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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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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래
작품등록일 :
2018.11.23 19:20
최근연재일 :
2019.02.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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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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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DUMMY

##.


―끕! 끄윽! 끄아아아악!!

―젠장! 젠장! 고블린! 빌어먹을 고블리이이이인!!


다시 한 번 비명이 들려왔다. 유약한 심성의 모험가들은 히익, 몸을 움츠렸다.

우리 파티원들은 겁먹진 않았지만, 표정은 싸늘하게 식은 지 오래였다.


현재 나눠지고 나눠진 끝에 우리는 고작 30명 안팎의 인원밖에 남질 않았다. 이마저도 이전 갈래길에서 무리를 나누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 인원으로도 우리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각 파티의 리더들은 모여 후퇴하는 걸로 중론을 모았다.


의뢰를 받고도 물러선다면 이후 모험가 길드에서 큰 페널티가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비명은 끝없이 동굴 안을 메아리치고 있었기에.


“일단 뒤로 물러난다! 전위가 앞뒤를 지키고, 후위는 모두 중앙에 뭉쳐!”

“마법사들은 다시 한 번 라이트를 사용해! 마력을 쥐어짜서라도 빛을 밝혀! 빠르게 탈출하는 거야!”


그때였다.


케륵케륵, 귀를 메우는 끔찍한 울음소리가 근방을 가득 메웠다. 어떻게 대처를 할 것도 없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전방이고 후방이고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고블린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뜻 육안으로 확인해도 족히 백은 넘길 법한 수였다.


모험가들이 긴장에 찬 침음을 흘릴 때, 정면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동굴의 천장에 닿을 듯한 2m를 넘는 신장, 감히 일개 고블린이라 여길 수 없는 위압감에 둘러 쌓인 놈이었다.

모험가 중 하나가 분노에 찬 음성을 내뱉었다.


“고블린··· 챔피언···!”

“아냐, 저건 챔피언 같은 게 아냐. 로드··· 고블린 로드야!”

“로드급 고블린이라니,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가!”

“나도 몰라! 그냥 책에서 읽은 거라고! 일단 저건 홉이나 챔피언이랑은 비교도 안 되게 크잖아!”


고블린 로드라 불린 놈은 30명에 달하는 모험가들을 앞두고 전혀 위축되는 기색 없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좋은 냄새가 난다해서 와봤는데··· 끄핫! 직접 나온 보람이 있어. 흐음! 흠! 마족··· 그것도 고귀한 혈통의 냄새야. 옅지만, 깊어!”


놀랍게도 놈의 입에서는 인간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모험가들의 일부가 경악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는 동안 고블린 로드는 제 혼자 하고 싶은 말을 이어나갔다.


“유희중이라면 안타깝지만 여기까지다. 여기에 들어온 이상, 그 인간들을 살려 보낼 순 없거든. 그만 나와다오.”


모험가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저건 마치 자기들 중에 마족이 있다는 소리 같잖은가.

이들은 여러 파티로 나눠져 있지만, 각 파티는 저마다 수개월의 여정을 함께한 몸이었다.

쉬이 서로를 의심할 리가 없었다.


모험가들의 반응이 없자, 고블린 로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턱을 쓸었다.


“음. 끝까지 유희를 즐기겠다는 건가, 아니면··· 인간의 편에 선다는 건가?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죽음은 즐겁게 그대를 기다린다.”


케륵케륵, 고블린들이 즐겁게 울었다.




##.


이쪽엔 붉은색 목패의 모험가가 있었다.

그는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자신의 가슴까지 오는 거대한 대검으로 고블린들을 양단하며 로드급을 향해 질주했다.

거기에 기다렸다는 듯 궁수와 마법사들이 일제히 엄호사격을 가했다.

우두머리가 쓰러지면 고블린들이 지리멸렬할 거란 계산에서였으리라. 과연 붉은색 목패가 이끄는 파티다운 노련미가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우두머리만 죽이면 나머진 정말 고블린을 학살하는 것뿐이야!”

“···적에게 불의 뜨거움을 보여주소서, 파이어볼트!”

“으랴아아아아압! 죽어라! 고블린 로드!!”


정말 감탄스런 발상이고 행동력이었다.


생각만큼 인간은 현명하지도, 냉정하지도 않다. 보면 화재가 발생했을 때, 다 큰 어른이 당황한 나머지 문을 제대로 못 여는 일도 종종 있잖은가.

