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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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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래
작품등록일 :
2018.11.2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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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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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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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UMMY

##.


내가 살던 지구는 이 빌어먹을 중세의 이세계보다 모든 것이 발달해있었다.

제도건 기술이건 문화건··· 정말 모든 면에서 앞선다고 나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마법 같은 건 논외로 하자)

다만 한 가지, 정말 단 한가지만은. 지구의 그 어떤 기술과 노력을 총동원해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문(拷問).


포션이라던가 치유마법이라는 것들. 인간의 몸을 아무리 헤집어놔도 멀쩡하게 되돌릴 수 있는 그런 반칙 같은 수단이 있는 한, 지구의 그 어떤 고문도 이곳의 것을 앞설 수는 없었다.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내 양각을 새겼다.

뼈를 잘게 부쉈다 시약과 섞어 재생시켰다.

저들은 수술이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그냥 고문에 불과했다.

여기서 가장 빌어먹을 점은, 이 고문엔 내가 실토할 비밀도, 배신할 아군도 없다는 점이다.


나는 그저 고문을 받았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현대의학이 경이로운 발전을 이룩했듯, 이곳에서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치유마법이 경이로운 발전을 이룩했다.

인간이 지 갈라진 배때지를 보는 건, 히어로즈 같은 드라마에서만 하자고. 젠장!


나는 그저 고문을 받았다.


문득 어웨이크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마취로 인해 몸은 마비되었지만, 감각이 느껴지는 채로 수술을 받는 영화였다지.

주인공의 비명과 절규는 리얼한데 몸으로 할 수 있는 반응이라곤 눈물 한 방울 떨구는 것이 전부.

나도 꽤 비슷한 상황이었다.

눈동자 말고는 움직일 수가 없었으니.


나는··· 그저 고문을 받았다.


내가 알기로 너무 큰 충격이나 고통을 받으면 백치가 된다고 했다. 헌데 나는 아직 미치지 않았다.

온전한 정신으로 내 상황을 인지하고, 그와 수반된 고통을 겪고 있다.

이것은 내가 미치기에 충분한 고통이 아니라는 말일까. 아니면 나는 이미 미쳐있는 것인가.

미쳐도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건, 사실은 미칠 수가 없다는 소리인가.

과연 미쳐버리겠다고 성을 내는 이들 중 정말로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할까.


나는 그저 고문을 받았다.


이세계에 오기 전, 신과 함께라는 영화에서 지옥에서 고통 받는 망자를 보았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태지옥이었다. 나태지옥은 거대한 돌기둥이 굴러다니는 원판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망자들은 이 구르는 돌기둥에 깔려죽지 않기 위해 뛰어다녀야만 한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수백 년을 뛸 수 있을까.

뛸 마음이 들까.


칼에 찔리는 고통은 분명 아프다. 그렇지만 그것이 수백, 수천 번이 되면··· 아픈데도 아프지 않게 된다.

이 빌어먹을 포션과 마법은 통각에 대한 내성조차 되돌리고 있다. 그렇기에 육체적인 고통은 그대로지만, 마치 그것을 받아들이는 정신적인 부분이 어딘가 마모된 것처럼. 둔해졌다.

나는 더 이상 눈에 힘을 주지 않게 되었다. 칼이 내장을 헤집을 때마다 조건반사처럼 눈꺼풀이 떨렸지만, 적어도 내가 힘을 주는 일은 없어졌다.

이것은 좋은 일일까.


나는 그저 고문을 받았다.


칼질이 멈추었다. 처음에는 수술이 끝난 줄 알았다. 기쁨의 눈물을 흘릴 법도 했건만, 이미 쏟아낼 큼 쏟아내 말라비틀어진 안구에선 한 방울의 눈물도 배지 않았다.

잠깐 시간이 지나 수술복을 벗은 리자드맨 의사들이 말했다.

워낙 세심한 수술이라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대충 이렇게 열흘 정도면 끝날 거라고.


나가기 전에 리자드맨 의사들은 내 수갑을 풀어주었다.

