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7 R.O.K

웹소설 > 자유연재 > SF, 공포·미스테리

완결

仁伯
작품등록일 :
2018.12.0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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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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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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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 의심의 실체

인공지능, 민주주의




DUMMY

내연산 인근에 진입한 심원기의 눈에 제일 먼저 띈 것은, 도로가 한쪽에 줄지어 서 있는 버스차량이었다. 낫과 망치, 별을 한 손에 쥐고 우그러뜨리는 호국회 심볼마크가 새겨진 버스들 뒤로, 창에 철제구조물을 설치한 거무튀튀한 경검찰 기동버스들이었다. 일일이 세보지 않아도 족히 스무 대는 넘었다. 심원기의 머릿속에 저 버스들이 온갖 무기와 장비들을 두른 인간과 휴머노이드를 쏟아내는 장면이 그려졌다.


산길 입구는 시위진압용 곤봉과 방패로 무장한 호국회원들과 총기를 휴대한 경검찰 기동대원들이 둘러싼 두 겹의 인벽에 막혀있었다.

그 앞으로는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일군의 무리가 모여 있었다. 그 중 몇몇은 깨금발에 고개를 쑥 내밀어 인벽 너머 산길을 훔쳐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작당모의하듯 수근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심원기와 조진혁은 주민들 앞에 차량을 세웠다. H 자동차그룹의 검정색 HG에 검정색 차량번호판을 부착한 국가보위부 기밀운행차량이 풍기는 위압감에 움츠러든 주민들이 뒷걸음질쳤다.

차량에서 내린 조진혁은 그런 주민들을 일별하고 콧방귀를 끼었다.


심원기는 인벽 앞에서 경검찰의 육성보고를 받는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방금 전 자신과 커뮤니케이트했던 경북지방경검찰청 경비과장 이진벽이었다.

[국가보위부에서 나왔소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국가보위부 요원의 신원정보보안 때문에 사람을 면전에 두고도 커뮤니케이트해야만 했다. 이진벽은 이번 포위수색작전의 최고지휘부임을 깨닫고는 깍듯하게 인사하려 했지만, 머리가 복잡한 심원기는 대번에 손을 들어 쓸데없는 인사치레를 잘라버렸다.


[아직까지 이재훈을 찾아내지 못했소? 은신처는 수색했소? 무슨 단서는 없었고?]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은신처 주변은 물론이고 내연산 전체를 수색했지만 아직까지 용의자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퀀텀스텔스기능을 갖춘 위장포에 덮혀있던 군용 합동전술차량의 뒷좌석에 혈흔이 발견되었습니다. 특별수사팀 내 과학수사요원이 국립과학수사원에 DNA정보를 전송했고, 국가의료센터의 국민DNA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여 이재훈의 것과 일치함을 지금 막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최대한 일목요연하게 보고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질문세례에 당황한 이진벽 대신 동시다중접속상태에 있던 수사과장 마종현이 나섰다.

수색결과보고를 이어가던 중 설명이 막히는 듯 말끝을 흐리자 심원기가 그의 영상을 노려보면서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그 사이 조진혁은 기밀기동작전국 요원들과 커뮤니케이트한 뒤 인벽을 열었다. 그 틈으로 요원들과 특수작전수행형 휴머노이드들이 재빠르게 산길을 타고 올랐다.


[국립과학수사원에서 이재훈 혈흔의 산화도를 정밀분석한 결과, 공기중에 노출된 지 이 주에서 삼 주 가량 된 것으로 추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군용 합동전술차량 내부와 주변 지형을 살핀 결과 아마 그 즈음에 살해된···!]


[살해?! 그것도 이삼 주 전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심원기의 의식이 발끈했다. 깜짝 놀란 수사팀 공동팀장들은 자라목을 하고는 그의 눈치만 살폈다.

보다 못한 조진혁이 눈치를 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충격에 빠졌다.


[시신은 찾았나?]


[은신처 일대를 탐색 중입니다. 그리고 십여 분 전 땅을 파헤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암매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십여 기의 경검찰 휴머노이드를 집중배치했습니다. 매장범위를 넓게 잡아 땅을 파도록 지시했습니다.]


