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되고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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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늑대
작품등록일 :
2018.11.30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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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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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0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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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 되고 있어 제3화

DUMMY

3.



처음 박스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을 때 든 생각은 의문이었다.


‘도대체 왜? 이걸 가져가라고 나한테 마지막이라고까지 하면서 연락하신 거지?’


희건은 일단 겉만 보아도 알 수 있던 사진첩과 졸업앨범은 놔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스케치북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첫 장에 웬 종이가 하나 들어 있었다. 반으로 접혀있던 종이를 펴 보니 그것은 생활 계획표였다. 접혀있던 자국이 반으로 정확히 경계를 가르고 왼쪽에는 동그란 원 주위에 시간이 적혀있었다. 맨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0부터 23까지.

그리다 만 듯한 계획표는 다시 접어 박스 안에 던져놓고 희건은 스케치북을 다시 보았다.


‘와 이거 언제 적 거냐?’


그것은 그림일기였다. 첫 장의 날짜가 12월 20일이었던 걸로 보아 겨울방학 때 숙제로 내주던 일기 쓰기였나보다. 동그라미 두 개가 위아래로 8자 모양을 이루고 양쪽에 팔만 달아준 기본 형태의 눈사람이었다. 그게 다였다. 코나 눈 따윈 없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쌓은 큰 대(大)자 에 동그라미 하나 올려진 게 수십 개.


’이게 그림일기냐? 낙서장이지. 귀찮은 거야? 그림을 못 그린 거야?’


- 12월 20일 토요일. 날씨: 눈

오늘 방학을 했다. 운동장에 모여 눈사람을 다 같이 만들었다. 재미있었다.


‘······.’

‘뭐, 그렇지. 일기가 거기서 거기 아냐?’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두둔하며 두 번째 장으로 넘기자 이번에는 큰 네모 하나에 아까 그 눈사람과 큰 대자가 그려져 있었다. 처음 것보단 좀 더 정교하게 눈, 코, 입이 달려 있었다. 눈사람의 코는 왠지 모르겠지만 돼지코로 묘사돼 있고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큰 대자의 머리통에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일자로 그려져 있었고 눈사람 쪽을 향한 팔과 주먹이 사람 하나 만하게 비정상적으로 표현돼 있었다. 희건은 그제야 알아보았다. 이 그림이 뭘 그려놓은 건지를.


‘아이언 피스트구만.’


- 12월 21일 일요일. 날씨: 맑음

교회 가기 전 잠깐 성준이와 오락실에 갔다. 나는 돈이 없어서 성준이가 게임을 시켜줬다. 치사하게 붕권만 썼다. 재미없었다.


‘아 성준이가 여기서 나오네? 크킄. 잘 들어갔나 전화나 해볼까?’


잠시 스케치북을 덮고 옆자리에 놔둔 박스 위에 올려놓은 희건은 최근 통화 목록 맨 위에 있던 성준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 어, 도착했냐?

“장난하세요? 너는 집 들어갔어?”

- 나야 바로 앞이 집인데, 뭘. 좀 전에 들어와서 이제 씻으려고.

“제수씨가 뭐라고 안 하냐? 너 오후에 나온 거라며?”

- 야, 아직 식도 안 올렸는데 벌써부터 바가지는 안 긁을 거로 생각했거든? 들어오자마자 등짝 맞았다. 하하!

“괜히 나 때문에 미안하네.”

- 아 진짜 아까부터 뭐가 그리 미안하냐, 너는? 됐고 뭐냐?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보고 싶어서 전화한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아버지가 남긴 거 열어봤더니 그림 일기장 하나 있대? 그거 보다가 너 나와서 전화했지.”

- 뭐 내 욕하고 그런 거 써 놓은 거 읽음?

“너랑 아이언 피스트 하던 거 그려놨더라고, 교회 가기 전에 헌금 삥땅 처서 오락하던 거 그려놨더라. 돈은 네가 냈다고 또 써놨어요.”

