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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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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래
작품등록일 :
2018.11.23 19:20
최근연재일 :
2019.02.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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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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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DUMMY

##.


뮴은 오랜 시간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는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웠다.

그래도 내 눈에는 마냥 어여쁘기만 했다.

나는 보기만 해도 배부른 기분이 들어, 내 몫의 접시까지 그녀에게 주었다.

연령으로 따졌을 땐 내가 고등학생에 불과하니 기껏해야 그녀는 동생이겠지만, 왠지 동생보다는 딸아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맛있니?”

“······.”


생전 딸아이는커녕 동생조차 없던 놈이건만, 무에 이런 감정이 피어나는 걸까.

오가는 대화는 없고, 내뱉는 공기는 삭막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꽤 마음에 들었다.


“주인장. 여기 볶음밥 하나 더 주쇼.”


돈 걱정 없고, 딸아이 같은 소녀가 곁에 있다.

당분간은 평화롭게 살아가리라.


아주 잠깐은,


그런 바람을 바랐다.




##.


“꺄아아아악!”


···새 된 비명에 몸을 일으켰다.

잠결을 한달음에 몰아낼 날카로운 소리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주위를 둘러보는데 여관방이 피로 가득했다.


제길, 설마 장기털이가 침입한 건가. 나름 괜찮은 여관을 잡은 건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상황을 전부 파악하기엔 단서가 모자랐지만, 적어도 진득한 피가 좋은 상황이 아님을 시사했다.

그리고,


“뮴, 뮴··· 뮴!!”


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황급하게 무장을 챙긴 뒤 계단을 내려가자, 여관의 로비도 한바탕 난리가 나있었다.

식당 쪽의 테이블과 음식이 뒤집어져 있고, 다른 숙박객들의 얼굴엔 혼란과 동요가 가득하다.

제길, 제길!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피의 흔적을 좇아 일단 밖으로 뛰쳐나가려는데, 카운터에 있던 종업원이 말했다.


“나, 나으리··· 그··· 나으리의 동행이··· 잘린 팔을 든 채 밖으로···!”


···심장이 싸늘하게 식었다.




##.


···잘라내고 도주할 우려가···

···절대 도려낼 수 없게 심장에 새기기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지안의 말이 기억의 잔향처럼 뇌리에 맴돌았다.

나는 이 정신 나간 상황에서도 정신 나간 모험가답게 전후사정을 추리했다.


···


그래, 뮴이 도망친 거다.

제 팔을 잘라 노예각인을 무효화하고, 도망을 친 거다.

다행이도 이 상황에서마저 ‘뮴은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했다’ 같은 망상을 떠올리진 않았다.

그 정도로 머리가 꽃밭은 아니었다. 곱게 미쳐서 다행이군.

그렇지만 다행을 운운하기엔, 그야말로 최악의 사태였다.


“뮴! 뮴!”


악독한 것···! 제 팔을 자르다니!

하다못해 내게 말했더라면 그냥 보내주었을 것을!

노예를 살 돈이라면 썩어 넘치게 있는데!

빌어먹을! 젠장! 젠장!


나는 피를 좇아, 비명이 이끄는 곳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차창에 스치는 풍광처럼, 주변의 모습이 빠르게 생기고 사라졌다.

호통을 치는 가게의 주인, 바구니를 떨어뜨리는 아낙, 놀란 나머지 주저앉은 소년···


“젠장! 뮴! 뮴! 일단 멈춰라! 뮴!”


달리다보니 시야의 끄트머리에 군중들이 모여 있었다.

아마 뮴은 거기 있으리라, 그런 확신이 들어 나는 마지막으로 힘껏 다리를 움직였다.


짧은 생이긴 했으나, 과연 이리도 절박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이제는 싫다. 더 이상은 싫다. 잃고 싶지 않다.

훈련소의 동기들도, 함께 모험을 했던 동료들도, 모두, 모두 떠나갔다.


내겐 남은 것이 없었다. 내 곁엔 누구도 없었다. 그러다 이제 겨우 하나를 두었다.

소중한 아이다. 말수는 없어도, 표정은 없어도, 대답은 않아도··· 소중한 아이다. 하나뿐인 아이다.

