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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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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래
작품등록일 :
2018.11.2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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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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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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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DUMMY

##.


돌고 돌아와서 나는 자신의 인생이 어디까지 변태와 혼란을 적절하게 뒤섞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 깊게 생각해보았다.

불현 듯, 이세계 환생이라고 환호성을 지르던 시절이 스쳤다. 그렇지만 그도 잠시, 아직도 잊을 수 없는 흉악한 몬스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향해 식욕을 드러내던 괴물들··· 한동안 꿈속에서 매일같이 만난 사이였다.

아아, 이젠 어지간한 공포영화의 리액션은 ‘호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으리라.


샤를로트는 정말 예뻤었다. 정말 개같은 년이었지만.


노예각인이 새겨질 땐, 생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자살을 고민했었다.

그때 처음으로 자살이 만능의 도피처가 아님을 절절히 깨달았다.

앞으로 그는 자살을 떠올리기 전에 어떻게 해야 살아갈 수 있을 지를 한 번 더 고민하리라.

아아, 좋은 깨달음이었다.


그나저나 샤를로트는 정말 예뻤었다. 빌어먹을 년이었지만.


인간군을 만났을 때는 정말 판타지 세계에 온 기분이 들었다.

나를 죽이려한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을 만큼 멋지고, 반갑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항복하고 나서 놈들이 지껄이던 말들을 들어보면, 걔네도 정상은 아니었다.

아아, 마족이고 인간이고 겉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걸 정말 심장 떨리게 배웠다.


그러고 보면 샤를로트는 정말 예뻤었다. 씨발년이었지만.


“훈련병··· 똑바로 대답안하낫!!”

“유, 유하! 훈련병!”


아아, 정말 거지같은 인생이구나···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을 담아 힘껏 소리치는 내 머릿속에 타이틀이 하나 떠올랐다.


《 이 세계를 향하여 필―승! 》




##.


Viva! Viva La Viva! 이 아름다운 인생에 축복을! 이 행복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인생에 축복을! ···은 씨발 니미러어어어어얼!

기껏 이세계에 왔건만 고생이란 고생은 다한 끝에 도착한 곳이 훈련소라니!

이게 이세계냐?! 이딴 게 무슨 이세계냐고오오!!


당연한 소리지만 처음부터 이 상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곧장 책임자를 운운하면서, 훈련병이 아니라고 필사적으로 호소했지만··· 여긴 중세였다.

이 시대의 신원조회는 확실하지 않았고, 애초에 훈련병으로 모인 이들의 과반이 신원미상의 부랑자들이었다.

아무리 사정을 설명해도, 포기하겠다고 해도 저쪽에서 무시로 일관할 따름이었다.

여기에 폭력이라는 조미료가 곁들여진 건 당연한 소리였고.


빌어먹을 중세, 혀를 차며 자리로 돌아오자 멀뚱히 보고 있던 다른 놈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순간 해코지라도 하는 건가 싶어서 쫄았는데, 가장 선두에 있던 아저씨가 파하핫 웃으면서 내 등짝을 후려쳤다. 그러면서 뭐하다 여기까지 굴려왔냐면서, 자기들 얘기를 시작했다.


“세금을 삥땅치다 영지에서 쫓겨나버렸지. 허허, 빌어먹을 영주새끼. 후장에다 작살을 꽂아 훈제구이로 만들어 오크에게 팔아먹어도 시원찮을 놈이라니까.”

“하도 모험을 말아먹었더니 길드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더군. 그래서 이름을 바꾸고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모험가증을 따려고 했는데, 접수비용도 없더라고. 큭큭.”

“딸이 배를 굶주리고 있는데 아비 된 자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멋있게 의적노릇 한 번 해봤다만, 곧바로 붙잡혀버렸지. 제길! 들키지만 않았다면 그건 분명 예술이었을 텐데!”


그런 얘기들을 듣고 있자니 어쩐지 여기가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고, 그 끝에 도망치다시피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몸이었다.

갑자기 집도, 가족도 없는 몸으로 소환되어 다짜고짜 숱한 죽을 위기를 넘겼다. 여길 나간다 해도 갈 곳은 없다.

차라리 이들과 부대끼면서 병사로서 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으리라, 나는 그리 단념하며 입을 열었다.


“저는 얼마 전에 말입니다···”




##.


이 세계는 영원한 전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아주 먼 옛날, 마족이 인간을 사냥감을 삼았을 적부터. 인간이 마족으로부터 몸을 지키려했을 때부터.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섭리가 존재했을 때부터.

