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귀여운 스토커
며칠 전부터 계속 나를 미행해오던 사람은 바로 소피아였다.
처음에는 무슨 할 얘기가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고 놔뒀지만 왜인지 전혀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계속 일정한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기만 할 뿐.
왜 따라오는 걸까?
그날 만났을 때는 살짝 무서워하고 있었는데.
내가 뭔가 실수라도 한 건가?
아무튼 이대로는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직접 나선 것이다.
“무슨 하고 싶은 얘기라도 있니?”
“아···아우우···”
하지만 소피아는 그저 당황하는 듯싶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 도망가 버렸다.
아니 잡아먹지 않아요···
음, 실패했네.
뭐지?
최대한 다정하게 얘기했던 건데.
아직도 말투가 무서운 건가?
잠시 소피아가 멀어져간 방향을 지켜보던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래도 이젠 맘 편히 책을 읽을 수 있겠지.
···
···
응?
“아읏!”
어느새 같은 자리에 돌아와 날 지켜보고 있는 소피아의 모습이 보였다.
이쪽을 보며 경계하고 있는 듯 한 표정.
아니, 그럴 거면 왜 따라다니는 거냐니까?
으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다가가려고 시도해봤지만 그때마다 멀리 도망가 버리는 바람에 이번에는 말조차 붙이기 힘들었다.
결국 그날은 책만 조금 더 읽다가 서고를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네? 과자요?”
아침에 만난 메이에게 나는 몇 가지 부탁을 했다.
“응,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과자 몇 가지만 포장해 줄래. 가능하면 모양도 예쁜 걸로.”
“아, 네! 저한테 맡겨주세요!”
평소보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메이였다.
과자에 관한 일은 평소보다 의욕이 넘치는 것 같네요 메이씨.
“그리고 오늘 저녁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들어갈 것 같으니까 식사는 미리 준비해놓지 않아도 괜찮아요.”
“···? 네, 그럼 조리장님에게 그렇게 전해두겠습니다.”
그리고 오후 검술 수업이 끝난 후.
오늘도 어김없이 서고로 향하는 나를 어김없이 뒤따라오는 소피아가 보였다.
흐음··· 이게 잘 먹혀야 할 텐데···
나는 품속에 메이가 담아준 과자 봉지를 만지며 일이 잘 풀리기를 기도했다.
뭐, 우선은 평범하게 책을 읽을 뿐이지.
가능하면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수십 권을 읽을 동안 단서는 이세계나 다른 세계 같은 내용은 하나도 없을 수가 있지.
관련 마법 같은 것도 없고...
애초에 검색도 못하는 이런 세계에서 책 이름만으로 원하는 내용을 찾기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아니야?
어휴...
가볍게 한숨을 쉰 나는 서고 안에서 몇 가지 책을 골라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 시간.
보통은 책을 덮고 서고를 나설 시간이 됐지만 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소피아도 움직이지 않고 계속 이쪽을 지켜볼 뿐이었다.
근데 안 지겹나?
책 읽는 모습을 계속 쳐다본다고 재밌는 것도 아니고.
어지간히 할일이 없는 걸까?
하다못해 책이라도 읽는 게 더 재밌을 거 같은데.
그리고 몇 시간이 더 흘렀다.
내 배가 슬슬 배고픔을 호소해 올 때쯤 그 소리가 들렸다.
꼬르르륵...
움찔!
조용한 서고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소피아도 자신의 배에서 난 소리에 깜짝 놀라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날 경계하며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소피아가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품안에서 과자를 꺼내들었다.
“먹을래?”
“...”
소피아는 아무 말 없이 그 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꺼내놓은 과자는 역시나 메이가 맡겨달라고 한 만큼 알록달록하고 예쁜 모양의 과자들이 먹음직스럽게 담겨있었다.
나는 포장을 모두 풀어서 바닥에 펼쳐 놓았다.
“괜찮아, 배고프면 먹어도 좋아.”
들고 있는 것 보다는 바닥에 내려놓는 게 덜 경계하겠지.
소피아는 고민하는 듯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과자와 내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공복을 이길 수는 없었는지 조금씩 숨어있던 책장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좋아! 성공이야!
역시 야생동물은 먹이로 길들이기지!
그나저나 지난번 봤을 때도 느꼈지만 진짜 귀엽게 생겼네.
진짜 이런 동생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예뻐해 줄 텐데.
...어라.