조진혁이 수사상황을 보고받는 순간까지도 심원기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재훈과는 나흘 전까지 커뮤니케이트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이 주 전에 죽었을 수가 있나?!

자신이 커뮤니케이트했던 자가 이재훈이 아니었나?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가 자신에게 신원정보가 비공개된 음성통화회선으로 접속을 요청하려면, 반드시 론머맨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그럼 그가 다른 사람을 이재훈인 척 위장시키기라도 했단 말인가.


갈피를 못 잡는 심원기의 사고를 더욱 거세게 흔들어놓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금 막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암매장흔적이 발견된 곳에서 신원불명의 시신 한 구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완전히 파내진 못해서 하반신 일부만 노출된···!]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들썩인 심원기는 자신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짓는 조진혁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갑자기 몸을 날렸다.

심원기는 인벽을 지나 정신없이 산길을 달렸다. 인벽을 구성하는 호국회원들과 경검찰은 물론이고, 산길 주변에 바글거리던 인간과 기계들이 일제히 길을 비켰다.


홍해가 갈라지는 듯한 그 틈을 파고들듯이 달려 단숨에 산중턱까지 오른 심원기는, 거친 숨을 다스릴 생

각도 없이, 붉은 색 광선으로 설치한 폴리스라인을 지키고 있는 두 겹의 인벽 앞까지 다다랐다.

산길 입구의 이진벽으로부터 보고받은 인벽은 또 한 번 허무하게 갈라졌다. 심원기는 뜨거운 태양빛이 쨍쨍 내리쬐는 공터 한가운데 발을 디뎠다.


합동전술차량은 구식이었다. 아마 제2차 한반도전쟁 당시에 사용했던 모델 같았다. 차문을 두드려보니 일반 차량보다는 훨씬 묵직하다. 아마 방호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철판을 덧대는 공정을 거친 것 같다.


차량 옆 땅바닥에 먼지가 잔뜩 낀 퀀텀스텔스 위장포를 힐끔 본 심원기는 차량 내부를 살폈다. 좌석에는 모두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앞좌석보다는 뒷좌석의 먼지층 색깔이 조금 옅었다. 누군가 뒷좌석을 조금 더 자주 이용한 듯했다. 이곳에서 은신한 사람이 있다면, 이 뒷좌석에서 주로 잠을 청했을 가능성이 크다.


흙바닥에는 합동전술차량 말고도 여러 차량이 오고 간 타이어흔적이 남아있었다. 과학수사팀원으로 보이는 경검찰들이 이 흙자국들 주위에 쪼그린 채 앉아있었다. 흔적을 디지털파일화하여 타이어모델을 검색이리라.


그 때 심원기를 일깨우는 보고가 또 한 차례 올라왔다.


[시신을 건져 올렸습니다. 지금 막 DNA정보분석 중입니다.]


심원기의 몸이 또 한 차례 반응했다. 갈라지는 인벽 사이로 폴리스라인마저 무시하고 달려나간 그는, 은신처 옆 경사로에서 위태롭게 바디를 지지한 채 땅을 파고 있는 다수의 휴머노이드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비교적 기울기가 급하지 않는 땅 위에 시신 한 구가 고이 눕혀져 있었고, 은신처 타이어자국에 매달린 자들과 똑같은 복장의 경검찰들이 빙 둘러쌌다.


국가보위부 요원이라는 사전보고에 과학수사팀원들이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면서, 심원기와 시신 주변에 자연스레 인벽이 세워졌다.

흙투성이인 시신은 이미 피부가 시꺼멓게 변색되었고 살점이 물러져 곳곳이 뜯겨지고 떨어져나갔다. 뼈가 드러난 곳에는 구더기들이 바글거렸다. 땅 속이기는 하지만, 4월의 폭염으로 달궈진 터라 부패가 상당 정도 진행된 상태였다.