나는 일어나서 발광을 하던, 리자드맨 의사들을 죽이건, 이곳에서 도망치든 해야 했지만··· 우습게도 내 몸은 여전히 수갑에 묶여있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본인 앞에서 이건 심장이고, 간이고, 폐고 하면서 책상 위에 내 장기를 늘여놓는 건 너무하지 않냐고.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어째서인지 내 얼굴은 미미한 반응조차 보일 수 없었다.


이건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고.


·········


이제 괜찮은 건가.


“············.”


고통을 외면해보고자 떠들어댄 잡담의 이면에서는,


젠장. 씨발. 개새끼들아. 아프다고. 아파! 아파 제발! 그만! 씨발! 그만! 아으악!! 개새끼들아! 이 씨발놈들아! 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씨발! 씨발! 씨발! 씨이이바아아아알! 살려줘! 제발! 죽고 싶지 않아! 아퍼! 아퍼! 싫어! 아파! 개자식들! 빌어먹을 놈들! 씨발 놈들! 개새끼들! 좆같은 새끼들! 여기서 풀려나기만 하면 내장을 씹어먹을 거다! 이 개자식들아아아아!! 씨발! 젠장! 젠장!! 그러니까! 제발! 제발! 제발! 그만! 그마···


나는··· 그저 고문을 받았다.




##.


수술은 맡은 리자드맨 의사들은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샤를로트 백작과 거래해서 마취제를 얻어라. 비록 그녀가 취급하는 건 중독성 높은 환각제와 마약류지만, 지독한 만큼 효과도 좋다. 그게 있다면 수술을 사흘은 앞당길 수 있을 거다.”

“대체 무엇을 하면서 살았기에 이렇게도 신체가 나약한가? 수술이 길어지는 것도, 네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조심하느라 그런 거다. 수술이 끝나면 운동이라도 좀 하는 걸 권장한다.”

“몸이 계속해서 반응하는 건 좋은 일이다. 칼을 대도 미동조차 없는 놈은 수술이 끝나도 사흘을 못가 죽었다. 살고 싶다면 계속해서 고통을 뇌에 새기고 기억하도록 노력해라.”


샤를로트는 이따금 찾아왔다. 진행과정을 확인하러 왔다는 이유였다.


배가 갈라진 채 장기를 헤집는 광경 앞에서도, 그녀는 눈썹하나 까닥 않은 채 변함없는 미소로 ‘힘내세요! 유하님!’이라며 파이팅 자세를 취하곤 했다.

저건 보면 볼수록 죽여 버리고 싶다기 보단 대체 어떤 뇌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어서 점점 더 무서워진다.


리자드맨 의사들은 말했다.


“수갑이라도 풀어달라고?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된다. 아무리 말해봤자 소용없다. 우리라고 인간을 고문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미친놈이 아니다. 네놈들이 그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수갑을 풀어줬던 동료가 다섯이나 죽었다. 이젠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

“미안하다. 네놈을 죽이는 것도 해줄 수 없다. 샤를로트 백작은 아랫것들에게 한없이 상냥하시지만,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시는 분이기시도 하다. 고의로 용사를 죽인 게 들통 나면 우리 모두의 목이 날아간다.”

“···폐인이 되기 싫다면 끊임없이 생각해라. 증오라도 좋고, 우리를 향한 복수심이라도 좋다. 무엇이든 붙잡고 본다는 생각으로, 무엇이든 생각해라.”

“폐인이 되면 어찌 되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느끼지 못하는 백치이되, 노예각인이 있기에··· 마치 살아있는 인형이 된다. 문자 그대로의 노예가 되는 거다.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특히나 우리 손으로 만들었다고 하자면, 정말 좋은 기분은 아니다.”


샤를로트는 수술을 보면서 도시락을 먹었다.

주로 샌드위치였다.

이따금 고기요리에 와인을 곁들이기도 했다.


마족이라면 인간고기만 먹는 괴물인 줄 알았는데 저런 것도 먹는구나.

어쨌거나 피비린내 나는 곳에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단언컨대, 저건 비위가 좋다는 정도가 아니라 감각기관의 어딘가가 성대하게 망가진 게 분명하다.


리자드맨 의사들은 말했다.


