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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미쳤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여하래
작품등록일 :
2018.11.23 19:20
최근연재일 :
2019.02.08 19:0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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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
추천수 :
7
글자수 :
137,191

작성
18.12.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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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8

DUMMY

##.


“아이고, 감사합니다! 나으리! 앞으로도 저희 상회를 꼭! 꼭! 애용해주십쇼!”


난쟁이가 깍듯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나는 물욕 없는 사대부마냥 허허,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무얼, 소환마법으로 생긴 황금을 처분한 거다.


“살펴가십쇼! 나으리!”


호구 잡혔다는 건 안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낯선 이국에 떨어져서 혓바닥 하나로 사기를 면하기에 나는 지극히 평범한 범인(凡人)이었다.

혹시 게임으로 모든 것을 정하는 놀라운 세계라면 모를까, 여긴 복수랍시고 칼 먼저 들이밀 험악한 용병과 모험가들이 지천에 널린 세상이다.

어쭙잖게 굴다가 팔다리 잘리는 것보다야 호구처럼 퍼주는 게 나았다.


“금화 860개라···”


그렇다곤 해도 극악의 교환비가 아닐 수 없었다.

내 몸뚱이만한 황금을 내고 10/1도 안 되는 금화를 받다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꽁돈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실제로 그런 돈이기도 하고.


천하제일호갱대회라면 최소 준우승은 할 정도로 호구를 잡혔다곤 해도, 황금은 황금이기에 적잖은 돈이 나왔다.

거금이 들어오니 떠오르는 건 돈이 나갈 곳뿐이었다.

식사, 숙박, 장비··· 하지만 무엇보다도 급한 것이 있었다.


“···노예부터 사야겠지.”


이세계하면 역시 주인님만 바라보는 일편단심의 노예가 필요한 법이지!

···라는 생각은 정말 놀라울 만치 희미해져있었다.

지금의 내겐, 다만 누군가가 내 편으로서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했다.


내겐··· 그런 존재가 필요했다.




##.


“상시판매 하는 노예는 대체로 질이 낮습니다. 경매에 내놓을 만한 값이 못 되는 녀석들만 모아놓은 셈이지요. 그래서 이틀 후에 저희 상회가 주관하는 경매가 있사온데···”

“되었다. 지금 구매하겠다.”


노예제가 법제화 된 세계인만큼, 노예시장 역시 번화가에 호화로운 간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도 물어물어 그나마 괜찮다는 노예시장을 찾았다.


“혹 용도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갖고 있는 노예의 수가 많다보니, 괜찮으시다면 용도에 따라 제가 추천해드리겠습니다.”

“그냥 한 번 둘러보겠다.”

“그렇게 하십시오. 지안! 안내해드려라!”


상인의 말에 뒤편에 기립해있던 종업원 하나가 번개처럼 파밧, 다가왔다.

지안은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이쪽으로 오십시오, 안내를 시작했다.


노예시장의 내부는 천막촌이라 부를 정도의 규모를 자랑했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천막촌이기도 했다.

열려있는 틈새로 보니, 노예들은 저마다 우리에 갇혀있거나, 손목과 팔목 따위가 쇠사슬에 묶여있었다.


그다지 청결하게 관리하진 않는지, 숨길 수 없는 악취가 공기 속에 짙게 녹아있었다.

나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며 지안을 뒤따랐다.

한편 지안은 익숙한 듯 조금도 내색치 않으며, 죽죽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그 망설임 없는 걸음으로 바로 앞에 있던 천막을 지나쳤다.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쪽에도 노예들이 있는 모양인데···”

“저 안에 있는 건 전쟁포로 출신의 노동용 노예들입니다. 보통 나라에서 잡아들였다가 버리고 버려져 오는 것들이라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용모가 반듯하지 않고, 신체나 정신에 장애가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죠.”

“저런 노예들은 사는 사람이 있는가?”

“일손이 달리는 농장이나, 큰 공사가 생기면 여럿씩 팔립니다. 최하급이라곤 하나 노예는 노예인지라 여럿씩 팔면 값이 되지요. 혹 살펴보시겠습니까?”


미안한 얘기지만 가급적이면 나는 정신과 사지가 멀쩡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




##.


나는 한명의 노예를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나름 청결하게 관리된 쇠창살의 안에 있었다.

다소 빛이 바랜 짐승의 귀, 떼 묻은 얼굴, 까진 무릎에 돋아난 피딱지.

소녀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묘족의 아이군요. 신체적 결함도 없고, 확인결과 아직 처녀성을 갖고 있습니다. 취향에만 맞으신다면 여러모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되리라, 저 지안 확신을 담아 말씀드립니다.”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인다만, 괜찮은 건가?”