인간과 마족은 전쟁을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모험가들은 의뢰를 받아 마족과 싸우고 있고, 마족이 번식기에 들어갔다던가 수가 늘었다 싶으면 각 영지에선 토벌령을 내린다.

그리고 드물게, 아주 드물게 발발하는 대전(大戰)이 있다.

마왕의 이름아래 마족들이 집결해 인류를 침공할 때, 혹은 마왕을 토벌하고자 인간왕국들이 연합해 원정군을 보낼 때.

마지막으로 있었던 대전은 약 30여 년 전이라고 했다.


아무튼 세상이 이런 꼬라지다 보니 모든 인간의 국가는 사실상 국민개병제를 채택한다. 하지만 대전이 발발하지 않은 이상에야 동원령을 내리지 않는다.

어차피 마물을 상대할 모험가나 용병 따윈 넘쳐나고, 작은 난동 정도는 지방영주의 관할에서 처리되니까.

그래서 평시에는 징병제로 군을 운용하고, 대전이 발발하면 그제야 동원령을 선포하는 거다.

다만 이것도 각 지방영주에 따라 다르다고··· 아무튼 무슨 소리가 하고 싶었냐면, 나는 빌어먹게도 제국 중앙군의 훈련병으로 입소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개 같은 사실, 이 세계에는 이미 지구에서 온 수많은 용사들이 오고 죽어나갔다.

국적도, 성별도, 인종도, 나이도 제각각의 사람들이 수없이 오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군대라는 단어에 사족을 못 쓰는 대한민국 출신의 용사도 있었다.

그들에게 이 세계의 어물쩍한 군대는 도저히 넘길 수 없는 그런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의 격렬한 조언을 받아들여 현재 거의 모든 국가는 헬조선식 병영문화와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는 것이 방금 내가 전해들은 말이었다.


‘그런데 자네가 그 대한민국 출신 용사라고?’ 라고 말하는 환청이 들리는 듯했지만, 나는 멍청이가 아니다.

용사란 단어는 싹 잊고 산 속에서 살다가 교육도 못 받고, 세상물정 모르는 불쌍한 고아로 위장했다.

기억상실도 후보군에 있었지만, 이래저래 복잡해질 예감이 들어서 그냥 고아의 길을 걷기로 했다.

후우, 앞길이 험난해 보이는군.




##.


내 예감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전방의 적진지를 향해··· 앞으로 갓!”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목소리 더 크게 안내나아앗!”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씻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알!!”

“이런 미친! 방금 욕한 새끼 누구얏!”


내가 이 나이에 유격이니 각개전투니 이딴 걸 하게 되다니! 젠장 할!

내가 군대를 안 가봐서 잘은 모른다만, 우리나라 군대의 훈련이라면 현대전에 맞춰서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그 현대전에 맞춰 하는 훈련을 왜 씨팔 이세계에서 하고 있는 거냐고!


이런 생각을 한 건 놀랍게도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쉬는 시간에 다른 훈련병들이 빈 수통의 입구를 핥는 동안, 우리 맹랑한 전우님 중 하나가 조교에게 용무가 있다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곤 자신의 유식함을 자랑하며 내가 궁시렁댔던 불만을 그대로 말했고··· 이에 대해 조교는 별로 화난 기색도 없이 기계적으로 답했다.


“용사들이 오는 세계에선 석궁보다 빠른 총과 대포라는 것이 난무한다고 하지. 너희가 직접 보진 못했겠지만, 총··· 그래 굉장히 위협적인 무기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마력을 감은 쇠뇌가 빗발치고, 집 한 채를 통째로 날려먹는 마법들이 난무한다. 그쪽이나 이쪽이나 크게 다를 거 없다는 거다. 또 우리가 용사들이 지구라는 곳에서 받던 훈련을 그대로 시키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도 필요하고, 유용한 것들만 추려서 시키는 거다.”


그리고 그 질문을 했던 훈련병은 열의를 평가받아 2시간의 추가유격훈련을 받았다.




##.


‘이 훈련은 왜하는 겁니까?’ 사건을 계기로 요주의 인물이 된 말콤이 말했다.


“이 콩나물에는 음모가 심어져있다고 하더군.”


훈련병 생활도 2주차에 접어드니 귀신같이 옆에 붙어있던 조교들이 조금씩 풀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사실 풀어준다기 보단 우리가 알아서 하는 것도 있고, 본인들이 귀찮아하는 게 이유겠지.

아무튼 우리는 이 느슨함을 틈타 식사시간에 작게나마 잡담을 나눌 여유가 생겼다. 걸리면 박살나겠지만.


“무슨 음모 말인가?”