- 사람이 진짜 안 변하는 게 맞네. 한결같아서 좋다, 희건아.

“내가 뭘 인마.”

- 너 내려올 때 급해서 지갑 놓고 왔다며. 그게 말이 되냐? 버스는 어떻게 탄 건데?

“아 쫌. 당황해서 헛소리 나온 거 가지고 계속 우려먹을래?”

- 알았다! 알았어. 야, 여튼 나 지금 씻을 거니까 도착하고 연락해. 조심히 가라!

“오냐~”


그렇게 통화를 마친 후 희건은 다시 스케치북을 들었다.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띤 채로.

아까 보던 페이지 뒷장으로 넘기자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그림 칸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Z 하나. 그리고···.


- 12월 22일 월요일. 날씨: 맑음

오늘은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너무 졸렸다.


‘에이 볼 것도 없겠네. 다 이따위로 써놨을 거 아냐?’


혹시 몰라 계속 페이지를 넘겼지만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다. 소재만 다를 뿐이고 숙제를 위한 일기일 뿐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보기 전까지는.

그림은 그려져 있지 않았고 글만 쓰여 있었는데 그 양이 제법 되었다.


-1월 14일 수요일. 날씨: 어두움

아빠가 안 오셨다. 엄마가 교회를 가시면서 먼저 먹으라고 해서 동생과 같이 밥을 먹었다. 조금 이따 엄마가 금방 돌아왔다. 동생은 먼저 자라고 하고 내 손을 잡고는 아파트 앞 언덕 너머에 있는 처음 가 보는 집으로 데려가셨다. 그곳에서 다른 아저씨들과 앉아 있는 아빠를 만났고 엄마는 아빠가 가지 말라고 하는데도 나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왔다. 밖에서 엄마랑 아빠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나는 지금 일기를 쓰고 동생은 나한테 매달려 울고 있다. 아빠가 너무 밉다.


“씨발, 그 날이네.”


자신이 고향을 떠나 생전 처음 가는 외가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동생과 떨어져 살게 만든 이유. 그리고 아버지와 영원히 마주치지 않을 거라 다짐하게 된 그 날.


‘피는 못 속인다고 내가 아버질 욕할 게 안됐었는데 참···.’


스케치북을 덮은 희건은 눈을 감고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아버지와 똑같이 도박으로 지금까지 벌어둔 돈을 날린 게 또 한 번 어이가 없었다. 돈을 몽땅 잃은 그 날부터 지금까지 수천, 수만 번을 후회해도 달라진 건 없었다는 걸 이제는 본인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오늘 잠시나마 잊고 있던 현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 쓰린 현실을 피하려고 오히려 뜸했던 친구들과 술자리를 만들어 떠들고 놀아도 잠시뿐이었고 혹시 모르는 기대감에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십몇 년 만에 고향으로 내려온 거였는데······. 나름 인생을 평범하게 살던 자신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희건 이였다.

그러다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꾸던 망상이었다. 모든 건 운명이 정해져 있고 신적인 존재의 계획대로 밖에 살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떠오르면서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은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만든다는 착각을 하며 현실도피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 내가 이 꼴이 된 건 모두 운명인 거야! 이제 신의 꼭두각시로 더는 살지 않겠어!’


그러면서 아까 그림 일기장 안에서 봤던 종이를 다시 꺼내 편 후 희건은 생각했다.


‘이제 내가 계획한 대로만 살 거야. 중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철저히 내가 세운 대로만 살 거라고!’


희건은 펼쳐 놓은 시간표를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주위를 살펴보고는 대각선 건너편에 있던 한 소녀의 뒷좌석으로 가 앉고는 좌석 머리 부분을 툭툭 치며 말을 걸었다.


“저기 학생? 혹시 볼펜 있니? 연필도 괜찮고 쓸 수 있는 거 아무거나 상관없는데.”


