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서고는 내 사냥터?
서고에 간다는 내 말에 에드워드 경은 한 박자 느리게 놀라며 대답했다.
“···네? 지금 말입니까?”
오, 정신이 돌아왔다.
초점 없던 눈빛이 살아났네.
“네, 옷만 갈아입고 바로 가겠어요.”
서고에 잠옷을 입고 갈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에드워드 경은 걱정스러운 듯 한 얼굴로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아직 깨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으셨고, 조금 더 쉬시는 게···”
“몸을 움직이는 건 역시 안 되겠지만 책을 읽는 것 정도는 괜찮아요. 너무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려니 지루해서요.”
실제로는 신나게 움직여댔지만.
“으음··· 알겠습니다.”
좋아, 성공이다!
왕궁 서고.
나라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서적이 모여 있는 건 물론이고 타국의 서적이나 오래된 고서, 희귀 서적도 보관되어 있는 로난 왕국 최대의 서고이다.
이곳에 드나들 수 있는 건 왕족이나 왕에게 허락을 받은 이들 뿐이다.
뭐, 당연하겠지.
왕의 창고니까.
그리고 내가 지금 가려는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정보 수집!
다른 부수입도 있지만 일단 첫 번째 목표는 정보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인터넷도 티비도 없는 이런 동네에서 정보를 얻으려면 책뿐이니까.
물론 최신 정보는 얻을 수 없겠지만 그 정도의 피해는 감수할 수밖에 없지.
그런고로 지금 나는 병아리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는 두 사람과 함께 서고로 향하고 있었다.
응? 누구냐고?
당연히 메이하고 에드워드경이지
아, 에드워드경은 병아리라고 하기엔 좀 크네.
닭? 아니지··· 곰···?
나는 주위를 살피며 걷고 있는 에드워드 경에게 슬쩍 시선을 옮겼다.
지금까지는 멍청한 모습만 보여줘서 몰랐는데 이렇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꽤 위압감이 있었다.
내가 작아져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곰 같은 덩치로 뒤를 졸졸 따라오는 그 모습은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서 다니고 싶지만···
안전을 위해서니까, 어쩔 수 없지.
기본적으로 왕족이 거주하는 이곳 내궁은 안전한 곳이기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호위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받았던 습격은 굉장히 드문 경우였던 거다.
사건은 마무리 됐지만 에드워드경은 아직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그 날 이후로 계속 날 따라다니고 있었다.
아직 안전에 확신이 없었던 나로서야 고마운 일이었기에 별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거고.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쪽도··· 다른 의미로 부담스럽지···
양손을 모으고 조용히 따라오고 있는 메이.
21세기의 건장한 소년이었던 나에게 수발을 들어주는 시녀라니···
버겁다고!
게다가 아침의 사건 이후로 묘하게 눈빛이 불타오르고 있고.
하지만 그녀의 존재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지금 입고 있는 이 드레스도 만약 혼자서 입어야 했더라면 절대 못 입었을 테니까.
하아, 어쩌겠어.
그냥 흘러가는 대로 따라야지.
그렇게 나는 서고를 향해 흘러갔다.
서고는 다른 건물이었기에 내궁을 나와 작은 오솔길을 지나 도착할 수 있었다.
네모난 석조 건물의 문을 지나 작은 홀로 들어서자 안쪽에 또 다른 고풍스러운 문이 보였다.
저게 서고의 문이지?
엄청 크구나.
게다가 박력이 넘치는 걸?
내가 서고의 문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뭐야, 너냐?”
우리는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카운터로 보이는 책상과 그 안에 앉아있는 노인이 보였다.
조금 전 목소리는 바로 그 노인의 목소리였다.
라이 브리슈고.
굉장히 히스테릭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이 노인은 서고 관리인으로 엘라이자가 이길 수 없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다.
아버지, 즉 국왕과 굉장히 친한 사이기에 엘라이자로서는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엘라이자로서는 왜 아버지가 저런 짜증나는 노인네와 친한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어찌됐든 그의 앞에서는 예의를 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내가 예의 바르게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말이지.
“죽다 겨우 살았다고 들었다만, 이렇게 나돌아 다니는 거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구나.”
