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그래 섬세함을… 응? 나도?
몸을 움직이며 상대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동시에 자신의 몸에 걸리는 부하를 계산한다.
아직 괜찮아.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
상대의 움직임을 계산하며 검을 뻗는다.
검이 막히고 반격이 오지만 난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빠르게.
신체에 손상이 가지 않을 정도의 한계의 움직임.
하지만 그럼에도 움직임은 너무 느렸다.
그런 답답함 속에서 연습 시합은 끝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엘라이자님.”
“후우··· 네, 수고하셨어요 에드워드 경.”
답답하네.
이제는 차라리 스킬을 사용했을 때의 움직임이 더 편한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예전보다 지각 능력이 더 발달한 것 같지 않아?
예전에는 이 정도로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이제 신체 능력도 딱히 떨어지지도 않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에드워드 경이 다가왔다.
“아직도 가끔씩 정면에서 검을 받으시려는 동작이 있으시군요. 좀 더 흘리는 동작에 버릇을 들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에드워드 경의 조언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역시 같은 격투계지만 체술과 검술은 여러모로 다르니까 말이다.
“아, 그리고 내일은 아마 검술 수업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뇨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일 있는 건가요?”
“으음... 사실 어제 들어온 소식 때문에 말입니다...”
“소식이요?”
“네, 왕도 서쪽 숲에서 대량의 몬스터 부대를 목격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오, 오오. 그렇군요.”
그거네...
“네, 사실 왕도 근처에서 대량의 몬스터가 생길 리 없기는 하지만 정보를 가져온 분이 너무 강하게 말씀하시는 바람에, 내일 실버나이츠에서 진위 확인을 위해 출동할 예정입니다.”
“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이미 처리해버렸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헛걸음 하게 될 에드워드 경이 안쓰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니, 그치만 에드워드 경도 있을 리 없다고 이미 생각하고 있고.
괜찮지 않을까?
“아, 이 이야기는 비밀로 부탁 드립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자칫 세어나가면 혼란이 생길 수도 있어서.”
“네, 그럼요. 제 입은 제법 무겁답니다.”
그럼요.
지금도 아무 말 안하고 있잖아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남은 연습, 힘내시기 바랍니다.”
그 인사를 끝으로 에드워드 경은 연무장을 떠났다.
잘다녀오세요 에드워드 경.
가끔은 맑은 숲 공기도 나쁘지 않을거에요.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다시 검을 들었다.
아까도 잠깐 얘기했지만 스킬 사용에 관해서는 꽤나 익숙해졌다.
이제 스킬 사용시 생기는 속도감 차이에 덜컥거리거나 넘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래도 아직 검이라는 도구에 어색함은 여전하지.
주먹은 어차피 내 몸이니까.
어떻게 움직이든 자연스러운데.
검술에는 세련됨이 부족한 느낌이랄까.
지금까지의 검술은 그저 목표한 곳을 향해 빠르게 휘두르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야 그저 길거리 싸움이랑 다를게 없다.
그런 검은 더 강한 힘, 더 빠른 속도를 만나면 자연히 쓰러질 뿐이다.
지금은 너무 단순하지.
뭔가 다른 연습방법이 없으려나?
제대로 배울만한 검법같은게... 응?
그러고 보니 하나 있었다.
배우고 있는 검법이.
광암검법...
확실히 그냥 스킬이지만 광암보도 직접 움직여본 결과 움직임이 훨씬 다양해졌고.
광암검법도 그런 식으로 연습하면 도움이 될지도...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일단 스킬을 써보고 그 움직임을 하나하나 관찰했다.
그리고 충분히 외웠다고 생각했을 때 스킬이 아닌 직접 몸을 써서 그 움직임을 따라했다.
하지만 그냥 움직일 때보다 훨씬 어색했다.
익숙해지면 괜찮아 지겠지.
광암보도 처음 쓸 때만해도 그저 삐걱거리기만 하고 왜있는지 알 수 없는 쓸데 없어 보이는 동작들이 많았다.
하지만 실제로 익숙해지고 나니 전혀 쓸데없는 동작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 덕분에 지금은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고.
그렇게 4개의 스킬들을 계속 사용해가며 움직임을 익히고 있던 나에게 메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엘라이자님?”
“응?”
무슨 일이지?
메이가 연습 중에 말을 걸어오다니?
“저... 슬슬 티타임 시간이...”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아무래도 새로 익히는 스킬 연습에 시간이 가는 줄 몰랐던 모양이다.
나는 메이에게 감사를 표하고 정원으로 향하기 위해 뒷정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뭐야? 언제부터 연무장이 애들 놀이터가 된 거지?”
이런··· 정말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거만하고 조롱 섞인 말투.
마주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던 테트로 왕자였다.
옆에는 시종과 하녀로 보이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뭐야, 저렇게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게 정상이야?
귀찮아서 어떻게 저러고 다니지?
하아··· 그나저나 어쩐다.
으윽··· 괜히 검술 연습에 정신이 팔려서···
조금 전의 나를 때려주고 싶다.
“···안녕하셨어요 오라버니.”
“오, 이제 내 앞에서 제대로 인사도 하게 됐구나. 이전엔 천둥벌거숭이 같더니 말이야.”
···저걸 죽여 살려?
으, 됐다. 상대를 말자.
더러워서 피한다 내가.
금발에 삐쩍 마른 외모의 테트로 왕자는 딱 보기에도 재수 없어 보이는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걸요. 그럼 저는 이만 볼일이 있어서···”
“하하하하, 그래. 나만 보면 꽁무니 빼고 도망가는 건 여전하구나.”