뒤돌아 희건을 슬쩍 본 소녀는 귀찮은 듯 무릎 위에 있던 가방 속을 대충 뒤지더니 컴퓨터용 사인펜 하나를 꺼내 희건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저기요, 아저씨. 저 지금 막 잠들라고 했는데 아저씨 때문에 깼거든요? 이거 안 돌려줘도 되니까 그냥 아저씨 가지시고 말 걸지 마세요, 네?”

“공짜로 받긴 뭐하고 이거 천원도 안 하지? 천 원 줄게. 내가 뺏은 거 같잖니?”


그러자 소녀가 벌떡 일어서 돌아보며 말했다.


“아 쫌!! 엮이기 싫으니까 먹고 떨어지시라고 이 아저씨야!!”


둘 간의 소란에 승객들이 쳐다보자 당황한 희건은 주위를 돌아보며 고개를 몇 번 숙이고는 얼른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소녀는 “흥!” 하고는 다시 좌석에 기대앉았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요즘 어린 애들은 다 저런가?’


어쨌거나 원하던 펜을 손에 쥐게 된 희건은 자신이 생각하던 대로 계획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일단 모든 계획표의 시작은 꿈나라 아니겠어?’

‘지금 10시 15분이니까 음···. 집 도착하면 11시반 좀 넘으려나? 그러면 보자······.’


사인펜으로 0시부터 12시까지 쭈욱 선을 그은 후 희건은 5시에서 중앙으로 다시 금을 긋고 그 사이에 꿈나라라고 써넣었다.


‘잠은 5시간이면 뭐 충분하지. 그리고 당장 내가 돈 벌 게 없으니까 인력을 나가 볼까?’

‘그러면 인력사무소 출근을 5시 30분으로 하고 다음은 7시까지 작업 준비 및 휴식이라고 쓰면 되려나?’

‘인력 가끔 오전 안에 끝날 경우도 있으니까 오전만 일하고 끝난다고 써 볼까? 어차피 안되면 오전만 하고 반 공수만 받지 뭐.’

‘그 다음은······.’


···

···


그렇게 하나씩 생활 계획표를 쓰던 희건은 마침내 모든 칸을 채운 후 생각했다.


‘하루만 계획대로 살아보자. 그냥 되는대로 살지 말고 철저하게 계획대로만!’




***




딴 다다다 딴 다다다 딴딴 따라라단~ 딴 다다다 딴 다다다 딴딴 따라라단~


L사의 시그니처 알람이 울리고 희건은 손을 뻗어 휴대폰을 잡고 알람을 껐다.


“아우 썅. 존나 힘드네. 새벽형 인간은 좀 너무 했나? 하루 더 쉴까?”


다시 눈을 감고 생각을 하던 그는 잠깐의 유혹을 뿌리치고 졸린 눈을 비비고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샤워를 마치고 난 후, 방으로 돌아와 구석에 있던 캐리어에서 희건은 작업복을 꺼냈다. 처박아 놓은 지 오래된 듯 꾸릿한 냄새에 인상을 짧게 쓴 그는 옷을 다 입고는 휴대폰 시간을 확인했다.


- 05 : 21


‘생각보다 시간 여유가 좀 없었네? 작업복 꺼내면서 시간을 좀 썼나.’


집 밖으로 나온 후 조금 걷다 보니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희건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 외투를 입고 나올까 고민하다 그냥 가기로 결정했다.


‘시간도 애매하고 작업용 잠바도 없는데 뭐. 일하다 보면 덥겠지.’


그렇게 발길을 옮기던 그는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과 몇 개의 간판 불빛만 비추는 초겨울의 어둠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2층 창문을 바라보고는 그 건물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성 인력


“아, 날씨가 쌀쌀해지니까 일이 확 주네.”


담배를 꼬나 물고 테이블 위에 놓인 신문을 보던 남자가 말하자 그 옆에 있던 비니 쓴 남자가 대꾸했다.