“안녕하세요, 브리슈고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많이 괜찮아졌어요.”
“하? 네 녀석이 한번 죽다 살아나더니 정신이 나간 게로구나? 내가 네 걱정을 왜 하겠냐. 자꾸 귀찮게 찾아오니까 하는 소리지.”
“죄송해요. 가만히 있으려니 심심해서. 그럼 안으로 들어가 봐도 괜찮을까요?”
“...너 진짜 괜찮은 거냐?”
“네??”
갑자기 정색하고 물어오는 할아버지에게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다시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아주 건강해요. 그러니 책을 읽으러 왔죠.”
“...어, 그, 그래. 알았다.”
할아버지는 뭔가 떨떠름하게 대답하고는 테이블 옆에 있는 구슬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구슬이 살짝 빛나기 시작하더니 그 빛에 반응하듯 문 쪽에서 거대한 소리가 나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럼 나는 들어갔다 올 테니까 두 사람은 각자 볼일 보러 돌아가도 좋아요.”
“전 괜찮습니다. 나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저... 저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러니까 부담스럽다구?
으음, 그치만 뭐라 할 수도 없고...
“...알았어요. 대신 너무 늦어지는 것 같으면 먼저 돌아가도 좋아요. 메이 너도.”
“네.”
“네...!”
대답은 잘하지만 말이지...
나는 두 사람을 못미더운 눈으로 한 번씩 쳐다보고는 서고 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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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서고의 문이 닫히고 엘라이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자 에드워드에게 브리슈고가 다가왔다.
“어이, 에드워드. 저 녀석 어떻게 된 게야? 먼저 있던 년은 죽고 어디서 쌍둥이라도 찾아온 게냐?”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십니까. 보시다시피 본인이십니다. 평소와 똑같으셨는데요.”
“하, 저렇게 독기가 쏙 빠져있는데 네놈이야말로 무슨 개소리냐.”
“...”
에드워드는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자신이 더 알고 싶었다.
그는 엘라이자가 들어간 문을 한동안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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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의 안으로 들어온 나는 어두운 복도를 따라 안으로 진입했다.
복도에는 창문이 없기에 불빛은 복도 중간 중간에 놓인 램프가 전부였지만 금세 복도 반대편의 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끼익-
오, 여기가 서고.
꽤 멋지잖아?
꽤나 넓은 공간 안에 책장이 일렬로 가득 늘어서 있었고 그 안에 갖가지 크기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으음... 책이 많아서 좋긴 한데...
이래서야 무슨 책이 있는지 확인하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리겠는걸.
나는 일단 제일 가까운 책장에서 읽을 만한 책을 찾아보았다.
<로난 왕국 서부 몬스터 도감 1>
오오, 몬스터라니.
굉장히 게임스러운게 나왔네.
어디...
앞부분은 별 내용 없었다.
책을 쓴 저자의 소개, 책을 쓰기 위한 고생들, 그리고 여자 친구 자랑.
뭐하는 놈이야 이거?
바로 본문으로 넘기고 싶었지만 우선은 참고 모두 읽었다.
다행히 얼마 안가 본문이 나왔다.
고블린, 코볼트, 더트 프로그, 스몰 타란튤라, 머드 웜 등.
오호, 꽤 잘 만들었잖아?
삽화도 있고 출몰지역이랑 약점까지.
이정도면 도감이라고 할만하네.
책에 적힌 몬스터 대부분이 초보자용 몬스터뿐이었지만 애초에 로난 왕국 서부에는 제국과 접해있는 지역이니 강한 몬스터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대부분의 눈에 띄는 몬스터들은 제국에서 정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 몬스터들 모두 익숙한 것들뿐이잖아.
대부분 게임에서 한 번씩 사냥했던 것들이고.
역시 연관이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띠링- <로난 왕국 서부 몬스터 도감 1>을 읽으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됐다!
하하하, 이게 바로 내가 서고에 온 두 번째 이유.
독서 경험치 시스템이다.
사냥에 특화되지 않은 직업군의 레벨 업을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
나도 많이 도움 받았었지.
그리고 앞으로도 도움 받을 예정이고 말이야.
나는 서고에 있는 책들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 작가의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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