어디서 멸치 대가리 같은 게 짖고 있는 거 같은데.
무시하며 연무장을 나가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목을 잡혔다.
“아무리 왕자님이라지만 너무 심하신 거 아닌가요?!”
네? 메이씨?
“응? 뭐냐 네 년은··· 감히 내 말에 토를 달다니. 팔 하나쯤은 잘려도 할말은 없겠지?”
그러면서 검을 뽑아 메이를 향해 겨누는 테트로.
나는 깜짝 놀라며 물러서는 메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냐, 비켜라.”
“메이는 제 시녀에요. 아무리 오라버니라지만 함부로 하도록 놔둘 수는 없습니다.”
“엘라이자님···!”
아니 그렇게 감격하는 눈빛으로 보셔도···
네가 사고친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정신이 나간 게냐? 감히 나에게 거역해?”
“오라버니야 말로 너무 예의가 없는 것 아닌가요? 예전이라면 몰라도 이제는 나이도 드실 만큼 드셨으면서, 성장 하질 않으시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그냥 대놓고 말하기로 했다.
이제 뭐 막가자는 거죠.
이쪽도 왕녀다. 꿀릴 거 없다 이 말씀.
“네, 네 이년이···!!”
흥! 네가 분해하면 어쩔 거냐.
“왜 이리 안 오시나 했더니··· 귀찮은 일에 휘말리신 것 같네요.”
“응? 제스?”
난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았다.
거기엔 어느새 제스가 다가와 서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엘라이자님이 너무 안 오시길래 마중 나온 겁니다.”
제스는 그렇게 말하며 테트로를 향해 평소의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그 눈빛이 테트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 저것도 네 시녀냐? 하여튼 하나같이 너처럼 건방진 것들 뿐이구나. 게다가, 뭐냐 그 눈은? 눈알이 아깝지 않은 거겠지?”
“제 눈은 원래 이렇습니다만.”
“하!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게냐?”
“오라버니? 정말 너무하시네요! 제스는 정말로 원래 저런 눈이라구요! 보여드릴까요? 제스, 날 쳐다보세요.”
“···네?”
제스는 무슨 말을 하고 있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평소와 같은 매서운 눈으로.
“자, 아셨죠?”
“알긴 뭘 알아!!”
뭐야, 날 쳐다보는 눈빛도 똑같다는 걸 보여준 거잖아.
정말 이해력이 부족한 인간이네.
“···두 분 모두 조금은 섬세함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요.”
그래 섬세함을···
응? 나도?
“크읏···! 날 감히 날 우습게 만들어···? 웬만하면 시녀들을 손봐주는 걸로 봐주려고 했더니만···”
이번엔 검을 내게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 재수없는 얼굴로 썩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시녀의 죄값은 네가 치러야지. 안 그러냐? 그래, 팔 하나쯤이면 되겠지.”
“무스···!”
나는 다시 발끈하려는 메이를 말렸다.
제스도 말은 안 했지만 매서운 눈초리가 더욱 더 매서워 지고 있었다.
나는 테트로의 눈을 마주보며 들고 있던 연습용 나무 검을 세웠다.
“오라버니야말로 저와 제 시녀들에게 당장 사과하시죠. 그렇지 않으면 큰코다치실 테니까요.”
“뭐···? ···크하하하하하하!!!”
뭐가 그리 즐거우실까.
“네가 내게 검으로 덤비겠다고? 크큭, 우습구나. 그래 좋다. 네가 날 이기면 네 말대로 너와 네 시녀들에게 사과하지. 대신 내가 이기면 팔 하나는 진짜로 가져가야겠다.”
“흥, 좋아요.”
““엘라이자님···!””
내 말에 메이와 제스는 놀라며 날 붙잡아왔다.
확실히 남자에다가 나이도 나보다 훨씬 많고, 그만큼 검을 연습한 기간도 길 테니 걱정될 수 밖에 없겠지.
난 그런 두 사람을 돌아보며 안심하라는 듯이 웃어 주었다.
“후후, 걱정 마세요. 지지 않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이런···!”
특히나 메이의 표정은 울기 직전이었다.
역시 자신이 이 일에 발단인건 아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래도 옆에서 기름 부은 건 나니까 괜찮은데···
나는 그런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순식간에 이기고 돌아올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두고 연무장 가운데로 나왔다.
딸그락-
테트로는 내 쪽으로 연무장에 비치되어 있던 진검을 하나 던졌다.
“설마 그딴 목검으로 싸우자는 생각은 아니겠지? 제대로 검을 들어라. 애들 장난이 아니니까 말이야.”
나름 위협적으로 말한다고 하는 것 같지만 전혀올시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웠다.
혹시나 몰라 살폈지면 그냥 평범한 검이었다.
하긴, 자기가 질거라고 생각도 못하고 있을 테니까.
이상한 수작을 부려 올리는 없겠지.
테트로의 레벨은 62 나보다 12나 높았다.
게다가 체격도 크고 린치도 길다.
보통이라면 절대 내가 이길 수 없겠지만 아쉽게도 난 보통이 아니니까?
“승부는 상대가 졌다고 인정할 때까지다. 불만 없겠지?”
“네, 시작하시죠.”
그렇게 나와 테트로의 결투가 시작됐다.
- 작가의말
일상물은 너무어렵네요ㅠ
일상물 많이 쓰고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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