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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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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래
작품등록일 :
2018.11.23 19:20
최근연재일 :
2019.02.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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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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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DUMMY

##.


훈련병 생활은 길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축약하자면 나태한 민간인의 정신머리에 크고 아름다운 군인사상을 박아준다, 같은 느낌으로 굴리고 굴려질 뿐인 나날이었다.

개중에는 나가떨어지는 인원도 몇 있었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군대답게 교관들이 손수 이끌어 모두 수료할 수 있었다.


이병이 되자 인원을 강당에 모으더니 보직을 분류한다고 했다. 교관의 설명에 따르면 크게 보병, 궁병, 기병, 그리고 마력을 가진 사람까지 총 4가지로 분류한다고 하더라.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마력이 있는 사람을 걸러낸다. 그 뒤론 활 쏠 줄 알면 궁병으로, 말 탈줄 알면 기병으로 뺀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죄다 보병으로 때려 박는 거다.


“혹시 이 중에 마법적성을 지닌 자 있는가?”


교관의 말에 훈련병들이 수군거렸다. 그렇지만 교관은 굳이 조용히 시키지 않았다.

웅성거림이 3분쯤 이어졌을까, 소란이 잦아들고 병사들 중 몇이 손을 들었다.


“마법적성이라는 게 마력을 가졌다는 소리입니까? 아니면 가질 만한 재능이 있다는 소리입니까?”

“마력은 없지만 친척 중에 마법사가 한 분 계신데, 제게도 적성이 있는 겁니까?”

“갖고 있는 마력의 양은 상관없습니까?”


군기 들어간 우렁찬 목소리에 교관은 목석처럼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무심히 답했다.


“마법적성은 마력을 실질적으로 보유한 자만을 뜻한다. 마력의 양은 상관없다.”


훈련병으로 굴러먹는 동안 귀동냥으로 알게 된 것들이 몇 있다.

대부분의 이세계물에서 통용되는 사실이긴 한데, 마력이 있다는 건 정말 특별한 재능을 가졌단 소리다.

당연, 그들은 군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인재다.


일단 마력이 있으면 마법사로 육성할 수 있고, 검술만 받쳐준다면 오러를 뿜는 기사로도 키울 수 있다.

일반 병사보다 아득히 뛰어난 고급병종을 만들 수 있는 거다.

또 마력의 양이 적더라도 훈련을 통해 오러를 뿜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기사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잠깐의 오러를 뿜으면 두터운 몬스터 가죽안의 심장을 뚫을 수 있다던가···)


고로 여기서 손만 들면(매직 미사일을 쓸 만한 마력은 있으니까) 나도 고생 끝! 이리 오너라, 출세코스! ···는 개뿔, 요그샤론의 축복 때문에라도 나는 선뜻 나설 수 없었다.

잘못 걸리면 변태 같은 마법사들의 실험체가 될 판이라고! 나는 얌전히 차례를 기다렸다.

목표는 가장 무난한 보병. 왠지 보병이 되면 화살받이로 허망하게 죽을 것도 같지만, 새총도 쏴본 적 없으면서 궁병 지원했다가 교관들에게 얻어터지는 것보다 나았다. 기병은 논외고.


“말을 타본 사람은 있는가? 기병용 중장비를 착용하는 건 나중의 일이다. 그저 말에 익숙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말을 탔을 때 멀미하는 자는 제외한다.”

“활을 쏠 줄 아는 자 있는가? 활로 사냥을 해봤다던가, 석궁이라도 상관없다.”


마지막까지 남아 보병으로 선별된 인원은 칠십 명 정도였다.

선별을 통해 빠져나간 인원은 고작해야 넷이 전부였다.

하긴 말은 귀족들이나 타는 것이고 활을 제대로 쏠 줄 알았다면 사냥꾼으로 먹고 살았겠지.


당연 마법적성을 지닌 이는 한명도 없었다. 아까 질문은 그리 해놓고 정작 해당되는 인원은 아무도 없었던 거다.

그럼에도 교관은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이게 익숙하고, 도리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강당에서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자니, 잠시 뒤 교관이 외알 안경을 낀 학자를 대동한 채 나타났다.