시신을 육안으로 확인한 심원기는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로선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시신의 부패도라는 게 주위환경에 따라 굉장히 가변적이라지만, 지금 자신이 본 시신은 땅 속에 묻혀있었다. 공기 중에 노출된 상태도 아니었는데도 저 정도라면, 사망시점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문제의 시신이 정하준 소유의 구식 합동전술차량 인근에 매장되었다. 그 차량은 퀀텀스텔스 위장포로 덮여 있었고, 뒷좌석에서 이재훈의 혈흔이 묻어있었다.

이는 이곳이 이재훈의 은신처였다는 론머맨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이재훈의 살해현장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러한데, 그 시신이 다른 자의 것일 수가 있나.


[국립과학수사원의 DNA정보대조결과입니다. 이재훈의 시신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마종현의 온라인보고가 심원기의 머릿속에 틀어박혔다.

그러나 엉킨 실타래 같은 상념들을 쾌도난마처럼 정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탈길을 올라온 심원기는 은신처를 배회하며 쉼없이 중얼거렸다.

그래. 인정하자. 이재훈은 이삼 주 전에 죽었다.

그럼 자신과 커뮤니케이트했던 이재훈은 이재훈이 아니다. 사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엑세스노드정보도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음성으로만 의사소통했기 때문이다.

만약 사전에 목소리성분을 분석하여 이재훈의 목소리와 말투를 파일화한 후 음성변조프로그램을 구동한다면, 다른 누구라도 이재훈인 척 할 수 있다. 다만 그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던 것은, 이재훈의 성격은 물론이고 그와 정하준, 그리고 론머맨의 관계와 그간의 사정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기에 사실상 론머맨이 아닌 다른 누군가는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럼 론머맨이 이재훈인 척했다는 점까지는 확실하다. 그 이유가 자신을 속이기 위함이었음도 두 말 할 것 없다.

그런데 그가 왜 자신을 속여야 했을까? 그리고 왜 이재훈이 죽었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감추려 했던 것일까?

누가 이재훈을 죽였을까? 이재훈을 죽인 자와 론머맨은 어떤 관계일까?


심원기는 론머맨이 자신을 속인 이유와 이재훈 살인범이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재훈 살인범의 존재 혹은 그의 정체를 숨기려고 론머맨이 이재훈인 척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론머맨은 살인범을 보호하려 했다는 것이고, 그만큼 밀접한 관계라는 의미가 된다.


NSA에서 전송한 Sam Smith의 신원정보가 떠올랐다. 그의 커리어는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었지만, 그의 가족이나 기타 대인관계에 대한 내용은 많이 부족했다. Super-Ego에게 이 부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서 분석데이터를 뽑아낸다면 살인범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으려나.


그 때 정보비공개인 엑세스노드로부터 최고보안등급 단일회선 형태의 트래픽이 전송되었다. 확인해보니 커뮤니케이트요청이었다.

심원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K-security를 통한 트래픽에 최고보안등급을 설정할 수 있는 사람은 조달평 한 사람 뿐이다. 국가보위부 소속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를 왜 굳이 비공개설정했을까.


요청을 승인한 심원기는 예상치 못한 상대방의 익숙한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고생이 참 많으십니다. 심원기 부장님.]


[너 이 개새끼······! 지금 뭐하자는 거야?!]


론머맨이 K-security 보안등급설정프로그램을 해킹했다는 사실에 경악한 심원기의 말투는 무척이나 거칠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국가보위부 요원들의 직급과 직무에 따라 매겨지는 정보접근권한과 보안등급설정권한은 철저한 신원확인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부여하고 변경하며 폐지하는 일체의 메커니즘은 국가의료센터의 대한민국 DNA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요원들의 DNA정보에 연동된다.

그런데 이걸 조작했다는 건, 대한민국 DNA데이터베이스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심원기는 지난 번 VIP를 철통방어하는 전용황 탓에 정하준의 DNA RFID신호추적프로그램 가동이 무산되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이제 보니 전용황이 아니라 VIP까지 발벗고 나섰어도 론머맨이 장난쳐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겠구나.

그걸 지금에서야 깨닫다니······. 빌어먹을······!


