 '성취감'이란게 현재 나에게 결여되어 있었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냈을 때, 점수가 올랐을 때, 게임에서 이겼을 때, 단어 시험을 다 맞았을 때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을 잘 느낄 수 없었다.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내 삶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절망이 존재하기에 희망이 존재한다. 슬프기 때문에 우리는 기쁘다. 불행이 있기 때문에 행복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의 나는 행복하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의 나는 불행하다.


지금까지 문제없이 살아왔으며 평화로웠고 순탄했다. 고통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해결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나는 불행하다.


그리고 나는 행복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

무수히 많은 길 중 오직 한 가지 길만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고 셀 수 없을 만큼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행복의 길에 도달한 내가 보인다.

그 길을 걸어가는 내가 보인다.

그리고 나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 상상의 나는 현실의 내가 될 수 있다.


슬퍼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왜 슬퍼하고 있는가, 눈앞에 행복이 보이는데.


들끓는 감정은 이미 사그라들었고 그 어느 때보다 머리가 맑았다.

이번에는 왠지 성공할 것도 같은 그런 좋은 느낌마저 들었다.


눈을 감았다.

아까 조금 잠을 잤기 때문에 다시 잠들 일은 없을 것이다.

자. 오늘은 한번 처음으로 되돌아가 보자.


나는 점점 어려졌다.

키가 점차 작아지고 얼굴에는 어린 티가 나기 시작한다.

15살의 소년은 8살의 아이가, 5살의 꼬맹이가, 2살의 아기가 되었으며 금방 태아로 변했다.

태아는 다시 작아지기 시작했으며 어느새 단 한 개의 세포가 되었다.


태초의 상태.

'나'라는 존재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상태가 되었다.


역행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세포가 분열하기 시작한다.

한 개가 두 개, 두 개가 네 개, 네 개가 여덟 개...


어느새 수백만 개, 수천만 개, 수억 개의 세포가 생겼고 그것들은 점차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먼저 신체의 중요한 장기들이 만들어지고 점점 생명체의 모습이 아닌 사람의 형태를 띠어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태아가 되었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저것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


과거에 이름은 최원호였다.

키가 컸고 얼굴에 여드름이 좀 있었으며 슬프게도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졌다.

태어날 때부터 부정교합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시간 동안 교정을 했으며 그다지 잘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부터 늘어난 공부량에 운동할 시간이 없어 꽤 몸무게가 나갔다.


잠이 많았다.

고등학생 때는 6시간밖에 잘 시간이 없어서 쉬는 시간, 점심시간, 야자시간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곤 했다.

평소 생각하는 것에 비해 말을 잘하지 못했다.


처음 보는 사람과는 나름대로 대화라는 걸 이어나갈 수 있었지만, 적당히 아는 사람과는 잘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수 없었다.

여린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평소 딱딱한 껍질로 둘러싸고 있고 가면을 쓰고 있어서 초면인 사람과도 문제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으나 두 번, 세 번 만나기 시작하면 가면과 껍질로는 여린 속마음을 감추기 힘들어 아예 대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친구가 많지 않았다.

나를 잘 알아주는 친구, 내가 좋아하는 친구를 딱 6명을 만들고는 친구를 더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남중 남고 출신이어서 여자를 조금 무서워했다.

어쩌다가 여자와 이야기를 할 일이 생기면 상대방의 나이가 몇 살이든 존댓말을 사용했다.


어른에게는 최대한 예의를 지켰지만 어른답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른 취급을 하지 않았다.


내가 당했을 때 싫었던 것을 남에게 하지 않았으며 남의 영역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 대신 함부로 남이 내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화를 잘 참았다.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화는 눈물로 나오곤 했다.


지금의 나는 카니아다.

키는 과거만큼 크지 않았지만 작지도 않았다.

얼굴은 티 하나 없이 깨끗했고 탈모의 낌새는 보이지도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치아는 가지런했고 턱이 나오거나 하지 않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만족하곤 했다.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많이 먹지 않았는데 이게 습관이 되었다.

몸에는 군살 하나 없이 날씬하다.


잠이 많았다.

컴퓨터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는 세상이라 마땅히 할 게 없었으므로 일찍 자서 늦게 일어나곤 했다.

밥을 먹고 나면 꼭 30분 정도 잠을 잤다.

이 짧은 수면 동안 꾸는 다양한 꿈을 나는 좋아했다.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뇌는 깨어 있었다.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잘해서 가끔은 그 만남이 새로운 친구가 되기도 했다.

앨루윈과 헤르바가 생각났다.


많은 또래를 만났지만, 친구는 2명이다.

과거보다 더 적었다.


처음에는 헤르바와 존댓말로 대화했지만 친해진 지금은 반말을 사용한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어머니, 아버지'라고 불러서 어색해하셨던 기억이 있다.


잠을 깨우는 걸 싫어해 어머니가 아버지를 깨우라고 시키셨을 때 많은 고민을 해야 했으며 지금까지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아무리 외관이 달라도, 이름이 달라도 성격이 같고 내면이 같으면 그것은 '나'라고 할 수 있다.

즉 지금의 저 태아는 그저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를 먹으면서 그가 하는 행동들을 본다면 그가 '나'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이덴티티, 경험에 대한 기억의 축적에 의해 결정되는 사고의 집합체, 간단하게 '마음'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저 태아를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마음 X를 가진 존재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몇 번째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100억 번째 마음이면 마음 100억, 381290482190번째 마음이면 마음 381290482190라고 했겠지만, 모르니까 어쩔 수 없다.


