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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8.11.2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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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1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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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팔레이아 행성편 - 분노

DUMMY

"뭐야, 노예였나? 오늘은 종쳤군."


에펜은 인상을 와락 구겼다. 백아현은 에펜에게 물었다.


"왜 그러시죠?"


"지하경매장에 오는 노예들이야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죄다 불법노예겠지요. 저는 이 행성 사람이라 불법 노예는 들킬 위험이 큽니다. 장물은 말을 못하지만, 사람은 말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한껏 무뚝뚝해진 백아현의 태도에 어색해진 에펜이 일부러 과장되게 웃으며 재차 말했다.


"뭐, 개인적으로 노예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기도 하고요. 백아현씨는 어떻습니까?"


"예... 뭐, 저도 딱히 노예가 좋다는 생각은 안 드네요."


아현의 속내를 들은 에펜이 옳다구나 맞장구쳤다.


"그렇죠? 사실 팔레이아는 미식별 행성이던 시절에만 해도 노예제도가 없었거든요. 저야 모르는 일이지만 윗윗세대만 하더라도 노예제도를 굉장히 저급하게 생각합니다."


"노예제도 자체를 경멸하는 건 아닙니다만, 만약 저들이 인권을 무시당한 채 강제로 끌려 온 거라면... 솔직히 말해서 다 때려 부수고 싶습니다."


아현이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아마노 와카루의 성격이 미친 영향이 컸다.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아현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자유를 억압한 자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 예?"


에펜이 자신의 마음을 엿보기라도 한 것처럼 질문하자 아현은 화들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에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물었다.


"백아현씨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노예를 살 생각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굳이 여기 있을 필요가 없지요. 저는 사무실로 돌아갈 예정입니다만."


"저는... 그냥 남겠습니다. 이왕 온 거 지하경매장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요."


"그렇군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 시간이 되시면 명함의 연락처로 전화 주시기 바랍니다. 같이 식사라도 한 끼 하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에펜을 보낸 아현은 적당히 빈 자리에 앉았다.


'얼떨결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버렸네....'


반쯤 자동으로 튀어나온 변명이었다. 아현은 지하경매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절망에 찬 표정을 짓는 노예들에게 느껴지는 측은지심이 그를 여기에 붙잡아두고 있었다.


'괜한 참견인가....'


경매는 백아현을 내버려둔 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욕망에 답해주고 있었다. 한동안 먹먹한 심정으로 상품이 되어 단상에 올라온 노예들의 정보를 지식의 정수로 확인하는 와중 어렸을 적 아마노 와카루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엄마, 엄마. 혼난다는 게 모야?]


[응? 혼난다니... 우리 아현이, 누가 그런 말 했어?]


[알라나가 말해줘써! 알라나는 가끔씩 아빠한테 혼나는데, 어엄청 무섭다고!]


[후후후, 혼난다는 건 말이지.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는 걸 말하는 거야. 엄청 아프거나 무서운 거란다.]


[그럼 나도 잘못하면 엄마한테 혼나?]


[아아니? 엄마는 항상 우리 아현이 편이에요. 오히려 아현이를 혼내려는 사람은 엄마가 혼내줄 테니까. 아현이도 커서 어엿한 어른이 되면 나쁜짓을 하는 사람들을 혼내주렴.]


[웅!]


그리고, 새로 단상에 올라온 토끼귀 소녀의 정보를 확인한 백아현은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하고 끊어지는 환청을 들었다.


'저렇게 어린 아이를...!'


시작가가 500만 달러인 이번 상품은 매우 어린 소녀였다.


"오늘의 메인! 노예를 사랑하는 여러분들이라면 당연히 들어보셨을 겁니다. 헤니즈 입니다!"


"600만 달러!"


"700만 달러!"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올라가는 가격. 가격이 올라갈수록 단상에 올라온 토끼귀 소녀의 얼굴엔 공포가 늘어갔다.


"3000만."


1000만 언저리에서 갑자기 세 배로 뛰어오른 가격에 경매장 내가 일순 침묵했다. 가격을 부른 남자는 입맛을 다셨다.


"헤니즈라면 이 정도 가격은 내야지... 안 그런가?"


동의할 수 없는지 기가 죽은 것인지 조용한 장내는 좀처럼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뒤늦게 사회자가 말을 더듬거리며 삼창했다.


"사, 삼천만 달러가 나왔습니다. 3000만 달러, 3000만 달러. 3000만 달...!"


"5000만."


낙찰이 확정되기 직전 누군가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5000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이번에는 3000만 달러를 불었던 남자도 안색이 딱딱해졌다.


"오천만이라고...? 어이, 너. 지금 장난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있지도 않은 돈을 부른 거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여기 지하경매장은 얼굴을 가렸다고 능사가 아니란 말이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남자를 쳐다보며 일어난 아현은 얼굴에 쓴 가면을 벗어던지며 말했다.