[처음에는 인간이고 기계고 뭐 저렇게 닥치는 대로 동원했나 싶었는데, 그래도 저기 경검찰 수사과장이라는 양반이 참 똑똑하네요. 금세 암매장당했다는 거 알아내서 주위의 흔적 살피고 땅 파서 시신 찾는 거 보니 말입니다.]


[이재훈······, 왜 죽인 거냐?]


[저로서는 좀 신경 거슬리는 일이 좀 있었습니다. 그냥 이 정도로만 알고 계십시오.]


[그럼 그는 누가 죽인 거냐?]


[당연히 제가 죽였죠! 누가 죽였겠습니까? 제 신경을 건드렸는데 누가 그를 대신 죽여주기라도 했겠습니까? 누가요? 정하준님이요? 휴머노이드 소피들? 아니면 닥터 우에하라의 이누들이요? 그들에게 제가 신경쓰는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해서, 그들이 대신 손을 써줄 것 같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들이라면 그저 웃어넘기거나 슬쩍 물러나버리고 말 겁니다. 왜인 줄 아십니까? 남의 일이니까요. 그렇잖아요? 남의 일. 굳이 자신이 귀찮고 힘들게 나설 필요가 없거든요? 그런데 웃기지 않습니까? 제가 베풀었던 수많은 호의는 그저 당연한 듯이 받아들였던 사람들이, 뭐 하나 해달라고 하면 손발 움츠리는 게 말입니다.]


[······.]


능청맞게 너스레를 떠는 듯하다가 갑자기 폭발하여 마구 감정을 쏟아낸다.

심원기는 종잡을 수 없는 론머맨의 반응에 어떠한 생각이나 의사도 표현하지 않았다. 마땅한 대응방향을 모르겠기도 하거니와, 저렇게 속에 담아두었던 무언가를 토해내려는 사람을 상대할 때에는 그저 들어주고 받아주는 게 상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론머맨의 푸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침묵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었던 심원기가 또 다시 질문을 던졌다.


[보위부장님의 보안등급설정권한을 끌어다 쓴 이유는 뭐냐?]


[그건 이제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내게 커뮤니케이트를 요청한 이유는?]


[고백할 게 있어서요. 사실 지난 번에 커뮤니케이트할 때 제가 심원기 부장님께 거짓말을 하나 했거든요. 기억나십니까? 패러사이트 해킹에 대해서 제게 이것저것 물어보셨잖아요?][?]


불안감이 엄습했다. 심원기는 그 불안감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다. 이 자식이 Super-Ego에 당장 접속해달라고 요구했던 게 게 바로 이것 때문이었구나.


[만약 패러사이트해킹한 사실이 발각되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셨을 때, 제가 발각될 일 없다고 말씀드렸죠? 사실 그게······, 발각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경우엔 패러사이트당한 엑세스노드만이 노출되죠. 네트워크감시시스템이 제 엑세스노드가 클로킹상태로 타겟에 옮겨가는 것까지 포착했다 해도, 패러사이트당한 엑세스노드에서 전송되는 일종의 비공개트래픽 정도로 파악할 거고요.]


[그, 그게 무슨···?! 야! 야 이 씨······! 이런······!]


론머맨의 설명은 곧, 그가 자신의 탈을 쓰고 해킹한 것이어서, 해킹사실이 드러나면 자신이 대신 적발된다는 뜻 아닌가?!

기가 막힐 때 말문이 막히는 것처럼, 지금의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어나 어구가 떠오르지 않아 사고가 이어지지 않았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론머맨이 그런 거짓말을 했다는 것도 어이없었지만, 조금만 더 따져보았다면 아무 근거도 없이 발각될 일 없다고 잘라 말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의심하고 또 의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상황을 떠올린 심원기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었다.


[그러게 왜 그렇게 절 믿으셨습니까? 제가 심원기 부장님께 거짓말을 안 하겠다고 약속드린 것도 아니고, 행여 약속드렸다 한들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킬 거라는 보장이나 확신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참! 안타깝기 그지없네요.]