“가만 보면 우리 식단에는 이 콩나물의 비중이 굉장하지. 보게, 오늘만 해도 콩나물 무침에, 콩나물 국. 어제는 콩나물 볶음밥이지 않았는가! 심지어 저녁은 무려 콩나물 찜이라고!”

“하다하다 코, 콩나물을 쪄서 먹는단 말인가? 이제는 콩나물만 보면 토악질이 나올듯허이!”


옆에서 다른 훈련병이 탁상을 탕, 내려치려다 머뭇거리면서 분노한 어투로 반응했다.

그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본 말콤은 전형적인 3류 악당 같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뭔가 음모의 느낌적인 느낌느낌이 느껴지지 않는가?”


저들이 떠들거나 말거나, 우물우물 밥을 먹고 있던 나는 심드렁하게 한 마디 했다.


“올해 콩나물 농사가 풍년이었나 보죠.”

“아니아니, 콩나물에 전염병이 돌아, 대륙에 있는 모든 콩나물을 여기로 보냈을 지도 모를 일이지!”


이때 가만히 듣고 있던 최고령자 크롬(39살 독신)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호통 쳤다.


“어휴, 빙신 같은 새끼덜. 그거야 값이 싸서 그런 거제. 음모니 뭐니 헛소리를 하고 그려? 퍼뜩 밥이나 쳐묵어!”


옆에서 깨작거리고 있던 빈은 크롬의 호통에 움찔거리더니 소심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 그래! 나도 어느 음유시인의 노래에서 콩나물로 연명하는 아이돌 소녀에 관한 얘기를 들은 적 있다고! 그건 콩나물이 아주 값이싼 식료품이기 때문이지!”

“예끼! 이 사람아! 그건 콩나물이 아니라 숙주나물이지!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부렁을 일삼는고오!”


이야기가 산으로 가자 말콤은 가볍게 숟가락으로 식판을 때리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자자, 아무튼 잘 들어보게. 사실 이 콩나물에는 성욕을 감퇴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말인데 자네들 요새··· 건강한가?”

“그, 그러고 보니 아침에 내 소중한 아들놈이 인사하는 꼴을 못 본 듯한데···”

“나, 나도! 훈련 때문에 힘들어서 의식하진 않았는데, 나도 그래!”


···얘네는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냄새나는 남자들끼리만 부대끼고 살아서 그런 거 아닐까?”

“···처음에 들어왔을 땐 여자 생각이 나서 미쳐버릴 거 같고 그랬었는데···”


이런 얘기가 오가자 무시하며 밥을 먹던 다른 소대원들도 숟가락질을 멈추며 말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만족스러운 호응을 이끌어낸 말콤은 평소처럼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대로 콩나물을 계속 먹다간··· ‘그게’ 될 수도 있다네.”

“···그게 뭔가?”

“고자 말이네! 고자! 여자가 가슴을 까고 덤벼들어도 서지 않는 그거 말일세!”

“세, 세상에나! 그런 질병이 있단 말인가?!”


내가 아무리 18살짜리 애새끼라고는 하지만, 콩나물 먹다가 고자 된다는 건 천하의 개소리인데.

다 큰 어른들이 이걸 순진하게 믿고 있다니. 아아, 이것이 중세란 말인가.

나는 이걸 지적해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경험상 말콤은 헛소리에 탁월한 재주가 있어 개소리도 참소리처럼 들리게 하는 능력이 있다.

선동가의 기질이 다분한 녀석이라고 볼 수 있지.

나중에 이 빌어먹을 중세에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면 꼭 정치활동을 해보도록!


“난 고자가 되긴 싫네! 성욕을 이리 잃을 순 없단 말이네!”

“하지만 잔반을 남기면 조교들이 가만히 있겠어? 그 빌어먹을 연대책임이라고 다 같이 어떤 벌을 받을 지···”

“또 이건 단순히 성욕의 문제가 아니라고. 반대로 생각해봐. 가뜩이나 이 힘든 상황에 밥을 안 먹으면, 훈련을 받다 뒈질 수도 있다고?”

“쿠후훗. 어리석군. 섹스를 못하는 고자로 평생을 살라고? 유감스럽지만 그건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어.”

“크으으윽! 생명이냐 소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정신이 혼미해져가는 가운데, 우리의 점점 목소리가 커지자 식당 밖에 있던 조교가 불쑥 들어와 호통쳤다.


“야! 거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조용히 못해!”


모든 소대가 최고의 단합력을 보여주는 건, 사실 이 순간이 아닐까.


작가의말

합죽이가 됩시다.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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