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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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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래
작품등록일 :
2018.11.2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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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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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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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DUMMY

##.


나는 여전히 바닥에 드러누운 채였다.

폐 같은 게 찢겨진 걸까, 한동안 호흡을 못해서 머릿속이 창백히 질려있었다.

그렇지만 가공할만한 회복력은 찬찬히, 회생불가능의 치명상조차 회복시키고 있었다.

마치 꽃이 개화하는 과정을 배속재생으로 보는 것처럼 상처가 아문다.

그건 정말, 내 몸이지만 역겹고,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경황이 없어서 포션을 못 줬다. 메리한테 써라.”

“병신아. 니가 써.”


람은 흘러나온 메리의 내장을 집어넣으며 그리 말했다.

등신 같은 놈, 마침 나는 메리의 근처에 누워있었기에 팔로 땅을 기었다.

그리고 죽음의 냄새가 배기 시작한 메리의 상처에 포션을 들이부었다.

진짜 뒤질 때 쓰려고 이주일치 수입을 꼴아 박았던 중급 포션이다.

빌어먹을. 부탁하는데, 진짜 뒤지지 말라고.


“야, 너는 어쩌려고···!”


젠장, 사람 몸이 여기까지 엉망이 되면 얼굴 근육을 움직이는 것도 일이구만.

람은 기겁했지만 나는 애써 미소를 내비치며 말했다.


“보다시피 난 언데드를 소환하는 마족 놈이거든. 봐, 메리보다 내장 더 쏟았는데도 비슷하게 회복하잖아.”

“자랑이다. 괴물새끼.”


메리의 상처가 아문 뒤 맥박을 확인한 람은 그제야 횃불로 지졌던 왼팔의 절단면에 붕대를 감앗다.

그걸 지금까지 참고 있었냐, 얘도 어지간한 독종이었다.


“나 마족이라는 거, 별로 놀라지 않네.”

“진즉부터 알고 있었어. 멍청아. 머리에 달린 뿔, 잘 좀 숨겨라. 같이 지내다보면 다 보인다고.”


사실 나는 인간이지만 인체실험을 당해서 마족의 뿔을 이식당했다··· 같은 말은 누구라도 쉬이 믿어줄리 없었다.

그래서 나는 뿔의 존재를 숨겨왔고, 작금에 이르러서도 의미 없는 내 사정을 털어놓지 않았다.

마족인 것을 알면서도 내색치 않은 건 고마웠지만, 딱 그정도의 오해가 내겐 좋았다.


“아인종 중에서도 그런 형태의 뿔을 가진 종족은 없어. 오로지 마족만이, 그 중에서도 마인으로 분류되는 녀석들만 그런 뿔을 가지지. 인큐버스, 서큐버스 같은 거 말야.”


인간과 마족은 불구대천의 원수다.

이세계에 온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나지만, 그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시초조차 알 수 없는 유구한 세월에 걸쳐 인류와 마족은 반목해왔다.

고작 석달 정도 같이 지낸 우정 정도로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여기 있는 것이다.


“그래도 고마웠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어.”


불쑥, 살아남은 다른 모험가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봤던 것이 나를 포함해 다섯이었는데, 전투 속에서 다른 한명은 죽은 걸까.

여기서 모르는 얼굴은 그가 유일했다.


“너희들은 먼저 동굴 밖으로 나가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어. 우두머리도 죽었고, 다른 고블린들도 전멸한 거 같으니까 내가 납치된 사람들을 찾아볼게. 그래도 난 아직 움직일만 하니··· 까··· 아···?”


이런 상황에서도 타인을 걱정하는 자상한 모험가였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호의를 내비치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고블린로드를 죽였기에, 알 수 없는 강함을 갖고 있기에, 저렇게 행동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안전이 확인되면 망설임 없이 내 등에 칼을 꽂아 넣으리라는 것도.

하지만 그걸 나무랄 순 없었다.

마족과 인간은 본래 그런 관계니까.


그런데 왜일까, 그의 배에서 피와 살점으로 더럽혀진 단검이 튀어나왔다.


“이··· 씨··· 빌어··· 먹··· 개자··· 식···!”


이름 모를 모험가는 반격을 가하려했지만 뒤에 있던 인물은 틈을 주지 않으며 걷어찼다.

모험가는 그대로 엎어진 채 쎄엑쎄엑,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다 죽었다.


람이 말했다.