곱추처럼 기형적으로 굽은 허리에 퍼석거리는 것이 눈에 보이는 회색곱슬머리. 일견 매드사이언티스트를 연상시키는 외견에, 보자마자 저건 엮여서 좋을 게 1도 없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학자분께서 제군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한다. 모두 엄숙히 경청하도록.”


교관은 그리 말한 뒤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곤 벽에 기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였고, 학자는 끌끌 웃음을 흘리며 앞으로 나섰다.


“흠, 크흠! 본인은 제국 과학기술연구부 산하 제 3연구소장인 톨룸이라고 한다. 먼저 국군에 지원해준 여러분에게 큰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본인을 만난 것이 여러분에게 있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더 없는 기회이자 영광임을 말해주고 싶다.

여러분이 될 보병이라는 병과는 전장에서 제일 많고, 제일 많이 죽어나가는 병종이다. 장점이라면 다른 병종에 비해 그리 훈련이 어렵지 않다는 거다. 진형을 유지할 정신머리에 창을 쥘 악력만 있어도 대충 싸울 수 있다. 나머지는 악과 깡으로 이겨낼 수 있지. 하지만 단점은 빌어먹을 만큼 죽어나간다는 점이다.

전장에서 병사가 죽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나 신병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하지만 고참병이 죽는 건 어떠한가. 숱한 경험을 쌓아 적을 주살하는데 거리낌 없고, 어쭙잖게 악몽이 시달리거나 식사 도중 속을 게워내지 않는다. 같은 양의 급료와 밥을 먹으면서 병신 같은 신병나부랭이들의 몇 배나 되는 일을 해낼 수 있지. 하지만 그런 고참병들도 다른 신병과 마찬가지로 화살비에 고슴도치가 되어 죽고, 기병의 말발굽에 치여 죽는다. 허망하게. 실로 허망하게!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백병전에서 능히 서넛은 죽일 숙련병이 그리도 쉽게 죽어버리는 거다! 베테랑이 되면 설령 오러를 쓸 줄 모른다 해도 준기사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저보다 큰 오크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단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실력을 지닌 이들도 전쟁 속에서 허무하게 죽어버린다. 실로 통탄할 일이지 않은가. 그래서 본인은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보병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을까, 하고 말이지.”


예컨대 시험부대를 말하려는 것 같았다.

아마 새로이 개발된 방어구나 효율적인 진영, 전술 따위가 기다리고 있겠지.

아, 과학기술연구부라 했으니 전자가 맞으려나.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여러분 자체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신체가 약하다면 강화하면 될 뿐인 것을! 화살에 맞아도 끄덕 없고, 칼창에 꿰뚫려도 죽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허망히 죽을 일 없이 경험을 쌓아갈 것이고, 능히 기사 못지않은 베테랑까지 성장하게 될 것이다! 아아, 하물며 뛰어난 실력에 튼튼한 신체가 받쳐준다면··· 그 능력은 감히 상상조차 힘들다. 이제껏 있었던 전쟁의 양상을 뒤바꿀 수도 있단 말이다! 아니한가!”


좌중은 침묵에 휩싸였다. 놀랐다기보다는 무슨 반응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놀라울 만치 새하얀 정적에 학자는 머쓱했는지 말을 덧붙였다.


“큿, 흠! 물론 여러분에게 걱정이 있을 줄 안다. 호기심도 있겠지만, 두려움도 있겠지.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여러분은 어엿한 제국의 신민! 제국은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자원하는 자에겐 봉급과는 별도로 즉시 금화 2닢을 지급한다. 또 단순한 병사가 아닌 사관급 예우를 받으며 생활하게 될 것이며, 머지않아 준기사가 될 것이다.”


갑작스레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그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본능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이 강화고 튼튼한 신체지, 이건 명백한 인체실험 아닌가!

왜 부랑자들을 상대로 모병을 했는지, 왜 포기도 못하게 그렇게 악을 썼는지 감이 왔다.


이쯤 되면 눈치 챈 놈들이 한둘이 아니리라. 아마 다들 패닉에 빠져있겠지. 그렇다면 혼란을 선동하든 뭘 하든, 빈틈을 만들어서···!


“금화 2닢이면··· 망할 놈의 여편네도 한동안 조용하겠지?”

“금화 2닢이면··· 우리 아들의 아카데미 등록금···”

“금화 2닢이면··· 술집의 아이리를 만날 수 있어! 기다려, 아이리! 오빠가 돈 들고 갈 테니까!”