그러니, 그러니 망치지 말아다오. 제발. 제발! 제발!!


“뮴! 뮴! 거기 있느냐! 뮴!”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혹 이 노예의 주인 되시오?”


뮴이 죽어있었다.




##.


“정말 미안하게 됐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었소. 팔 날아간 녀석이 대뜸 피를 철철 흘리면서 문으로 달려드는데 어쩌겠소?”

“······.”

“부디 대뜸 죽인 거라 매도하지 말아주시오. 우리는 분명 경고했소. 그럼에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여서 그렇지.”

“·········.”

“···애초에 팔이 잘린 년이기도 했소. 오래가진 못했을 거요.”

“············.”


그걸 위로랍시고 하는 말이냐,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하지만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들은 도시의 입구를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책무를 다한 것뿐이다.

잘못이라면, 오로지 나에게만 있었다.

그렇다, 이것은 모두 내 책임이었다.


그녀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믿음을 강요한,

하다못해 믿을 수밖에 없게끔 옥죄지 못한···


내 책임이었다.


“그 어떻게 하시겠소? 그··· 필요하시면 관청의 사람을 부르겠소.”

“아니다, 내가 챙겨가겠다.”

“그 피가 많이 흘렀는데···”

“괜찮다.”


나는 도시 경비병에게 뮴의 시신을 인도받았다.

그녀의 시신을 품에 안은 채 교외로 빠져나왔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모험가 무리들은 흠칫거리며 우리를 지나친다.

끝을 고하는 봄의 시간, 어슴푸레 다가오는 저녁놀엔 아직 열기가 녹아있다.

허나 네 색채를 잃은 네 몸은 속절없이 온기를 잃어간다.


함부로 손대지 않아, 닿은 적 없는 살결이 나무껍질처럼 굳어간다.

원래 이러했더냐. 이렇게 차갑고, 이렇게 거칠었더냐.


말해본 적 없는 입술은, 검푸른 빛을 띤 채 죽어있다. 말라비틀어진 입술의 조각이 눈에 밟힌다.

어째서냐. 당장에라도 말할 것만 같은데. 목소리가 나올 것만 같은데, 어찌 그러고 있는가.


“·········.”


머리위에 떨어진 꽃잎이, 흩어진다.

이곳이면 되겠구나. 이곳이면 괜찮겠느냐.


“·········.”


아무도 없는 숲속의 어딘가에, 그녀를 묻어주었다.


짐승이 파먹지 못하게,

깊게···

깊은 곳에···


···날이 저물었다.




##.


“그웁! 크으··· 우웨에에엑···!”


도저히 밥을 넘길 수 없었다. 식당에서 토를 하니 눈치가 보여 방으로 가져왔다만, 다를 바 없었다.

걸레처럼 넝마가 된 식욕과 굶주림의 줄다리기에서 나는 굶주림을 당겼지만, 도무지 밥을 먹을 수 없었다.

그냥 역겨워서. 힘들어서. 괴로워서. 말로 표현 못 할 기분이 몸을 감싸 안았다.


뭐냐, 이제 와서 사람의 시체 때문에 식욕이 없는 거냐?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사람의 시체라면 무수히 봐왔다.

팔 잘린 놈도 봤고, 머리가 터진 놈도 봤고, 좀비가 되어 으깨지는 놈도 봤다.

지금도 꿈속에선 언데드가 된 동료들이 나타나 내 살점을 뜯어먹는다.


그런데,

그런데 왜···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우욱! 웁! 크으··· 우웨에에엑!”


한 시간이 넘게 이 짓거리를 하자니, 종업원들이 방문을 두드린다. 나으리 괜찮으시냐고.

당연히 괜찮지 않다. 당장 죽어버릴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무 일 없다며 그들을 내보낸다.


게워내고 먹기를 반복하는 미친 짓거리에 이젠 뮴의 목소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소녀의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데 말하는 것이 보인다.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그 말이 보인다. 들린다. 들리기 시작한다.


“···아으··· 크으··· 아아, 뮴··· 뮴···!”