내 동생 맞잖아?
실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슬금슬금 다가오던 소피아는 어느새 과자 바로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내 눈치를 한번 보더니 내가 아무 말 없이 웃어주자 자리에 앉아 과자에 손을 뻗어 먹었다.
우물우물...
작은 손가락과 입을 움직여서 열심히 먹는 소피아.
그 광경을 또 흐뭇하게 바라보던 나는 어느새 배고픔 따위는 잊고 있었다.
이게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건가.
어느새 과자를 다 먹은 소피아는 금방 다시 도망갈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나를 보고 있었다.
역시 뭔가 할 말이 있었던 건가?
“...배고파.”
“아, 그쪽이구나...”
내가 기대하던 얘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직접 말을 꺼낼 정도면 많은 발전이지?
“으음... 그치만 더 이상 과자는 없고. 돌아가서 밥을 먹을래?”
“...응.”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 내 옷자락을 잡았다.
윽... 맙소사.
치명적인 귀여움이다.
아니 그보다, 혼자 돌아갈 생각은 없구나?
나는 쓰러지지 않도록 애쓰며 읽던 책을 정리하고 서고를 나왔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왠지 끝까지 내 옷자락을 놓지 않고 따라온 소피아와 함께였다.
“아, 어서 오세요 왕녀님! ...어? 그쪽의 아이는...”
“이쪽은 소피아야. 소피아, 이쪽은 내 전속시녀인 메이고.”
“소피아... 아! 소피아 왕녀님?! 앗, 처, 처음 뵙겠습니다. 메이라고 합니다.”
“...”
메이는 깜짝 놀라며 외쳤고 소피아는 조용히 내 뒤로 몸을 숨겼다.
낯가림이 심하구나.
“조금 사정이 있어서. 일단은 식사 좀 준비해줄래? 두 사람 용으로.”
“아, 넵! 알겠습니다.”
메이는 허둥대며 방을 나섰고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왜인지 소피아는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앉았다.
저기요...?
거리감이 너무 가까워진 거 아닌가요?
“...”
내 의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피아는 커다란 눈으로 날 올려다 볼 뿐이었다.
뭐 귀여우니까 상관없나.
유명한 누군가가 그랬잖아?
귀여우면 다 된다!
잠시 후 다른 시녀들과 함께 식사를 가져왔다.
평소 빠르게 할 일만 하고 사라지는 시녀들도 내 무릎에 앉아 있는 소피아를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 이제 자리로 가서 먹자.”
“···”
하지만 왜인지 소피아는 꼼짝할 생각도 없어보였다.
“···여기서 먹을래?”
끄덕.
아니, 우리 둘 다 그렇게 체격차가 큰 건 아니니까??
이대로면 제가 밥을 먹을 수가 없는데요···
우물우물···
그나저나 잘 먹네.
아까 과자도 꽤 먹은 것 같았는데.
성장기라 그런가.
결국 소피아는 끝까지 내 무릎에 앉아 식사를 마쳤다.
내가 냅킨으로 소피아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 주고 있을 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네?”
“왕녀님, 제스 씨가 찾아왔습니다.”
제스? 누구지?
“응, 들여보내도 좋아.”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지난번 나를 매섭게 노려봤던 소피아의 시녀였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내게 인사하고는 내 무릎에 앉아 있는 소피아를 보고 살짝 놀랐다.
그리고 여전히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엘라이자 왕녀님. 소피아 왕녀님이 보이지 않아서 찾고 있었습니다만··· 설마 여기 계셨습니까.”
그쯤 되면 곧 멱살 잡을 분위기인데요···
“네, 마침 배가 고파하는 듯 보여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어요.”
“···그렇군요.”
“자, 소피아. 이제 마중도 온 것 같으니까 돌아갈까?”
···끄덕.
뭘 고민하는지 모르겠지만 한 템포 늦게 고개를 끄덕인 소피아는 겨우 내 무릎에서 내려와 제스 씨의 옆으로 달려갔다.
“···그럼 실례했습니다. 좋은 저녁 보내시길 왕녀님.”
“네, 좋은 저녁 보내요.”
“···안녕.”
“응, 잘 자렴. 나중에 또 보자.”
나는 손을 흔들며 떠나는 소피아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배웅해 주었다.
그리고 혼자 남은 나는···
“배고파···”
일단 저녁을 먹기로 했다.
- 작가의말
메이가 강아지라면 소피아는 고양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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