“···가. 마족이라는 게 들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거야. 그러니까··· 아예 다른 곳으로 가.”

“···싫다. 니가 가라, 하와이.”

“이 머저리 같은 놈아! 이곳에 있는 고블린이랑 모험가들이 좀비화 됐어. 흑마법은 모든 왕국과 제국에서 금기로 지정한 마법이라고! 아마 이번 의뢰에 참여한 모험가들에게 철저한 검문이 이뤄지겠지. 이대로 도시로 가봤자 마족이라는 게 들통나서 죽을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너보고 가라는 거 아니냐··· 너야말로 바보냐.”


그때였다. 동굴의 어딘가에서 어슴푸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람은 무언가를 따지려다가 조용히 다가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기요··· 흑··· 누구··· 없어요?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혹 모험가들이 구하러 온 걸까. 잠시 뒤, 자신들을 감시하던 고블린들도 사라졌다.

금세 비명과 병장기의 울음이 길게 일었다. 그러다 문득 소란이 멎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고블린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래서 움직이기로 한 생존자이리라.


나는 화색을 띠는 람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어차피 이 몸으론 당분간 못 움직여, 너도 팔병신이잖아. 메리를 부축해서 가. 생존자들한테 거들어달라고 하면 그럭저럭 도시까진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도시가 먼 것도 아니고, 이 근방의 고블린은 오는 길에 씨를 말렸으니까 위험할 일도 없겠지.”


람의 표정에는 망설임이 맺혀있어, 나는 쐐기를 박듯 덧붙였다.


“나는 네 말대로 적당히 회복하면 사라질 거야.”

“필요할 때 가져가.”

“목숨 값이다.”


멈칫하는 람의 눈가에 이채가 어렸다.


“그건 제이슨과 바르겐의 목숨 값이다. 걔들은 죽었지만, 나는 살아남았잖아. 나는 살아남았으니까 필요 없어. 죽은 놈들의 몫은 네가 알아서 써. 가족들에게 가져다주던. 크게 무덤을 해주던.”


―제발··· 누구라도··· 제발··· 흑··· 아무도··· 없어요?


더 이상의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


홀로 남겨진 천장은 새까맸다.

횃불 하나 없는 깊은 독울 속이니 당연했다.

나는 멍하니, 잠들 것처럼 눈을 감으며 상념에 빠졌다.


제이슨, 바르겐, 람, 메리··· 너희들은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아는 그 어떤 단어로도 이 마음속에 품은 감사를 표현하는 건 불가능하리라.


그러니 나는 그저 고맙다고,

고맙다고만 말하겠다.




##.


이 세계에 처음 떨어졌던 나는 우스꽝스러울 만치 들떠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들뜸을 가장하고 있었다.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애초에 그다지 천연덕스러운 인종이 아니다.


당연 처음 낯선 곳에 떨어졌을 땐 두려웠고, 당황스러웠다.

물론 어쩌면 만화에서나 보던 일이 벌어진 건가 싶어 조금은 들뜨기도 했었다.

그게 오래가진 않았고, 애초에 그런 세계도 아니었지만.


예를 하나 들어보자. 가령 평범한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 자고 일어났는데, 카르텔이 횡행하는 멕시코에 맨 몸으로 던져진 거다.

모닝콜은 총성과 비명으로. 문 밖을 나가보니 옆집 사람이 총에 맞아 죽어있다.

수중에 가진 돈은 없고, 주위엔 내 장기를 떼먹고 싶은 놈들로 한가득.

그런 출구 없는 지옥의 한가운데다.


현실에서 게임할 생각, 야자 땡땡이 칠 생각이나 하던 인간의 정신이 버틸 수 있을까.

미치지 않고서야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미칠 순 없었기에 나는 웃었다.

스스로에 대한 방어기재로, 무엇이든 익살스럽게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광기의 바다에 빠진 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할 것 같아서.


광대놀음은 그럭저럭 할만했다.

어차피 살기 위해서라도 난 웃어야만 했다.

상대방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내가 한없이 순종적인 병신새끼임을 보여주기 위해.

하지만 나만이 살아남았다는 건 견디기 어려웠다.

거기에서마저 가면을 쓸 순 없었다.


훈련소의 동기들이 있었다. 약 100여명, 나는 아직까지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4주라는 길면서도 짧은 시간 동안, 생판 모르던 남남이었던 우린 전우라는 이름아래 뭉쳤다.