"있다. 5천만 달러."


"저, 저 얼굴!"


"나 저 사람 알아! 어제 팔레시스 급 유물을 2500만 달러 주고 낙찰받은 사람이야!"


에펜의 말대로 아현은 경매 시장에서 얼굴이 퍼졌는지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아현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도 그를 알아봤는지 안색이 파리해졌다. 사회자는 이게 웬 떡이냐는 생각에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5000만 달러! 헨 행성에서 온 노예 소녀는 5000만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노예를 낙찰받은 아현은 뚜벅뚜벅 걸어 단상 위로 올라갔다.


"대금은 어떻게 치르시겠습니까?"


사회자의 말에 백아현은 품에 손을 넣었다. 휘황찬란한 보석이나 어마어마한 숫자가 적힌 수표를 꺼낼 거라 짐작한 사회자의 생각과는 달리 아현이 꺼낸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너네들 목숨값으로 치르겠다."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었다. 아름다운 곡선의 막대기가 아현의 손의 위아래로 뻗어나갔음을 인식한 순간, 사회자는 극심한 고통에 울부짖었다.


"끄아아아아아악!"


왼쪽 대퇴부를 뚫고 들어간 화살이 주는 통증에 털썩 주저앉은 사회자는 두 번째 이어질 공격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활은 사회자가 아닌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다.


"으아아악!"


"미, 미친 놈이다!!"


갑자기 사회자에게 활을 쏜 아현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는 사람들. 아현은 그들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시위를 당겼다. 당기기만 하면 활의 힘으로 그가 원하는 부위에 척척 명중했다. 그건 이미 경매장을 빠져나간 사람도 예외가 아니었다. 순수한 에너지로 만들어진 화살은 아현이 노린 부위에 도달하기 전까지 그 어떠한 물리적 간섭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게 무슨 소란이냐! 뭐, 뭐야!?"


사회자의 이머전시 콜과 장내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지하경매장 소속의 경비원들이 들이닥쳤다. 당연히 경매장 내부에서 화살이 난무하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으어억...!"


"사, 살려줘어...!"


다리에 맞은 화살에 이도저도 못하며 그저 바닥을 기는 사람들을 보며 경비원 한 명이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마, 말록 씨를 불러와! 어서!"


"아, 알겠습니다!"


당황하는 와중에도 말을 알아들은 경비원 한 명이 부리나케 달아났다. 백아현은 경비원보다 경매장에 있던 사람들을 우선하여 공격했기 때문에 전령은 무사히 전해졌고, 잠시 후 허리춤에 칼을 찬 남자 한 명이 나타났다.


"얼씨구, 이건 또 뭔 일이냐?"


보고를 받았기에 미리 상상은 하고 온 말록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난장판인 경매장의 몰골을 보며 소란의 장본인인 아현에게 소리쳤다.


"뭐 하는 새끼냐? 누가 여기서 깽판쳐도 좋다고 하던?"


뺀질하게 생긴 푸른 머리카락의 남자를 본 아현은 말없이 시위를 당겼다. 아무것도 없던 행방쫓는 활의 시위에 화살의 형상을 한 에너지가 결집되고, 그것은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갔다.


"흐읍!"


말록은 허리춤의 활을 뽑아 화살을 쳐냈다. 활을 쏘면서도 내내 무표정을 유지했던 아현이 처음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그 반응에 무시받았다고 생각한 말록은 아현을 비웃었다.


"하! 내가 막은 게 아니꼽나? 여기 나자빠진 새끼들이 죄다 오른쪽 다리를 부여잡고 있는데, 어디로 오는지 알고 있는 공격따위야 못 막는 게 병신이지."


"그 무기... 그냥 무기가 아니네."


"아닌데? 그냥 평범한 철검인데?"


말록은 부인했지만 아현은 이미 말록의 무기를 유물로 확정한 상태였다. 정말로 평범한 철검이었다면 화살은 칼을 지나쳐 말록의 다리를 꿰뚫었을 것이다.


'자기 정보를 남에게 굳이 알려주는 바보가 어디 있겠냐만....'


백아현에게는 지식의 정수가 있었다.


[에너지 블레이드]


대기중에 존재하는 암흑 에너지를 검신에 옅게 두르게 만들어 절삭력을 높인 검. 우주 최대 규모의 무기 제작 회사인 윌캄사에서 만들었다.


'유물은 아니군.'


검신에 에너지를 두르고 있는 특성으로 에너지 덩어리인 화살을 쳐낸 것이었다. 파악을 마친 아현은 다시 화살을 쏘았다. 이번에 노린 것은 왼쪽 다리였으나, 이번에도 말록은 어렵지 않게 쳐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바뀐 것 뿐이냐? 게다가 급소도 아니야...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군."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도 무시받았던 적 없는 말록은 아현의 태도에 화가 났다.