따지고 보면 단지 질문을 주고받을 뿐인 면접에서도 사람들은 당황하고, 머리가 하얗게 빈다 해서 그리도 연습을 하지 않는가.

그런 사례를 따져보았을 때, 적들에게 포위당한 상태에서, 심지어 자신들의 몇 배가 수를 앞두고도 당황하지 않은 건··· 정말 칭찬할 만한 일이었다.


“받아라! 십자―베기!”


그렇지만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상냥하지 않아서,


칭찬받는 정도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캬―핫! 큽! 크흡! 크하하하하! 이 정도인가, 고작 이 정도인가!”


붉은색 목패의 모험가는 로드에게 붙잡혀 목이 으스러졌다. 더 볼 것도 없는 절명이었다.

고블린 로드는 이어 모험가의 시체를 반으로 찢으며 크게 포효했다.


“크캬캬캿! 근처에 도시가 있다고 해서 참고, 참고, 또 참으며 때를 기다렸다. 도시에는 수준급의 모험가들이 있고, 영주의 병사와 기사들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고작··· 고작 이 정도였단 말인가!”

“케륵! 케―륵! 케르르륵!”

“케―르르륵!”

“크하하핫! 여기 있는 모험가들을 모두 죽이면 도시의 모험가들은 얼마 남지 않았을 터! 이참에 도시를 통째로 불태워야겠구나! 크하하핫! 좋아! 좋아! 좋구나!”


고블린로드의 외침에 다른 고블린들이 저마다 괴성을 지르며 호응한다.

고블린 로드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상체만 남은 모험가의 사체를 뒤편으로 던지며 웃었다.


“아아··· 죽음은 즐겁게, 그대를 기다린다.”




##.


모험가들은 분전했다.

정말 필사적인 싸움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이었다.


갓 노란딱지를 뗀 우리 파티만 해도 고블린에게 찔려 뒤지나, 창관에서 매독 걸려 뒤지나 똑같다며 껄껄 웃는 놈들이었다.

강제로 징집되어 싸우는 병사나, 무력한 시민병과는 달랐다.

죽음이 익숙하기에 절망하면서도, 두려워하면서도, 끝끝내 싸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뜨겁게 남은 생명을 태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길 수 없었다.


“이 지긋지긋한 모험가 인생 언제 끝나나했는데, 니미럴 하필이면 고블린한테 뒈지냐.”

“그러게다. 너 창녀 한 무더기 모아서 섹스하다가 매독 걸려 뒤지는 게 소원이라고 하지 않았냐.”

“정신 차려! 메리! 메리! 씨발! 씨발! 씨발!”


이제 남은 수는 고작 일곱 남짓했다. 그마저도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놈은 셋 남짓할까.

우리 파티에선 전위였던 제이슨과 바르겐이 죽었다.

메리는 옆구리에서 피와 내장조각을 쏟으며 쓰러졌다.

한쪽 팔을 잃은 람은 그 곁에서 활대로 고블린들을 때리며 저항하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고블린로드가 손을 들어 고블린들을 물렸다.

혹시 항복의 권유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내게 고블린로드가 말했다.


“동포여! 이제 유희로서 충분하겠지. 그대의 유희를 망치게 된 것은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허나 이쪽도 그대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부하들을 희생시켰다. 그대에 대한 예우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 그만 놈들을 죽이고 끝내자!”


주변 모험가들의 시선이 기묘하게 바뀌었다.

처음에는 헛소리라고만 치부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 이르러서까지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은, 수상하다는 정도로 끝날 게 아니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짙은 침묵이 그런 의심과 불안을 가중시켰다.

결국 나는 한 걸음 나섰다.

단지 한 걸음 나섰을 뿐이건만, 람의 동공이 황망히 커진다.


“너 설마 정말로 배ㅅ···!”

“매직 미사일.”


『 화염 : 화염구 』


람의 말을 끊으며 불덩이가 고블린로드를 향해 날아갔다.

빠르지 않은 속도였지만 좁은 동굴이었기에 고블린로드는 피할 도리 없이 온몸으로 맞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있던 고블린들은 어쩌다 튄 불똥에 기겁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렇지만 정작 직격으로 맞은 고블린로드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그는 불쾌하다는 듯 크륵, 울며 말했다.


“뭐지? 정말로 인간의 편에 서기라도 한 것인가?”

“배신가가··· 아냐? 아니, 그보다도 유하가··· 어떻게 마법··· 을?”