심원기는 자신의 의식 속에 구현된 론머맨의 얼굴영상을 뚫어지도록 노려보았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을 엮을 계획을 세웠을까? 정하준과 탁혼촌 입촌을 협의할 때? 아니면 시오리 박사에게 IICC연구와 연관된 MCI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 반공전략연구소와 탁혼촌 내부정보에 대한 Super-Ego의 보안네트워크를 슬쩍 흘렸을 때? 모르겠다.


그런데 왜 자신을 엮으려 했나? 이재훈처럼 자신에게 그의 신경을 거스를 만한 일이 있었나?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는 게 우습다. 론머맨의 해킹능력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정하준의 신병을 확보하려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론머맨에게 정하준의 탁혼촌 입촌요청을 거부했고. 그의 입장에서 그런 자신이 얼마나 신경 쓰였을까.


아니?! 잠깐! 그가 엮으려고 한 사람이 자신뿐일까.

조달평의 최고보안등급 단일회선?!


[이제야 눈치채셨군요. 제가 그래도 심원기 부장님 혼자 외롭게 억울해 하실까봐, 심원기 부장님만큼 억울해 할 사람 한 분 더 붙여드린 겁니다. 아마 Super-Ego 보안네트워크에서는 심원기 부장님의 해킹시도를 파악하고 나서, 심원기 부장님의 모든 네트워크접속기록과 이용내역을 조회하여 분석할 겁니다. 그리고 해킹 전후로 지금 저와 커뮤니케이트하고 계신, 그러나 외부에서는 조달평 국가보위부장님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파악되는 지금의 내용에 주목하겠죠. 물론 최고보안등급 단일회선이라 구체적인 의사소통내용을 들여다볼 수 없을 테니, 두 분을 불러 심문할 테고요. 아마 반공전략연구소 측에서 조사관이 파견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만약을 대비해 조달평을 연루시키지 않으려 했던 속내마저 간파했다. 자신이 보위부장에게 보고를 망설이는 태도를 보고 짐작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인간의 BB를 해킹하여 데이터를 빼낸 것인가?

어찌되었건 간에, 이 자식은 Super-Ego에 대한 패러사이트해킹 건으로 자신을 완전히 날려버리려고 작정했다.


심원기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현장을 통제한 경검찰들이 증거물을 수집하여 파일화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


은신처 폴리스라인을 넘어 산길을 따라내려가려던 그는, 그러나 은신처를 향하는 조진혁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자신에게 잔뜩 화가 난 것처럼 노려보는 눈빛과 얼굴표정 모두 무척이나 사나웠다.

론머맨은 심원기에게 엄습하는 불길함의 실체를 확인시켜주었다.


[해킹사실을 파악한 Super-Ego가 심원기 부장님에 대한 체포와 구금을 요청했습니다. 조달평 국가보위부장님도 영문을 모르기에 달리 손을 쓸 수가 없었고요. 방금 전 K-security가 공안국 조진혁 부장님에게 긴급체포명령서를 전송했습니다. 그리고 조진혁 부장님이 지금 막 경검찰 특별수사팀장들에게 이 명령서를 전송하였고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세요.]


귀신에 홀린 것처럼 론머맨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좌에서 우로 고개를 돌리고 뒤를 돌아보니 십여 명의 경검찰 시선으로도 모자라, 수십여 기의 휴머노이드 카메라가 일제히 자신을 향하고 있는 모습에 온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이 미친 새끼. 평소에도 노는 꼬라지가, 보위부장 하나 믿고 간이 쳐부었다 싶었는데, 이제 보니 반동분자 잡겠다고 꽁무니 쫓아다니다가 반동 물까지 들었구만?!”


빌어먹을. 조진혁 이 새끼랑은 진짜 원수가 되어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격이 되었다.


다만 이 긴박한 와중에도 어이가 없는 건, 설사 자신이 Super-Ego를 해킹했다 쳐도, 그것이 무슨 염병할 논리구조에 따라 반체제적 사상으로 연결되냐는 거다. 하여간 단순하고 무식하고 지랄맞아서 용감할 수밖에 없는 공안국 새끼들. 맘에 안 드는 건 모두 반동이고 빨갱이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둘러싼 이들 너머를 살폈다. 경검찰과 휴머노이드에 둘러싸였음에도 너무나도 억울해서 도저히 포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마지막 투지를 꺼뜨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 기밀기동작전국 요원들이네요. 더 이상 저항이나 도주는 무의미합니다.]