고난이 있기에 끈끈한 유대를 가질 수 있었다. 역경이 있기에 서로를 깊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도.

그리고 모두가 죽었다.


모두가 죽었다는 사실보다도, 오로지 나만 살아남았다는 건··· 정말 버거운 일이었다.

살아남았다는 희열 따윈 없었다. 오직 지독한 환멸만이 남아 나를 괴롭혔다.

나는 거기서 망가졌다. 망가진 채 살아남았다. 다만 살아남았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구함받아, 그렇게 살아남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복수? 새까맣게 변한 잿더미를 보니 대충 이뤄진 것 같았다.

물론 이 뒤에 어느 제국의 음모 따위가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키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폐허를 둘러보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졌다.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몰라, 발길 닿는 대로 걷고 걸어 모험가가 되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이 무작정 인력사무소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처럼. 무작정.


모험가 생활은 이세계에 도착한 뒤로 내게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고, 시간이었다.

숱한 배신과 기만으로 조금이나마 현실을 깨달았다.

이 미친 세계의 밑바닥을 조금이나마 핥아본 것이다.

그리고 친구를 만났다.


제이슨, 바르겐, 람, 메리··· 그들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아깝지 않을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그들에게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이곳에서 살아남는 지혜, 죽음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옆에 두고 지내는 삶.

죽음조차 웃음으로 승화하는 미친놈들이 곁이 있었기에, 나는 이 미쳐버린 세계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 소중했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자폐증이 도진 병자의 중얼거림처럼, 입에서 하염없이 영창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무슨 마법인지도 모른 채, 그저 끝없이 마법을 발동시켰다.

만에 하나 구원처럼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약간,

나머진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발버둥이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 소환 : 황금 』


투박한··· 마법이었다.


허공에서 느닷없이 황금이 쏟아져내렸다.

퍽, 퍽 주먹 만한 금송덩어리들이 적잖은 무게로 내 얼굴과 몸을 때렸다.

그걸 가만히 맞고 있자니, 여러 감정들이 엇물렸다.


옛날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헬조선이니 뭐니 해도, 돈 많은 사람에겐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고 행복한 곳이 없다고.

그리고 이 미친세계는 우리나라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곳은 아니었다.


매관매직이 공공연한 세상이다. 돈만 있다면 일단 번듯한 직업을 하나 얻을 수 있을 거다. 굳이 목숨을 걸지 않아도 먹고 살 수는 있단 말이지.

아니, 좀 더 욕심을 가져보자. 모든 일을 가신에게 맡기고 탱자탱자 노는 무능한 영주, 이런 거 괜찮지 않은가. 숨만 쉬어도 세금이 들어와서 돈 걱정 없이 놀기만 하는 거다. 음음, 괜찮다. 뭔가 이세계판 건물주 같아서 좋아.


창관도 원 없이 이용할 수 있을 거다. 지구에서야 백인, 흑인 등으로 끝났겠지만 여긴 이세계라고?

엘프에 수인에 별의별 종족들이 있다. 성에 관련해서라면 얼마나 기막힌 것들이 기다릴지 상상도 되질 않는다.

아니지, 생각해보면 창관조차 필요 없다. 돈만 많다면 저택 하나 마련한 다음에 성노를 잔뜩 구해다 주지육림을 펼칠 수 있을 테니까.

꿈만 같군. 매일매일 엉망진창 이종족 하렘. 최고.


사병들을 고용해 데리고 다니면 어깨에 퍽이나 힘이 들어갈 거다.

그 동안 날 무시했던 놈들에게 한 방 먹여주는 것도 좋은 경험이겠지.

빌어먹을 스웨인, 예전에 파티 가입비니 뭐니 하면서 내 피 같은 돈을 삥땅쳤던 거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을 기다려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젠장.”


자살하려던 사람 앞에 5억 원짜리 당첨 복권이 떨어진다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지금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출장 갔던 정신병이 회복되어 돌아오는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

진짜 지금 죽어도 아무 생각 없을 만큼 부정적이던 감정이, 오묘하게 바뀌었다고.

빌어먹을 돈! 그놈의 돈! 씨발 놈의 돈!


“···젠장··· 그래도··· 기껏 이세계까지 왔는데 엘프랑 수인족 데리고 쓰리썸은···”


나는 이 미친 세계를, 조금 더 살아보기로 했다.


작가의말

조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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