결국 여관 주인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토로 가득한 방안의 참상을 보자, 돈은 필요 없으니 꺼지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내가 쏟아낸 토 위를 어기적어기적 기며 금화를 꺼내 던져주었다.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 여관 주인은 헛기침을 몇 번 하다 한 번만 더 이러면 쫓아낼 거라며 나갔다.


닫힌 문과 함께 빛이 사라지고, 적막이 감돌았다.

헐떡이던 신음은 실소로 바뀌었다. 나는 그 실소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올 수 있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얼마나 나사가 빠져야 웃을 수 있는 건가.


류자키의 말이 옳았다.

나는 곧 미친다.

이미 미쳤지만, 미쳐버렸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미쳐버린다.

머지않아.


곧,




##.


다른 노예시장을 찾았다.

기껏 지안이 배려를 해준 것도 있는데, 다시 그곳을 찾을 만큼 신경줄이 굵진 못했다.

이번에 찾은 곳은 뒷골목의 음습한 곳이었다.

가만 보면 노예시장으로선 오히려 이쪽이 맞지 않나 싶었다.


이번에도 종업원이 하나 붙었다.

내가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자, 그는 대번 내게 용사님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마족들이 쫒고 있을 거란 사실, 정체를 밝혀서 좋을 게 있냐는 물음. 내겐 그것들을 하나하나 따질 여유가 없었다.


이번에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대화의 여부와 눈동자였다.

나는 강박적으로 마주치는 모든 노예에게 말을 걸었고, 개중에서도 눈동자가 탁하지 않은 녀석을 골랐다.


“니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린 엘프 소녀였다.

노예답지 않은 싹싹한 어투와 맑은 눈을 지닌 소녀였다.

이런 노예는 거의 없었기에 종업원에게 묻자, 니아가 워낙 어릴뿐더러 잡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했다.


사실은 조금 더 둘러보려 했지만, 종업원이 날 붙잡으며 말했다.

겉으론 저러지만 속으로 불안해한다면서, 자기도 저 소녀만큼은 좋은 주인을 찾길 바란다던가.


그런 설득과 함께 소녀가 물기 머금은 눈빛으로 날 올려다보니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부추김을 당한 느낌은 없잖아 있었지만, 썩 나쁘진 않았다.

소녀는 적어도··· 나와 대화를 할 수 있었으니까.


노예각인은 뒷목의 아래에 새겼다.

저 정도면 어지간해선 저 혼자 파낼 수 없겠지···

저걸 완벽히 파내려면 그 전에 죽을 터다.


이걸로 도주의 우려도 상당 부분 줄었다.

애초에 워낙 싹싹한 아이기에 그런 걱정은 별로 없었다만.


“마을이 불타고··· 저는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진 채, 노예로 사로잡혔습니다.”

“그래도 용사님께서 주인님이 되어주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용사님께서는 마왕을 무찌른 적이 있으신가요?”

“마왕은 저희 엘프에게도 적이에요.”

“용사님께선 어떤 모험을···”

“용사님은 뭘 좋아···”

“용사님···”

“용사···”

“···”




##.


자고 일어났더니 심장에 칼이 꽂혀있었다.

뭐지? 하며 몸을 일으키려니 배가 욱신거린다.

일그러진 눈으로 내려다보자니, 뱃가죽은 아주 걸레짝이 되어있었다.

칼로 족히 수십 번은 찌르고 쑤신 듯싶었다.


“윽···! 이건 대체···”


방의 한쪽 귀퉁이는 뜬금없이 얼어있었고, 창문은 깨져 들어오는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부끼는 커튼 아래는 피로 얼룩진 유리조각과 화분의 흙으로 어지럽혀져있다.

내 옆에는 눈알이 빠지고 솜이 삐져나온 곰돌이 인형이 있다.

순간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싶을 만큼 포스트모던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눈앞의 광경에 비할 바는 못 되리라.


“···소환에 응해 이곳에 나타났다.”


침대 밑에는 온 몸에 상처를 입은 니아가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녀는 공포와 절망의 눈으로 무언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 옮기자···


“묻겠다. 그대가 나의 마스터인가.”


금발벽안의 여기사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가의말

뚜둔?!


(다음 화부터 간간이 19금이 걸릴 예정입니다 = 장르가 미쳐 날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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