바짝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하던 긴장감이 허무하게 풀렸다.

미처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이십여 기의 기밀기동작전국 휴머노이드들이 심원기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보통의 군경 휴머노이드와 달리 대테러작전용 가상인격을 탑재하고 있어서, 용의자라고 의심되는 자에게 도주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즉시 사살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한 PDW(개인방어화기) P90-6.8의 총구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이제 심원기 부장님께서는 국가보위부로 호송되어 임시구금되었다가 반공전략연구소 조사원들의 심문을 받으셔야 할 겁니다. 물론 조달평 국가보위부장님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휴머노이드들의 총구에 이끌려 이동하는 동안에도, 론머맨에게서 전송되는 의사가 심원기의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자신의 화를 돋우려고 작정한 듯한 그의 계략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심원기는 애써 그의 전송의사를 무시했다.


그러나 그 탓에 그는 론머맨이 남긴 의미심장한 마지막 한 마디를 놓치고 말았다.


[이제 곧 우리는 다시 보게 될 겁니다.]




Neo-Familism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_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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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3 19.06.27 33 1 16쪽
213 위험천만한 반전계 +2 19.06.26 34 1 13쪽
212 철저한 농락 +2 19.06.25 34 1 15쪽
211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2 19.06.24 31 0 11쪽
210 '과거 북조선 인민들의 생체신경무단적출 - 주한미군과 호국회 개입' 뉴스편집 2 19.06.23 35 0 13쪽
209 '과거 북조선 인민들의 생체신경무단적출 - 주한미군과 호국회 개입' 뉴스편집 1 19.06.22 31 1 13쪽
208 광기의 표출 19.06.21 25 0 19쪽
207 세계시민계획의 진면목 1 19.06.20 25 1 14쪽
206 미행 그리고 역습 2 19.06.19 22 1 11쪽
205 미행 그리고 역습 1 19.06.18 28 1 18쪽
204 미행 19.06.17 29 0 23쪽
203 소피들에게 마수를 뻗친 론머맨 19.06.16 26 0 11쪽
202 합종연횡 3 19.06.15 32 0 15쪽
201 합종연횡 2 +2 19.06.14 43 1 14쪽
200 합종연횡 1 19.06.13 33 0 15쪽
199 하나의 개체에 공존하는 인격들 2 - 정하준과 에그의 커뮤니케이션 19.06.12 30 0 29쪽
198 하나의 개체에 공존하는 인격들 1 - 정하준의 삭제된 기억, 그리고 복제된 소피들의 인격 19.06.11 33 1 16쪽
197 죽음의 압박 19.06.10 32 1 9쪽
196 민얼마을 해커 2 19.06.09 29 1 12쪽
195 민얼마을 해커 1 19.06.08 28 0 13쪽
194 커져가는 불신 7 - 론머맨에 대한 정하준과 룩의 의심 19.06.07 29 0 17쪽
193 피를 마시는 거목, 그 실체의 끝 19.06.06 32 1 8쪽
192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6 - 진압 19.06.05 29 0 15쪽
191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5 - 혼란 그리고 갈등 19.06.04 38 0 17쪽
190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4 - 무력시위 19.06.03 31 0 15쪽
189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3 - 처형 19.06.02 32 0 9쪽
188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2 - 선동 19.06.01 33 0 26쪽
187 민얼마을 긴급대표회의 1 - 연출 19.05.31 30 1 13쪽
186 어제의 적, 오늘의 동지 2 19.05.30 32 0 12쪽
185 민얼마을 - 민얼마을의 민주주의, 그 실체 19.05.29 30 0 12쪽
184 민얼마을 5 - 해커 19.05.28 31 1 19쪽
183 민얼마을 4 - 드라이브 19.05.27 34 0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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