“매직 미사일.”


『 냉기 : 얼음화살 』


이번 마법은 놈을 향하는 일 없이, 내 오른발에 떨어졌다.

뒤편에 있던 모험가들이 당황스런 비명을 흘렸다. 그리고 고블린로드는 광소했다.


“크하하하하! 어리석은 녀석! 제 마법도 제대로 조종하지 못하는가! 반푼이 같으니! 과연 그런 이유로 마계에서 쫓겨난 것이었나!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인간의 편에 서다니! 마인으로 수치임을 알라!”

“매직 미사일.”


『 바람 : 바람칼날 』


이번 마법은 주변으로 크게 반월을 그리며 날아가, 후미에 있던 모험가들의 아슬아슬한 데까지 뻗아나갔다.

다행이 닿진 않았지만, 적잖이 놀란 듯 람이 힘겹게 욕지거리를 날렸다.


“젠장! 유하! 쓸 거면 제대로 노리고 쏘란 말이야!”

“멍청아···! 지 발에 얼음화살 날렸잖아···! 자기도 컨트롤을··· 못하는 거겠지···”

“씨발··· 메리 말하지 마···! 진짜 죽으면 엊그제 바르겐이랑 SM플레이한 거 길드에 다 소문낼 거니까!”

“바보··· 지도 끼고 싶으면··· 진즉 말로 하지···”

“말하지··· 말라 ···고! 멍청아!”


니들은 이 상황에서도 그딴 소리가 튀어나오는 거냐.

나는 어디 나사 하나 빠진 게 분명한 이 정신병자들에게 감탄하며 끝없이 매직미사일을 읊었다.


『 보호 : 프로텍션 』

『 속박 : 바인드 』

『 광명 : 라이트 』


“역시 모험가들은 멍청하고, 멍청해서 재밌구나! 크하하하핫! 좋다!”


쏟아지는 마법에도 불구하고 그 절반은 공격에 의미가 없는 것이라, 고블린로드는 끄덕없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빌어먹게도 오늘의 요그샤론님은 시원찮았다. 아니, 원래 시원찮긴 했다만.


“안타깝구나. 동포여. 그대가 끝까지 그리 나온다면··· 죽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마침내 죽음을 선고한 고블린로드가 들고있던 클럽으로 마법을 쳐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붉은색 목패를 죽인 뒤 줄곧 가만히 있던 녀석이, 드디어 움직인 것이었다.


“이 손으로 마인을 죽이는 날이 올 줄이야! 즐겁게! 즐겁게! 죽음을 맞이하라!”


내 오른발은 아직도 얼음화살에 묶인 채였다. 젠장, 꼼짝도 할 수가 없잖아.

결국 할 수 있는 거라곤 죽으나 사나 매직미사일을 읊는 것뿐이었다.

녀석의 클럽이 내 복부를 관통할 때까지··· 요그샤론님은 침묵했다.


휘두르는 뭉툭한 둔기에 살과 뼈가 뜯겨나가려면 대체 얼마나 강한 근력이 뒤따라야하는 걸까.

한 번의 휘두름에 복부가 찢겨나갔다.

철철 흘러내리는 내장을 주워 담을 수조차 없이, 내 몸은 붕 뜬 채 동굴의 벽에 부딪쳤다.


격통에 까무러칠 듯 시야가 뒤집히고 내장의 깊은 곳부터 고통과 공포가 역류한다. 그리고 남아있는 생명을 쥐어짜듯··· 마력이 요동쳤다.


···학자들이 내 몸에 인체실험을 할 때,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을 새겼다.

위험에 반응해 저절로 방어마법을 펼치게끔 말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요그샤론의 축복에 걸려 전혀 다른 마법이 펼쳐졌었다.

모험가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늑대한테 물렸다가 『 비행 : 플레이 』 마법으로 두 시간동안 공중에 떠있던 적도 있었다. 늑대는 나를 문채로 같이 떠올랐다가 떨어져 죽었지.


그런 이유로 나는 전위였지만, 무기는 단검을 고수했고 대신 거대한 방패로 몸을 지켰다.

요그샤론의 축복을 발동시키지 않기 위해서. 나조차도 컨트롤할 수 없는 마법으로 주변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지난 석 달 간 지켜왔던 내 비밀은, 가장 끔찍한 형태로 파헤쳐졌다.


『 죽음 : 사자(死者)의 군대』


작가의말

어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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