“노예들의 불안증세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들은 노예로 잡혀온 것이고, 이곳에서의 생활도 좋지도 않으니까요. 특히 고객님들 앞에선 더욱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향후 자신의 인생을 쥐락펴락할 주인님이 될 수 있으니까요. 아, 그래도 너무 걱정하신 마십시오. 추가요금을 지불하신다면 용도에 맞게 세뇌하는 서비스도 있습니다.”


지안은 들고 있던 차트를 접으며 말을 마쳤다.

당연 세뇌라는 말에 묘족소녀는 거의 기절할 것처럼 몸을 떨었다.

나는 그녀를 선택하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노예각인만 새기면, 이 노예는 고객님의 것이 됩니다.”

“으··· 아으, 아···”


야야, 노예각인이라는 말에 죽으려고 하잖아.

본인 앞에서 세뇌니, 노예각인이니 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

측은지심이라는 걸 좀 가져봐라.


“노예각인은 되었다. 그냥 이대로 다오.”

“정말 죄송하지만, 그렇게는 판매할 수 없습니다. 고객님이 각인 없이 구매하겠다 말씀하셔도, 만에 하나 천에 하나 노예가 고객님께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희 상회의 평판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모쪼록 이 부분은 이해해주시길···”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지안은 근처에 있던 다른 종업원에게 ‘열쇠를’이라고 말하며 각인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각인은 노예가 명령에 반할 때, 소유자에게 해를 끼치려 할 때, 혹은 소유자가 원할 때 각인을 새긴 부위에 고통을 주게끔 되어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쇄골 사이나 등이 좋습니다. 때때로 성감대에 요구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여성 노예의 경우 가슴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잘라내고 도주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죠. 아, 특히 위험한 노예의 경우엔 절대 도려낼 수 없게 심장에 새기기도 합니다만··· 이 노예의 경우 거기까지 할 필욘 없을 듯합니다.”


그래봤자 손님의 선택이지만요, 지안의 기나긴 설명이 끝났다.

감상을 논하자면··· 귀가 썩을 것 같군. 중간부터 듣는둥 마는둥 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따로 있기도 했고.


“그 노예 각인이라는 거··· 굉장히 아프겠지?”

“듣기로는 인두로 지지는 정도라 알고 있습니다.”


나도 몸에 이것저것 새겼던 만큼 그런 고통을 주고 싶진 않다만··· 어쩔 수 없다니 그나마 덜 아플 법한 곳을 고르자.


“그렇다면 팔등으로 하지.”

“팔등은 조금···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팔등으로 하겠다. 그리고 각인을 새길 때 붕대 따위로 팔을 압박시키고, 마취제를 넣어 고통을 덜어주었으면 한다.”


내 옹고집에 지안은 곤란한 기색을 띠었지만, 품속에서 금화 한 장을 꺼내주자 ‘물론 모든 것은 고객님의 선택입니다’라며 승낙했다.




##.


수술에 들어가기 전, 지안은 마취제에 관해 얘기했다. 고급품은 정말 귀해 금화로도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고, 어찌어찌 저급품을 구할 수는 있으나, 고작해야 고통을 덜어주는 정도에 그칠 거라고.

아쉽지만 저급품에 만족하기로 했다.


노예각인을 새기는 과정은 보지 않기로 했다.

안 좋은 과정이 떠오를 것 같기도 했고, 애초에 나는 노예가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보면서 기뻐하는 변태가 아니니까.

문 한 짝의 거리, 반대편에선 끔찍한 비명이 새어나왔다.

재갈을 물린 듯, 높진 않았으나 깊고··· 또 깊은 비명이었다.


10분가량이 지났을 즈음, 지안이 노예를 데리고 나타났다.

내가 요청한대로 그녀의 팔등에 인두로 지진 것 같은 문양 따위가 새겨져있었다.

괜히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거니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안은 묘족 소녀를 내 쪽으로 밀며, 앞으로 모시게 될 주인님이라 설명했다.

허나 정작 그녀 자신은 나와 눈조차 마주치치 못하고 있었다.

나는 어찌해야 할까, 잠깐 고민하다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름이 뭐니?”

“······.”


아무 대화 없는 정적이 10초 정도 이어졌다.

가만히 서있던 지안은 질렸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들고 있던 시트를 보며 말했다.


“뮴이라고 합니다. 필요하시다면 이 시트를 드리겠습니다. 대강의 인적사항은 여기에 다 적혀있습니다.”

“되었다.”


그녀에 관해 알아가는 건 나중의 일이다.

당장은 마음을 얻는 게 먼저다.

나는 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한다.”

“······.”


뮴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소 씁쓸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원래 시작은 이런 거겠지.


작가의말

시작은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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