시간이 좀 지나자 태아는 점점 자라났고 나다운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저 아이는 나라고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을 부를 때 어느 정도 나이가 들자 바로 어머니 아버지란 말을 쓰고 많이 자는 모습이 보였으며 화를 내지 않았다.


잠깐 눈을 떴다.

두근두근하고, 심장박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기운이 몸에 도는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눈을 감는다.

두 번째 질문이 나를 찾아왔다.


지금 내가 하는 저 행동들의 원인은 신께서 정해주신 것, 이미 주어진 길, 달리 말해 '운명'인가 아니면 '인간의 사고에서 도출되는 것'인가?


인간의 사고에서 도출되는 것이라면 이론상 인간은 나쁜 행동이나 실수를 하면 안 된다.

지금까지 쌓인 경험으로 x라는 행동을 하면 y라는 결과가 튀어나온다는 것을 알고 만약 이게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것이라면


당연히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기 있는 나를 보니 접시를 깨는 실수를 하기도 하며 어머니께 안 좋은 말을 하기도 하고 앨루윈과 농구를 할 때 팔을 잡는 등의 행동을 하고 있다.

좀 넓게 보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살인이 일어나고 도둑질을 하며 남을 때리고 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럼 신께서 정해준 운명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인가?

'너는 이때 살인을 할 것이고 너는 이때 시험을 다 맞지만, 친구와 싸울 것이며 너는 이날 죽을 것이다.' 하고 다 정해진 것이다.


말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 손으로 허벅지를 때리려고 거의 근접하게 손을 내렸다가 다시 올리는 것도 다 적혀있다는 말인가?


"......"



여기까지가 내 한계다.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문과는 아닌 내가 철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부터는 과학적으로 접근할 때가 되었다.

신께서 정해주었다, 인간의 사고에서 돌출된 결과물이다, 이런 것들은 둘째치고, 사람이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


자동차가 움직이는 데 기름이 필요하고 컴퓨터로 게임을 하기 위해 전기 코드를 꼽는 것처럼 사람 역시 움직이기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에너지라는 게 모든 종류의 에너지를 다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흩어져 있는 에너지를 실제로 세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로 바꾸는 작용이 필요하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하고 호흡을 하는 이유는 당연히 살기 위해서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에너지를 바꾸는데 필요한 포도당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쿵. 하고,

심장이 한 번 뛰었다.


식사해서 체내로 들어온 음식물들이 소화계에서 분해되면 다양한 영양소들이 나온다.

그중 포도당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영양소는 탄수화물이다.

그렇게 생성된 탄수화물이 분해되고 변형되면서 포도당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포도당은 여러 가지 과정을 지나 에너지로 변한다.


먼저 포도당은 세포질을 거쳐 미토콘드리아에서 분해된다.

이 과정에서 산소가 이용되어 물과 이산화 탄소로 최종 분해되고, 그 결과 에너지가 방출된다.

이때 방출된 에너지 일부는 ATP에 화학 에너지의 형태로 저장되고 나머지는 열에너지로 방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진핵생물은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 재료와 생물의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재료 대부분을 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은...



눈을 떴다.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정신없이 노트를 펼쳤다.

그곳에는 고2 때 6개월 정도만 배워서 별로 쓰여 있는 것도 없지만 줄기차게 외웠던 한가지 단어가 적혀있었다.


'TCA 회로(Tricarboxylic Acid Cycle)'



[카아아아아앙]



소리가 들린다.

알 수 없는 무형의 것들이 내 몸으로 정신없이 들어와 목의 끝부분부터 명치까지의 공간 안에서 회전하는 소리였다.

직감적으로 플로우임을 알았다.


그것들은 몸 안에 들어와 동그랗게 원을 만들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

세 개까지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신기한 문양들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았지만 보였다.

느껴지지 않았지만 느껴졌다.


작업이 끝난 플로우는 마지막으로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몇 초 동안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심호흡했다.

그리고 한 번 마법을 사용해 보았다.


손에는 조그마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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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가까이서 보니까 털뭉치쯤 됐다. - (2) 18.12.06 233 3 15쪽
18 가까이서 보니까 털뭉치쯤 됐다. - (1) 18.12.05 227 1 15쪽
17 팀빨도 좀 타고 조합도 좀 타고 그래. +1 18.12.04 260 3 15쪽
16 물론 난 갈 생각이 없다. +1 18.12.02 313 4 13쪽
15 저 좀 살려주세요 +1 18.12.01 302 5 12쪽
14 너 무슨 정보창 같은거 보이냐? 18.11.30 331 3 12쪽
13 어쩌다가 막아버렸다. +3 18.11.29 335 4 17쪽
12 상상구현 수업은 인기가 많으니까 빨리 가는 게 좋을 걸 18.11.27 341 4 20쪽
11 오늘은 끔찍한 하루였다. 대강 이유가 4개정도 있다. 18.11.26 355 4 17쪽
10 공격에 낭비가 없고 수비에 투자를 많이 한다 18.11.23 402 4 21쪽
9 물리법칙을 거스르지는 않겠지 18.11.22 425 4 16쪽
8 RPG 게임할 때 마법사를 플레이 해볼껄 18.11.21 439 4 15쪽
» 나는 누구인가 +1 18.11.20 529 6 20쪽
6 공기라도 보고 있으세요 18.11.19 544 6 18쪽
5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 +2 18.11.18 631 7 18쪽
4 가장 중요한 3가지는 상상력, 정신력, 직감이다. +2 18.11.17 675 7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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