“수술이 거의 끝나간다. 조금만 버텨라. 수술이 끝난다고 행복해지리란 보장은 없지만, 이전에 어떤 용사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네놈들의 세계엔 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다지?”

“안타깝게도 노예각인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만큼은 단념하는 게 좋을 거다. 다른 평범한 노예각인은 몰라도 이건 말이 노예각인이지, 신역마법에 근접한 대마법이다. 그 어떤 위대한 마법사도 풀 수 없을 거다. 설령 드래곤 로드가 와도 애를 먹을 거다.”

“으음, 명령에 거스르면 얼마나 고통스럽냐고? 그건···”


“세상에 자살만큼 행복한 것도 없다고, 그리고 그 자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거예요.”


샤를로트가 찾아왔다.


그녀가 있을 적에 리자드맨 의사들은, 그 수다스러움이 어디 갔나 싶을 만큼 극도로 말을 아꼈다.

내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따금 그녀의 질문에 답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이전에 몇몇이 용사와 대화를 하다 수갑을 풀어줘서 살해당한 사례가 있다고 했던가··· 암묵적으로 용사와 대화하지 말라는 규율이라도 있는 듯싶었다.


샤를로트는 볼멘소리로 리자드맨 의사들에게 말했다.


“수술이 끝났으면 제깍제깍 보고하라니까요? 용사를 쉬게 해주고 싶다는 건 알겠지만, 그 마음은 인간이 아닌 우리 마족들을 보듬는데 쓰도록 해요. 그리고 수술하면서 용사님들이랑 대체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매번 수술 끝날 때마다 용사님들이 저에 대해 오해하시던데···”


리자드맨 의사들은 황송하다는 듯 허리를 굽히며 물러났다.

샤를로트는 그들이 아예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곤 퍽 기분 좋은 듯 흠흠, 콧소리를 내며 내게 다가왔다.


“몸은 좀 어때요?”

“·········.”

“생각보다 안 아프지 않아요?”

“···너를 지옥불에 구워먹으면 ‘생각보다’ 맛있지 않을까 싶다. 빌어먹을 년.”


하루 중 18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다.

말이 수술이지 사실 고문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마취 없이 살을 뭉텅뭉텅 베어내고, 장기에 칼을 박아댔다.

심지어 정신을 잃으면 그대로 죽을 수 있다며 기절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여길 만한 게 있다면, 의사들은 생각보다 인격적인 놈들이었다는 거다.

물론 그 속은 정반대일수도 있겠다만, 적어도 겉으로나마 내게 친절하게 대해준 건 놈들이 처음이었다.

마족들은 죄다 인간고기에 미친 또라이들인 줄만 알았는데, 그나마 오해를 덜었다.

빌어먹을 년, 그들에게 감사하도록.


“다행이네요. 백치가 되면 대화하는 재미가 없거든요. 흠흠, 기왕이면 일어나서 한번 때려볼래요?”


샤를로트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덤비라고 손짓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비록 이게 농락하는 거라도 저 년의 면상 한 대는 후려치고 죽자,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백년쯤 지하실에 박혀있던 녹슨 기계가 움직이는 것처럼, 움직일 때마다 관절과 근육 하나하나가 오그라졌다.

몸의 비명은 다행히 소리로 나오지 않았다.


기껏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지만, 지탱하고 있던 팔이 꺾이면서 쿵 바닥으로 떨어졌다.

돌바닥이라 퍽 아플 법도 하건만 신경이 죽어 물젖은 손으로 어루만지는 듯한, 아주 희미한 감각만이 느껴졌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뒤, 어떻게든 일어서려했지만 몸은 벌레처럼 꿈틀거릴 뿐이었다.

샤를로트는 쿡쿡, 손가락으로 내 여기저기를 찔러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후우, 이래서야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잖아요. 수술이 길어져서 일정이 꼬이긴 했는데··· 어쩔 수 없네요. 날도 늦었고 하니 오늘은 쉬게 해드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샤를로트는 수술실을 나섰다. 쿵, 문이 닫히고 수술실은 적막과 싸늘함에 물든다.

동시에 항거할 수 없는 피로가 절망과 함께 몸에 스민다.


이윽고, 눈이 감긴다.


작가의말

당신은 이제 잠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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