"아무래도 본때을 보여줘야겠어."


말록은 땅을 박차고 튀어올랐다. 아현은 공중에서 무방비한 상태의 말록을 공격하려 했으나 말록의 행동이 더 빨랐다. 팔을 크게 휘두른 말록의 검에서 검기마냥 반월 형태의 날카로운 에너지가 아현을 향해 날아온 것이다.


'피하면...!'


공교롭게도 백아현은 단상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경매장의 입구에서 단상을 향해 날아온 공격은 자연스럽게 노예들이 서 있는 뒤쪽까지 범위로 두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아현은 침착하게 날아오는 검기를 목표로 삼아 활시위를 당겼다. 두 에너지는 서로 상쇄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얍!"


그러나 말록은 멀쩡했다. 위치에너지를 이용하여 묵직한 공격을 가한 말록은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가 아는 활잡이들은 근접전으로 나서면 약해빠졌기 때문이다.


"적당히 해라."


활로 검을 막은 아현은 의외로 끈질긴 말록을 향해 싸늘하게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말록은 평범한 나무로 만든 것처럼 생긴 활이 에너지 블레이드를 막아내자 당황했다. 그러나 힘의 구도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팽팽한 상태였기 때문에 말록은 오히려 당차게 나갔다.


"적당히 해야 할 건 네 놈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소란을 피운 건지 알기나 하는 거냐? 라코브 상회의 눈밖에 날 행동을 하다니.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네 앞길이나 걱정하시지."


그 말에 아현은 갑작스레 속에서 끓어오르고 있던 분노가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말록의 협박이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네가 누구냐는 말에 스스로를 자각한 것이다. 자라오면서 알라나와 더불어 아마노에게 자기자신, 지구인의 대단함을 들어오며 자란 백아현은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너무 감정에 치우쳤나?'


평정심이 돌아온 아현은 차분히 생각했다.


'죽인 사람은 없다. 억울하게 팔려나간 노예도 없다... 그럼 굳이 여기서 시간낭비 할 필요는 없지.'


위르제스 율법 상 불법노예를 취급한 자는 벌금은 기본에 심하면 평생을 불구로 사는 형벌에 처해진다. 아현은 그 선에 맞게 모든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다리만 병신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런데 이 놈은 좀 까다로운데....'


이대로 가다간 새로운 적이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현은 지식의 정수를 행방쫓는 활에 장착했다. 지식의 정수의 또다른 능력인 '사용자의 지혜에 비례하는 공격능력 부여'가 발동되었다.


"여기까지 하자."


검을 맞댄 채로 시위를 당긴 아현을 보며 말록은 재빨리 뒤로 물러갔다. 똑같이 다리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말록은 가볍게 쳐내려 했으나 종전까지와는 달리 화살은 말록의 에너지 블레이드를 박살내고 나아갔다.


"뭣, 크아아악!!"


애처로운 비명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말록을 내버려둔 채 노예로 끌려온 사람들의 재갈과 구속을 풀어준 아현은 뿌듯하게 말했다.


"여러분, 이제 안심하세요."


작가의말

주인공의 행보가 너무 오락가락 지맘대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뭐든지 다 받아주는 상냥한 여자에게 갓난아기 때부터 길러지고 이제 막 세상경험을 하는 캐릭터입니다. 나중에 차차 성향이 잡혀가니 감내하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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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3. 있어선 안 되는 것들 - 조짐 18.12.13 10 0 11쪽
13 2. 팔레이아 행성편 - 타타라 18.12.12 26 0 11쪽
» 2. 팔레이아 행성편 - 분노 18.12.10 28 0 12쪽
11 2. 팔레이아 행성편 - 인신매매 18.12.08 16 0 11쪽
10 2. 팔레이아 행성편 - 뒷세계 18.12.07 18 0 11쪽
9 2. 팔레이아 행성편 - 경매장 18.12.04 21 0 11쪽
8 2. 팔레이아 행성편 - 육아 18.11.30 19 0 11쪽
7 2. 팔레이아 행성편 - 우주의 시간은 흐른다 18.11.29 19 0 11쪽
6 1. 처녀자리 초은하단 - 대폭발 18.11.27 16 0 13쪽
5 1. 처녀자리 초은하단 - 만남, 협상 18.11.26 16 0 11쪽
4 1. 처녀자리 초은하단 - 두 외계인(2) 18.11.25 21 0 11쪽
3 1. 처녀자리 초은하단 - 두 외계인(1) 18.11.24 24 0 10쪽
2 1. 처녀자리 초은하단 - 운석 찾기 18.11.23 24 0 13쪽
1 1. 처녀자리 초은하단 - 미식별 행성 18.11.22 3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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