아··· 이 녀석들은 글렀다. 교육이랄 만한 것을 받아본 적도 없이 길바닥 전전하던 부랑자 출신이라 그런지 눈치마저 궤멸적으로 없었다!

그 와중에 마지막은 뭔데! 부랑자로 살다 여기까지 와놓고 술집여자 만날 생각이나 하는 거냐!


“학자님, 혹시 우리를 상대로 인체실험을 하겠다는 것 아니십니까!”

“인체실험이라니··· 무서운 소리 말게. 이 수술은 이미 숱한 실험 끝에 확립된 수술일세. 걱정 말게나.”

“하지만 밖에 있을 때 그런 병사들에 관한 소문은 한 번도···!”

“여러분은 제국의 비밀병기일세. 지금도 제국 곳곳에서 여러분과 같은 이들이 훌륭한 병사로 성장하고 있다네. 하지만 그 모든 정보는 통제되고 있지. 오히려 여러분들이 그런 소문을 들었더라면 더 큰 문제라네.”

“그, 그러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겁니까! 평인인데도 주, 준기사가 될 수 있는 겁니까!”

“물론이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터다. 어디까지나 수술인 만큼 아픔도 있을 거고, 수술이 끝난 뒤에도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준기사가 될 수 있지. 하지만 다시금 되새기도록! 자원한다면 즉시 금화 2닢을 지급할 것이며, 그대들도 머지않아 준기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저런 헛소리에 넘어갈 만큼 멍청하게 살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속지 않는다고 해서 이 상황을 벗어날 만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선생마저 우습게보던 일진들 사이에서 눈칫밥 하나로 사지 멀쩡하게 살아온 나이기에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과연, 그래도 멀쩡한 정신머리를 갖춘 인물들이 반발했다.


“저는 거부하겠습니다! 그냥 일반병사로 살게 해주십시오!”

“저, 저도 싫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군인이 되고 싶습니다···”


혹시나 잠자코 있던 교관이 돌변하면서 저들을 죽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상황까지 염두 했다. 그런데 저쪽에선 생각보다 온건하게 반응했다.

이번에는 학자 대신 교관이 나섰는데, 별달리 화난 기색도 없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국은 제군들에게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다. 전시가 아니라면 그대들은 언제든지 제국의 병사임을 포기할 수 있다. 다만 급작스러운 퇴직이라면 지급될 봉급의 절반밖에 줄 수 없다. 기간도 짧거니와 없다시피한 훈련병의 봉급에서 절반이라면··· 동화 2닢 정도 되겠군. 그래도 상관없다면 그만둬도 좋다.”


동화 100개가 모여야 은화 1개고, 은화 100개가 모여서 금화 1개가 된다. 동화 1개가 대충 100원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고 들었으니··· 어라? 잠깐만. 혹시 지금 2000원이라는 거야?

아무리 숙식제공이라 해도 봉급 2000원은 너무한 거 아니냐?! 우리나라나 여기나 군인한테는 최저시급을 받을 권리조차 없는 거냐고!


금화 2개라는 황홀한 상상에서 은화 2닢이라는 현실적인 액수가 떨어지자 훈련병들은 망설였다.

결국 여기서 셋이 실리를 택하고, 최종적으로는 일곱이 결심을 굳혔다.

그 중에는 마지막에 걸치듯 끼어든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찜찜하긴 했지만, 잠자코 인체실험을 당하는 것보단 살 가능성이 있어보였으니까.




##.


속았다, 라는 생각이 떠오른 것은 그로부터 불과 5분이 지난 뒤였다.

교관의 인솔에 따라 우리는 처음보는 방으로 이동했고, 갑자기 사방에서 매캐한 연기가 쏟아졌다.

경계를 놓지 않고 있던 나는 잽싸게 출구 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교관이 검집으로 내 뒷덜미를 내려찍었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유유히 방을 빠져나갔다.


“쯧. 자발적인 협조만 해주면 니들도 욕 볼일 없고, 나도 불필요한 수고를 덜었다고 상여금 받고 얼마나 좋아? 하여튼 이래서 평민들은···”


젠장, 그 짧은 단어를 입에 올릴 겨를조차 없이 몸이 바닥을 향해 기울었다.


작가의말

인생은 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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