“형님, 이 근방 공사 저번 주에 다 끝나고 잡일만 남았는데 인력 부르겠어요?”

“아, 그게 말여. 좀 전에 금영인력 나간 박 씨한테 전화해봤는데 그 짝도 대기 3명인가 있고 안 나왔더만.”


그러자 책상에 앉아 핸드폰을 쳐다보던 사장이 말했다.


“요 며칠 일이 이상하게 없네. 김 반장, 오늘도 데마찌 날 거 같은데?”

“아, 사장님. 어찌 된 게 이번 주 내내 일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어요?”

“이 사람아, 내가 어찌 알어? 우리야 연락 오면 잡부 보내는 게 단데.”

“아 형님, 말씀 함부로 하시네? 잡부가 뭐요! 잡부가! 기능공한테 말야! 일도 능력이 딸리니까 못 끌어오는 거 아냐!”

“아니 이 사람이? 말이면 다야?”


사장에게 삿대질을 하며 큰소리를 치고 일어난 그는 옆에서 듣기만 하던 비니 쓴 남자에게 말했다.


“이 씨! 우리도 이제 딴 데로 옮기자고! 이 거지 같은 데서 있다간 굶어 죽기 십상이야!”


그러자 이 씨는 난처해하며 말했다.


“김 반장, 내가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딴 데 가 봤자 쓰지도 않어. 난 그냥 여 있을랑게.”

“맘대로 하쇼, 그면. 난 딴 데 갈랍니다!”


어느새 자신이 챙겨온 가방을 멘 김 반장은 휴대폰을 꺼내 통화를 하며 문 쪽으로 다가섰다.


“어~ 나여. 그 쪽은 일 없다나? 나 지금 거성에 있다 글로 갈···”


-쿵!


“아따 시벌 뭐여? 이 어린 놈의 새끼가 눈을 어따 뜨고! 아우 대갈빡이야!”


문을 열고 들어온 희건은 느닷없이 자신을 부라리며 욕을 뱉는 김 반장에게 말했다.


“아저씨, 내가 뭔 투시 능력자요? 그 쪽이 거깄는지 내가 어찌 알고···.”

“뭐? 그 쪽? 이 새끼가 진짜···. 응? 뭐라고? 미장공? 내가 전문 아녀! 사장 보고 금방 간다고 전해! 5분이면 가니까, 끊어!”


통화를 끊고 난 김 반장은 희건의 어깨를 밀치며 문 밖으로 나갔다.


“너 이 새끼, 내가 바쁘니까 한 번 참는다. 언제 한 번 보자고?”


한 마디를 남기면서.


김 반장이 사라지고 난 후, 사장이 희건을 보며 말했다.


“어? 얼굴이 낯이 익은데? 자네 이름이···?”

“이희건입니다. 몇 년 전에 한 달 정도 나오다가 지방으로 빠졌어요.”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 커피 한 잔 할래?”

“저야 감사하죠. 잘 마시겠습니다.”


사장이 책상 서랍에서 동전을 꺼낸 후, 입구 쪽에 있던 커피 자판기로 다가왔다. 자판기는 음식점에서 흔히 보던 탁자용 자판기였고 잔 당 200원에 판매 중이었다.


“사장님, 저는 없어요?”


비니 쓴 남자가 말하자 사장이 대꾸했다.


“자네도 어디 몇 년 갔다가 오면 한 잔 뽑아줌세.”


사장이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희건에게 건네주자 희건이 말했다.


“아이고 사장님! 잘 마시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내가 원래 아무나 이런 대접 안 하는데 말이야, 하하.”

“근데 저 사장님···.”

“뭐? 물어볼 거 있음 편히 물어봐.”

“그게 아니고 혹시···.”

“혹시 뭐?”


그러자 희건이 말했다.


“저 담배 한 개비만 빌려주세요. 깜빡하고 담배를 안 사 왔어요."


작가의말

날씨가 춥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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